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후딱 먹고 옥찌들과 까미랑 집근처 저수지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공원에서 옥찌들은 개처럼 뛰어다니고 까미는 애처럼 사랑을 받는다.(어색한 호응) 옥찌들은 운동기구를 하거나 잡기놀이를 한다. 어제는 반년 동안 고장난줄 알고 묵혀둔 자전거에 바람만 넣었더니 씽씽 앞으로 나가서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재미에 밤 깊어지는줄도 몰르고 정신없이 놀았다. 한명씩 돌아가며 자전거를 타고 나는 까미랑 놀거나 운동기구를 했다. 옥찌가 내 곁으로 슬쩍 오더니 이모도 이거 할 수 있냐는 표정으로 철봉 묘기를 선보인다. 묘기라기보다는 그 나이 아이들이면 다 할 수 있는 다리 걸어 거꾸로 매달리기다. 그 나이면 다할 수 있는걸 그 나이의 나는 못해봤다. 한번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보고 싶었다.


 철봉은 두 다리에 단단한 콘크리트를 바르고 꼿꼿하게 서 있다. 웬만한 무게나 흔들림에도 꿈쩍 안 한다. 나는 철봉의 양팔을 잡고 (그것, 그녀, 그의) 다리를 탄다. 신발이 자꾸 미끄러져 양말을 벗고 매달려본다. 가까스로 철봉 팔에 걸친 다리에 힘을 줘서 간신히 다리를 걸었다. 손에 힘을 주고 몸을 늘어뜨렸다. 아, 나도 철봉에 거꾸로 매달릴 수 있다. 에게, 아무것도 아니잖아. 국민학교 다닐 때는 철봉타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게 보였는데. 그때 시도하지 못한 철봉을 서른이 넘어서 타보고 에게, 시시하다고 한다. 


 어쩌면 어렸던 나는 철봉 그거 아무것도 아니니까 한번 해보라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해서, 누군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선뜻 매달려서 해보려고 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을 잠시 해봤다. (정신분석 돋네)


 철봉처럼 땅 위에 굳건히 버티고 서서 어떤 매달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권태롭다고 징징대기 일쑤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안정된 직장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한테 일장연설을 해놓고 지금은 평생 나를 고용해주는 직장이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가끔씩 한다. 내가 그 티켓을 움켜쥘 수 있느냐는 문제는 뒷전, 그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타성에 젖어서 큰일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철봉에 매달려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까미를 바라본다. 철봉을 잡은 손을 빼놓고 몸의 다른 부분은 축 늘어뜨린다. 거꾸로 바라보는 풍경은 익숙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적인 풍경과 다르다. 이렇게 살고 싶다. 철봉처럼 살 수 없다면 조금 다르게, 내가 그다지 다른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믿고 꿈꾸는대로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 '몇십년 만에 철봉도 매달려봤는데 조금 다르게 살기가 뭐 어렵겠어.' 막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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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10-13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케이트 타면서 비슷한 생각 했어요. 몇번 넘어지면 되는데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구나.
근데 철봉, 전 어릴 떄는 잘 매달리고 돌고 했는데 지금은 못할 것 같은데요. 서른 넘어서 한 게 더 대단해보이는데요.
이런 제가 이상한 건가효 ㅠㅠ

Arch 2012-10-14 09:32   좋아요 0 | URL
옆에서 이모를 놀리는 조카들이 없었다면 저도 스케이트를 못탔을거에요. 놀리면 의지가 샘솟는 유형인지. 지금은 잘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다시 타려고 하면 또 넘어질게 걱정되고 그러니까.

철봉은 참 좋은 기구예요. 막 매달려도 꿈쩍도 안하고 말이죠. 아 도는거, 저 그거 정말 해보고 싶어요! 매달리기 밖에 못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그림자처럼 지내고 있다. 자기 일만 하는게 아니라 같이 어울리는 것도 일의 한 부분이건만 그 노릇을 안 하니 있는 듯 없는 듯 할 수 밖에 없다. 항상 낯선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며 여행을 꿈꿨었다. 학교 졸업하면 안 올줄 알았던 모두와 어색해요 상황. 어른이 되고서 찾아온 낯선 상황에서 나는 수동적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너희들과 친해지겠어, 의례적으로 잘 지내보겠어란 제스처도 없다. 내 책임이다. 커다란 벽이 있다면 하얀 분필로 '다 내 잘못이야'라고 쓰고 싶다. 나와 등을 진 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사람들을 불러모을 때 콧방귀를 꼈고 얼마 안 가 서로 소원해질거란 잘못된 예상을 했다. 나와 등을 진 사람과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 조직을 견딜 수 없어하기만 했던, 견딜 수 없지만 조직에 속해야한다면 참을만한 수준으로 만들 노력을 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 더 크다.


