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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평점 :
젊은 남성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선배 남성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 서사는 차고 넘치도록 많다. 성공한 여성의 사례를 보거나 듣는 게 같은 여성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이런 책 어디 없을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이 활발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임신과 육아 때문에 하던 일을 그만두는 여성도 많고,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을 경험하면서 힘겹게 일하는 여성도 많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족적을 남기고 활발하게 일을 이어나가고 있는 여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이 책은 원래 유료 디지털 컨텐츠로 발행된 글을 좀 더 다듬어 종이책으로 옮겨담은 글이다. 4인용 테이블 이라는 이름의 여성 4명이 11명의 일하는 여성을 인터뷰했다. 기자, 작가, 영화감독,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녀들은 어떻게 일을 시작했고, 어떻게 그 분야에서 살아남았을까?
<우리들>이라는 영화의 영화감독 윤가은의 고민을 들어보면 영화창작이라는 분야에서 여자 감독이라는 위치가 주는 고민에 대해 알 수 있다.
「내가 남성감독이라고 가정해보자.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데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이게 상업적인 소재인지 아닌지는 고민하겠지만 '내가 남자라서 남자 영화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고민은 안하지 않을까? 나는 늘 '내가 여자라서 이렇게 섬세한 영화만 만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냥 '나'라는 사람의 성향이 드러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일 뿐인데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니 아이러니하다. 」 < 일하는 여자들 p.50>
이미 작품을 한번 성공시킨 영화감독으로써 어떤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지에 대해 자신이 여자라서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남성감독이 섬세한 영화를 만들면 감성적이라고 칭찬할만 소재가 되고, 여성이 섬세한 영화를 만들면 여자라서 그렇다는 인식, 혹독한 직업 세계에서 아직도 남자와 여자의 역할과 성격을 정해놓고 생각하는 편견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일하는 여자들의 인터뷰마다 끝부분에는 저마다 자신을 잘 드러내는 물건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물건은 백은하 기자의 신발주머니였다. 초등학교 이후로 신발주머니를 들고다닌 기억이 없는데, 그녀는 항상 신발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며 구두를 신은 날에는 스니커즈를, 스니커즈를 신은 날에는 구두를 넣어서 가지고 다닌단다. 상태에 따라 언제든지 원하는 모드로 체인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굽높은 구두를 신고 나간 날, 자신감은 상승할 지언정 그만큼 그날 하루의 활동 자유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갈아신을 수 있는 신발 한 켤레가 더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그녀의 자유로운 활동성이 드러나는 물건이라 새롭고 신선했다.
책에는 유독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이 여럿 등장했는데, 이런 질문이 있었다.
「영화지를 포함해 잡지의 경우 일간지나 방송과는 달리 여자 기자가 훨씬 많은데, 그 이유가 급여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에 동의하는가?
- 맞다. 그 급여를 받겠다고 남자들이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예비 언론인 과정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들 중에 지금 현업에 있는 남자들은 다 방송사 아니면 일간지에서 일한다. 그쪽이 아니라면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함께 공부한 여자들은 일을 관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을 하는 경우는 PD 정도다. 아니면 나처럼 잡지 쪽이다. 잡지쪽으로 넘어오면 여자들이 훨씬 많지 않나. 이건 임금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 일하는 여자들 p.193>
화려해보이는 잡지사의 일이 사실은 임금이 낮아서 여성이 많은거라니, 씁쓸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은 하고싶은 일을 지속하기 위해 결혼도 미루고,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잡지를 만들고 편집하는 일을 한다. 처우가 어떻든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힘이 닿는 한, 언제까지고 일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 프리랜서로 소소하게 일하고 있지만, 일이 주는 그것만의 즐거움이 분명히 있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나만의 효용가치가 있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싶은 마음, 그것을 동력으로 매일 조금씩 해나간다.
아직은 척박한 환경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수많은 일하는 여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