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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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발간된 <노예 12>은 이전에 읽었던 책에 비해서 원만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기도 하거니와 문체 역시 이전의 것들보다는 훨씬 와 닿는 느낌이라서 주인공인 솔로먼 노섭에 이입되어 한층 심도 있게 이 책에 빠져 볼 수 있었다.

 평범한 한 가장의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알콩달콩 하루하루를 함께하는 가족이 있었으며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나날들을 보내기 위해서 매일을 열심히 보내고 있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날마다 한 번 이상 채찍질이 없이는 지나가지 않았다. 채찍질 벌은 목화의 무게를 잴 때 실시되었다. 무게를 채우지 못한 죄인은 밖으로 끌려가 옷이 벗겨진 채, 바닥에 엎드려서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 동트기 전부터 잠잘 시간까지 채찍의 날카로운 소리와 노예들의 비명은 엡스의 농장에서 목화를 따는 시기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들린다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다. -본문

 혹자는 그럴 것이다. 그렇게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하기 이전에 그가 탈출하면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어떻게든 저항을 해서 도망을 치든, 다른 이들에게 도와 달라는 했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그를 사람이 아닌 철저히 물건이자 돈으로 보고 있는 노예상들은 노섭은 인간이기 이전에 그들에게 부를 전해주는 자원이었으며 그리하여 그가 자유인이었던 것조차 은폐시키기 위해 그를 감금하는 것은 물론 그가 자유인이라는 진실을 입밖에 꺼내기만 하려 하면 몽둥이 찜질로 다시는 진실을 말할 수 없도록 엄포를 놓고 있었다.

 자유인을 노예로 파는 행위의 위험성과 그에 따르는 처벌은 나보다도 그가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자기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를 똑똑히 알고 있었고 내 입을 막을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희생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 생긴다면, 내 목숨은 깃털만큼의 무게도 안 나갈 것이었다. 틀림없이, 그는 자기가 했던 말 그대로 할 작정이었다. –본문

 이익으로 점철된 이 모든 관계의 굴레 속에서 가장 나약한 노예들은 모든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인간, 아니 가축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는 무한한 채찍질과 썩어가는 베이컨과 사료용으로나 먹는 옥수수가 전부였다. 그들에게 노예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상 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주인을 위해 눈 떠 있는 모든 순간 집중해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했으며 열심히 하든 하지 않든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수고와 격려가 아닌 고된 노동과 폭력뿐이었다.

 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향력과 인맥들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그는 노예제 밑바닥에 내재되어 있는 해악을 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인간을 복종시키고 있는 도덕적 권리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자기 이전의 조상들과 똑 같은 매개체를 통해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과 똑 같은 빛으로 사물을 보았다. 다른 환경, 다른 영향력 아래서 성장했다면, 그의 의식은 틀림없이 달라졌을 것이다.  본문

 종교와 노예제도가 양립하고 있던 그 때의 상황을 바라보노라면 어찌하여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을까, 라며 혀를 내두르게 되는데 노섭은 그 순간의 원망마저도 그들에게 돌리는 대신 당시의 시대상을 탓하고 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조용히 덮어두기에는 너무도 끔찍했던 시간들이다. 어찌되었건 그가 다시 가족의 품 안으로 돌아왔고 당시 그를 노예로 팔아 넘겼던 이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었으며 그에게 채찍을 퍼부었던 주인으로부터 벗어나기는 했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을 종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몇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만연해 있는, 노예라는 이름만 사라졌을 뿐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는 현대판 노예들에 대한 이야기들 마주할 때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명 주인이라는 자들에게 당신에게 어떠한 권리가 주어졌기에 이들에게 이 참혹한 일들을 가하는지에 대해 물어야만 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피폐시키는 이 만행이 더 이상은 당연시 되지 않도록, 그리고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이토록 자신의 것으로 군림하며 조정할 수 없다는 것이 수 많은 사람들의 입과 눈을 통해 뿌리깊게 자리 잡히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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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날들』 / 장미정

 

 

 

