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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아이디어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지음, 안정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인류가 최초로 달의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아마 이것 역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진부한 족적일 따름일지도 모르겠지만) 태양계의 행성을 조사하는 인공위성을 쏟아 리고 전세계를 마치 옆집의 이웃에게 안부를 묻듯이 리얼타임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과연 어디에서 부터 왔으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그러한 연구와 물음 끝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다름아닌 우리 인류의 사고의 능력 즉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다른 포유류나 영장류에 비해 겉으로 들어나는 육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먹이사슬이 최상의 위치에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건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는 뇌의 진화와 더불어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발전가능한 진보적인 체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이디어는 지금의 문명의 총체적인 출발점이자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체 중심에 우뚝설 수 있는 특별한 계기를 마련해준 근거인 것이다.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는 BC 만년전 수렵,채집의 시대를 살았던 머나먼 과거에서 출발하여 AD 2000년 까지 세상을 바꾼 170여개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마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상세한 설명과 비슷하거나 그 근원을 공유하고 또는 아이디어로 인해 발생했던 결과물에 대한 또 다른 아이디어를 서로 연관 지어 하나의 아이디어가 서로 물고 물리는 과정을 한눈에 보기 쉽게 정리해주고 있다. 또한 별건의 아이디어마다 훌륭한 삽화나 사진자료를 동원해서 시각적인 편안함과 자칫 사조라는 딱딱한 논조를 이끌어가는데 있어 부드러운 맛을 더해주고 있기도 하다. 저자 자신이 서문에서도 밝혀듯이 다른 시각으로 보면 책보다는 왠지 전자회사에서 소비자들의 소비패턴에 도움이 되고자 내놓는 다양한 메뉴얼을 모아놓은 카달로그 같다는 느낌마저도 드는게 사실이다. 이 말은 그만큼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자료를 한데 모아놓고 독자들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심판의 날-신의 정의라는 아이디어>장에서 신이라는 정의를 만들어낸 아이디어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더불어 고대 성당의 벽화에 나오는 종교색이 짙은 삽화와 더불어 신과 관련된 영화의 한컷을 그림자료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관련된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또한편으로 관련된 사조에 대한 추천도서까지 친밀하게 소개해주는 저자의 박식함에 혀를 내두룰수밖에 없다. 여기서 추천하는 도서는 거의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는 책들이긴 하지만 저자의 주도면밀함에는 끝이 없어 보일 뿐이다. 마치 카달로그에 나오는 컨셉을 가지고 가장 재미없고 지루하고 딱딱하게만 느껴질 소재를 전자렌지 설명서처럼 보기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저자 만의 특출한 능력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책의 구성이나 시각적인 판형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자료들만 내세워도 상당한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저작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매력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흔히들 지금의 풍요로운 세계를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대부분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산업혁명 이후 주체 없이 우리들에게 쏟아져 나온 아이디어가 결정적인 역활을 했을것라는 생각에 보기좋게 한방 먹여준다. 저자가 밝히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산업혁명이전 특히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수렵, 채집시대와 초기 농경시대에서 부터 그 기원을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구그리스도교와 근대화라는 쌍두마차에 의해 세계가 진보했다고 믿는 많은 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원초적인 아이디어는 그 이전시대로 부터 출발했고 단지 산업혁명과 근대화시대를 치면서 확대재생산되고 증폭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아이디어와 역사는 과거의 형식이라고 해서 결코 사장될 수 없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가 되풀이 되듯이 아이디어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는 인간의 사유가 집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연대기별로 아이디어의 흐름을 역사와 비견해서 되집어 볼 수 있는 흔히 않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