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보는 방송 중에 '이영돈 PD의 먹거리 파일'이란 프로가 있다. 식자재에 숨겨진 꼼수, 유통의 문제점 등을 짚는 방송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조미료를 넣지 않고'-이게 아주 중요한 요소- 정성스럽고 위생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업소를 선정해 '착한 식당'으로 명명해준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분, 유기농 떡볶이를 만드는 분식점, 새벽부터 떡을 만드는 떡집 등 착한 식당은 맛만큼 양심적으로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선정한다. 얼마 전엔 정말 어렵게 천연육수로 냉면을 만드는 집을 찾아냈다. '착한 냉면'편은 몇 가지 조미료만으로 냉면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면어쩔 수 없이 정말 조금 조미료를 넣는다는 업주까지 가지각색 업종이었는데 드디어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식당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전국팔도를 다 돌다가 드디어 착한 냉면집을 찾는가 싶었다. 헌데 웬걸, 빙초산을 쓰고 면을 반죽할 때 쓰는 전분에 첨가물이 들어갔다는게 문제가 됐다. 새벽부터 육수를 우려내고 면도 직접 반죽했지만 빙초산과 첨가물 때문에 안 된다니. 나중에 '검증'할 때는 빙초산 대신 3배 사과 식초를 쓰고 여건만 허락하나면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고구마 전분 가루를 쓰겠다는 사장님 인터뷰가 나왔다. 고기만으로는 감칠맛이 안 나 여러가지 천연 조미료를 넣고 육수를 내고, 기구들을 소독하는 장면까지. 그깟 냉면이 뭐라고 저렇게까지하나 싶은 생각까지 드는 찰나,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종편 주제에 자기들이 무슨 자격으로 착한 식당을 선정하고 말고하냐란 분노에서 시작해 저질 재료를 쓰는 식당만큼이나 값싸고 자극적인 맛만 찾는 소비자들도 문제가 아니냔 생각까지 들었다. 쉽고 간단하고 웬만해선 들키지 않을 방법이 있다. 개인이 양심을 지키지 않고 그럴듯한 맛을 낼 수 있는 별천지가 도처에 널려있다.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제대로 맛을 내는 사람들을 존경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합성 조미료, 첨가물 천지인 상황에서 모든걸 개인의 비양심 때문으로 모는건 문제다. '좋은 재료, 제대로 된 조리'란 기치로 방송에서 지정하는 '착한 식당' 역시 외부적인 요인은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은채 착한 식당이고 싶은 사장들의 맘만 조리게 한다.

 

  아, 이 얘기가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착한 식당'은 그 나름대로 아니꼽고 치사하고 불공정하단 생각이 들지만 내가 이 페이퍼를 쓴 건 그 때문이 아니다. 눈물이 나온 이유. 정성껏 냉면을 만드는 사장님을 보면서 울컥했던 이유. 사장님은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식. 원가 대비 가격이나 가게의 인테리어, 서비스도 중요하다. 가게를 계속 운영해나갈 수 있을지, 누군가 정말 이 맛을 알아줄까 회의도 들겠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이 믿는바대로 행동한다. 

 

(충정로 해물 뚝배기집에서 나오며) 종업원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요구에서 인문학적 이해를 느낄 수 있었고 손으로 만든 인테리어 소품들은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주인장의 월급과 종업원의 시급, 매출, 원가 등을 공개하는 것에서 장사가 단순히 돈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임을 알 수 있었다. 7000원짜리 해물뚝배기는 어찌나 정직한지, 비록 조미료의 감미로움은 없을지 몰라도 조미료의 만들어진 맛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바다의 멋과 그리움이 뚝배기 안에 깃들어 있었다. 이건 흉내내기도 어렵다. 오랜 고민으로 다져진 삶의 방식이 매장 곳곳에, 그리고 장사의 모든 방면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직 주인장이 일궈온 삶의 궤적을 그리지 않고서는 그런 발상과 방식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영업은 과연 이런 것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그곳은 특별했다. 해물뚝배기 집에서 느낀 업의 본질은 ‘경험’이었다. 맛도 좋았지만 그보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도심 한가운데서 음식을 통해 바다를 경험하게 해주었고, 사람의 ‘이름’을 부르게 해주었다. 정보 공개라는 정말 새로운 경험까지.