독서 기간 : 2014.03.10~03.1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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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 - 인생의 답을 찾아 세상 끝으로 떠난 일곱 현인의 마지막 이야기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강만원 옮김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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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제목만 보고서는 막연하게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긴 줄만 알았다. ‘오직, 사랑이라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남아있는 그 사랑에 대한 갈망이나 제대로 된 방향으로의 전달을 알려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딱히 보아서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초반에 등장하고 있다. 카톨릭 수사이기도 하고 유대교의 랍비나 철학자, 아프리카의 수피이기도 하고, 몽골에서 수정구슬을 통해 미래를 보는 무녀 등 이렇게 나열을 하고 보아도 그 어떠한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는 이들은 희한하게도 그들에게는 모두 티베트로 떠날 것을 종용하는 그 무언가의 힘을 마주하게 되며 반신반의 하면서 티베트로 떠난 이들은 한 사원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어떠한 이유로 스스로 이곳에 존재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들은 모여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으며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내일이면 떠날 것을 합의한 그날 저녁, 그들 모두는 똑같은 꿈을 꾸게 된다. 바로 불바다가 된 사원과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순간을 목도하게 된 것이었는데, 이 꿈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 곳에 왜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하여 그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해 깨닫게 된다.

 현인들은 자신들이 안고 있던 세상의 진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게 된다. 그것은 종교와 신념을 초월하여 그 누구에게도 전해 줄 수 있는 정신적 지주이자 지혜로서 앞으로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줄 가르침으로 인류에게 도래할 재앙을 앞두고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후의 결심이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도 계시의 전부를 소유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절대자가 결코 자신의 존재 전체를 동시에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멀리 나아가려면, 다시 말해 신성한 빛의 베일을 벗겨 실체를 제대로 깨달으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종교는 보편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다소 생소한 방식을 가집니다. –본문

 서로 각자 다른 종교이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그 종교 하나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종교주의라는 것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이들 모두 다른 종교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들 모두가 안고 있던 지혜를 하나씩 전해주고 있다.

 흔히들 인간의 욕망은 자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와 같이 매우 모방적이다. 소유한 물건이 있음에도 언제나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갖고 싶어 한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장난감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소유의 법칙에는 적당한 한계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

 너와 나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나와 다른 종교에 대해서 배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이 함께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종교의 색채를 제외하고 나서도 충분히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이 되어 전해지고 있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이란 말처럼, 어른이 되어도 장난감의 크기나 가격만 달라졌지 새로운 것을 소유하기만을 바라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보며 어제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이것만 내 손에 넣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라는 간절한 바람은 어느 새 내 것이 된 이후 그 바람마저 퇴색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른 것들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보여주기 위한 욕망의 반복을 내 스스로 끊어내야만 한다, 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부드러움을 키우라. 너희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라. 부드러움의 결심은 마음의 평온과 세상의 평화이다. 절대로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모욕에 모욕으로, 분노에 분노로 대하지 말라.
 
폭력은 자신과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정당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런 때라도 분노를 적절하게 다스리며, 필요한 순간에 마음의 격동을 멈추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분노에 사로잡히지 마라. 그것은 종종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후회를 남긴다.  본문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싶을 대재앙 속에서 혼자 살아남은 텐진은 그가 전해 받았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무엇보다 세상에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와 함께 이 모든 것들을 전수해 받았던 나티나를 찾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의 행보도 행보이지만 그 현자들이 남기고 갔던 이야기들을 곱씹으면서 이들에게 도래한 마침표가 나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보다도 못한 것을 되새기며 그들이 전해준 이야기들을 조금씩이나마 나의 삶 안에 녹여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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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웃긴 사진관』 / 아잔 브람저

 

   

 

