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보는 방송 중에 '이영돈 PD의 먹거리 파일'이란 프로가 있다. 식자재에 숨겨진 꼼수, 유통의 문제점 등을 짚는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조미료를 넣지 않고'-이게 아주 중요한 요소- 정성스럽고 위생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업소를 선정해 '착한 식당'으로 명명해준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분, 유기농 떡볶이를 만드는 분식점, 새벽부터 떡을 만드는 떡집 등 착한 식당은 맛만큼 양심적으로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선정한다. 얼마 전엔 정말 어렵게 천연육수로 냉면을 만드는 집을 찾아냈다. '착한 냉면'편은 몇 가지 조미료만으로 냉면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면어쩔 수 없이 정말 조금 조미료를 넣는다는 업주까지 가지각색 업종이었는데 드디어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식당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전국팔도를 다 돌다가 드디어 착한 냉면집을 찾는가 싶었다. 헌데 웬걸, 빙초산을 쓰고 면을 반죽할 때 쓰는 전분에 첨가물이 들어갔다는게 문제가 됐다. 새벽부터 육수를 우려내고 면도 직접 반죽했지만 빙초산과 첨가물 때문에 안 된다니. 나중에 '검증'할 때는 빙초산 대신 3배 사과 식초를 쓰고 여건만 허락하나면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고구마 전분 가루를 쓰겠다는 사장님 인터뷰가 나왔다. 고기만으로는 감칠맛이 안 나 여러가지 천연 조미료를 넣고 육수를 내고, 기구들을 소독하는 장면까지. 그깟 냉면이 뭐라고 저렇게까지하나 싶은 생각까지 드는 찰나,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종편 주제에 자기들이 무슨 자격으로 착한 식당을 선정하고 말고하냐란 분노에서 시작해 저질 재료를 쓰는 식당만큼이나 값싸고 자극적인 맛만 찾는 소비자들도 문제가 아니냔 생각까지 들었다. 쉽고 간단하고 웬만해선 들키지 않을 방법이 있다. 개인이 양심을 지키지 않고 그럴듯한 맛을 낼 수 있는 별천지가 도처에 널려있다.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제대로 맛을 내는 사람들을 존경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합성 조미료, 첨가물 천지인 상황에서 모든걸 개인의 비양심 때문으로 모는건 문제다. '좋은 재료, 제대로 된 조리'란 기치로 방송에서 지정하는 '착한 식당' 역시 외부적인 요인은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은채 착한 식당이고 싶은 사장들의 맘만 조리게 한다.

 

  아, 이 얘기가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착한 식당'은 그 나름대로 아니꼽고 치사하고 불공정하단 생각이 들지만 내가 이 페이퍼를 쓴 건 그 때문이 아니다. 눈물이 나온 이유. 정성껏 냉면을 만드는 사장님을 보면서 울컥했던 이유. 사장님은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식. 원가 대비 가격이나 가게의 인테리어, 서비스도 중요하다. 가게를 계속 운영해나갈 수 있을지, 누군가 정말 이 맛을 알아줄까 회의도 들겠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이 믿는바대로 행동한다. 

 

(충정로 해물 뚝배기집에서 나오며) 종업원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요구에서 인문학적 이해를 느낄 수 있었고 손으로 만든 인테리어 소품들은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주인장의 월급과 종업원의 시급, 매출, 원가 등을 공개하는 것에서 장사가 단순히 돈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임을 알 수 있었다. 7000원짜리 해물뚝배기는 어찌나 정직한지, 비록 조미료의 감미로움은 없을지 몰라도 조미료의 만들어진 맛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바다의 멋과 그리움이 뚝배기 안에 깃들어 있었다. 이건 흉내내기도 어렵다. 오랜 고민으로 다져진 삶의 방식이 매장 곳곳에, 그리고 장사의 모든 방면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직 주인장이 일궈온 삶의 궤적을 그리지 않고서는 그런 발상과 방식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영업은 과연 이런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그곳은 특별했다. 해물뚝배기 집에서 느낀 업의 본질은 ‘경험’이었다. 맛도 좋았지만 그보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도심 한가운데서 음식을 통해 바다를 경험하게 해주었고,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해주었다. 정보 공개라는 정말 새로운 경험까지.

