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 홀리다 - 조선 민화, 현대의 옷을 입다
이기영 지음,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말한다. 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하였으며, 이규경(:1788∼1865)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에는 이를 속화()라 하고, 여염집의 병풍·족자·벽에 붙인다고 하였다.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화가들이 그렸으며, 서민들의 일상생활양식과 관습 등의 항상성()에 바탕을 두고 발전하였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되풀이하여 그려져 형식화한 유형에 따라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더 심하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 민화를 검색하면 이와 같이 친절하게 설명되어져 있다. 민화는 이처럼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였고, 창의성보다는 비전문가에 의해서 되풀이되는 정통 그저 그런 그림이라고 우리는 이때까지 알고 있고 그렇게 배워왔다. 조선의 정통회화는 북송의 영향을 받아 사대부들에 의해서 완성된 문인화를 정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폭의 화선지위에 담겨져 있는 산수는 일반민중이 인식하는 그냥 산과 물을 표방하지 않고 그 속에 고매하고도 도도한 조선 선비정신이 깃들여져 있는 사상에 가까운 예술이다. 그래서 우리는 겸재나 완당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속에 담겨져 있는 그들의 사상을 엿보고 이를 음미하면서 참 예술이라 평한다. 

하지만 약간만 시선을 돌려보면 이런 문인화에 비해 색감이나 피사체의 선택등에서 어이없는 그림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바로 문인화와 차별짓는 속화라는 이름으로 남겨져 있는 민화들이다. 민화는 작가미상인 작품이 거의 대부분이면서도 대동소이하게 비슷한 플롯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손을 통해 수없이 전사 되면서 하나의 형식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주제나 양은 실로 어마하게 많이 존재하고 있다. 민화는 조선 계급사회에서 사대부가 아닌 주로 일반민중들의 애환을 담고 있고 그들이 소장하고 그리고 전래되었던 대표적인 민중예술이다. 문인화가 고매한 사상을 내포한 경건한 예술쪽에 가깝다면 민화는 일반민중의 희노애락을 담은 잡학적 성격을 가지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병풍이나 부채 그리고 창문등에 우리 시선이 와닿는 곳은 어디던지 민화를 대할 수 있다. 이런 노출성에 의해 그동안 민화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왜곡되고 폄하되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국내보다는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의 민화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면서 정작 이제야 우리의 눈에 민화가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을 거슬러 와서 이제 민화를 바라보는 눈이 제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민화에 홀리다>는 제목처럼 책을 읽으면서 절로 민화에 홀리게 한다. 그 만큼 민화라는 자체가 우리 일반 민중의 일부였기에 가능하리라 여겨진다. 춘향전에서 시작되는 한대목에서 부터 거실의 병풍 그리고 도자기의 도안 의상에 이르기까지 민화는 현대에 와서 제대로 대접받으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저자는 민화의 역사적 발전과 민화의 특성 그리고 민화와 현대가 한데 어울려져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시하고 있다. 즉 민화라는 극히 옛스럽고 고정화되어 있는 객체에 현대라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글로벌화를 접목시켜 시대에 맞게 변할 수 있는 민화의 힘을 보여준다. 이런 민화의 힘은 조선 사대부들의 문인화에 비해 민화만이 갖고 있는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민화는 상상과 현실이 공유하는 공간이자 객체의 은유와 직설이 마주하고 있는 장이다. 또한 과장과 생략, 사실과 비사실을 통해서 민화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점은 조선후기 상업자본이 발달하면서 계층간의 경개가 모호해지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고 인간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 또한 당시 일반민중의 바램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바램이라는 수요가 민화의 공급을 가능케 했으리라 추정된다. 또한 포스터모더니즘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민화의 특성은 어찌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민화가 현대로 재 탄생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의 눈에 새롭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민화의 대표격인 호랑이의 그림만 보더라도 기존 사대부들의 호랑이 그림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두려움이나 경건함 같은 것은 일체 보이질 않고 심지어 연암의 호질에 나오는 북곽선생을 조롱하는 친근한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미 화가의 눈에는 호랑이가 더이상 호랑이가 아닌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나 아버지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호랑이 뿐 아니라 사슴, 토끼, 꽃, 새등 주요 사물들이 하나같이 과장되고 추상화되면서도 그 본질적인 이미지 전달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 민화와 일반 민중의 삶은 이런면에서 동시대적이고 동공간적이다. 이처럼 민화는 아무런 제약이나 한계, 금기사항도 없는 세계를 만들어 냈고 바로 이점이 당시 민중들의 삶을 그림 한폭에 집대성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00년전 한폭에 민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당시 민중의 삶과 그들이 추구했던 혹은 바램을 잠시라도 엿볼 수 있을까 혹시나 이런 민중의 삶이 지금과는 단절된 삶일까? 아마도 200년전 민화나 현대에 다시 재탄생하는 민화의 주제나 형식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는 지금도 일반민중의 삶과 바램이 지난날 우리선조들의 삶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의 평화, 입신양명, 무병장수, 부부애, 자식사랑등 우리 일반인이 가지고 있는 극히 소소한 바램들이 수백년이라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바로 민화를 통해서... 

▣ 저자는 자본주의 학문의 꽃이라는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어느날 민화 사랑에 빠져 민화에 대한 각고의 노력으로 이 책이 출간되게 되었다. 그동안 민화에 왜곡된 사실을 올바르게 자리잡게 해줄 좋은 양서라고 해야겠다. 이 책 한권으로 민화에 대한 모든것을 이해한다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나름 민화란 어떤것인가에 대한 작은 대답은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현대와 고대의 민화사진등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한층 이해감이 깊어지고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민화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