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으로 밥상차리기 원조 '원' 요리 시리즈 2
김용환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리책을 "읽다"라고 하니 이상하다.
요리책은 "읽다" 보다는 요리하며 "본다"는 표현이 맞겠지?

내게 필요한 요리책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요리"라고 말하기도 뻘쭘한,
된장찌개, 미역국, 계란말이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필요했다.

영어 교재로 치면 알파벳 따라 쓰기 부터 있는
진정한 왕초보용 교재!

불과 2달 전까지만 해도
요리에도, 요리책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지도, 나물이가 그렇게 유명한지도 몰랐다.

이 책의 저자, 나물이의 홈피 (www.namool.com) 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레시피 하나 올리면 기본 조회수가 3만,
댓글은 몇십개가 굴비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다.

백수 독신남의 "생존전략"으로 직접 밥을 해먹었다는 나물이.
이제 너무 유명해서인지 나물이의 홈페이지에서는
구수한 음식 냄새 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냄새도 같이 난다.

요리 기구나 재료 공동구매 뿐만 아니라
나물이네 반찬가게에서는 김치도 팔고,
나물이네 정육점에서는 고기도 판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개인 블로그도
나물이나 야옹양처럼 유명해지면
컨텐츠를 모아 책을 내고, 쇼핑몰도 만들 수 있다.

나물이의 더 이상 간단할 수 없을 것 같은 "초간단" 조리법은
나 같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왕초보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재료도 기본적인 것들만 들어 가고,
조미료도 넣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썩....맛있다. 신기하다! ㅋㅋ

2달 전, 독립을 앞둔 내게
오래 자취생활을 해본 친구 B는
빨래 건조대를 하나 선물해 주며 이런 조언을 했다.

" 뚝배기는 하나 꼭 사라.
혼자 먹기에 딱 좋거든! "

그 때는...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뚝배기는 정말 유용하다.

크기도 적당하고 모양도 예쁘고,
소꿉 장난하는 것처럼 재미있다.

오피스텔을 집필에 올인하기 위해 "작업실"로 얻었는데
요즘 소꿉놀이에 더 집중하고 있다.
처음이라 그런지 디따...신기하고 재미있다.ㅋㅋ

갓 독립한 싱글들에게,
라면도 잘 못 끓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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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7-08-0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이 이 책의 리뷰를 쓰실 줄이야...사실은 저도 제일 애용하는 요리책입니다, 이거. 이책 속편만 해도 별로 살 생각 안들던데, 이 오리지널 버전은 아주 유용합니다.
 
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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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부터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강유원 샘의 강좌
<서구 고전 읽기 : 정치사상편>을 듣고 있다.

강독하는 text가 만만치 않은데다(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등),
숙제도 내주고(걷은 다음 첨삭에 커멘트까지 달아 나눠준다!)
부담스러워서 그만 둘까...도 생각했었는데,

강의가 재미있어서 꾸역꾸역 나갔고,
강의를 들으며 내 독서에 대한 자기반성과 각성을 하고 있다.

강의를 통해 강유원 샘은 "context의 중요함"을 끊임 없이 강조한다.
이 책 <책과 세계>의 첫장도 "책과 세계 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다.

어제 강의시간에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리포트 목차를 냈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강유원 샘의 커멘트를 듣고는 디따...쩍 팔렸다.
(정말....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

강유원 샘은 참고도서로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과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을 추천하셨다. 플라톤이 <국가>를 쓴 시대의 시대적 배경, 정치적 상황, 생활 양식....등
context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도 안되는 비약을 하려했던 내게 따끔한 일침이었다.

쩍 팔리긴 하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강의다. (살은 되면 안되는데!)

이 책의 책날개에는 간략한 저자 소개와 함께
집필 목적과 연구계획이 실려 있다.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고전에 대한 자극!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거의 전기 충격에 가깝게 받고 있다.
책은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일침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길가메시 서사시>, <일리아스>, <갈리아 전기>, <신국>,
<군주론>, <리바이어던> 등 이름만 들어도 부담스러운 고전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아~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가을학기에는 <서구 고전 읽기 : 역사편>을 강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더 바쁘지 않다면(설마...아니겠지?) 들을 예정이다.

기원전에 쓰여진
(그러니까 2,000년 하고도 몇백년 전에!)
플라톤의 <국가>를
21세기 서울의 한 문화센터에 퇴근 후 달려온 직딩들이 모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읽고 있다. 정말......신기하다!