 

 이 책에서도 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사람이 나온다. 일을 시작하면서 초반에 여러번, 1년이 다 되고 연말 정산을 할 때 몇 번 그만둘 생각을 했다. '역시 이 조직은 나와 생리가 맞지 않다', '나도 할만큼 했다'가 이유였다.  퇴직금 받을만큼 더 다니면 그만두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전과 다른 마음으로 일을 한다. 과장님과 얘기하던 중에 내가 갖는 맘처럼 상대도 그럴거라는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를 알아야한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 눈을 통해 보려고 노력하다보니 내 문제가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일 하기 싫었고, 사람들의 소란을 견딜 수 없었다. 회피하다보니 대응 자체가 방어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재미있을리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만 하고 있던 중에 태권도를 준비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다 지독한 파스 냄새를 맡았다. 무슨 파스를 이렇게 많이 뿌렸담, 하는데 아차, 이 아이들은 일년에 한번 있는 이 무대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이구나란 생각이 드는거다. 단순히 어쩔 수 없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아이들이 무대를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란 조금 뻔하지만 자주 없었던 깨달음. 혹은 타성에 젖은 내 모습을 다른 내가 본다면 참 볼품없겠구나란 객관화. 

 

 업의 본질, 전문성을 갖추고 아마추어든 프로든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는 것. 그들을 존중하고 함께 협력해서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 비로소 나는 내 업의 본질을 깨달은 듯도 했다. 2년쯤 일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이니, 이젠 정말 다른 맘으로 살아야겠다느니 각오도 대단했는데 얼마 못 가 다시 제자리다. 맘가짐은 예전보다 나아진 것 같은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드는 사람들과 존재감 없는 일, 회의감과 지루함이 번갈아 밀물 썰물처럼 왕래하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아마 '나도 착한 냉면'을 다시 본다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어떻게 매일매일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나요, 자기계발서로는 정말 안 되는걸까요, 딱 이 정도가 나인데 그것도 모르고 잘하려고 욕심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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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1-2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주방장인데, 그 주방장은 인공조미료를 쓰고 싶지 않고 가게 주인은 인공조미료를 쓰리고 하고. 이 상황에서 일하기가 싫었고. 이 상황을 타파하는 방법은 그 가게를 나와 주방장 자신이 주인이 되어 착한 가게를 만드는 것. 그러나 가게를 열어 망하지 않을 자신을 없고. 손님들이 진심을 알아 줄지도 의문이고.
이 상황에서 사람이 방어적으로 수동적으로 변해가면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오히려 매일매일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상황이 예외적으로 생각됩니다.

Arch 2012-11-29 22:14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그렇게 볼 수도 있네요.
자기계발, 자기개발은 자본이 알아서 사람들을 길들이는 방식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제 안에도 그런 류의 필터링이 작용했네요. 혹은 정말 '업의 본질' 얘기던가. 혹은 내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고. 나중에 비슷한 얘기를 할 것 같지만 제가 느낀건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일삼고 제대로 하지 않은 나를 파악하지 못한 것, 파악하고 난 후에도 별로 달라질 것 없는 것. 비슷한 말만 하네요. ^^

Mephistopheles 2012-11-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식당을 취재하는 종편 방송국이 결코 착하지 않아 보이는 "D"신문사 소속이군요.

Arch 2012-11-29 22:1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지들이 뭐라고!! 막 화났어요.

2012-11-29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처음에 저수지인 그곳을 봤을 때는 차로 북적이는 도로와 아파트 사이에서 녹지 조성을 위해 구색을 맞춘 공원이라고만 생각했다. 가서 볼수록 낮과 밤, 저녁의 풍경이 다르고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도도 낮춰서 소란스럽지 않고 분위기가 은은하다. 은은한 분위기 속에서 젊은 연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나만' 안다. 그 동안은 철봉에 매달리거나 공원을 한바퀴 도는게 다였지만 얼마 전부터는 에어로빅을 한다. 전에 한번씩 에어로빅을 하는 분이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아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것 같다.


 어두운 조명은 야외 에어로빅에 생기를 준다. 유난히 빠른 음악에 맞춰 온몸을 흔들어대는 '아는 사람'을 보면 그게 누구라도 살짝 민망할 것이다. 모두들 누군가의 민망함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저 힘차고 절도 있게 강사분을 따라하면 되는 것이다. 희미한 가로등불에 어렴풋이 보이는 격렬하게 흔들리는 엉덩이는 섹시하지 않다. 모처럼 공원에 왔거나 산책을 나온 연인들이 보기엔 생뚱맞다. 누군가 환호하지 않아도 묵묵히 동작들을 따라하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녀들은 그렇게 그 저녁의 어둠에 빠져있었다.