 그래서 페이퍼를 쓸 수 없었다. (그래서 페이퍼를 쓸 수 없었다 시리즈라도?) 책을 꾸준히 읽고 일기도 가끔 쓰는데 페이퍼를 쓸 수는 없었다.  실제로는 물론 추상적으로도 행복하지 않았고 쌓인 감정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게 늘 우악스러워서 내가 쓰는 글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저 끄적이는걸 두고 자신 운운에 살짝 민망하기도 하지만 좀 그랬다. 


 그들과는 애매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다. 거의 아빠뻘 되는 아저씨들은 나의 고지식함을 '바르고 똑소리남'으로 받아준다. 그게 문득문득 고마울 때가 있다. 격 없이 구는 것도 귀엽거나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예의바른 행동이 아니면 어떡하지, 이런 말을 꺼냈다고 나를 미워하면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는데 너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말하는게 더 좋다고 얘기해주는 어른도 있다. 자식 이야기에 돈 버는 이야기 하다가도 딸뻘 되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당신 살아온 얘기를 한다. 어, 그건 내 얘기랑 상관 없다고 생각하다가 위로가 너무 흔해서 위로 받았다는 말은 순도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 말에 위로받는다.


 나는 아저씨들이 얘기할 때마다 '우린 형님 세대랑 달라요', '자기계발 책에서 다 나온 말이에요.' 라고 저항을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하는데 사회적 안전망이 안 되어있는데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건방을 떨기도 했다. 책에서 읽은 얘기를 앵무새처럼 읊으며 나의 게으름을 변명한다. 하지만 그 모든 얘기가 '하면 된다'에서 나온 게 아니란걸 어렴풋이 느낀다. 개인을 벼랑 끝으로 밀어놓고 '하면 된다'라고 세뇌시킬 땐 자기계발 피로가 더해지지만 내가 할 수 있는한 힘껏 하지 않는 사람은, 그래서 더더욱 자책하는 사람한테는 때론 '하면 된다'가 지금을 이겨내는 주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시마와 멸치, 아몬드를 같이 먹으면 묘한 맛이 난다. 이 조합을 권해준건 직장내 다른 부서의 어른이었다. 몸에 좋은 것만 드시는 것 같아 맛없지 않냐고, 생다시마까진 좀 그렇다고 했는데 한입 먹는 순간 나도 반하고 말았다. 다시마의 질긴 감촉이 입에서 흐물해지는 동안 짭짤한 멸치를 씹는다. 둘의 짜고 강한 맛을 아몬드의 텁텁함이 쓱 잡아주면 아, 이거는 어른만이 아는 맛이구나 싶어진다. 이건 이래서 힘들고 이건 저래서 고달프다고 징징거려도 웃으면서 받아준다. 그리고 나를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대신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나는 지금을 견딜 수 없어서 자꾸 핑계를 대고 이유를 찾고 의미를 갖는다며 회피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너무 심각해.


 어제는 그 분의 지도(?) 아래 15일 동안 전기밥솥에 보온으로 숙성시킨 마늘을 깠다. 바로 꺼낸 마늘은 따뜻하고 촉촉했다. 혹시 그 마늘을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다시마와 멸치, 아몬드 조합보다 더 맛있다. 젤리처럼 촉촉한데 알싸한 마늘향이 나고 뒤끝이 흔적없이 옅게 아린 마늘 말이다. 좋은거 먹고 고민 대신 생각만 하고 누구 미워하지 않으면서 살면 좋겠다. 그냥 살면서 천천히 알아가면 되는데 재미없게 늘 심각하다. 어떨땐 내용도 없다. 그냥 살았다고 말한 누구는 요즘 외롭다고 온갖 곳에 푸념을 하고 다닌다. 그걸 보면 또 그냥 살면 안 될 것 같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십오 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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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9-2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rch님 하얀 분필로 다 내잘못이야 하고 쓰신다면 제가 슬쩍 다가가서 흔적없이 싹싹 지우고 싶은데요....왠지 막 그러고 싶어요...(' ');;;;

Arch 2012-09-24 11:10   좋아요 0 | URL
아른님, 너무 감동적이에요. 감동적이란 말이 식상하고 쓸데없고 빈번하다는거 정말 잘 알지만, 그렇네요.

