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데카르트, 스피노자, 의지와 표상, 자유의지
최근에 부쩍 관심을 가지게 된 문제 하나는 '시간'에 관한 것이다. 시간이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정 한쪽 방향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은 마치 레코드판이 돌듯이 끊임없이 제자리에서 순환하기만 할 뿐이고 모든 '존재'들은 어쩌면 인식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계속 흐르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셀 수도 없을만큼 오래전부터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사유해 왔던 그 '시간'에 대해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잠시나마 그것에 대해 탐구해 본들 어디 희끄무레한 윤곽이나마 건질 수는 있는 것일까.
아무튼 내가 최근에 읽었던 몇 권의 철학책들은 '시간'에 대한 놀라운 생각의 일면들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어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책들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베르그송의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등이다. 특히 최근에 읽은 베르그송의 책은 '시간'에 관한 무척이나 놀라운 사유들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베르그송의 저작과 그의 생애를 살펴보니 그가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라는 20세기 전반의 가장 위대한 소설을 쓴 마르셀 프루스트와 매우 가까운 친척이었다는 걸 알고 한번 더 놀랐다(그는 1892년에 프루스트의 사촌누이인 루이즈 뇌부르주와 결혼했다). 하기야 나는 아직까지도 프루스트의 그 유명한 소설을 전혀 접해보지도 못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다만 프루스트의 소설이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그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과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라도 전해 들은 게 없지는 않다.
이것은 서양 언어로 씌어진 일급의 소설들 중 가장 긴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만큼 보람도 크다. 만약 독자가 이 소설에 마음이 끌린다면(마음이 끌리지 않는 독자가 더 많을 것이다), 앞으로 5∼10년 사이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 그것을 독자의 내면세계에 흡수하면 좋을 것이다.
『율리시스』의 주인공은 더블린이라는 장소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시간이다. 예술에다 "시간의 형태"를 집어넣는 것,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답변하는 것이 프루스트의 목표였다.
나는 결론으로 당대의 미국 1급 평론가였던 에드먼드 윌슨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프루스트에게서 우리 시대의 탁월한 정신과 상상력을 만난다. 프루스트는 그 위력이나 영향력에 있어서, 니체, 톨스토이, 바그너, 입센 같은 한 세기 전의 예술가들에게 버금가는 우리 시대의 예술가이다. 그는 상대성의 관점에서 소설의 세계를 재창조했다. 그는 문학 분야에서 현대 물리학의 새 이론(양자 이론)에 버금가는 새로운 글쓰기 이론을 제공했다."
이달은 마침 프루스트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90주년이 되는 때이다(프루스트는 1922년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고, 베르그송은 그보다 19년 후인 1941년에 81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두 사람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학문 연구와 작품 저술에 몰두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특히 인간 내면의 의식을 쫒아 놀라운 탐구를 이룩한 점이 인상적이다. 사실 프루스트의 그 방대한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도 않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베르그송의 주저인『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을 감명깊게 읽었고, 특히나 그 책 속에서 마치 프루스트의 소설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한 대목까지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 놀라웠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이런 무모한 글을 쓸 용기를 내었는지도 모른다.
프루스트가 자전적 에세이를 소설로 바꾸어 제1부 <스완네 집 쪽으로>를 발표한 건 1913년인데, 베르그송의『시론』이 출간된 건 이보다 무려 24년 전인 1889년이었다. 『시론』의 제2장에서 베르그송은 '자아의 두 측면'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치 프루스트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이제 어떤 과감한 소설가가 우리의 상투적인 자아의 교묘하게 짜인 직물을 찢고 그러한 외견적 논리 아래에서 근본적인 부조리를 보여주고, 단순한 상태들의 그와 같은 병치 아래에서, 명명하는 순간 이미 존재하기를 멈추어 버렸던 수만의 다양한 인상들의 한없는 침투를 보여주면, 우리는 그에게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우리의 감정을 동질적 시간 속에 펼쳐 놓고, 그 요소들을 말로 표현한다는 사실 자체에 의해, 그 역시 그의 차례가 되어 우리에게 그 감정의 그림자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단,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 그림자를 투사한 대상의 특별하면서도 비논리적인 본성을 의심케 하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표현된 요소들의 본질 자체를 이루는 그런 모순, 그런 상호 침투의 뭔가를 외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를 반성으로 초대했다. 그에 의해 고무되어 우리는 잠시 우리와 우리 의식 사이에 개입시킨 막을 걷어 제쳤다. 그는 우리를 우리 자신 앞에 다시 세운 것[뿐]이다.(170쪽)