 중국에 갔을 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율동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렵지 않은 동작을 부지런히 따라하는 사람들 틈에서 눈꼽도 떼지 않고 나도 같이 한 적이 있다. 전문적이지 않은 동작은 내 안에 숨겨진 댄스본능을 일깨우는건 아니고 그냥 따라해보고 싶은 의욕을 줬다. 땀날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안 쓰던 근육을 늘리는게, 다른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는걸 보는게 말이다. 


 에어로빅을 따라하는 사람 중에 꼬마가 한명 있었다. 자기보다 큰 자전거를 타느라 춤 추는건 거들떠보지도 않는 지희가 아이랑 같이 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지희는 나에게 귓속말로 어린 애가 야무지단다. 5살 먹은 아이는 동작을 곧잘 따라했다. 언니처럼 한다고 자기도 언니 귀에 귓속말도 해가며 나를 가리키며 아줌마가 언니 엄마냐며 묻는다. 발그레한 볼과 건강해보이는 긴 머리를 찰랑이며 춤을 추는 아이와 그런 아이를 야무지다고 하는 지희와 저녁을 많이 먹었으니 더 가열차게 몸을 움직여야한다는 세속적 욕망에 휩싸인 내가 그렇게 한참동안 몸을 움직였다.


 몸이 쉬이 지치자 지희에게 가자고 했다. 으례 그렇듯 나는 아이에게 엄마랑 같이 왔느냐, 엄마도 같이 에어로빅을 하냐고 물었다. 아이는 저만치에서 호수 근처 난간에 기대어 있는 남자를 가리킨다. 엄마랑 안 왔나보네. 집으로 돌아가는 횡단보도 앞. 아이를 안은 남자가 앞에 있다. 그 아이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돼 아이는 어두운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 5살이고 통통한 볼을 가진 아이였다.


 이삿집에서 다녀갔다. 포장이사를 할지 일반이사를 할지, 내가 알아본걸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화장기 없는 여자는 품이 큰 작업 바지를 입었다. 목에는 튀어나온 점이 몇개 있고 손가락은 부어 있었다. 설득적이지도 저자세로 계약할걸 사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런 류의 감정이 낯설다. 더 이상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분과 계약을 했다. 정자체로 또박또박 써진 글씨와 이사를 할 때 준비해야할걸 말하는 정감있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여자는 나가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맛있는걸 많이 해주지 못한게 아쉽다는 말을 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소홀했는데 지금은 다 커서 알아서 먹고 다니는게 서운하다고. 저녁마다 뭘 해먹어야할지 고민하던게 떠올랐다. 


 대부분의 저녁엔 그저 가만히 밤이 깊어가기를 기다린다. 숙제를 끝낸 아이들이 다투지 않고 조용히 잠들기를, 나 역시 졸음이 스스르 몰려오길 말이다. 어떤 날은 10시만 지나도 잠이 쏟아지고 다른 날은 12시가 넘어도 잠이 오질 않는다. 어쨌든 베개에 머리를 대면 바로 잠이 든다. 엄마가 싸다고 산 편백나무 베개이다. 황토색 물이 들었고 베갯잇을 묶어서 속을 고정시키는 옛날식 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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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0-3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서든 좋은 밤을 즐겁게 누리시기를 빌어요.
새 보금자리도 옛 보금자리도
모두 내 삶을 예쁘게 이끄는
아름다운 곳이겠지요.

Arch 2012-10-31 10: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맥거핀 2012-10-3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이 참 좋아요.

Arch 2012-11-01 19:49   좋아요 0 | URL
다른 누구보다 맥거핀님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저는 완전 좋아요 ^^
 
안철수의 힘 - 2012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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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의 생각'이 아니라 '안철수의 힘'이다. 안철수가 자신의 생각을 밝힌 내용만큼 강준만의 시선으로 안철수를 바라보는건 어떨지 궁금했다. 안철수가 대권주자의 행보를 걷는건 안철수 개인의 저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열망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도 한 몫할 것이다. 강준만은 안철수에 대한 우려와 비난 등에 대해 그가 오랫동안 해온 글쓰기 방식을 통해 변호하고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안철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공감하거나 반박할 근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책에서 인상적으로 본 것은 1960년대 미국 운동권 학생들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기상 나팔>-'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란 제목으로 나와 있다'- 부분이었다.  알린스키는 그 당시 급진주의자에 대해 '그들은 사회를 바꾸는 데 관심이 없다. 아직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일,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계시(revelation)일 뿐 혁명(revolution)이 아니다.'라며 한쪽으로 편향된 사고를 문제 삼았다. 원하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봐야 한다는 말은 '알린스키의 법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한 말이라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시각이 아닐까 싶다.


