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 - 70-80년대의 추억과 낭만 이야기
김호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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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전쟁으로 나라와 민족이 파탄이 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특수라고 달러를 받고 용병을 파견하고 군수물자를 찍어대면서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잘살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하에 민족 대동맥이라고 일컫는 경부고속도로가 착공하던 해인 1968년에 난 이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오전 오후반을 나누어서 등교했던 국민학교를 졸업했고 까까머리에 시커먼 교복을 입고 학교정문에서 두발/복장 검사를 거쳐 한반에 무려 70명이 넘는 동기들과 수업을 받고 연합고사를 거쳐 고등학교 입학했다. 그리고 0교시부터 방송수업에 정규수업이 끝나고 나면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 매주 월요일마다 국,영,수 세과목을 돌아가면서 시험을 치고 선시험 후지원의 마지막인 학력고사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 87학번이기도 하다. 흔히들 나와 비슷한 세대 60년대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지금 40대에 이른 이들을 486세대라고 칭한다. 한때는 386이라고도 지칭되었고 북한의 어떤 양반만큼이나 선글라스를 좋아했던 아저씨이후 주름잡았던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온 젊은세대라는 좋은 반응하에 인기를 구가했던 시절이 있었던 세대이다. 흔희 길거리의 간판속에 그리고 어느 공중파의 프로그램속에 명명된 7080이라는 숫자가 아주 친숙해져버린 그런 세대이다. 

Generation Gap이라는 용어자체를 부인했지만 결국 지금의 시점에서 어쩌면 세대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의 앞 기성세대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아직도 젊은날의 향수를 잊지못하고 아주 가끔은 시대의 변혁에 앞장서고 싶어하는 간절함 바램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가 바로 나와 같은 세대일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바로 나와 같은 세대에게 지나간 그리고 잊혀졌던 아른한 기억을 되살려 주는 책장 한켠에 고이고이 간직해둔 앨범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호라시오반장을 필두로 사건을 풀어가는 CSI 마이애미가 아무리 인기절정에 있다한들 우리에게 불암아저씨의 <수사반장>을 능가하는 카리스마는 존재할 수 없고, 각종 어학원과 고차원 수학학원이 기세를 부리더라도 성문종합영와 수학정석은 당시 우리세대에겐 대학으로 가는 길을 보장하는 바이블같은 존재였다. 소녀시대와 비, 투피엠의 인기를 능가했던 가히 상상을 초월했던 용필이 아저씨와 영록오빠의 카리스마는 지금도 그 울림이 가슴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토록 심금을 울린다. 일요일 아침 차인태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장학퀴즈>를 의무적으로 시청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받고 어쩌다 한두문제 맞추게 되면 마치 서울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 아닌 착각속에 즐거웠던 휴일의 기억들은 아마도 나와 같은 세대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거리중에 하나로 남을 것이다. 

과거라는 기억은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추억이나 기억들이 혼합된 도그마 같은 것이다. 또한 나 자신과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좀더 열정적이고 친근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은 다름아닌 과거라는 추억에서 상호 공유할 수 있는 도그마같은 열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노래방에서 대학가요제를 비롯한 7080의 노래가 부르기 쉬워지고 술한잔하면 민주화운동운운하게 되면서부터 어쩌면 나와 같은 세대는 스스로가 세대를 확정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오늘 <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를 접하면서 지나온 시절의 추억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죽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이러한 추억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시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시대와 문화가 한 개인 나아가 세대라는 공통된 층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의미에서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이었다는 우리의 앞세대와 철없게만 느껴지는 뒤세대을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도 와 닿는다. 내게 행복했던 기억들이 어쩌면 다른 세대에게는 오지랖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우리세대에겐 이해못할 구석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간의 간격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길지 않지만 지난 세월을 한번 뒤돌아 볼 수 있는 상큼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우리세대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시작점으로 그리고 화해의 만남으로 기억된다. 그 행복했던 순간들이 한 세대의 미시적인 기억이 아닌 과거라는 총체적인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지금 우리세대가 해야할 역활에 대해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면 과대한 상상에 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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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 - 중국 최고 전략가 증국번의 세상을 이기는 법 18
챵펑뤼 지음, 양성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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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국번은 청(淸)나라 말기의 정치가 ·학자.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진압한 지도자이며, 근대화 운동인 양무운동(洋務運動)의 추진자이다. 주자학자이며, 문장가로도 유명하다. 태평천국군을 진압한 후 부하들에게 거사하여 황제에 즉위하라는 청을 수 없이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끝까지 청조의 충신으로 남은 인물이다. 사실 이번 책을 계기로 증국번에 대한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아마도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흔히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하지만 실상 난세의 영웅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서서히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준비되는 과정에서 탄생하게됨을 역사를 상고해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영웅들이 세상을 경영하는 처세술은 세월을 두고 귀감으로 남게 된다. 

