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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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나의 필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작가의 근처에도 못갈 것같아 우울하다

특히, 저자께서 작품 초반에 언급하고 계신

나는 성인의 글을 아무리 읽어도 글 따로 마음 따로, 마음 따로 몸 따로

라는 표현에 생각까지 따로가 되다보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백 만 번 스스로 만든 졸렬한

문장력에 대해 안위를 하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족한 것은 부족한 것이다 보니 오늘

나는 아주 우울하다.

그래도 한 구석 굳이 위로할 명분을 찾는다면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하는 여러 현상을 간단명료한

표현과 상징으로 쉽게 접근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작가께서는 심오한 철학적 해석과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하는듯한 묘사로 인해 치열한 삶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

에게 작품이 약간은 버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작가는 참으로 생각이 많으신 것 같다 그래선 그런지 유전적이기도 하겠지만 흰머리가 다른

작가에 비해 유독 많으신 분으로 알고 있다. - 그런 반면에 나는 생각이 짧아서인지 머리 숱이

거의 없다 -

내가 단적으로 작가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를 작품 속 문장에서 일부 발췌해 보면

 

“(서해) 이 섬을 드나드는 빛은 비스듬하다. 아침의 빛은 멀리서 오고 저녁의 빛은 느리게 물러

가서 하루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이 섬의 빛은 어둠과 대척을 이루지 않는다. 빛이 어둠을

몰아내지 않고 어둠이 빛을 걷어가지 않는다. 빛과 어둠은 지속되는 시간의 가루들을 서로

삼투시켜가면서 교차되는데, 그 흐름 속에 시간과 공간은 풀어져서 섞여 있다. 어둠에 포개지는

빛이 비스듬히 기울 때 풍경은 멀고 깊은 안쪽을 드러낸다. 빛은 공간에 가득 차지만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빈 것을 빈 것으로 채워가면서 명멸한다. 만조의 바다 위에 내리는 빛은 먼 수평선

쪽이 더 찬란한다. 그 먼 빛들의 나라로 들어가면 그 나라의 빛은 더 먼 나라에서 빛나고 있을

터이다”(63, ‘서해’)

 

나는 이 대목에서 저자의 글에 대한 내공(?)과 나의 문학적 자질의 기본이랄 수 있는 글쓰기 능력,

사고력의 졸렬함 그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저급함으로 인해 자칭 글쟁이로서의 위상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냥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라면을 끓이며]는 뭐랄까 우리 서민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일용할 양식인 라면

얽힌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막연히 문학을 동경해 뭔가를 써보려 노력하는 어수룩한

작가로서의 관점과 필력을 어찌 갈고 닦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 교과서적인 작품이었다고 생각

한다.

작가께서 표현한 가슴에 와 닿는 일부 문구를 살펴보면

- ‘무짠지는 새벽의 맛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시원적인 맛이다.

- 추위와 시장기는 서로를 충동질해서 결핍의 고통을 극대화한다.

-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시장기는 얼마나 많은 추억을 환기시키나

- ‘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 라면 시장의 앞날은 소외된 군중 속에서 번창할 것이다.

 

그 밖에 [1,2] [] [목수] [] [목숨1,2] [] [서민] [여인]들의 이야기 역시 짧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내용을 주제화하여 그 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는데, 작품을 접하기 전 스스로의 삶을 단순 무채색으로

바라만 보던 관점에 덧칠을 시켜 준 작품으로 많은 생각을 던져 준 작품이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작품 [][시민]이라는 작품에서 찾아 보았다.

- 모든 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시 바늘을 함께 삼킨다.([])

- 지도자가 귀족의 명예심을 잃을 때 서민의 지옥은 시작된다.([시민])

이 두 문구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 이 보다 더 멋지며 핵심을 찌르는 듯한 문구를 문학 작품이나

에세이 등을 통해 접한 기억이 최근에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민]이라는 작품에서 언급하신 문구는 현실의 관점에 대한 문학적 표현의 신천지를 열어

주시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 왔는데, 그보다 이런 문구는 나보다는 선거를 앞 둔 우리의 선량