 알린스키의 말은 어떤 사안이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고 받고 싸우는 정치에 시민들이 거리두기를 주문한다. 정치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네이버 사전) 나쁜 FTA와 더 나쁜 FTA는 없다. 어느 정권이 무상급식을 하든 결과적으로 무상급식을 추진하는건 아이들에게 유익하다. 그런데 왜 그런 문제마다 서로 힘을 합쳐서 추진하는 대신 서로  말다툼을 하느라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걸까. 보수든 진보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정치집단은 요원한 일일까.


 나조차도 어떤 기사가 뜨면 저게 어느 당에 소속된 사람이 저지른 일인지를 먼저 본다. 사안의 호불호가 어느 당에 따라 달라지는거다. 진보쪽에 있다고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을테고 보수쪽이라고 모두 도덕성에 문제있는게 아닌데도 말이다.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개별적인 사안에서 반응하는건 다를 수 밖에 없다. 물론 어떤 정치집단이 일을 추진하는가에 따라서 사안의 성격과 결이 달라질 수 있다. 복지 개념이 없는 주체의 예산 처리 방식이 오랫동안 복지 분야를 연구한 정치 집단과 다를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알린스키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알린스키는 사회규범과 법질서라는 체제 안에서 사람들이 자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사회개혁이며 개혁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었다. 그는 시민들 스스로가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사회질서의 변화에 참여할 때, 많은 사회문제가 느리긴 하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해결되어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활동가들에게 평범한 시민에 대한 믿음과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시민운동을 해 나가라고 부탁했다.' (알라딘 책 소개) 

 
 믿음 가는 정치 집단을 뽑아놓고 알아서 잘 하라고 하는 대신 그들의 정책을 비판하고 옹호하면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내기, 언론과 사법의 공정하지 못한 태도에 대해 문제 제기하기, 어느 진영에 대한 편견으로 그들을 싸잡아 나쁘다거나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 실천법인데 두리뭉실한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진영 논리로만 풀어가기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물론 예쁜 놈은 울어도 예쁘다지만 그들의 소모적인 다툼이 우리 삶을 휘두르도록 앞으로도 놔두기만 할 것인가. 지나치게 뻔하고 시계추처럼 반복적이다. 


 진보측에선 신자유주의 경쟁을 저주하는 것이겠지만 진보가 기존의 경쟁관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약육강식형 경쟁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공정한 경쟁, 진정한 경쟁으로 경쟁을 선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진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은 안티 보수가 아니라 프레임을 선점하는 것이다. 그 프레임에 따라 사람들의 맘을 얻는 것이다. 혹여 보수쪽에서 그 프레임을 건드리면 그들의 지향하는 바가 단순히 선거용에 그치더라도 누가 먼저 선점했느냐를 놓고 싸우는 대신 프레임의 공정한 실천을 협력해야 한다. 어떤 열망을 등에 업은 것만으로 그 열망을 바라는 사람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면 반열망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그 열망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게 맞다. 선후가 그렇다. 진보 진영은 '안철수 현상'에 편승해 대선 레이스에 이용할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열망의 맥을 잡을 수 있을지 감을 잡았으면 좋겠다. 그게 비록 더디고 표 안 나는 일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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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0-1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임을 만들어도 언론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개인이 알기는 퍽 어렵기도 해요.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은 ㅁㅈ당 같은 정당이 진보인 줄 잘못 알기도 하고,
선거 때가 아니면, 진보정당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기도 해요.

한국사회는 늘 인기투표로 모든 것을 갈무리하잖아요.
대통령이든... 가수이든...
 

 지난한 연애를 돌아봤을 때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뭘 감당할 수 있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모르면서도 연애 상대에겐 그 모든 해답을 구해왔다. 연애지상주의자가 아니라 연애구원주의자였다. 구해왔는지조차 몰랐는데 그랬더라고, 싶은 마음.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어엿한 여성이란 희미한 자아상은 그럴 때마다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어쩌면 내것을 바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내 감정대로 하고 싶은, 내가 우선인 연애만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금의 그를 만났다. 