독서 기간 : 2014.02.25~02.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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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퀴어 주겠어! 세트 - 전3권 블랙 라벨 클럽 8
박희영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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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고등학생때였던가, 혼자 짝사랑하던 친구의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강아지처럼 그를 매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망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허무맹랑한 바람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몽상이었고 그렇게 그 짝사랑은 나의 헛된 바람과 함께 조용히 사그러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품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십 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이전의 생각들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났다. 물론 그때의 나는 나의 오롯한 바람이다면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청아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오빠 친구인 진혁오빠를 보면서 청아는 자신의 20대의 목표를 정하게 된다.그 오빠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여 그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는 것. 그 파란하고 달달한 미래만을 꿈꾸며 열심히 달려가던 그녀는 자신의 꿈이 이뤄진 순간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완전히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녀가 사람이 아닌 고양이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너무 놀라지 말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않는거야. 윤청아, 넌 약하지 않아. 그래. 괜찮아.(중략
)
귓가를 울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맑은 강에 비친 황망한 얼굴의 벌꿀색 고양이를 응시했다
.
턱은 브리 라인, 분홍색 뽕주댕이가 사랑스러운 고양이....... -본문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사람에서 고양이로 변모했기에 그녀는 다시금 사고를 위장하여 인간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쥐잡이용 고양이로 어느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로 인해 고양이로서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되게 된다.

 

"?내방도 있어?"
"
그래, 너도 인간의 모습으로 있고 싶을 때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럴 때엔 바로 옆방에서 생활하면 된다
."
어라, 잠깐만. 그러면 인간 모습일때는 이 방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 인간인 나랑 같이 있기 싫어서? 머리속에 떠오른 질문을 뱉을까 말까, 입을 몇 번인가 달싹 거리다 허무하게 다멀어 버렸다. 그 사이 류안은 나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본문

 

청아는 '신수'라는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인간으로도, 고양이로도 변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시공간을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신의 자손인 셀레스틴을 통해서 목걸이를 얻게 되면서 알게 되는데 그저 고양이라고만 믿고 있었던 류안 역시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쥐 잡이용 고양이로 데려온 청아가 쥐를 몰아 류안의 방으로 들이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류안의 끈질긴 관찰 덕분에 밝혀진 사실로 이로 인해서 서로 밀기만 했던 이들의 관계는 서서히 간극을 좁혀 달콤한 로맨스로 들어서게 된다.

 

그들이 함께 하는 순간 청아의 꼬여버린 인생만큼이나 류안과 청아와의 관계 사이에도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청령의 힘을 빌어 첫사랑과 똑같은 이에게 다가가려 하는 순간마다 류안은 그녀의 곁에 맴돌고 있었고 고양이가 된 순간에는 류안의 머리카락을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의 곁을 맴돌고만 있다. 청아가 신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류안은 신수에 대한 내용들을 조사하며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황제에게까지 납치를 당하는 등 그들의 앞날은 파란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그뿐이라기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더, 그보다 더 사랑해주리라
.
창문으로 햇살이 찌르고 들어왔다. 폭풍우가 몰아친 끝에 별이 든 것처럼, 모든게 맑았다. -본문

 

처음에는S극과 S극간의 만남이라 서로를 밀어내기 급급했었지만 어느새 N극과 S극처럼 서로가 함께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 이들은, 신수인 청아는 그녀에게 주어진 영생의 삶을 포기하고 류안 곁을 지키는 것을,그리고 류안은 신수인 그녀를 살아있는 동안 지키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풋풋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느낌이기도 하거니와 잠시나마 꿈꾸기도 했던 이야기들이라 금새 읽어내려간 듯 하다. 따스한 봄날에 달콤한 판타지 로맨스를 읽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보면 어떨까.고양이이자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이들은 없을테니 이 안에서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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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여행 리포트 / 아리카와 히로저

 

독서 기간 : 2014.03.01~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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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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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알싸하다 못해 얼얼한 정도로 매운 고추를 먹고 나서 혀가 마비가 된 후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들을 입에 넣어보지만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는 그 멍한 상태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모습이었다.

 10대들의 파릇파릇하면서도 뭔가 그들만의 풋풋한 느낌의 소설을 기대하면서 읽어내려 간 나에게 이 소설은 그 어느 파도보다도 거대했으며 그 안에서 휘청거리다가 제대로 숨도 못 쉬고 헐떡이는 와중에 겨우 뭍으로 올라온, 그야말로 녹초가 되 버린 것이다.