고전의 "영원성"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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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0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공부하시네요..^^ 배워서 꼭 남주세요..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kleinsusun 2007-07-0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당^^

글샘 2007-07-0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게 신곡 아닐까요? 아, 직딩들의 학원... 나도 가고 싶습니다.^^
제 몫까지 공부해 주세요.

kleinsusun 2007-07-09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신국<神國>이 맞아요. Augustinus의 <신국>이랍니다.^^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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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는 [Snoopy's Guide to the Writing Life].
원제 그대로 살렸으면 좋았을 뻔 했다.

"완전 정복"이란 말이 억지스럽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다.
도대체 글쓰기를 어떻게 "완전 정복"한단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 "완전 정복"이란 말 디따 좋아한다.
몇년 전, <영어 완전 정복>이라는 허접한 영화가 있었다.
"완전 정복"이 영어로 뭘까?
궁금해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고..... 웃다 뒤집어 졌다.
[Please Teach Me English]
음하하하하! 정말....허접하다.

세상에는 "완전 정복"을 할 수 있는 대상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완전 정복" 같은 무서운 말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추천해준 사람은 출판평론가 표정훈 선배님이다.
지난 겨울, 글쓰기에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이 책을 읽은 건 2달 전, Frankfurt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일단... 군데 군데 삽입된 만화 <피너츠>가 넘 웃겨서
낄낄거리며, 즐겁게 읽었다.

이 책에는 다니엘 스틸, 시드니 셀던, 잭 캔필드 등
32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다.

세벽 세 시에 내게 찾아오는 영감을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아침 9시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펜과 공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몇 시간씩 글감을 찾기 위해 일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밀어붙이고 이리저리 휘갈겨 쓰다보면 뭔가가 온다.
- p40, 다니엘 스틸

그렇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도 매일매일 책상에 앉아야 한다.
입맛이 없을 때도 밥은 먹듯이!

일단 앉아서 끄적끄적 대기라도 해야 한다.
몇 시간 동안 몇줄 쓰지 못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 다음날, 그 몇줄은 몇십장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니까.

토마스 맥구안(Thomas McGuane)도 이렇게 말했다.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써야한다.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하거나
머리에 떠오르는 문장을 되는 대로 써보거나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도 쓰는 게 좋다.
반드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p61

글이 잘 써질 때 몰아서 쓸 생각을 하며 빈둥거리지 말고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꾸준히 써야 한다.
일기를 쓰건, 편지를 쓰건 어쨌든 써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못하는 일!)

소설가 카슨 맥컬러스는 29세가 되기 전에 세 번이나 발작을 일으켰다.
다리를 저는 데다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남편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겪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고통 앞에서 좌절했겠지만,
그녀는 적어도 하루에 한 페이지씩은 글을 썼다.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쓴 결과, 그녀는 <결혼식 참가자>,
<슬픈 카페의 노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등의 훌륭한 소설을 펴냈다.
- p177

투덜대지 말고,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하루에 한 페이지는 무조건 쓰자.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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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7-06-1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그게 너무 너무 힘든 일이라죠. ㅠ.ㅠ

다락방 2007-06-1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엔 다니엘 스틸도 있었군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어버리네요. 수선님의 리뷰덕에. :)

BRINY 2007-06-1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논문 하루에 한페이지....써야하는데..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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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 6회 황순원 문학상 작품집 <명두>에서 김애란의 단편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읽은지
거의 1년 만에 김애란의 단편집을 읽었다.

이 책의 끝에 있는 <작가의 말>에 김애란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김애란은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그의 단편집을 읽고 느낀 첫번째 감상(?)은
아....정말 소설 많이 읽고, 습작 많이 하고, 소설 작법을 피 터지게 배웠구나! 다.

얄밉다.
꼭 "국영수를 중심으로 수업시간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수능 전국 수석의 9시 뉴스 인터뷰를 보는 것 같다.

예전에, 그러니까 벌써 몇년 전, MBA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GMAT을 5번이나 봤는데 매번 똑 같은 점수가 나왔다.
그 비싼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5번이나 봤는데
그 때마다 똑 같은 점수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이라니!

Top 5 MBA 합격자들이 쓴 [TOP MBA로 가는 길]에
합격자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썼다.