베르그송은 이 대목에 조금 앞서 '질적인 시간과 양적인 시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는 마치 '소설의 한 장면을 금방이라도 펼쳐내 보일 듯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령 내가 [앞으로] 살 도시를 처음으로 산책할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은 나에게, 지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상과 끊임없이 수정될 인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나는 매일 같은 집들을 보며, 또 그것들이 동일한 대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것들을 끊임없이 동일한 이름으로 부르고,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나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난 후 처음 몇 해 동안 느낀 인상을 돌이켜 보면, 그 속에서 일어난 독특하며 설명할 수 없고, 특히 표현할 길 없는 변화에 놀란다.122) 내가 계속 지각했고 나의 정신 속에서 끊임없이 그려지던 그 대상들이 결국에는 나로부터 나의 의식적 존재의 무엇인가를 빌린 것처럼 보인다. 나처럼 그것들도 살았고, 나처럼 그것들도 늙었다.(166쪽)
122)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가령 어렸을 때 살던 동네를 커서 가 볼 경우이다. 그 길이, 그 집이 그렇게 좁고 작았던가 하고 놀라게 된다. 이 경우는 그 차이가 너무나 크므로 쉽사리 말로 표현되지만, 그 느낌의 차이는 사실 단지 좁다든지 작다든지 하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무한히 복잡한 감정의 복합체이다. 이것이 가령 20대에(키가 다 자란 다음) 살던 곳을 40대 정도에 가보는 경우라면 훨씬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분명히 느낌의 차이는 있다. 어쨌든 이러한 현상은 그 집, 그 동네에 관한 인상이 항상 동일한 것이 아니라 변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 분명하다.
이쯤에서 다시 '철학자' 베르그송에 대한 '전반적인' 인물 탐구와 그의 다른 저작들에게까지 관심을 더 확대시켜 보자.
"나의 저서들은 이제까지 학설에 대한 나의 불만과 항의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베르그송의 이 말은 그가 살던 시대에 팽배했던 '과학만능시대'의 사상적 조류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과학의 밑바탕이 되는 '이성과 지성의 오류와 한계'를 예리하게 파고 들어갔으며, 수학과 과학에 대한 천재적 재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그는 파리의 콩도르세 고등학교 재학시 전국 고등학교 경시대회에서도 라틴어, 프랑스어 논문, 수학에서 일등상을 탔을 만큼 문과와 이과에 아울러 특츨하였고, 교교 재학시 그가 수학과 기하학에 관해서 풀었던 해답이 《파스칼과 현대기하학》이라는 수학전문잡지에 실릴 만큼 뛰어났다. 파스칼이 말한 '기하학 정신'과 '섬세정신'을 아울러 갖춘 사람이 그였다.) 그당시 모두가 경시하던 형이상학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였으며, 결국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그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해 왔던 '시간'에 대해 전혀 새로운 차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베르그송이 자기 철학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젊은 철학교사였던 22세 때, 스펜서를 읽고 과학철학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몇 가지 과학적인 기본개념에 대한 검토를 하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놀라운 생각'에 대해 그는 훗날 절친으로 지내게 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고 한다.
'대단히 놀랍게도 나는, 과학적인 시간이란 지속하지 않고, 만약 실재의 총체가 순간적으로 모두 전개된다 하더라고 우리의 과학적 지식에는 조금도 수정할 것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발견 이후로 그의 주요관심사는 '시간보다 지속'으로 향했고, 엘레아 학파의 제논의 궤변에 관한 논리정연한 반박을 포함한 '순수지속'의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한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이라는 논문을 집필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가 30세 때 박사학위논문으로 쓴 이 저작은 과학적 엄밀성을 기본 바탕으로 삼아 예리한 직관력과 치밀한 분석 위에 쓰여졌음은 물론이고, 양과 질에 대한 혼동, 운동과 동시성, 과학적 시간과 순수 지속에 관한 독특한 사유를 내보임으로써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했다. 그의 제1주저로 꼽히는 이 저작의 주제는 '자유'에 관한 것이다(그래서 그가 직접 관여한 이 책의 영어 번역본 제목은『시간과 자유의지(Time and Free Will)』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의 문제는 결국 시간의 문제이며 시간의 문제는 의식의 문제라고 보아 의식이란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의식의 강도(强度)란 무엇인가를 분석함으로써 의식이 결국 양이 아니라 질임을 보여 준다.