거울 속에서 눈에 익숙한,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눈에 익숙해지지 않는 여자가 무례하게 나를 흘끔흘끔 마주본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면 나는 마지 어금니로 은박지를 꽉 깨문 듯한 기분이 든다. –본문

 모두의 눈에 모범생으로 보이는 에리는 사실 자신만이 아는 자신을 꼭꼭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 바른 생활 콤플렉스에 걸린 아이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용히 자신이 할 것만 하는 그런 평범한 소녀로 보이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미야교를 보면서 동성인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성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녀는 금지된 선을 넘어 원조교제를 감행하게 된다.

 입 험한 친구 녀석들은 나를 두고 파도 중독자, 세상 즐기는 법을 모르는 가엾은 연습 벌레라고 놀리지만, 나는 서핑에 중독된 내 모습에 불만을 품은 일이 없다. 서핑은 내게는 한없이 자연스럽고 게다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사람들이 모두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혹은 어떤 부류의 인간들이 살기 위해 반드시 술이나 폭력, 마약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본문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과는 다른 현실을 목도하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며 터덜터덜 길을 걷는 도중 같은 학교의 미쓰히데를 마주하게 된다. 학교의 성적보다도 서핑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는 학교 내에서도 오는 여자는 거부하지 않는 남자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모범생 에리와 그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미쓰히데는,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을 비밀을 함께 목도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계약 관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렇게 그들이 아슬아슬한 그들만의 계약 관계를 성립해 나가는 와중에 책의 제목인 견딜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대한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이게 이런 의미였다니, 너무 달콤한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고 있던 나로서는 거의 털썩, 하면서 이 책을 어디서 펼쳐 놓고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해야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건 초, 중반까지의 고민도 중반에 들어가면서 에리의 큰 오빠의 사건이 발생되고 그와 동시에 미쓰히데의 아버지는 죽음을 향해 점점 향해 가고 있었다. 살인과 존엄사에 대한 경계에 있는 그 둘은 어디서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들을, 그러니까 이전에는 오롯이 몸의 대화를 나누었다면 후반부에 가서야 조금씩 그들의 속내를 털어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사체 유기죄가 추가 된다 한 들 형량은 2달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며 덤덤히 말하는 변호사를 보며 에리는 세상의 현실을 알아가게 되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존엄사를 처리하려는 미쓰히데는 고모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크으윽, 이건 진짜 시다.” 이 사이로 습습 숨을 들이쉬며 신음한다. “너무 시어서 위에 구멍이나겠어.”
마지막 한 조각을 꿀꺽 삼키더니 미쓰히데는 심호흡하듯 가슴을 펴고 갑판 저 멀리 수평선을 내다봤다
.
그럼 이번에는….”본문

 어린이와 어른으로 가는 과도기의 단계에 있는 그들에게 시큼한 여름 귤과 같은 느낌이 든다. 제대로 익지 않은 그들의 행보는 서툴러 하는 것마다 어긋나기도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바이지만, 이 소설 속 그들이 가야만 했던 길을 보면서 30대인 지금의 내가 봐도 받아들이기 버거운 길을 갔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 중반에는 그들의 여과 없는 이야기에 기함을 했다면 후반에 발생하는 묵직한 사건들로 앞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덮어지긴 하지만 도통 무엇을 읽어왔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정리가 안되고 있다. 여름 귤과 같이 시큼한 그들의 인생이 나까지 시큼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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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달리는 스파이들』 / 사카키 쓰카사저

   

 

독서 기간 : 2014.03.04~03.0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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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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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선셋 파크>를 통해서 처음 그를 마주하고 그의 문체에 매료되어 있었던 나로서는 이 <겨울일기>라는 신간 소식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다. 닮고 싶은 문체 중 하나인 그의 글을 보노라면 마지막을 덮는 순간까지도, 아니 덮고 나서도 그의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잔상으로 남아 입가에 맴돌게 된다.

