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대출증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빌린 책은 두 권.  

 

 이곳 지자체 직원들이 공부를 한다는 책과 언젠가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김현의 책. '행복한 책 읽기'에 김현의 사진은 안 실렸다면 좋았겠다 싶다. 날카롭고 섬세한 비평을 읽다 작가 사진을 보니 왠지 어색했다. 작가의 얼굴을 상상한건 아닌데도 말이다. 거즘 내가 다 모르는 소설이라 김훈에 대한 이야기와 김현의 일상을 적은 부분에서 책 귀퉁이를 접었다.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다. 치기로 가득찬 단문이 아니라 확신있지만 오만하지 않고 견고한 문장이다.

 

  얼마 전 한겨레 신문에서도 꾸리찌바에 대해 나왔다. 공유가치창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 등. esc만 부지런히 본다. 꾸리찌바를 공부하던 사람들은 그곳으로 배낭여행을 간다.  관광이 아닌 여행을 그것도 태만해보이는 집단의 사람들이 간다는건 내 얘기가 아님에도 좀 설렜다.

 

 

 예전 한겨레21을 읽고 있다, 고 생각했는데 이 기사는 얼마 되지 않았다.

 

 

 

 

 

 

 

 

 파키스탄 총선 얘기가 흥미롭다. 무슬림 국가 가운데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인 파키스탄에는 100여개의 정당이 선거를 치뤘다. 총리로 당선된 펀자브의 사자 미안 무함마드 나와즈 샤리프는 강경한 외교정책을 고수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본 신문 기사에서 버락 오바마가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표적암살을 안 하도록 의회를 설득한다고 한다. 샤리프의 강경한 외교정책 영향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의 대테러 전쟁의 병참이자 전진기지였다. 만약 파키스탄이 미국을 돕지 않는다면 아프간에서 병력과 군사장비를 빼오는거나 탈레반의 복귀를 막고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도 없게 된다. 미국으로선 자구책으로 파키스탄이 원하는 '무인항공기 폭격 금지'(안)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터. 오바마가 국제관계를 평화적으로 풀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속내가 있는 듯하다.  

 

  과테말라 법원은 86살 먹은 몬트 전 대통령에 80년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30년전 집권 당시 저지른 학살과 반인도 범죄혐의를 인정한 결과라는 것. 재산을 빼돌리고 수억원의 경비비용을 쓰는 누구와 비교되는 대목. 그걸 계속 보도해가며 여론의 공분을 일으키지만 법적으로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니 살인죄로 수감중인데도 지방의 재벌뻘이란 사람은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암수술 후에 고열에 시달리던 사람의 형집행, 그것도 부도나서 사기죄로 들어간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도 형집행정지가 어렵다는 말만 하더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만이 진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때때로 믿음이 굉장한 설득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광주의 지혜학교 선생님을 인터뷰한 기사에서는 '지식은 많지만 타자에 대한 배려도 역사의식도 없다면 지식 괴물'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온다. '윤창중들은 계속될 것이다' 연속 기사에서 이진경씨는 '뻔뻔한 사회, 한줌의 정치'란 책을 통해  '사적인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권력을 이용하는 뻔뻔함이 위선을 대신해 권력 행사의 전면에 드러난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나는 내 책도 아니고 내 사돈팔촌의 책이 아님에도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를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나처럼 세상 돌아가는거 모르고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인터넷 글로만 훓고 있는 사람도 이 책을 읽으면 다른 나라에 대한 안목이 생기니까. 다른 나라를 앎으로써 우리를 알고, 역사를 앎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지혜롭게 바라볼 수 있다. (뭔가 좀 두서없는 책 광고다)

 

  윗글과 관련은 없지만 이 책의 많은 미덕 중 한부분을 옮긴다.

 

 우리는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마치 과거와는 다른 존재로 진화한 듯 여긴다. 하지만 진보한 것은 사회에서 주창되는 가치일 뿐 개인의 덕성이 아니며 인간 개개인의 자질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개인의 주변을 둘러싼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어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기 힘든 전장이나 혼란 상황에서 인간의 심리는 쉽게 중세로 회귀하고 만다.