 우리 관계에는 부침과 싸움과 봄기운 충만한 순간들이 반복하며 찾아왔다. 직장처럼 너무 익숙해서 얼굴 표정만 봐도 몇시간 후에 어떤 증상이-우울, 시기, 질투, 분노 등등- 나올지 예감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지금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내 기분도 모르겠는데 표정만으로 상대를 어떻게 읽어. 심리게임을 자주 했으며 자주 하다보니 우리가 게임을 하는건지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는지 헷갈릴 때도 있았다. 안 먹던 술을 심심할 때마다 먹어대고 장사를 할까, 이사를 갈까,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갈까하면서 적금 통장의 늘어나지 않은 잔고를 걱정했다. 욕구불만일 때는 그의 팔뚝을 꼬집으며 내겐 부족한 사랑을 바라는 이 사람 때문에, 혹시 그런건 아닐까란 지지부진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신기'를 동원한 누군가의 말로 지지부진한 우리 관계가 정말 잘못된건 아닐까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고 급기야는 '정말 헤어지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 헤어지진 않았다. 또 하지만, 맘 속엔 항상 이 사람은 정말 내가 평생동안 같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일까란 미심쩍음이 분수도 모르고 자라기 시작했다. 옷차림을, 활동반경을 터치하는 것도 못참겠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 관계란 것도 견딜 수 없었다. 전자야 평균적인 가정에서 그럭저럭 자란 대한민국 남자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후자는 상당부분 내 책임인데 나는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남 탓하기가 이렇게 쉬우니 동생들보다 훨씬 키가 작아 옥찌에게 뭐가 부족하냐는 질문을 들어먹을 정도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제 '연탄구이 갈매기살집'에서 사장님한테 속내를 털어놓을 때까지도 나는 꿍해 있었다. 불안한 현재, 사그라들어버린 총기 같은 것, 옥찌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감도 못잡고 있을 때 그가 길을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 등등. 그러다 결국 말해버렸다. 그런 것, 혹시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이 있는데 삽질하는건 아닐까란. 사장님은 통속적인 얘기를 해주셨다. 이 사람은 따뜻하니까 다른 미욱함도 덜어줄만큼 따뜻하니까 그걸로 된거라고. 나는 자꾸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주체적이고 자립적이며 합리적이기까지 한 여자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남자 하나 잘 만나 신세 펴고 싶은 만만치 않은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제길, 난 어리지도 않은데. 누군가 내 삶에 영향을 줘서 나를 좌지우지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밥벌이의 곤란함을 덜었으면 하는 안이한 맘도 있었다. 취집이란 말에 열을 냈지만 나도 다르지 않다는걸 인정하자니 캥겼고 인정하지 않자니 욕구불만이 생겨버렸다. 결국 애먼 사람만 힘들게하고 말았다. 성향 문제보다 조건이, 현재 감정보다는 안정성이 중요했던거다.


 하지만 정말 이게 다일까. 어쩌면 나는 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다른 외부적 요인을 가져다 변명하는건 아닐까. 감정이 식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어떻게 그렇게 살뜰하고 따뜻한 맘이 식을 수 있냐며 항의하는건 아닐까.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며 깨닫는건 나는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희생제의에 익숙해서 지금의 관계들도 그 틀로 봐버렸다는 것. 일이 일찍 끝나 옥찌들을 다른 어른보다 좀 더 많이보는건 맞다. 하지만 감정적으론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있다. 그냥 애들 옆에 붙어있는 정도. 애인과 동생과의 관계에서 나만 뭔가를 하는게 아니었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대신 그 감정을 받아주는 것도 그들이고 내 생각대로만 하려고 아집을 피울 때 먼저 양보하는 것도 그들이다. 나의 속좁음과 농담에 죽자고 덤비는 객기를 웃음으로 무마하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데도 다 듣고 다독여주는 것도 그들이다.


 나는 나보다 더한 감정노동 무임승차자에게 한번 더 데어봐야 좀 멀쩡해지려는지, 그런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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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10-1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탄구이 사장님과 그런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시다니, 아치 님은 제가 막연히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소탈한 데가 있나 봐요! ^^

저는 너무나도 의존적인 스스로를 사십 다 돼서 알았는 걸요, 그동안 삽질한 생각하믄.....^^;; 아치 님, 저같은 사람도 있으니 힘 내요.