TOEFL은 모의고사를 한두번 풀어 보고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 좋은 점수가 나왔고,
GMAT은 바쁜 회사 일에 쫓겨 2~3달 주말에 도서관에서
[The Official Guide for GMAT]을 반복해서 봤는데,
다행히 700~750점이라는 높은 점수가 나와 essay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런 수기를 읽었을 때의 좌절감이란!
난 머리가 나쁜 걸까?

그런데...그 합격자 수기 중에는 학교 선배의 것도 있었는데,
(그 선배도 그렇게 썼다!)
그 선배는 회사까지 휴직하고
온 종일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저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피 터지게 공부했어요!" 라고 하면
쩍 팔린걸까?

평론가들은 김애란의 출현을 "천재 소녀의 강림" 으로 보는 것 같다.

김애란은 분명, 단연코, 유쾌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뛰어난 작가다.
하지만... 아직 작품집이 한 권 뿐인 작가를 가지고 너무 오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김애란에 대한 "애정(?)"을
그의 장편, 또 다음 단편집을 기다려 주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또한... 평론가들의 비난 보다도 더 무서운 "무관심" 속에 힘들어 할
신인 작가들의 소설도 계속해서 "사서" 읽으려고 한다.

그것이... 회사원 나부랭이인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문학에 기여(?)하는 방법이 아닐까?

딴지가 길었다.
그래서...김애란의 단편집은 어땠는가?

이렇게 딴지를 걸 만큼,
동종업계도 아닌데 시기와 질투를 느낄 만큼,
대.단.하.다.
그 유쾌한 상상력과 놀라운 비유들로 가득한 문장들!

김연수 소설의 아버지가 "늙고 추례한 아비"라면
김애란 소설의 아버지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 실종된, 사라진 아비"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는 아이를 버리고 떠나지만
아비의 떠남은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되지도 않고
자기연민의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

김애란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삶의 고통에 빠지는 대신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며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긍정한다.
아....이 도발적인 유쾌함이라니!

김애란이 단편을 발표하는 여러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김애란의 다음 작품집을 기다린다.

달려라,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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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판단을 유보한 작가들 중의 하나입니다. 김형경의 글이 아무리 못되어도 좋다라는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몇 편을 읽어야 했고 박민규가 때로는 영 아니올시다 싶었던 글과 대단스런 글들을 섞어 단편집을 내는 것을 보다 보니, 판단을 내리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어요. 저도, 다음 작품집을 기다립니다.

kleinsusun 2007-06-0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음 작품집, 또 장편을 읽어 보고 싶어요.
평론가들은 말하더군요. 다음 작품집을 기다려 평을 하면 이미 늦는다고... 작품에 배팅을 해야 한데요. 평론에도 시장의 논리가! ㅋㅋ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김훈 소설에 대한 비평가들의 무관심은 실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김훈의 소설은 유령인가?


5월 9일자 한겨레 칼럼 [야!한국사회]에서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물었다.

김훈의 소설은 유령인가?

문학평론가들은 김훈의 소설에 대해 침묵한다.
(이명원은 김훈 소설 비평을 쓴 적 있나? 모르겠다.)

김애란, 이기호, 박민규에 대해서는
범비평가 연합 과제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면서
김훈의 소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게 사실이다. 왜일까?

이명원의 칼럼을 읽고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었다. 궁금해서!

김훈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현의 노래>, <칼의 노래> 아무 것도 읽지 않았고,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김훈! 하면 떠오르는 마초 같은, 가부장의 전형 같은 이미지가 싫었다.

<남한산성>을 읽게된 건
정말....진정....넘넘 궁금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이 난리인가?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중년 남자들이 소주가 아니라 소설 나부랭이를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말 많은 비평가들은 외면 또는 침묵하는가?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절묘한 아슬아슬함"을 느꼈다.
고난이도의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밧줄에서 떨어지는 척 하다가 멋드러진 공중곡예를 펼치는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능란한 곡예사!

무식하면 용감하다! 고
무식함을 전제로 용감하게 말한다면
<남한산성>에서의 김훈의 서사나 인물 설정은
대하소설의 대중작가 최인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한다.

김상헌의 칼에 죽은 사공이나 그의 딸 나루나,
노비 출신으로 청의 통역관이 된 정명수나,
대장장이 서돌쇠나 그 얼마나... 통속적인가?
대하 드라마에서 당장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만약 최인호가 <남한산성>을 썼다면 3권은 되지 않았을까?