특히 사회가 성숙하지 못할수록 이런 특성은 자주 전면에 표출된다. 우리 사회도 공개적, 사회적으로 증오의 발산이 용인된 대상인 북한과 일본 등이 있다.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저주해도 무방하고 때로는 무고한 시민마저 죽어 마땅한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인간성과 영혼을 훼손하는 짓이다. 비판해선 안 되는 대상은 없지만 마음대로 증오해도 되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었을 때 우리는 쉽게 증오 자체의 포로가 되고 만다.

한 문명의 수준은 그 문명이 증오를 얼마나 통제하고 있느냐에서 결정된다. 부의 재분배라든가 사회적 기회의 확보와 함께, 증오를 현명하게 통제하는 문명에서는 일상에서의 평화와 행복을 구가할 가능성이 크다.

중세는 과연 끝났는가. 십자군과 마녀사냥은 과거의 역사일 뿐인가. 나의 증오가 이데올로기.신념으로 포장되어 미움과 폭력으로 발휘되는 일은 이제 다시 없을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세상이 던져줄 것이다. 이념이나 이론, 슬로건이나 명분이 아닌 삶 자체가 말이다.

 

 

 그리고 보자마자 설레고 고마웠던 개정판.

 

 정희진이 연재하는 '어떤 메모'에서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얽힌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피해자에게만 평화와 용서를 강요하는 문제의식을 접했다.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암묵적으로든 노골적으로든 용서를 강요하는 상황은 낯선 일이 아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나는 용서가 저주보다 바람직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권력은 자기 회개와 피해자의 용서를 같은 의무로 간주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여성주의는 여성우월주의나 얌체 여성을 변호하기 위한 입장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이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 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여성주의는 양성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논쟁은 승부가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의 입장(지식)과 그러한 입장이 형성된 과정을 교환하는 것

 

 '페미니즘의 도전'은 이번에 읽으면 세번째이지만 여전히 곱씹을만한 책.

 

 아직 책을 읽고 앞으로도 읽을 것이다.

 

 마스터쉐프코리아와 무한도전, 최근엔 진행이 뻔해보이지만 첫회가 인상적인 드라마까지. 책에서 눈을 떼게 만드는 재미는 많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책의 개정판이 나오고, 하나의 팩트를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고 나를 여전히 설레게하는건 책 밖에 없는 것 같다. 책을 읽고 같이 얘기할 수 있어 서재가 좋았는데 같이 놀던 친구들은 머리카락 한올 보이지 않는다. 해 저무는 날,  나 홀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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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06-0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타는 그네는 역시 재미 없죠. 그곳 생활은 어때요?? 난 여기가 너무 싫어요.

Arch 2013-06-10 16:40   좋아요 0 | URL
난 여기가 너~무 좋아요. 이러면 미움 돋을테니 좀 가감하자면 살짝 좋아요.
일이 좀 되긴 하지만 저를 믿어주는 상사와 말 편하게 해도 괜찮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지네에 물려서 식겁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아직 괜찮아요.
 

 

 

 

 

 

 아침에 옥찌들이 우르르 일어나 부산하게 왔다갔다 했다.

뭔가 했더니 학교에서 받고 만든 카네이션을 엄마한테 달아준다고 그런 것.

엄마라 좋구나 이랬는데 민이 남은 카네이션 하나를 나한테 달아줬다.

무려 카네이션 세개를 다른 크기로 접은 카네이션 종이다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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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5-08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카네이션의 넘 멋지네요^^
 

 버스 정류장에 어르신들이 많이 뵌다. 반갑게 인사드렸더니 내 주위를 둘러싸며 소속과 싹수 검사를 한다. 성실하게 답변했더니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 하 ㅂ 격인가요? 같이 사는 분이 분명 나를 교회 데리고 나올거라는 할머니의 단언에 잔뜩 쫄았지만 씽긋 웃었다. 제1 원칙, 어르신들 말씀에 토달지 않기.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내가 옳다는걸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합리적인 접근보다 이곳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한다. 그 바탕에서 지역분들을 이해할 수 있다, 고 누군가 얘기해주셨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잡담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그놈 하나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스무고개처럼 말씀을 하신다. 그놈이 왼쪽으로 가라고 하면 왼쪽으로 가고 빙 돌으라면 돌면 된단다. 주체는 그놈이니 그놈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래도 운전기사인가 보다.

