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원론 - 옛이야기로 보는 진짜 스토리의 코드 대우휴먼사이언스 20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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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를 접하다보면 문득 이런 차이를 느낀다. 보는 동안엔 재미있었는데 다 보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듯한 허망한 이야기, 또 하나는 별 생각없이 봤는데 계속해서 곱씹어보게 되고, 무언가 울림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눈만 돌리면 모든 곳에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 마음을 울리는 진짜 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걸까? 
저자 손동흔은 스토리텔링의 진짜 힘은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구비문학, 신화, 설화 등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의 원형에 있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온 이야기는 힘이 세다.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지는 인스턴트식 이야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다. 웹툰 작가 주호민은 저자 신동흔의 책 <살아있는 한국신화>를 보고 <신과 함께>에 대한 창작 영감을 받았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책의 뒤를 이은 이 책 <스토리텔링 원론>은 다양한 구비문학들을 살펴보고 실제로 분석해보는 과정을 통해 오랫동안 살아남는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야기를 가져와 스토리텔링 구조를 쪼개서 분석해보는 방식의 진행이 자칫 학창시절의 국어시간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나름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나 그리스 신화, 혹은 동네별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나 설화등을 보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황당한 경우가 많다. 이런 이야기는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든걸까 의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오랜 세월에 걸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들의 힘은 어디에 있는건지 저자는 하나하나 분석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야기를 분석하면 그 이야기가 어디서 유래된 것인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게 꽤 짜릿한 경험이다. 

「옛날 제주 바다 수평선 너머에 영등할망이 살았다. 어느 날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은 거센 풍랑을 만나 외눈박이 거인들의 나라에 이르렀다. 이마 한가운데 커다란 눈이 달린 무서운 괴물이었다. 이를 본 영등할망은 어부들을 구하러 나섰다. 배를 몰래 숨겨서 제주 섬으로 향하게 했다 하지만 제주 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어부들은 잠깐 경계심을 풀었다가 삽시간에 외눈박이가 있는 곳으로 휩쓸려 떠내려갔다. 어부들이 살려달라고 외치자 영등할망이 나타나 온힘을 다해서 이들을 고향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무사하지 못했다. 할망은 외눈박이에 의해 산산이 찢겨서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사람들은 영등할망을 위하려 제를 지내게 되었으니 바로 영등굿이다.」 
<스토리텔링 원론 p.22>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처음엔 이게 무슨 만화같은 헛소리야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근데 가만히 분석해보니 바다 한가운데 나타난 커다란 눈이 달린 무서운 괴물은 다름아닌 태풍의 표상이다. 거인에게 달려있는 커다란 눈은 태풍의 눈인 것이다. 영등할망은 바다를 떠다니는 바람으로, 어부들이 탄 매를 밀어주고, 고기를 몰아오기도 하는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분석해놓고 보니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흥미로운 스토리로 만들어졌기에 오랜시간 사람들 사이에 구비되어 전승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는 마음가는대로 만들어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원형적 사상과 허튼 망상을 어떻게 분간하여 걸러낼 것인가 하는 점인데,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구비전승 과정에서 망상적 담화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본원적 인지에 맞지 않으므로 내면에 기억되어 새겨지는 대신 잠깐 스쳐서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이 오래 기억해서 전승해온 설화들은 이러한 인지적 필터를 거쳐 살아남은 것들이다. 그 속에 인간의 정신적 구조와 지향성이 원형적으로 함축돼 있음을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 
< 스토리텔링 원론 p. 70>