그동안 국내의 독자들은 <처세술>과 <자기개발>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데일 카네기의 저서들을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카네기와 유사한 인사들의 처세, 자기개발 서적은 지금도 수도 없이 출간 되고 있고 세상을 좀더 의미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꾸준하게 읽히고 있는 책들이다. 그러면에서 이번 <처세>역시 큰범주에서 증국번이라는 청조말 정치가의 삶을 통해서 처세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행동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전형적인 처세관련 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포부와 기개, 부드러운 카리스마, 시대를 읽어내는 눈, 자기최면등의 내용 전반이 여타의 처세론 서적과 별반 크게 차이가 없는 점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책에는 통상의 처세론 서적과 다른 작은 차이가 엿보인다. 아마도 이 작은 차이는 처세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데일 카네기를 필두로 하는 서양적 시각의 처세술은 그 내용과 의미 그리고 표방하는 각론들이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여기에서는 서구적인 과학적 사조가 저변에 깔려있어 1+1=2 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마치 상품의 메뉴얼처럼 실행에만 옮기면 만사형통이라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빠르게 그러면서도 쉽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양적 시각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많이 희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저서에서는 이러한 서국적인 간단명료한 과학적 논조를 엿볼 수가 없는 대신에 다른 무엇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동양적 처세술(특히 동북아시아권)은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의 제갈량에서 부터 청나라 말기의 증국번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처세에는 명확한 정답보다는 심오한 철학이 깔려있다는 점이 동서양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처세>역시 처세술의 각론보다는 원론적인 철학이 담겨있다. 특히 유교적 사상을 바탕을 둔 담론은 마치 철학서를 대하는 듯하는 착각 마저도 가져온다.  

그냥 단순하게 처세관련서적으로 치부하기에는 왠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증국번이라는 정치인의 일생을 담는 평전 같으면서도 삶을 살아가는 단순한 지혜보다는 삶을 왜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철학서의 역활을 톡톡히 하는 책이다. 처세[處世]의 사전적인 의미인 사람들과 사귀며 살아간다는 말이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는 바는 큰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명료하면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경우보다는 마치 안개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세상을 각론적인 접근보다 원론적인 시각으로 파악하는 힘을 <처세>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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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프레드 캐플런 지음, 허진 옮김 / 열림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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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와 노무현전대통령이 존경했던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그럼 이 세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뇌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교육 받은 엘리트집안의 출신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세사람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한 시대의 획을 긋는 패러다임을 창출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전대통령은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정해진 엘리트(학연이나 정치적 끈등의 거의 입법화된 경로)코스를 벗어나 이런 인물도 대통령이 될 수 있구나라는 그동안 내제되었던 희망을 현실로 실현시키면서 대한민국 정치판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던 인물이다. 또한 미국의 오바마 역시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성역이라는 미국땅에 진정한 자유와 민주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인물이다. 그래서 이 두사람의 당선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패러다임의 원조에는 다름아닌 에이브러햄 링컨이 있었다. 