Arch 2012-10-14 09:40   좋아요 0 | URL
사장님이 소탈하셔요! 제가 먼저 소탈하진 못해요.

저는 제가 의존적인 스타일인줄 몰랐어요. 어떻게 보면 여성성을 벗어나려고 했는데 사소하고 예민한 지점들에선 여성적인 행동보다는 얌체짓을 종종 하더라구요.

맥거핀 2012-10-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연탄구이 갈매기살은 맛있지 않던가요, 라고 물어보려니 벌써 입에 침이 괴는군요.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장님이 있는 연탄구이 갈매기살집 좋군요. (물론 막상 가면 그깟 사장님 따위..하며 갈매기살에 정신이 팔리겠지요.)

Arch 2012-10-14 09:44   좋아요 0 | URL
그 거리가 연탄구이 목살집들이 즐비해요. 그런데 그 집은 갈매기살을 주로 팔더라구요. 갈매기살은 생소했는데 한번 먹어보고 완전 반했어요. 고기 먹는 것도 좋았지만 엄마인데 자식에 대한 편견이나 집착없이 얘기 들어주고 얘기하는 엄마 같은 사장님도 좋았구요. 반찬 나르고 예쁜짓하면 소주 한병을 서비스로 딱!

연탄구이 좋아하는 맥거핀님, 뭔가 안 어울려요. ^^

숲노래 2012-10-14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면서 마음이 풀렸기를 빌어요.
글도 쓰고 말도 하면서
맺고 풀기를 슬기롭게 하시기를 또 빌어요.

즐거운 삶을 이루는 벗인지
사랑스러운 꿈을 함께 빚는 이슬떨이인지
빛나는 하루를 찬찬히 일구는 옆지기인지
여러모로 잘 살펴보셔요.

Arch 님 마음속에서는 벌써 어떤 '결론'이 내려졌을 텐데,
그 결론은 두려워할 것도 싫어할 것도 아닌 만큼,
아무쪼록 씩씩하게 새 하루도 맞이하시기를 거듭 빌어요.
 
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통해 글을 잘 쓰는 법보다는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나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셈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작가수업'은 문장은 어떻고 소재는 어떻게 찾아내고 글의 구조는 어떻게 잡는지에 대한 책이 아니다. 지금까지 글쓰기 책이 세부적인 각론 퍼레이드였다면 이 책은 그동안 작법 책이 말하지 않는 비밀, 즉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를 밝힌다. 짐작했겠지만 그 비밀, '시크릿'을 안다고 작가가 되는건 아니다. 다만 자기계발서의 온갖 맹점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이 꾸준히 팔리는 이유를 추측할 따름이다. 세미나를 듣고, 이 책을 읽고,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쓴다면 어쩌면 나도 작가가 되지 않을까란 막연한 희망. 그렇다고 이 책을 작가의 자기계발서라고 보기엔 좀 그런 것 같지만.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면 왠지 불끈거리지 않는가. 어젯밤 내가 복분자주를 먹어서 그러는게 절대로 아니란 말이다.

 작가의 근본 문제는 자신감, 자존감, 자유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수호정령은 무의식 속의 이런저런 유령들에게 붙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 교사와 글쓰기 교본들은 유난히 비관적이다. 브랜디는 유독 글쓰기 분야에서만 이런 잘못된 비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파헤친다.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다른 사람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는 경험을 내세워 미리부터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학생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은연중에 학생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내가 그 동안 글을 못쓴건 다 자책감을 건드리는 작법책들 때문이었어! 이 얼마나 신속하고 약삭빠른 책임전가란 말인가. 글을 못쓴건 예능을 죄다 섭렵하고 시험 전날도 아닌데 안 하던 책상 정리를 하고 싶고 그도 아니면 책 속에 더 의미있는 이야기가 씌어질 것 같아 책을 읽어서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문제를 더 심화시킨 작법책 때문이라고 하는건 얼마나 터무니없으면서 그럴 듯 한가. 