 

 이 책에서도 업의 본질을 파악하는 사람이 나온다. 일을 시작하면서 초반에 여러번, 1년이 다 되고 연말 정산을 할 때 몇 번 그만둘 생각을 했다. '역시 이 조직은 나와 생리가 맞지 않다', '나도 할만큼 했다'가 이유였다.  퇴직금 받을만큼 더 다니면 그만두자,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전과 다른 마음으로 일을 한다. 과장님과 얘기하던 중에 내가 갖는 맘처럼 상대도 그럴거라는걸,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를 알아야한다는 말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 눈을 통해 보려고 노력하다보니 내 문제가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일 하기 싫었고, 사람들의 소란을 견딜 수 없었다. 회피하다보니 대응 자체가 방어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재미있을리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만 하고 있던 중에 태권도를 준비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다 지독한 파스 냄새를 맡았다. 무슨 파스를 이렇게 많이 뿌렸담, 하는데 아차, 이 아이들은 일년에 한번 있는 이 무대를 위해서 이렇게 열심이구나란 생각이 드는거다. 단순히 어쩔 수 없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아이들이 무대를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란 조금 뻔하지만 자주 없었던 깨달음. 혹은 타성에 젖은 내 모습을 다른 내가 본다면 참 볼품없겠구나란 객관화. 

 

 업의 본질, 전문성을 갖추고 아마추어든 프로든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는 것. 그들을 존중하고 함께 협력해서 좋은 무대를 만드는 것. 비로소 나는 내 업의 본질을 깨달은 듯도 했다. 2년쯤 일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깨달음이니, 이젠 정말 다른 맘으로 살아야겠다느니 각오도 대단했는데 얼마 못 가 다시 제자리다. 맘가짐은 예전보다 나아진 것 같은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드는 사람들과 존재감 없는 일, 회의감과 지루함이 번갈아 밀물 썰물처럼 왕래하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아마 '나도 착한 냉면'을 다시 본다면 또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어떻게 매일매일 그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나요, 자기계발서로는 정말 안 되는걸까요, 딱 이 정도가 나인데 그것도 모르고 잘하려고 욕심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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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11-2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사람이 주방장인데, 그 주방장은 인공조미료를 쓰고 싶지 않고 가게 주인은 인공조미료를 쓰리고 하고. 이 상황에서 일하기가 싫었고. 이 상황을 타파하는 방법은 그 가게를 나와 주방장 자신이 주인이 되어 착한 가게를 만드는 것. 그러나 가게를 열어 망하지 않을 자신을 없고. 손님들이 진심을 알아 줄지도 의문이고.
이 상황에서 사람이 방어적으로 수동적으로 변해가면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오히려 매일매일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상황이 예외적으로 생각됩니다.

Arch 2012-11-29 22:14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그렇게 볼 수도 있네요.
자기계발, 자기개발은 자본이 알아서 사람들을 길들이는 방식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제 안에도 그런 류의 필터링이 작용했네요. 혹은 정말 '업의 본질' 얘기던가. 혹은 내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고. 나중에 비슷한 얘기를 할 것 같지만 제가 느낀건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일삼고 제대로 하지 않은 나를 파악하지 못한 것, 파악하고 난 후에도 별로 달라질 것 없는 것. 비슷한 말만 하네요. ^^

Mephistopheles 2012-11-2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한 식당을 취재하는 종편 방송국이 결코 착하지 않아 보이는 "D"신문사 소속이군요.

Arch 2012-11-29 22:1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지들이 뭐라고!! 막 화났어요.

2012-11-29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2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