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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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도나 명상을 하는 동안 다시 그에게 속삭이기 시작한 육체의 집요한 목소리에 그의 영혼이 다시 한번 휩싸였다고 느끼게 된 지금 이렇게 자기를 방기하겠다는 생각은 그의 마음에 위태로운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순간적인 생각에서 그가 단 한 번만 동의하면 그 동안 이루어놓은 것을 모두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자기에게는 힘이 있다는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기의 맨발을 향해 서서히 밀려오는 물을 느끼면서, 아무 소리 없이 소심하게 다가오는 힘없는 잔물결이 처음으로 자기의 열띤 피부에 와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물결이 와서 닿을 무렵, 그리고 그것에 죄 많은 응낙을 하기 직전에, 그는 자기 의지의 갑작스러운 행위와 갑작스러운 화살기도를 통해 구원받고, 그 물결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기슭으로 안전하게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먼 곳에서 생긴 한 줄의 은빛 파도가 다시 그의 발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노라면 자기는 아직 죄악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아직도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힘과 만족감의 전율이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236-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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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려!

 

그는 자기 얼굴과 목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몸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미친듯이 박찼다. 그게 바로 그의 지옥이었다. 하느님은 그를 위해 예비된 지옥을 그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냄새 나고 야수적이고 악의에 찬 그곳은 음란한 염소처럼 생긴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이었다. 그를 위해 마련된 곳이었다.

 

그 고약한 냄새가 그의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서 창자를 메워서 뒤틀리게 하자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기를 다오! 하늘의 공기를! 그는 구역질 때문에 기절할 듯이 신음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창으로 갔다. 세면대 앞에 서자 속에서는 경련이 났다. 그는 싸늘한 이마를 미친듯이 움켜잡고 고통스럽게 많은 것을 토해냈다.

 

발작이 지나가자 그는 힘없이 창으로 걸어가서 창문을 올리고 창틀 사면(斜面)의 한쪽 구석에 앉아 팔꿈치를 문지방에 기댔다. 비는 이미 그쳤고 여기저기 점등되어 있는 사로등을 따라 움직이던 수증기 속에서 도시는 마치 누에가 실을 뽑듯이 누르스름한 안개로 부드러운 고치를 지어 그 속에 감싸여 있었다. 하늘은 고요했고 희마하게 훤했으며, 소낙비에 흠뻑 젖은 숲 속에서처럼 공기는 숨쉬기에 향기로웠다. 이 평화로움과 번뜩이는 불빛 그리고 조용한 향기 속에서 그는 자기 심정을 상대로 서약했다

 

그는 기도했다.

 

(중략)

 

그의 눈은 눈물로 인해 흐려졌다. 겸허하게 하늘을 쳐다보며 그는 이미 잃어버린 순결을 생각하며 울었다.

 