그동안 각종 자료와 위인전등을 통해서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에 대해서 왠만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링컨은 세계적인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미국 본토에서만 건국의 아버지 워싱턴, 재퍼슨과 더불어 가장 존경받고 닮고 싶은 대통령중에 한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알고 있는 링컨은 그리 많지 않다. 고작해야 최초로 노예해방을 시킨 대통령 그리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 정도로 밖에 우리에게 알려진게 별로 없는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에서 우리는 제대로된 링컨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링컨>은 이러면에서 링컨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온다. 출생에서부터 유년시절과 청장년시절 그리고 정계에 입문에서 대통령에 취임하여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링컨에 대한 모든 것을 극히 사적인 연애편지에서 부터 자작시와 직접 작성한 연설문등을 통해서 그의 사유를 접할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미국 대통령중에서 글을 잘쓰는 대통령으로는 율리시스 그랜트,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과 더불어 링컨을 꼽고 있다. 이 중에 링컨을 제외한 세명은 교육 받은 엘리트 출신이나 타고난 문장가이지만 유독 링컨만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인물이다. 링컨은 출생에서 부터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교육받을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했지만 접할 수 있는 책(책이라고 해야 구하기도 힘들었지만)이란 책은 거의 암기할 정도의 독서광이었고 주어진 책을 통해서 항상 정직하고 진실하며 규칙적인 삶을 스스로 배웠고 이러한 유년시절의 사유는 그의 일생을 통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삶에 일맥상통하게 흐리고 있었다. 특히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버트 번스의 시와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유독 좋아했던 그는 후에 그의 공적인 연설문에서 인용함으로써 주옥같은 연설문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링컨의 연설의 힘은 기존 정치인들의 입발린 소리가 아닌 일반 대중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간결하고도 정확한 메세지였고, 이러한 메세지는 남과 북으로 갈린 상황의 화합과 소통을 담고 있다. 특히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문인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통해서 그동안 남과 북으로 나뉘였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기 위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18세기 건국자들이 만들었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 더욱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민주주의적 평등을 확립하고자 하는 그의 강력한 메세지였고 이는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재하고 있는 버팀목과 같은 헌법을 초월하는 절대정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하나 이번 책을 통해 링컨의 종교에 대한 사유와 종교적 믿음으로 인한 공세에 대한 그의 반론을 접할 수 있다. 링컨은 엘리트주의와 기독교(링컨의 집안 자체는 남부 침례교의 독실한 가정이었다)를 믿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링컨의 다음 연설문을 통해서 보기 좋게 피해간다. "저 역시도 종교를 조롱하는 사람, 종교의 공공연한 적을 공직자로 지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나 죽음이라는 고차적인 문제는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누구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도덕을 해치고 감정을 모욕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는 연설을 통해서 종교적 믿음과 공론의 장이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공론의 장은 공적인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고 종교적 믿음은 사적인 일이라고 애둘러 표현했다. 기독교국가에서 이러한 발상자체가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연설문을 유심히 읽어보면 교묘하게 자신의 약점을 피해가는 링컨만의 뛰어난 언어 구사력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링컨 만큼 책과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를 달성한 정치인도 없을 것이다. 링컨은 유년시절부터 체계적이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책과 독서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았고 그 미래를 향해서 열심히 책속에서 해답을 찾을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링컨이 위대한 인물로 남는 것은 책속에 찾은 해답을 자신만의 해답으로 설정했던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화합과 소통에 적절하게 실천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과연 링컨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제대로 인지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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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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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말한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이규경(: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에는 이를 속화()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양식과 관습 등의 항상성()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져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더 심하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 민화를 검색하면 이와 같이 친절하게 설명되어져 있다. 민화는 이처럼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였고, 창의성보다는 비전문가에 의해서 되풀이되는 정통 그저 그런 그림이라고 우리는 이때까지 알고 있고 그렇게 배워왔다. 조선의 정통회화는 북송의 영향을 받아 사대부들에 의해서 완성된 문인화를 정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폭의 화선지위에 담겨져 있는 산수는 일반민중이 인식하는 그냥 산과 물을 표방하지 않고 그 속에 고매하고도 도도한 조선 선비정신이 깃들여져 있는 사상에 가까운 예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겸재나 완당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속에 담겨져 있는 그들의 사상을 엿보고 이를 음미하면서 참 예술이라 평한다. 