재는 남다른 기질이나 훈련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 작용과 상관없이 자신의 합리적인 의도에 완전히 이바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 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나도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모를 재능을 활용하는 법만 배우면 된단 말이지. 얼쑤! 이것저것 뜸 들이는 법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작가가 되기 위해선 우선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글을 써야 한다. 정해진 시간 동안 글 쓰는게 가능해지면 그때부터는 시간을 바꿔가며 써본다. 즉 자리에 앉아서 정해진 시간 동안은 글이 술술 나오게 하는 훈련. 그 다음에는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
책을 덮고 눈을 감은 상태로 잠시만 마음을 가만히 놔두라. 단 한순간이라도 성공했는가? 전에 한 번도 그렇게 해본적이 없다면 마음이 얼마나 쉴 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인도의 옛 현인은 자신의 마음을 반은 자조투로 반은 변명투로 '재잘대는 원숭이'에 비유했다. 성다시시 프란체스코(1182~1226, 이탈리아의 수도사)는 자신의 몸을 가리켜 '나의 바보 형제'라고 일컬었다. 어느 실험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마음이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내달린다."
 하지만 조금만 훈련하면 마음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적어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은 네온사인 같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질 않는다. 번쩍번쩍, 휙휙, 뭘 좀 더 먹은 다음에 이를 닦을까, 아냐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눈을 감아볼까, 아 잠이 오려고해. 그럼 앞에 있는 무형의 점에 집중해보자. 오마이갓! 점이 춤을 추고 깜빡이고 난리도 아니다. 소금쟁이처럼 간질이는 맘은 도저히 가만히 있질 않는다. 마음 가만히 내버려두기 훈련이 끝나면 저자는 드디어 신묘한 비법을 알려준다. 바로 '예술적 혼수 상태' 불러내기!

  이제 이야기를 여전히 되는 대로 생각하면서 목욕을 한 다음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우라. 그런 자세가 너무 졸린다 싶으면 나지막하고 큼직한 의자에 앉아 적당히 긴장을 풀라. 편안하게 자세를 취했으며 더 이상 움직이지 말라. 몸을 가만히 놔두라. 그런 다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라. 완전히 잠든 상태도, 그렇다고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도 아닌 채로 그저 누워 있으라.
 잠시 후, 20분이 될 수도 한 시간이 될 수도 두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일어나고픈 욕구가 일면서 활력이 마구 샘솟을 것이다. 즉각 그런 욕구에 응하라. 쓰려고 하는 글을 제외하면 세상 어느 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 일종의 경미한 몽유병 상태에 빠질 것이다. 상상의 세계만 생생하게 와닿을 뿐 바깥세상은 그저 따분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나 타자기 앞으로 다가가 글을 쓰기 시작하라. 그 순간 그대의 상태는 예술가가 작업할 때 빠져드는 상태가 된다.

 나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글을 쓰는걸 가까스로 삼일 하고(장하다), 마음을 가만히 내버리기 훈련은 시작도 못하고 끝내고 말았다. 맘이 자꾸 간지럽다고만 해서 '예술적 혼수 상태'를 불러내지 못했다. 결국 작가가 되지 못한거다, 라고 말하는건 너무 가볍지만 어쨌든 그렇다. 영적이라던가, 은유에 대해 감도 못잡고 있는 나로선 이 책을 읽으면 나의 무의식을 소환해 뭔가 나답지 않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었다. 의식하고 또 의식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상상하지 못했는데 글로 나와버리는 어떤 것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대로 실천도 안 했을뿐더러 맘이 네온사인 같아서 무의식은 커녕 의식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적는 것도 힘에 부쳤다. 흔한 계단 이론에 따르면 이런 부침을 겪으며 열심히 하면 한 계단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치인지라 어찌 글쓰기며 사는 게 계단처럼 오르고 말고의 문제일 수 있겠는가, 라며 적당히 타협해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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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0-1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려운데요. '마음의 부산스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적어도 자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차원은 거의 보리수나무의 석가모니가 되는 수준인 것 같은데..근데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면 굳이 작가라는 거 안해도 되는 거 아닌가..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잘못된 비관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단 앉아서 아무거라도 쓰세요,라는 식보다는 훨씬 좋은 충고인 것 같음.)

Arch 2012-10-14 09:35   좋아요 0 | URL
ㅋㅋ 인용이 이렇게 걸맞다니~ 댓글 보고 엄마 미소를 지었어요.

저는 네온사인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내 맘이 문제려니 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 경지야말로 도달하기 힘들겠단 생각이 드네요. 다시 뭔지 모를 의욕이 막 샘솟는, 기분만, 느낌만 그래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책은 무책임하고 '의지여, 타올라라'적인 면이 있긴 해요.


saint236 2012-10-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매하고 기다리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어제 복분자주를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왜 자꾸 눈에 들어올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