그는 의식을 '흐름'에서 고찰하는데, 거기에서 그는 흐르는 시간과 흘러간 시간을 구별하여 흐르는 시간만이 진정한 시간이며 흘러간 시간은 다름아닌 공간임을 보여 준다. 베르그송이 '의식의 흐름과 순수지속'을 다룬 부분은 달리 표현하면 '시간론'으로 불릴 수도 있는데, 하이데거 역시 그의 주저인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에서 '시간'에 관해 깊이 천착해 들어간 부분에서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의 '시간 개념'을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특히 칸트의 시간 개념과 아울러 베르그송의 독특한 시간 개념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무튼 베르그송이『시론』에서 내린 결론을 다시 강조하자면 결국 '자유란 내적 자아에 철저한 것'을 말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평소 생각하기보다는 이야기하며, 행동하기보다는 행동되고 있다. 자유로이 행동한다는 것은 자아를 되찾는 일이다. 그것은 자아를 순수지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의식이란 결국 기억이다. 그가 시간과 공간, 정신과 물질이라는 완전히 이질적인 두 존재를 어떻게 하여 결합할 수 있을까, 하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다룬 제2의 주저는 그래서《물질과 기억》이다. 그에 따르면 이 문제를 만약 공간의 입장에서 논하여 물질을 연장적인 존재, 정신을 비연장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시간의 입장에 서서 논한다면 해답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밖에 제3, 제4의 주저를 포함하는 베르그송의 철학적 사유를 간략히 요악한 다음 글이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베르그송은 자신의 방법을 써서 우선 자아의 내부를 비춰 보았고, 그 결과가 그의 첫 저작인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이다. 그 다음에는 육체와 정신과의 관계를 다룬 《물질과 기억》, 그러고는 그 방법을 생명 현상에 확대 적용하여 《창조적 진화》를, 그리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도덕에 대한 고찰인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발표하였다. 따라서 제1주저는 심리학에 관한 저술이고, 제2주저는 생리학적인 저술이며, 제3주저는 생물학적인 저술이고, 제4주저는 사회학적인 저술이다. 그 나머지 저서는 대개 어떤 주저(主著)를 보충하거나 강연을 모은 형식이다.(742쪽)
베르그송은 우리의 심적 상태는 공간적이지도 않고 동질적이지도 않게, 이질적인 의식상태들이 한데 융합되어 이루어졌고, 그들은 서로 분명한 구분을 지을 수 없는 의식상태들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심층자아' 또는 '진정한 자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심층자아'는 일련의 의식상태의 질적 변화로 이루어진다. 그 상태들은 뚜렷한 윤곽도 지을 수 없고 수(數)로 표시할 수도 없이 서로 침투되고 융합된 채로 속하는 바, 그것이 바로 순수지속이다. 그와 같은 순수지속은 공간화된 시간과 구별되어야 한다. 후자가 일정한 양적인 구분에 의하여 표시되는 외면적이며 동질적인 시간인 반면, 전자는 진정한 시간, 실재적인 시간으로서 체험적이고 창조적이며 사상적이다. 그 순수지속은 베르그송 자신이 '우리의 자아를 자기 자의의 상태로 둘 경우, 우리 의식 제상태의 연속이 취하는 형태 또는 질적인 변화의 연속으로서, 그 변화는 서로 용해되며 분명한 윤곽이나 어떤 수(數)와의 연관도 갖지 않는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엘랑비탈(생의 비약)'으로 대표되는 생명철학이라고 규정하여 철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가 문학에 끼친 영향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평가받는다.
내적 자아, 심층자아와 내적 지속에 대한 그의 이론은, 외적 조형미의 부각에 힘쓰던 문학으로 하여금 자기 내부의 무의식 세계로 그 시선을 돌리게 하여 상징주의의 개화와 함께 내면문학의 붐을 촉진시켰고, 그의 직관주의는 방대한 반지성적 경향의 움직임을 태동하게 하였는데, 그 대표가 시인 페리(Charles Peguy)였다. 문학비평에서도 티보데(Thibaudet)를 통하여 그의 형향이 뚜렷이 드러났으나, 가장 중요한 영향은 프루스트(Proust)에 대한 영향이라고 하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은 바로 그의 지속을 가리키고 있고, 끊일 줄 모르고 무한히 계속되는 그의 문장은, 끊임없이 생동하는 내면세계의 지속을 포용하는 문장으로서 베르그송적인 문체를 대변하고 있다.(750쪽)
우리가 베르그송의 철학논문을 읽든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든 혹은 또다른 많은 책들을 끊임없이 찾아 읽든 그것은 결국 '내면의 자아'를 찾아 나서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패디먼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여기 이 순간의 세상에 집착하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내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비록 명확하게는 아닐지라도-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저 오랜 인류의 역사로부터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위대한 사상들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이쯤에서 내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오른다. 내가 한동안 관심을 가졌던 그 '시간'을 정말 제대로 찾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프루스트의 그 방대한 소설을 읽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쨌든 나도 '앞으로 5∼10년 사이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프루스트의 그 유명한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 내 나이 환갑을 넘기기 전에. 그리고 프루스트가 세상을 떠난지 100주년이 다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