하지만 약간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런 문인화에 비해 색감이나 피사체의 선택등에서 어이없는 그림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바로 문인화와 차별짓는 속화라는 이름으로 남겨져 있는 민화들이다. 민화는 작가미상인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면서도 대동소이하게 비슷한 플롯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 수없이 전사 되면서 하나의 형식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주제나 양은 실로 어마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다. 민화는 조선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아닌 주로 일반민중들의 애환을 담고 있고 그들이 소장하고 그리고 전래되었던 대표적인 민중예술이다. 문인화가 고매한 사상을 내포한 경건한 예술쪽에 가깝다면 민화는 일반민중의 희노애락을 담은 잡학적 성격을 가지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병풍이나 부채 그리고 창문등에 우리 시선이 와닿는 곳은 어디던지 민화를 대할 수 있다. 이런 노출성에 의해 그동안 민화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왜곡되고 폄하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국내보다는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의 민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면서 정작 이제야 우리의 눈에 민화가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와서 이제 민화를 바라보는 눈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민화에 홀리다>는 제목처럼 책을 읽으면서 절로 민화에 홀리게 한다. 그 만큼 민화라는 자체가 우리 일반 민중의 일부였기에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춘향전에서 시작되는 한대목에서 부터 거실의 병풍 그리고 도자기의 도안 의상에 이르기까지 민화는 현대에 와서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저자는 민화의 역사적 발전과 민화의 특성 그리고 민화와 현대가 한데 어울려져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즉 민화라는 극히 옛스럽고 고정화되어 있는 객체에 현대라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글로벌화를 접목시켜 시대에 맞게 변할 수 있는 민화의 힘을 보여준다. 이런 민화의 힘은 조선 사대부들의 문인화에 비해 민화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민화는 상상과 현실이 공유하는 공간이자 객체의 은유와 직설이 마주하고 있는 장이다. 또한 과장과 생략, 사실과 비사실을 통해서 민화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점은 조선후기 상업자본이 발달하면서 계층간의 경개가 모호해지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고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또한 당시 일반민중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바램이라는 수요가 민화의 공급을 가능케 했으리라 추정된다. 또한 포스터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민화의 특성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민화가 현대로 재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민화의 대표격인 호랑이의 그림만 보더라도 기존 사대부들의 호랑이 그림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려움이나 경건함 같은 것은 일체 보이질 않고 심지어 연암의 호질에 나오는 북곽선생을 조롱하는 친근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미 화가의 눈에는 호랑이가 더이상 호랑이가 아닌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나 아버지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호랑이 뿐 아니라 사슴, 토끼, 꽃, 새등 주요 사물들이 하나같이 과장되고 추상화되면서도 그 본질적인 이미지 전달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 민화와 일반 민중의 삶은 이런면에서 동시대적이고 동공간적이다. 이처럼 민화는 아무런 제약이나 한계, 금기사항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 냈고 바로 이점이 당시 민중들의 삶을 그림 한폭에 집대성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0년전 한폭에 민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당시 민중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혹은 바램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을까 혹시나 이런 민중의 삶이 지금과는 단절된 삶일까? 아마도 200년전 민화나 현대에 다시 재탄생하는 민화의 주제나 형식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일반민중의 삶과 바램이 지난날 우리선조들의 삶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의 평화, 입신양명, 무병장수, 부부애, 자식사랑등 우리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극히 소소한 바램들이 수백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바로 민화를 통해서... 

▣ 저자는 자본주의 학문의 꽃이라는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어느날 민화 사랑에 빠져 민화에 대한 각고의 노력으로 이 책이 출간되게 되었다. 그동안 민화에 왜곡된 사실을 올바르게 자리잡게 해줄 좋은 양서라고 해야겠다. 이 책 한권으로 민화에 대한 모든것을 이해한다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나름 민화란 어떤것인가에 대한 작은 대답은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현대와 고대의 민화사진등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한층 이해감이 깊어지고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민화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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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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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무현 전대통령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에 바보, 바보 노무현이라는 것이 통용화 되고 있고 즐겨 회자 되고 있다. <바보>는 우리같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정해놓은 평균적인 지적능력에 약간 모자라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혹은 나보다 못하다고 단정 지우고 싶을 때 즐겨 사용한다. 그럼 한나라의 국가통수권자였던 대통령을 왜 우리는 바보라고 부르고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 분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였고 무엇보다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했고 철저하게 외면 당했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의 눈에는 그저 바보스럽게만 비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바보들은 여러모로 주기만 하고 당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그리고 똑똑한 우리는 그런 바보를 자기 위안이나 방패막이 정도로만 생각할 뿐 그 이상은 아니다. 그래서 바보는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세계와는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일 뿐이고 외로운 것이다.  