저녁이 되자 그는 집을 나섰다. 습하고 어두운 공기의 첫 감촉과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기도와 눈물을 통해 진정되었던 그의 양심을 다시 아프게 했다. 고백해야 한다! 고백해야 한다! 눈물과 기도를 가지고서 양심을 진정시키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그는 심령의 대리자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그 동안 감춰 온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고백해야 했다.그를 맞이하기 위해 집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문의 발판이 문지방 너머로 끌리는 소리가 다시 그의 귀에 들리기 전에, 부엌 식탁에 저녁밥이 차려져 있는 것을 자시 보기 전에, 그는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싶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214-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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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서운 곳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 중에서도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고통은 지옥이 영원하다는 데 있습니다. 영원이라니! 무시무시하고 참혹한 말이지요. 영원이라니! 인간의 마음으로 어찌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기 그것이 고통의 영원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지요. 비록 지옥의 고통이 실제만큼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영원히 계속될 운명이므로 한없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동안, 여러분도 알다시피, 견딜 수 없게 치열해지고 참을 수 없게 확대됩니다. 벌레에게 쏘인 아픔도 영원히 견뎌야 한다면 무서운 고통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지옥의 여러 갈래 고통을 영원히 견딘다는 것은 어떠하겠습니까? 언제까지나! 영원히! 1년간이라든가 한 시대 동안이 아니라, 영원토록. 이 말의 무서운 뜻을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바닷가의 모래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작은 모래알들은 얼마나 섬세합니까. 아이가 놀다가 쥔 한 줌의 모래 속에도 얼마나 많은 작고 고운 모래알들이 들어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래 더미가 이 지상에서 하늘 끝까지 쌓여 있는데 그 높이가 백만 마일이요. 이 지상에서 가장 먼 허공까지 뻗쳐 있는데 그 너비가 백만 마일이요 그 두께 또한 백만 마일입니다. 게다가 무수한 모래알로 구성된 이 더미가 곱으로 늘어나되 마치 숲 속의 나뭇잎 수만큼, 대양의 물방울 수만큼, 새의 깃털 수만큼, 물고기의 비늘 수만큼, 짐승의 털 수만큼, 광대한 대기 속의 원자 수만큼 빈번히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백만 년이 지날 때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이 모래 더미로 날아와서 이 작은 모래알을 한 개씩 물고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새가 이 더미 중에서 단 한 평방 피트의 모래만이라도 옮기자면 도대체 몇백만 년 몇억 년의 세월이 걸릴 것이며, 그 모래 더미를 모두 옮겨버리자면 또 끝없는 세월이 얼마나 더 흘러야 할 것입니까! 하지만 이 엄청난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도 영겁의 시간 중의 단 한 순간도 끝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수천억 년 수천조 년이 지나고 난 후에도 영겁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된 것이 아니지요. 그 모랫더미가 모두 없어진 후 다른 더미가 솟아난다면, 그리고 그 모랫더미가 하늘에 있는 별의 수만큼, 공기 속의 원자 수만큼, 바다 속의 물방울 수만큼, 숲 속의 나뭇잎 수만큼, 새의 깃털 수만큼, 물고기의 비늘 수만큼, 짐승들의 털 수만큼 빈번히 솟았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고 합시다. 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산더미가 그렇게나 무수히 솟았다 사라졌다 한 이후에도 이 영겁 중 단 한 순간도 끝났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머리가 빙빙 돌 정도로 현기증이 나는 이 기나긴 세월히 흐르고 난 이후에도 이 영겁은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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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들은 사라지고 심신을 소모하는 욕정의 불길이 다시 솟구쳤다. 시구가 그의 입술에서 사라졌고, 분명치 않은 부르짖음과 발언되지 않은 야수적 언어가 그의 두뇌를 밀치고 나왔다. 그의 피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거리를 헤매면서 음침한 골목과 문간들을 기웃거리거나 무슨 소리건 들으려고 했다. 좌절한 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야수처럼 그는 혼자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동류인 사람과 함께 죄를 짓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 함께 죄를 짓자고 강요하고 싶었으며, 죄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희열하고 싶었다. 그는 어떤 어두운 실재가 암흑으로부터 거역할 수 없게 그를 엄습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실재는 전적으로 그 자체로 그를 가득 채우는 물살처럼 미묘하게 쫄쫄거리고 있었다. 그 쫄쫄거림은 잠결에 들은 군중들의 웅얼거림처럼 그의 귀를 공략하고 있었고, 그 미묘한 흐름이 그의 몸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는 그 침투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두 손으로 불끈 주먹을 쥐었으며 이를 악물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그는 자기를 살살 피해 다니면서 흥분시키고 있는 그 가냘프고 실신하는 듯한 자태를 꼭 붙잡으려고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토록 오랫동안 목구멍 속에 억눌러 두었던 부르짖음이 입으로 발산되었다. 그 부르짖음은 수난자들로 가득한 지옥에서 들려 오는 절망의 비명처럼 그의 입에서 터져나와 분노에 찬 애원의 울음이 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또한 사악한 자기 방기(自己放棄)의 부르짖음이요, 어떤 변소의 질척한 벽 위에서 읽었던 음란한 낙서의 메아리에 불과한 부르짖음이기도 했다. (155-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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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의 아버지와 그의 두 친구들이 지난날을 회고하며 축배를 들기 위해 세 개의 유리잔을 카운터에서 치켜드는 것을 보았다. 운명과 기질의 차이가 그 자신과 그들을 심연처럼 갈라놓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그들의 마음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달이 마치 자기보다 연소한 지구를 비추듯이 그의 마음은 그들의 갈등과 행복과 회한을 싸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활발한 생명력과 젊음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 동안 그는 다른 애들과 사귀는 즐거움이라든가, 야성적인 남성의 건강한 힘이라든가, 효심 따위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영혼 속에서는 차갑고 잔인하고 애정을 곁들이지 못한 욕정만이 격동하고 있었다. 그의 아동기는 죽었거나 상실되었고, 순박한 환희를 누릴 수 있는 영혼 또한 아동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불모의 껍질로 남은 달처럼 되어 삶 속을 떠돌고 있었다.

 

그대의 얼굴이 창백함은

하늘을 오르며 땅을 굽어보며

외로이 떠도는 데 지쳤기 때문인가?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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