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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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선셋 파크>를 통해서 처음 그를 마주하고 그의 문체에 매료되어 있었던 나로서는 이 <겨울일기>라는 신간 소식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다. 닮고 싶은 문체 중 하나인 그의 글을 보노라면 마지막을 덮는 순간까지도, 아니 덮고 나서도 그의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잔상으로 남아 입가에 맴돌게 된다.

 

이번 <겨울일기>는 예순네 살의 작가인 폴오스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닮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에 대해서 '나는'이라는 표현대신에 '당신'이라는 2인칭으로 대변하여 시종일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어색했던 '당신은~'이라는 표현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 자신에 대해서 깊숙히 고백할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담대하게 표현할 수 있기에, 오히려 ''보다도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것과 똑같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 -본문

 

 예순 네살의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의 몸에 새겨져 있는 순간순간들의 기억들을 오롯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마치 나무의 나이테를 조명해보면 한 해와 한 해 사이의 강우량이 어떠했는지 발육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알아낼 수 있듯이 그는 그의 몸에 새겨진 기억들을 하나하나 덜어내어 이 책 속에 담아 놓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타 '호흡의 현상학'이라는 이 방식을 차용함으로서 끄는 그의 몸에 담겨져 있는 감각적인 기록들, 그러니까 성적인 쾌감이나 고통까지도 '당신'이라는 이름을 통해 낯낯이 고백하고 있었다.

 

당신이 죽고 나서도 틀림없이 멀쩡하게 잘 작동할 것이다. 작업실 방 번호도 1-1도 상징적으로 적절한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단 한 사람,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을 벙커같은 방에 홀로 틀어박힌 외톨이를 뜻하는 것 같다. 나머지 세상과 단절하고 매일 자기 머릿속을 탐험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책상에 달라 붙어 말없는 사람. -본문

 

 그에게 남아있는 기억 하나하나를 읽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는 자신의 기억들을 다시금 정리하고 조합하는 과정들을 거쳤을 것이다. 한때는 이방인이었으며 또 한때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이웃과의 다툼을 피했고 한 번의 이혼과 두 번의 결혼을 거쳤으며, 그의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했듯이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순간을 몇 번이나 스스로 경험했지만 여전히 지금 글을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독자들에게 이 모든 것들을 고백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 부분들 마저도 담겨져 있기에 때론 민망한 부분도 없지는 않으나,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처연하게 자신의 그동안의 삶을 돌아봤다면, 그 무엇이 두렵고 민망했을까. 그저 그에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이자 지나간 과거의 일들이니 말이다. 그의 과거가 나에게는 현재로 다가오기에 황망한 것들도 있지만 책을 넘겨 나갈 수록 그 짧은 방황은 다시 그의 이야기를 따라 집중하게 된다. 

 

 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걸을 필요가 있다걷다 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쓰면서 단어들의 리듬을 들을 수 있다한 발 앞으로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심장이 이중으로 두근두근 뛴다두 개의 눈두 개의 귀두 개의 팔두 개의 발이것 다음에 저것저것 다음에 또 이것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그것은 몸의 음악이다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하는 곳이다. -본문

 

 그가 지나왔던 시간의 반도 지나지 못한 나로서는 그가 한 경험 보다는 하지 못한 경험들이 훨씬 많았고 과연 나의 나이테는 어디까지, 어떻게 향해 있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는 그 역시도 아버지의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위치에 있으며 삶에 있어서도 몇 번의 실패라 할 수 있는 사건들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을 지나왔던 그는 지금 우리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토록 솔직하고 담대하게 들려주고 있다. 유명한 작가이기 이전에 평범한 한 남자로서의 그의 삶을 쫓아가면서 나는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버리고 현재의 나를 마주하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2 1일 밤 이후로 눈은 더 이상 의미를 잃었지만 해가 나지 않고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추운 철에는 매일 방에 웅크리고 앉아 이 일기를 쓴다. 겨울 내내 이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 3월이 되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 정원을 들여다보며 색깔의 변화가 땅에서 크로커스 잎이 손톱만큼이라도 불쑥 솟아나오지는 않았는지, 개나리 덤불에 노란 첫 꽃망을이 나오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에는 봄이 더디 오려나 보다. 첫 울새를 찾아보려면 몇 주나 더 지나야 할까 생각해본다. -본문

 

 차디찬 바닥을 걸어 창가로 걸어가며 눈이 소복히 쌓인 나무가지들을 보면서 그는 몇 번의 아침이 그에게 남았는지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그 누구도 이 대답에 명쾌한 답을 해줄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을 도래할 것이고 겨울이 오면 봄이 오듯 또 다른 문이 우리를 향해 열려 있을 것이다. 초반의 그가 이야기 했던 ' 당신에게도 일어나기 시작한다'라는 이야기가 마음 속에 계속 남아 있다. 그의 나이테가 이 한 권의 책에 담겨져 있듯 나의 나이테는 어떠한 나날들을 기록하게 될지.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굴레 속에서 우리 모두의 겨울은 어떠한 모습을 펼치게 될지,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를 보며 그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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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살다보니 / 김준자저


 

 

독서 기간 : 2014.02.26~03.0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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