 

- 북한이 잘못 생각했다니까. 가네들이 부러워서 그러는겨. 그놈도 있고 테레비도 접었다 폈다 하니께 부럽지 않것어. 쪼매만 있으면 테레비를 들고 다님서 볼 수 있것당게

(할아버지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하, 본래 성질대로 했다면 이것저것 참견하고 훈수 뒀을텐데, 살짝 아쉬웠다.

 

 분명히 버스 시간표를 숙지했다. 헌데 어제는 조금 일찍 터미널에 도착해선 막차가 7시쯤이니까 어쩌고 하면서 터미널 사진 찍고 해찰을 부리다 2분 차로 버스를 놓쳤다. 헉. 구간별로 시간표가 있는게 아니라 종점별로 있는터라 착각을 했던거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차를 갖고 다닌다. 어른들이 버스가 많이 다닌다고 해서 맘을 놓아선 안 된다. 대부분 한시간에 한대 정도 있다는 소리니까. 이동해야할 일이 많은 사람들은 버스 시간표에 맞춰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나도 차를 살 생각을 했다.

 

 중고차를 사면 큰 부담은 없겠지만 차유지비며 보험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계산이 안 나왔다. 이곳으로 이사온건 적게 벌어서 적게 쓰며 살자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씀씀이가 늘어나면 곤란할 것 같단 생각도 있었다. 더불어 이곳의 모든 일상을 여행화 하려는건 아니지만 사람들과 풍경에 닿는 접점이 넓을수록 좀 더 깊고 크게 알 수 있을거란 계산도 있었다. 과연 내 깜냥이 '더 깊고 크게'에 닿을 수 있을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금욕주의는 아니고 그냥 내가 할 수 있을만큼만 궁상떨 정도는 아니게 살고 싶은데 남들은 궁상으로 보면 어쩌나 싶다 내가 남들 눈을 그리 신경 안 썼으니 괜찮겠다 싶다가도 한번씩 버스를 놓치면 또 어쩌나란 걱정도 들고 하는 오락가락한 상태이다.

 

 근무 이틀째

 업무를 인수인계할 분은 다른 일로 출장 중이고 뭔가 일은 벌어지고 나는 뭔가 해야할 것 같은데 감을 못잡고 심부름만 하고 있다. 업무 분장도 없고 단체별 연락처도 없다. 맨땅에 헤딩, 같이 하는 헤딩이면 힘이라도 나겠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분들도 들어온지 얼마 안 돼서 데면데면한 상태. 역동적이고 매순간 보람된 일을 할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아냐아냐(자아분열?) 우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책도 읽고 사람들 얘기도 들어봐야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낮에 있었던 뿌듯한 일 하나

  대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왔다. 의심쩍은 시중 도시락 대신 이곳 지역 협동조합에서 마련한 점심을 먹었다. 협동조합이 생긴지 얼마 안 돼 그릇이 별로 없어 일회용품을 썼다. 예전 같으면 많은 쓰레기가 그냥 버려지는걸 보고만 있어야했는데 지금은 종이는 종이대로 분리수거를 했고 컵도 다른 곳에서 급하게 얻어와 종이컵을 안 썼다. 누구 하나 아치 너는 왜 유난을 떠냐고 하는 사람도 없고 (다들 너무 바쁘다) 대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옆에서 도와주고 감사합니다, (잘못 버리면) 죄송합니다라고 하니 힘이 났다. 분리수거 열심히 해도 이 지역에선 폐지를 수거하지 않아 한꺼번에 쓰레기를 가져간다는게 함정.

 

  돈 때문에 택한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택한 첫 직장이다.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도 좋을지 모르겠다. 아직은 좋다. 직장을 견디거나 어떤 일들에 대해 모른척하지 않아도 되고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으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첫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아치가 아치에게 얘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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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3-05-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해요 아치 님! 하고 싶어서 택한 첫 직장이라니, 좋습니다 좋아요.
저는 차를 사는 쪽으로 한 표. ㅎㅎ 주로 집에 두고 버스만 탄다 하더라도 있으면 왠지 급할 때 (막 아프다거나 ㅠ) 써먹지 않으까요.

Arch 2013-05-06 13:51   좋아요 0 | URL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무슨 강 같은게 흐르는 것 같지만 아직은 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생겨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왠지 지금은 좀 이래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사는 곳과 직장을 옮기면서 사람들과  담담하지만 어색한 인사를 했다.