Forgettable. 2012-09-2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싱크로율 백프로 직장생활인데요?? 만나야겠음ㅋㅋㅋㅋㅋㅋ

Arch 2012-09-24 11:13   좋아요 0 | URL
말만~ ㅋㅋ
뽀는 잘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조만간 꼭 봐요

맥거핀 2012-09-22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들으니 좋네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Arch 2012-09-24 11:14   좋아요 0 | URL
좋아요, 좋아... 저는 아침에 듣는데도 참 좋네요.
맥거핀님 고맙습니다.

2012-10-24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24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글을 천천히 쓴다. 일련의 사실들과 선택들 가운데에서 한 생애의 의미 있는 줄기를 드러내려 애쓸 때, 나는 점차로 아버지의 특별한 모습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면 도식이 자리를 온통 차지해 버리고, 추상적인 생각이 제멋대로 달려가려 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는 반대로 추억의 이미지들이 미끄러져 들어오게 놔두면, 난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 그의 웃음과 그의 거동을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내 손을 잡아 놀이 장터로 데려가고, 놀이 기구들은 날 오싹하게 만들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어떤 조건의 모든 지표는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나의 개인적 관점이라는 덫을 떨치듯이 빠져나온다.


 이야기는 하나의 일화로 시작한다. (요새 서서비행을 읽는 중인거 티냄) 여자 아이는 동네에서 술을 드시는 아빠를 찾아나선 참이다. 남자는 머리 꼭대기까지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고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어렸지만 '뭐든 심각해' 체질이라 남자가 술을 마시는건 의지가 없고 취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술에 취해 잠들 수 밖에 없는, 의지와 돈과 몰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쉬이 잠들지 않아 술이라도 먹어야 간신히 잠들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는걸 그때의 아이가 알 리 없었다. 남자는 여자애의 조그만 어깨를 짚고 불안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아이는 술에 취한 아빠의 자전거 뒷자리에 탔다. 아이는 남자가 술을 많이 먹는 것 말고는 모든 일을 척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할리가 없었다. 한아름 안기지 않는 남자 등에 매미처럼 붙어있었다. 비틀대며 움직이던 자전거는 아이를 떨어트린 것도 모르고 한참동안 앞으로 간다. 남자가 자전거를 멈췄을 때 아이는 울어야할지 떼를 써야할지 몰랐다. 9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오면 '에게'였고, 100점짜리 시험지에는 '당연히'였던 남자라 아프다고 하면 '에게'할까봐 지레 겁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자전거를 타고 아이 쪽으로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운다.


 빨래하는 엄마를 쫓아 아이가 북북 기어나오면 엉덩이를 톡 때려서 방으로 데려가는건 남자였다. 사우디에 있을 때 아내보다 첫딸 사진을 더 보내달라고 편지에 썼지만 그런 딸이 막상 아빠를 보고 앙하고 울어버리자 바로 엄마에게 떠민 것도 남자였다. 남자는 서툰 아빠였고 그 시대의 여느 남자처럼 서툰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를 대하는 기술도 없었고 감정을 다스리지도 않았다. 부부 관계는 좋지 못했고 둘은 빈번하게 싸움을 했다. 아이들은 둘의 싸움을 무서워했지만 그 역시 티를 내지 않았다. 여자 아이는 그런 상황을 벗어날 용기도 없는 주제라 자기연민에 빠지기 일쑤였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남자는 직장 대신 사업을 택했다. 김양식은 쫄딱 망했고 군부대에서 일을 할때는 제법 돈을 만졌다. 아파트로 이사간 것도 침대와 침대보, 새 책상을 산 것도 그즈음이었다. 건축붐이 있었고 서랍에 얼마인지 모를 돈을 보관할 정도로 돈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 후로는 지속적인 침체기였다. 남자로선 이게 사는건가 싶을 정도로 야박하고 심심한 일상이 지속됐다. 빚은 줄지 않고 벌이는 시원찮았다. 머리가 커진 딸들에게 들어갈 돈은 많았는데 항상 마이너스였다. 아이는 그가 호기롭게 사줬던 빨간색 차를 팔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좀 더 자란 아이와 남자는 비슷한 성향답게 날을 세울 때가 많았다. 외박을 하거나 말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얘기를 안 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한번은 몇달간 대화를 안 하다 대학합격 소식을 전하며, 아차 우린 말 안하고 있었는데 싶었던 적도 있었다.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존중하는 방법을, 감정을 조금 누르고 마주하는 방법을 몰랐다. 남자는 답답한 아파트보다 시골이 좋다고 하지만 귀농하기 위해서 알아보는건 '6시 내 고향'을 보는게 다였다. 항상 텔레비전을 보고 일이 없는 날은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든다.


