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후배의 딸에게 생긴 일에 아파하고 염려해주신 서재 이웃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인지, 이번에 새로 전학간 학교에서 너무 멋진 선생님을 만나 아이는 무척 행복해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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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말한다.
선생님이 한 마디 했다고 부르르 학교를 옮겼으니 요즘 젊은 엄마들 무섭다, 교권의 실추다, 할 만하다고. 그러나 못난 엄마가 되어 벼랑 끝에 몰린 딸의 아픔을 보듬을 수 밖에 없었다고.
“선생님이 궁극엔 널 ‘사랑’해서, 너 잘 되라고 따끔하게 혼내신 거야. 그러니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야지 정말 학교를 나오면 어떡해. 학교를 안 가고 뭘 배우며(?) 어떻게 세상을 살 거야!”
이렇게 말하지 못했단다.
엄마로서 또 한때 교사의 길을 준비했던 사람으로서, 그 역시 욕을 하며 학창시절을 지나왔으면서도 여전한 학교현실과 학교 변화를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학 간 첫날 새로 만난 선생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 교실과 자리를 가르쳐주셨고, 마이쮸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아이는 집으로 오는 길에 춤을 췄단다. 담임 선생님은 급식 먹는 속도가 느린 몇몇 아이들을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있다 다 먹으면 같이 데리고 나오셨고, 반 전체를 꾸중할 때가 아니면 일대일로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신단다.
그리고 후배의 딸은 기적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늦잠을 자고 싶어도 학교에 가고 싶어 스스로 일어나고, 혼자 잘할 수 있다며 덩치에 비해 턱없이 큰 책가방을 메고 혼자 등굣길을 걸어가고, 그토록 먹기 싫다던 급식이 맛있어서 다 먹고, 거부감 없이 숙제를 한 뒤 준비물을 챙긴다고.
아이의 달라진 표정을 보며 후배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백 마디 훈계 전에 기다려주고, 손 잡아주고, 너를 사랑하고 믿는다, 눈빛으로 확신시켜주었다면, 아이는 이미 스스로 이렇듯 자라났을 텐데....라면서.
세상 모든 아이들이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나부터 어른된 책임을 제대로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