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연애를 돌아봤을 때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뭘 감당할 수 있고, 어떤걸 좋아하는지 모르면서도 연애 상대에겐 그 모든 해답을 구해왔다. 연애지상주의자가 아니라 연애구원주의자였다. 구해왔는지조차 몰랐는데 그랬더라고, 싶은 마음.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어엿한 여성이란 희미한 자아상은 그럴 때마다 뒷걸음치기 일쑤였다. 어쩌면 내것을 바쳐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보다는 내 감정대로 하고 싶은, 내가 우선인 연애만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지금의 그를 만났다.
우리 관계에는 부침과 싸움과 봄기운 충만한 순간들이 반복하며 찾아왔다. 직장처럼 너무 익숙해서 얼굴 표정만 봐도 몇시간 후에 어떤 증상이-우울, 시기, 질투, 분노 등등- 나올지 예감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지금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내 기분도 모르겠는데 표정만으로 상대를 어떻게 읽어. 심리게임을 자주 했으며 자주 하다보니 우리가 게임을 하는건지 진심으로 서로를 대하는지 헷갈릴 때도 있았다. 안 먹던 술을 심심할 때마다 먹어대고 장사를 할까, 이사를 갈까, 다 때려치우고 여행을 갈까하면서 적금 통장의 늘어나지 않은 잔고를 걱정했다. 욕구불만일 때는 그의 팔뚝을 꼬집으며 내겐 부족한 사랑을 바라는 이 사람 때문에, 혹시 그런건 아닐까란 지지부진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신기'를 동원한 누군가의 말로 지지부진한 우리 관계가 정말 잘못된건 아닐까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고 급기야는 '정말 헤어지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 헤어지진 않았다. 또 하지만, 맘 속엔 항상 이 사람은 정말 내가 평생동안 같이 지낼 수 있는 사람일까란 미심쩍음이 분수도 모르고 자라기 시작했다. 옷차림을, 활동반경을 터치하는 것도 못참겠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 관계란 것도 견딜 수 없었다. 전자야 평균적인 가정에서 그럭저럭 자란 대한민국 남자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후자는 상당부분 내 책임인데 나는 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했다. 남 탓하기가 이렇게 쉬우니 동생들보다 훨씬 키가 작아 옥찌에게 뭐가 부족하냐는 질문을 들어먹을 정도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제 '연탄구이 갈매기살집'에서 사장님한테 속내를 털어놓을 때까지도 나는 꿍해 있었다. 불안한 현재, 사그라들어버린 총기 같은 것, 옥찌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감도 못잡고 있을 때 그가 길을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 등등. 그러다 결국 말해버렸다. 그런 것, 혹시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이 있는데 삽질하는건 아닐까란. 사장님은 통속적인 얘기를 해주셨다. 이 사람은 따뜻하니까 다른 미욱함도 덜어줄만큼 따뜻하니까 그걸로 된거라고. 나는 자꾸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했는데, 그것만으로 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수긍하고 말았다.
어쩌면 나는 주체적이고 자립적이며 합리적이기까지 한 여자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남자 하나 잘 만나 신세 펴고 싶은 만만치 않은 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제길, 난 어리지도 않은데. 누군가 내 삶에 영향을 줘서 나를 좌지우지하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밥벌이의 곤란함을 덜었으면 하는 안이한 맘도 있었다. 취집이란 말에 열을 냈지만 나도 다르지 않다는걸 인정하자니 캥겼고 인정하지 않자니 욕구불만이 생겨버렸다. 결국 애먼 사람만 힘들게하고 말았다. 성향 문제보다 조건이, 현재 감정보다는 안정성이 중요했던거다.
하지만 정말 이게 다일까. 어쩌면 나는 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다른 외부적 요인을 가져다 변명하는건 아닐까. 감정이 식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어떻게 그렇게 살뜰하고 따뜻한 맘이 식을 수 있냐며 항의하는건 아닐까.
이런저런 부침을 겪으며 깨닫는건 나는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희생제의에 익숙해서 지금의 관계들도 그 틀로 봐버렸다는 것. 일이 일찍 끝나 옥찌들을 다른 어른보다 좀 더 많이보는건 맞다. 하지만 감정적으론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있다. 그냥 애들 옆에 붙어있는 정도. 애인과 동생과의 관계에서 나만 뭔가를 하는게 아니었다. 내 잘못을 지적하는 대신 그 감정을 받아주는 것도 그들이고 내 생각대로만 하려고 아집을 피울 때 먼저 양보하는 것도 그들이다. 나의 속좁음과 농담에 죽자고 덤비는 객기를 웃음으로 무마하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불평을 늘어놓는데도 다 듣고 다독여주는 것도 그들이다.
나는 나보다 더한 감정노동 무임승차자에게 한번 더 데어봐야 좀 멀쩡해지려는지, 그런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