김훈의 절제되고 압축된 문장은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어떻게 이런 문장을 번역하지?

김훈의 문장은 특이하게...아름답다.
문장이 미려하고 뭐 그런 게 아니라
말이 되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스타카토처럼 딱딱 끊어지는 마초적인 아름다움?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어 있고,
인물들에게도 일체 감정이입을 시키지 않는다.

인물들이 남한산성의 돌이나 돌벽에 피는 꽃,
한 겨울 꽁꽁 얼었다 봄이 되자 콸콸 흐르는 강 같은
자연과 다르지 않다.

그저 꽃이 피다, 꽃이 지다 처럼
인물들의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비평가들의 애로사항(?)이 어렴풋이 이해된다.
도대체 김훈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도대체 무슨 이론을 적용(?)할 것인가?

담론이 담론을 낳는 지식인 사회의 특성상
누가 먼저 얘기를 해야 딴지를 걸텐데
누가 먼저 시작을 할 것인가?

여전히...김훈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전히...김훈의 이미지는 마초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을 읽고 생각한다.
김훈은 뛰어난 작가라고!

<남한산성>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이해된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고!
김훈은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데...

김훈의 책을 한권 더 샀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수어사 이시백의 대화가 생각난다.

- 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page 218)

김훈의 산문집을 빨리 읽어봐야 겠다.
좋아하지 않지만 관심이 가는 남자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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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2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이게다예요 2007-05-2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도 이 책 질러서 지금 책장에 꼽혀있는데 언제 읽을까 고민중이에요. 저도 김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선뜻 손이 잘 안 갔는데 이거 보니 빨리 읽고 싶네요.

kleinsusun 2007-05-27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예요님, 오랜만이예요.^^ 이명원 칼럼 아니었으면 저도 안 읽었을 꺼예요.ㅋㅋ 이 책 읽으면서 "명불허전"이란 말이 생각났어요. 뭔가...있더라구요.^^

프레이야 2007-05-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다고 독자가 느끼는 건, 정말 군더더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조의 끊어짐 즉 님이 말한 것처럼 스타카토 그리고 난무하는 반점(쉼표)들
때문이라 여겨요. 오히려 그의 문장은 그의 사념으로 인해 군더더기가 많다 싶은 때가
많아요, 제 경우엔.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글은, 묘한 매력이 있으니 참,
난감하지요. 평론가들의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힘 또한 그만의 힘으로 보입니다.^^

kleinsusun 2007-05-2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역시...예리하시군요!^^
"난감하다".... 정말 김훈의 소설을 표현하기 딱인 단어네요! ㅋㅋ
평론가들도 정말...난감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07-05-2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거부반응이 일어 그간 미뤄오다가 최근에 [강산무진]을 읽었거든요. 맙소사, 정말 좋던걸요. 이런글을 쓰고싶다, 고 할 정도로 말이죠. 좋은걸 알겠지만 다음작품에 선뜻 손을 대기가 두렵기도 하니, 이 마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kleinsusun 2007-05-27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김훈은 역시....대략난감하다니까요. 맞아요....첫장을 펼치기가 내키지 않는...두려운...빙고!^^

2007-05-27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5-2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문장은 단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김훈의 글은 이렇게 말하는게 옳을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뒤틀린 고독감이 있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생생함을 담고 있지요.
미디어적 글쓰기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런 짧고 명확한 문장이지요...김훈은 기자시절부터 명문으로 익히 알려진 사람이다보니....뭐 이런식으로 쓰면 어떨지^^
" 김훈은 각진 현미경이다.그에게는 모난 고독감이 느껴진다...줄라. 불라. 불라."

바람돌이 2007-05-28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이 수선님에게서 제대로 표현되어지는 것 같네요. 저는 그 감정의 정체가 뭘까 참 감이 안잡히더라구요. 책을 다 읽고 놓을때조차도 계속 저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던 낯섬이라고나 할까요.

kleinsusun 2007-05-2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김훈은 "양가적인 존재"라는 말에 공감 110%.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다가도 뭔가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과 거부감을 불러 일으키는...

드팀전님, 뭔가 뒤틀린 고독감......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각진 현미경"이란 표현 멋진걸요. 줄라.불라.불라.....^^

바람돌이님, 님도 "묘한" 감정을 느끼셨군요.
책장을 넘기는 내내 그랬어요. 고개를 끄덕이더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칼의 노래>는 어떤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