 

 실없는 농담과 무리수 대신 항상 건강하고 잘 지내란 인사를 건넸다. 부침이 많았고 사연이 있었던 관계들. 좋은 기억만 담고 가라는 말처럼 맘이 가벼워지면 좋겠다. 이십대의 나는 직장을 옮길 때 터무니없이 설렜다. 집에서 멀어지고  조막만한 조카들과 멀어져도 망설이지 않았다. 확신은 없었지만 기대는 했었다. 지금은 서먹하다. 후련할줄 알았는데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2년 넘게 출퇴근을 한 길과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과 아직 반납하지 않은 도서관의 책들. 내 자리는 깨끗이 치웠는데 자꾸 뭔가 더 남은 것 같고 아직 덜 끝난 것 같다. 내일은 알람없이 푹 자도 되는데 소속있는 휴일과 다른 기분이 들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대한민국 나쁜 기업 보고서>에서 별말 아닌데도 가슴에 콕 박혔던 말이 있었다. 바로 '직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내 전부'란 말이었다. 책에서는 그 전부인 회사가 저지르는 악행을 보고한다. 퇴근 후 여가 시간을 악착같이 찾아쓰려고 했고 병가와 잦은 '집안일'을 핑계로 땡땡이치기도 했지만 회사는 내 전부였다. 힘들 때는 이깟 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모멸감을 느껴야되겠냐며 가슴을 탕탕 쳤지만 돈 때문에 회사를 다녔던건 아니었다. 명함 때문도 아니고 일에 대한 자긍심도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새로 배워나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회사 덕분에 눈치가 초큼 늘었고, 형식을 중시하는 집단의 명암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장소에서 나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의 리듬에 맞췄다.

 

 발판이며 손거울, 다이어리를 가방에 넣고 나오며 사진기를 꺼냈다. 햇살이 아래서 유리창이 빛나는 건물이 쨍. 사진을 남겼다. 안녕.

 

 이틀 정도 쉬고 부랴부랴 이삿짐을 챙겼다. 포장을 하네, 마네 하다가 왜 나는 이런 잡동사니를 껴안고 있나 싶은 자괴감에 휩싸이다, 정리되는 양을 봐가며 배짱을 부렸다가 내일 하고 말지하며 술먹고 뻗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캐리어에서는 당장 입을 옷이 아닌 실내용 옷과 펜만 무더기로 쏟아졌다. 아마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자 도시에선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던 별들이 여름도 아닌데 쏟아질듯 많이 보였다. 정말 이사했구나 싶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한건 아니고 된장국에 취나물로 아침식사를 했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침 독서를 하고 버스 도착 시간보다 20분 먼저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분을 뵈었다. 인정이 넘치고 수더분한 시골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인사 정도만 하고 그 뒤로 묵묵부답이었다. 면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전입신고를 물었더니 내가 못알아듣는다고 판단했는지 대뜸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다. 좁고 조용한 동네, 우리 아빠 이름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동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동네 멍멍이랑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얘는 손을 턱 내 가슴팍에 걸친다. 무게감과 감촉이 낯설면서 익숙하고 거침없으면서 수줍다. 순진해서 이름도 순진이인 멍멍이

 

 

 

 일상을 전시하듯 펼쳐놓는건 좀 아니지만 오늘은 첫날이고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 법'이니 오늘 아침 출근길 사진도 살짝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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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5-0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보니 개는 덩치가 큰 순둥이 같습니다.리트리버 종인가요?

Arch 2013-05-02 15:49   좋아요 0 | URL
네. 집에서 미니핀 키웠을 때는 몰랐는데 개가 원래 순한 동물이란걸 새삼 느꼈어요. 미니핀은 자아가 강하고 성질 있거든요.

2013-05-02 0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02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13-05-0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 이 페이퍼 좋아요. 일상의 온기가 느껴져요. 저는 아치님의 일상, 전시회로 보고 싶은데.

Arch 2013-05-06 13:52   좋아요 0 | URL
네꼬님, 저야말로 네꼬님 페이퍼 보면서 기분이 좋은걸요. ^^
 
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육아서만은 이 책이 최고/육아서를 자기계발서로 본 관점을 반성한다. 육아서는 방법론과 실천론을 단편적으로 답습하는게 아니라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떻게 아이를 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책이다. 이 책에 대해 기대가 높았는데 기대치를 웃도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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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5-0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치님 덕분에 알게 된 책.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