 

이번 <겨울일기>는 예순네 살의 작가인 폴오스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닮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에 대해서 '나는'이라는 표현대신에 '당신'이라는 2인칭으로 대변하여 시종일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어색했던 '당신은~'이라는 표현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 자신에 대해서 깊숙히 고백할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기에, 오히려 ''보다도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본문

 

 예순 네살의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의 몸에 새겨져 있는 순간순간들의 기억들을 오롯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조명해보면 한 해와 한 해 사이의 강우량이 어떠했는지 발육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알아낼 수 있듯이 그는 그의 몸에 새겨진 기억들을 하나하나 덜어내어 이 책 속에 담아 놓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타 '호흡의 현상학'이라는 이 방식을 차용함으로서 끄는 그의 몸에 담겨져 있는 감각적인 기록들, 그러니까 성적인 쾌감이나 고통까지도 '당신'이라는 이름을 통해 낯낯이 고백하고 있었다.

 

당신이 죽고 나서도 틀림없이 멀쩡하게 잘 작동할 것이다. 작업실 방 번호도 1-1도 상징적으로 적절한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단 한 사람,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을 벙커같은 방에 홀로 틀어박힌 외톨이를 뜻하는 것 같다. 나머지 세상과 단절하고 매일 자기 머릿속을 탐험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책상에 달라 붙어 말없는 사람. -본문

 

 그에게 남아있는 기억 하나하나를 읽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기억들을 다시금 정리하고 조합하는 과정들을 거쳤을 것이다. 한때는 이방인이었으며 또 한때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이웃과의 다툼을 피했고 한 번의 이혼과 두 번의 결혼을 거쳤으며,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했듯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몇 번이나 스스로 경험했지만 여전히 지금 글을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독자들에게 이 모든 것들을 고백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 부분들 마저도 담겨져 있기에 때론 민망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처연하게 자신의 그동안의 삶을 돌아봤다면, 그 무엇이 두렵고 민망했을까. 그저 그에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이자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니 말이다. 그의 과거가 나에게는 현재로 다가오기에 황망한 것들도 있지만 책을 넘겨 나갈 수록 그 짧은 방황은 다시 그의 이야기를 따라 집중하게 된다. 

 

 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걸을 필요가 있다걷다 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쓰면서 단어들의 리듬을 들을 수 있다한 발 앞으로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심장이 이중으로 두근두근 뛴다두 개의 눈두 개의 귀두 개의 팔두 개의 발이것 다음에 저것저것 다음에 또 이것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그것은 몸의 음악이다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하는 곳이다. -본문

 

 그가 지나왔던 시간의 반도 지나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한 경험 보다는 하지 못한 경험들이 훨씬 많았고 과연 나의 나이테는 어디까지, 어떻게 향해 있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는 그 역시도 아버지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위치에 있으며 삶에 있어서도 몇 번의 실패라 할 수 있는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나왔던 그는 지금 우리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토록 솔직하고 담대하게 들려주고 있다. 유명한 작가이기 이전에 평범한 한 남자로서의 그의 삶을 쫓아가면서 나는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버리고 현재의 나를 마주하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2 1일 밤 이후로 눈은 더 이상 의미를 잃었지만 해가 나지 않고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추운 철에는 매일 방에 웅크리고 앉아 이 일기를 쓴다. 겨울 내내 이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 3월이 되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정원을 들여다보며 색깔의 변화가 땅에서 크로커스 잎이 손톱만큼이라도 불쑥 솟아나오지는 않았는지, 개나리 덤불에 노란 첫 꽃망을이 나오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에는 봄이 더디 오려나 보다. 첫 울새를 찾아보려면 몇 주나 더 지나야 할까 생각해본다. -본문

 

 차디찬 바닥을 걸어 창가로 걸어가며 눈이 소복히 쌓인 나무가지들을 보면서 그는 몇 번의 아침이 그에게 남았는지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그 누구도 이 대답에 명쾌한 답을 해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을 도래할 것이고 겨울이 오면 봄이 오듯 또 다른 문이 우리를 향해 열려 있을 것이다. 초반의 그가 이야기 했던 '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라는 이야기가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다. 그의 나이테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져 있듯 나의 나이테는 어떠한 나날들을 기록하게 될지.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굴레 속에서 우리 모두의 겨울은 어떠한 모습을 펼치게 될지,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를 보며 그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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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살다보니 / 김준자저


 

 

독서 기간 : 2014.02.26~03.0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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