대표들이 더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작품에서는 직업군인으로 한 평생을 사셨던 나의 부친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안전 불감증을 통렬히 질타하고 있는 [세월호]관련 이야기는 아무리

강조하고 질타를 해도 변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언급하고 싶지 않아 나만이 느끼고 있는 작품에 대한 느낌은 꺼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만, 그 작품을 통해 작가께서 통렬하게 비판한 한 대목을 이야기하란다면

-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수많은 나라들이 멸망했다. 그 나라들은 대부분 반성하는 기능의 마비,

  무책임, 무방비 때문에 망했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추운 겨울밤 형님들께서 출출하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게 라면을 끓여 올 것을 지시하여 라면

5개를 큰 냄비에 끓인 적이 있었다. - 3형제가 먹을 양이었다 -

당시 석유 곤로가 아닌 연탄 불에 라면을 끓였는데, 다년간 연탄불을 갈아 보았기 때문에 연탄불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 나는 라면이 끓기를 기다렸음에도 기대만큼 라면이 끓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처음에는 라면을 3개만 넣었는데 잠에서 깬 막내 녀석이 - 도합 4명이 먹게 되었다 - 자기도 먹겠다고 큰 형에게 아양을 떠는 바람에 2개의 라면을 추가하는 바람에 라면 양이

5개로 늘었는데, 라면의 양이 늘었으니 당연히 물의 양도 늘려야 한다는 미친 생각에 이제 막

끓기 시작한 냄비에 물을 더 붓고 한 참을 기다린 후 냄비 두껑을 열어 보니 라면과 라면 국물은

온데 간데 없고 라면 대신 라면 떡냄비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날 라면을 잘못 끓인 벌칙으로 형들 앞에서 라면 5개를 혼자 다 먹어야 하는 기합을 받은 적이

있으며 그 날 이후 라면을 잘 끓일 때까지 겨울밤 내내 라면을 엄청 끓여서 형님들께 바친적이

있다.

 

또 하나는 나의 청소년 시절의 일정 부분은 라면을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던 적이 있다.

특히, 공부하다 새벽에 끓여 먹던 라면의 맛은 지금도 머리 속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각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님처럼 그 맛은 내 혓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도 라면 한 개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노란 양은냄비에 계란과 파 그리고

김치 국물을 약간 넣고 끓인 후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서 먹는 겨울밤의 라면 맛은 거의 환상에

가까운 맛을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은 라면의 폐해도 컸었다.

추운 겨울날 야심한 시각에 부엌에 쭈그려 앉아 라면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야속한 졸음 귀신이

꼭 따라 붙는다. 라면을 먹고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잠자리에 그대로 들어가면 아침에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입 맛을 잃게 되어 그냥 학교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나를 격려하는 모친의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온다

셋째야 네가 밤새 공부를 열심히 해 입 맛이 없는가 보구나

라는 이야기에 가슴 뜨끔함을 느끼며 학교로 발길을 돌리면서 오늘은 라면 먹지말고 공부만하다

자야지 하지만 새벽 라면의 유혹은 그리 쉽사리 포기가 안 되는 그런 유혹이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작품을 읽으며 라면과 얽힌 두 가지 이야기는 언제나 내 머리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라면만 바라보면 그 생각에 절로 나의 미소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라면 비싼 라면이 나타나도 과거 부엌에 쪼그리고, 형들 앞에서 벌 받으며

먹던 라면만큼 맛있는 라면을 아직 발견하지 못해 아쉽다.

라면을 끓이며라는 작품을 읽으며 나는 이런 추억이 생각났는데, 이 작품을 읽으신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이 났을까?

아무튼 라면하면 누구나 즐겨찾는 간식이라는 생각보다는 웬지모를 정겨움과 함께 아스라한

옛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마법을 지닌 일용할 양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면을 끓이며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배가 고파 라면을 끓였으며 나는 오로지 먹는 생각만 했으며 간혹 라면에 넣을 계란이 집에 없을

 때는 신경질을 낸 기억 밖에는 없다

라는 이야기 외에는 달리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없다.

그러니 문장력이나 사고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도 라면을 끓일 때는 그 어느 시간보다도 즐거웠으며 행복했었다는 기억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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