 친구들과 관계도 넓어지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는 엄마에 비해 남자는 술이 없을땐 별로 말이 없다. 요새는 그마저도 피부병 때문에 못마신다. 남자가 술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술을 먹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 남자가 아이를 좋아하지만 겁냈다면 요즘은 손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비록 1시간을 못넘기는 애정이지만 어찌나 살뜰한지 여자 아이는 자신도 그런 관심을 받았다면 좀 나은 여자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남자는 추석에 뭐 먹고 싶냐고 묻다가 이것저것 말하는 딸들에게 '재료는 알아서 하는걸로'라고 농을 친다.


 난 런던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버지는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추상적인 애정으로 환원되었다.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해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편지로 보고해 주었다. 여기는 추운데, 우리는 이런 날씨가 오래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요번 일요일에는 그방빌에 사는 친구들을 보러 갔었다. X 어멈은 예순 살에 죽었는데, 그렇게 늙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녀는 글로는 제대로 농담을 하지 못했다. 사실, 편지에서 사용한 언어와 표현들로부터가 그녀에겐 너무도 버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것은 한층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서명을 했다. 나 역시 진술서 같은 어조로 그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만일 공들여 다듬은 문체를 사용했다면, 그들은 내가 자신들과 거리를 두려 한다고 느꼈으리라. 


 '남자의 자리'는 '내가 부유하고도 교양 있는 세계에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내려놓아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작업을, 난 이제 이렇게 끝냈다.'로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을 읽는건 독특한 경험이었다. 내가 언젠가 쓰려고 했던 누군가의 생애를 그리는 작업이란 점에서, 한번도 담담한 어조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서 나도 그 '남자의 자리'를 짧게나마 적어보았다. 쉽게 읽히고 간결한 글을 읽는다고 해서 쉽게 읽히고 간결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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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예전에 한 남자를 알았네. 
남자는 CD 사는걸 좋아했네. 
그러다 가끔 좋은 곡이 걸릴 때가 있었네.
간혹 어떤 사람보다 어떤 노래가 더 오래남을 때가 있네.

콘서트장에는 말보로 담배 연기가 가득했네.
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담배 한 개피 입에 물지 않고 몸을 흔들었네.
같이 간 못생긴 남자는 즐길 생각을 안 하네.
젊은이들과 아직 젊은줄 알았던 내가 밤이 깊도록 놀았네.

맥주 한병에 가득 취했네.
koop이 떠나고 DJ가 나와서 기계적인 음악을 들려주네.
모든 게 끝나고 모두들 지쳤네.
택시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희미해지네.
 

어둑한 밤하늘은 아름다웠지만 갈 길이 멀었네.

그에게 전화를 했네.

졸린 눈을 비비는 남자를 처음으로 자세히 봤네.

잠이 깨서 달려오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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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
이강룡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농부님 강연을 듣던 중이었다. 벼농사 얘기를 하다가 퇴비는 적당히 줘야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손을 뽈딱 들고 질문했다. '퇴비를 적당히 주라는게 얼마 정도 줘야한다는건가요.' 강연하는 분은 '거 참, 쓸모없는 질문도 다 한다'는 표정으로 강연 끝나고 말해주신다고 했다. 강연 끝난 후 말해주신 내용도 별 게 없었다. 땅 상태를 잘 봐서 맞춰서 줘야한다는거였다. 그런데 얼굴이 왜 이렇게 화끈거리지?