노전대통령의 서거 이후 그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부각 되면서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부터 미완성의 자서전등 그야말로 사회학 관련 출판업계에서는 속된 표현으로 대박이 났다. 노전대통령과 어떠한 연관이라도 있는 서적이면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진입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면서 포스트노무현의 위력을 톡톡히 만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태인가? 정작 생전에 그토록 철저하게 외면했던 대상을 죽고 나니 바쁘게 상품화아닌 상품화하는 현실속에서 그야말로 자본주의시스템의 실상을 보는 듯 하여 가슴 한켠이 씁쓸할 뿐이다.  

그 동안 노전대통령과 관련해서 출판된 서적들의 트렌드는 평전, 유고 자서전, 생전인터뷰의 리뷰을 포함하여 다소 노무현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관점에 비중이 높았고 정작 그가 추구했던 사유적인 접근은 다소 빈약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10권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참여정부의 정책방향과 그 기조 그리고 밑바탕 속에 깔려 있었던 노대통령의 사유의 근간을 잠시라도 엿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좋은 작품 의도로 보여진다. 이미 알려졌듯이 노대통령만큼 책을 가까이한 국가통수권자도 드물다. 청와대 비서관 회의나 각료회의때 자신이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일일이 참모들에게 책 선물하고 리뷰를 경청할 정도로 노대통령은 책은 단순한 독서의 대상이 아닌 본인 자신의 사유의 확장 및 정책의 밑거름 형태로 여겼다. 그래서 노대통령이 주목했고 탐독했던 책 속에서 우리는 그마나 그분 사유의 맥락이라도 잡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자신만의 패러다임과 가치관에 부합하는 책을 선호하게 마련이지만 노대통령의 경우 참여정부을 실패한 정부라고 혹평을 한 장하준 교수의 [국가의 역활]을 참모진들과 열독하며 반면교사로서의 자신만의 사유의 확장을 해나가는 모습속에서 바보라는 아이콘에 대한 어렴풋한 진실을 알게 된다.  

생전에 노대통령이 탐독했던 10권의 책을 보면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다방면에서 걸쳐 현재 보다는 미래를 말하는 책들이다. 특히 진보의 미래에 대한 저자들 나름대로의 논거가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노대통령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당신 자신 사유의 확인 절차였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노대통령은 지금 형태의 권력에 대해서 회의를 가졌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시민권력을 염두해 두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퇴임 이후 소비자가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대변될 수 있는 형태의 권력창출에 집중할려고 하였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얄굳은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되고 전참모진들과 강연이라는 형태로 다가왔던 10권의 책에서 우리는 그분이 생각했고 염원했던 사유가 결코 바보스럽지 않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늘나라에서 당신은 만족하리라 여겨진다. 

바보에게는 현재가 하등의 문제가 없다. 왜 다들 바보라고 하는데 나서서 아니다고 해봐야 별다른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바보에게는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고 바보들은 미래에 매진한다. 그래서 똑똑한 우리는 바보들의 사유를 그저 바보스럽다고만 할 뿐이다. 그러나 역사를 상고해 보면 결국 시대의 리더는 똑똑한 우리 같은 바보가 아닌 사람은 될 수 가 없음을 수도 없이 확인 한다. 시대를 이끌어가는 리더는 그래서 항상 바보일 뿐이다. 바보 노무현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 시점에서는 상당한 반향성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우리사회는 이분법적이고 단순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고자 한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래서 똑똑한 우리는 나 이외의 사람을 온통 바보로 보는 지도 모른다.  

▣ 이 책에 소개된 10권의 책은 진보, 보수, 중도등의 정치적인 스택트럼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가지치관 한번 쯤 비교 검정해 볼 필요가 있는 상당히 좋은 책들로 보여진다. 비단 다 읽어보질 못했지만 강사들의 서머리만을 통해서도 날을 잡고 한번쯤 일독해 보고 싶어지는 책들인 것 같다. 무엇보다도 지금 같은 가치관의 혼란시대에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도 남을 책들이다. 여기에 덤으로 이 책들을 통해서 노대통령의 사유에 조금이나마 공감을 가질 수 있다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임에는 틀림 없다. 유심히 책들의 저자를 보면 온통 바보들이다 우리도 이제는 바보들의 사유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한번쯤은 들여다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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