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후딱 먹고 옥찌들과 까미랑 집근처 저수지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공원에서 옥찌들은 개처럼 뛰어다니고 까미는 애처럼 사랑을 받는다.(어색한 호응) 옥찌들은 운동기구를 하거나 잡기놀이를 한다. 어제는 반년 동안 고장난줄 알고 묵혀둔 자전거에 바람만 넣었더니 씽씽 앞으로 나가서 아이들은 자전거 타는 재미에 밤 깊어지는줄도 몰르고 정신없이 놀았다. 한명씩 돌아가며 자전거를 타고 나는 까미랑 놀거나 운동기구를 했다. 옥찌가 내 곁으로 슬쩍 오더니 이모도 이거 할 수 있냐는 표정으로 철봉 묘기를 선보인다. 묘기라기보다는 그 나이 아이들이면 다 할 수 있는 다리 걸어 거꾸로 매달리기다. 그 나이면 다할 수 있는걸 그 나이의 나는 못해봤다. 한번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보고 싶었다.
철봉은 두 다리에 단단한 콘크리트를 바르고 꼿꼿하게 서 있다. 웬만한 무게나 흔들림에도 꿈쩍 안 한다. 나는 철봉의 양팔을 잡고 (그것, 그녀, 그의) 다리를 탄다. 신발이 자꾸 미끄러져 양말을 벗고 매달려본다. 가까스로 철봉 팔에 걸친 다리에 힘을 줘서 간신히 다리를 걸었다. 손에 힘을 주고 몸을 늘어뜨렸다. 아, 나도 철봉에 거꾸로 매달릴 수 있다. 에게, 아무것도 아니잖아. 국민학교 다닐 때는 철봉타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게 보였는데. 그때 시도하지 못한 철봉을 서른이 넘어서 타보고 에게, 시시하다고 한다.
어쩌면 어렸던 나는 철봉 그거 아무것도 아니니까 한번 해보라는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해서, 누군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선뜻 매달려서 해보려고 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건 아닐까란 생각을 잠시 해봤다. (정신분석 돋네)
철봉처럼 땅 위에 굳건히 버티고 서서 어떤 매달림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권태롭다고 징징대기 일쑤인 사람이 되고 말았다. 안정된 직장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한다며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한테 일장연설을 해놓고 지금은 평생 나를 고용해주는 직장이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가끔씩 한다. 내가 그 티켓을 움켜쥘 수 있느냐는 문제는 뒷전, 그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타성에 젖어서 큰일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철봉에 매달려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까미를 바라본다. 철봉을 잡은 손을 빼놓고 몸의 다른 부분은 축 늘어뜨린다. 거꾸로 바라보는 풍경은 익숙한 시각으로 바라본 일상적인 풍경과 다르다. 이렇게 살고 싶다. 철봉처럼 살 수 없다면 조금 다르게, 내가 그다지 다른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믿고 꿈꾸는대로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 '몇십년 만에 철봉도 매달려봤는데 조금 다르게 살기가 뭐 어렵겠어.' 막 이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