 나는 강연을 들을 때마다 질문을 한다. 질문할 게 없으면 질문하려고 막 머리를 짜내기도 했다. (머리를 짜내면 아프다) 어렸을 때 질문하는게 좋다고 배운걸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질문을 할 때면 굳이 내가 나서서 지지해야하는 '나=똑똑한 여자'란 확신도 생기고 강의 집중도도 높아진다. 그런데 질문이 정말 좋은걸까. 관심의 표명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가란 의심에서부터 하찮은 존재감을 질문으로 드러내려고 발버둥치는건 아닐까 싶은 자학까지. 대체 질문은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선생님 이게 무슨 뜻인가요?'가 아니라 '선생님, 저는 이 말이 이런 뜻이라고 이해했는데 맞습니까?'라고 해야한다. 자기 지식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선생님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한다. 생각나는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묻고 또 물어서 더 낫게 규정하고 맥락에 맞게 더 잘 보여주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랬구나.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가 찾아서 알아낼 수 있는 것까지 굳이 질문하고 '나= 질문하는 여자 사람'이란 몹쓸 자의식을 챙겼구나. 왜 화끈거렸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뚜껑 대신 마음을 여는 공감 글쓰기'는 근래 보았던 어떤 글쓰기 책보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는게 아니라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해야한다는게 이 책의 요지다. 글 사이사이에 저자의 깨알같은 유머도 재미있고 부단히 메모했겠구나 싶은 예시나 일화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없다. 책 속 구절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선 너무 빈번해 재미를 반감시킨 탓에 별을 하나 뺐다. 작가님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내 멋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 읽을 때 좋은 글을 쓰기란 어렵다. 내가 하고 싶고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상대방이 읽어서 좋은 글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냉큼 이렇게 말하겠지. '아니, 내 서재에 내 맘대로도 못써?' 그렇다. 누구에게나 아무렇게나 글을 쓸 자유는 있다. 하지만 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가 글에서 괜찮은거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새 페이퍼를 잘 못쓴다. 회사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서인줄 알았는데 쓸만한 얘기가 없어서란걸 깨달았다.  예전엔 꾸역꾸역 써지던 글도 뭔가 부족해보이고 잘 안 써진다. 댓글 하나에 추천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라 그 모든 수치와 평가와 반응들에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ㅍ ㅔ이퍼는 기우뚱거리다 갈팡질팡. 그래서 내 멋대로가 아니라 공감하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반 에이크는 작은 개의 곱슬곱슬한 털 하나하나를 묘사하는데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반면에, 그로부터 이백 년 뒤의 벨라스케스는 개의 특징적인 인상만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레오나르도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한층 꼭 필요한 것만을 묘사하고 보는 사람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주관이 개입된 기술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기. 나는 언제쯤 그런 경지에 닿을 수 있을까. 그깟 서재에 글 하나 쓰면서 독자 운운에 콧방귀를 뀔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누군가 이런 글을 썼다면 나 역시 그랬을테니까. 그렇지만 책의 형태로 된 문자를 읽는 사람만 독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즐겁고 나와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을까. 저자는 괜찮은 서재(혹은 블로그)로 거듭나는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좋은 글을 쓴다.

첫번째 원칙을 반드시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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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0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질문을 하는게 좋다고 배우셨군요.
잘 듣기만 하고 나오는 것과 질문을 하고 나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누피의 글쓰기 정복'과 함께 위의 책도 저도 언제부터 벼르고만 있는 책인데 스누피도 읽었으니 이제 이 책도 읽어야겠어요.

Arch 2012-09-11 11:08   좋아요 0 | URL
고지식해서 곧이곧대로 질문하고 그랬어요.
스누피의 책은 김연수 때문에 읽었는데 그다지... 좋은건 정말 좋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다지인건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숲노래 2012-09-0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리고픈 그림을 그리면 돼요.

반 에이크는 '상상력을 안 남기'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요.
스스로 그리고픈 대로 그렸어요.
상상력이란, 그림을 보는 사람 스스로 빚는 마음이에요.
Arch 님 좋은 마음 잘 북돋우며 사랑스러운 글을 써 주셔요.

Arch 2012-09-11 11:09   좋아요 0 | URL
전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
고맙습니다. 된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