많은 스토리텔링에는 진짜와 가짜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중 저자를 가장 열받게 한 사례는 아마도 한때 엄청난 유행을 불러일으켰던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 였던 것 같다. 설화의 내용을 소설적 디테일로, 그것도 음산하고 엽기적이며 폭력적인 디테일로 덮어씌운 경우라고 한다. 이 책은 당시 19금 동화로 널리 알려져 더 호기심을 자아내고 많이 읽혔던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아름다운 동화책이 사실은 엄청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야한 이야기라는 설정. 물론 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아이들 동화처럼 밝고 순수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원래 이야기에는 동화보다는 좀 더 현실을 반영한 잔인함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원래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흐리는 소설적 디테일을 구겨넣어 본래의 스토리텔링이 주려했던 메시지를 완전히 망가뜨린 사례라고 한다. 그 외에도 <어거스트 러쉬>나 <신과 함께>의 스토리텔링에 관한 저자의 견해가 새롭고 흥미로웠고, 저자가 추천하는 그 외의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참 존경스럽다. 거기다 그 안에서 뜨거운 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정말 신기하기까지 하다. 좋은 스토리텔링이란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뜻이 찾아지고, 역사와 철학이 빛나며, 사람들의 경험과 상상이 원형적으로 녹아들어 있어 시공간과 집단의 경계를 넘어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바로 진짜 스토리인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짜 스토리는 무엇일까, 찾아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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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온 괴짜 노인 그럼프 그럼프 시리즈
투오마스 퀴뢰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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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할배 버전쯤 되시겠다. 핀란드에 사는 투덜이 할아버지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와있는 손녀를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때는 아마도 평창 올림픽을 한참 준비중이던 작년이나 재작년쯤 되겠지. 하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이 진짜 그럼프 노인은 아니다. 그럼프는 작가 토오마스 퀴뢰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니까. 이 책은 그럼프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이지만 읽다보면 자꾸 소설이라는 사실을 까먹는다. 진짜 딱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괴짜노인 그럼프 할아버지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거기다 책 속엔 실제로 표지에 그려진 옷을 그대로 입은 할아버지가 한국의 곳곳을 누비며 한국을 경험하고 있는 사진이 등장한다. 그럼프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얼굴까지 분장하는건 힘들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럼프의 뒷모습만 잔뜩 감상할 수 있다. 괴짜노인 그럼프 시리즈는 핀란드에서 엄청나게 사랑받는 시리즈라고 한다. 인구가 500만인 나라에서 5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정말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대단한 노인이다. 괴짜노인 그럼프의 책 내용으로 만든 영화도 관객 50만을 동원했고, 책 내용을 그대로 녹음한 오디오북들 또한 골든 디스크를 세번이나 받았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 노인의 숨은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괴짜 노인 그럼프는 한국에 간 손녀가 무척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핵무기를 터뜨려버리겠다고 밤낮 세계를 협박하는 '뚱뚱한 소년' 이 바로 나라의 북쪽에 버티고 있는데, 이 곳으로 굳이 공부를 하겠다고 떠난 손녀가 걱정되긴 할 것이다. 외국인들의 눈엔 우리나라가 언제 전쟁터가 될지 모르는 불안불안한 상황으로 보일수도 있을테지. 실제로도 중국과 미국, 북한 등에 끼어서 불안한 상황이고 말이다. 

「손녀는 한국 음식이 특히 맛있고, 채소와 육류가 적당히 섞여 있다고 했다. 나는 가게에서 우유를 파는지, 공중에 폭탄이 날아다니거나 길거리에 공격용 소총을 든 남자들이 보이지는 않는지 물었다. 손녀는 한국 사람들이 북한의 소란을 진짜 위협이라기보다는 속임수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 십 년 동안 말만 많았던 김 씨 가족을 늘 화가 난 외삼촌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 
<한국에 온 괴짜노인 그럼프 p.20> 



그럼프가 말하는 그 뚱뚱한 소년은 언제쯤 마음을 바꿔먹을지 나도 궁금해진다.  책의 끝 부분에는 그럼프가 뚱뚱한 소년에게 보내는 다정한 편지도 있다. 

「뚱뚱한 소년에게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무도 신성하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유감스럽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게 떠나보냅니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그것 때문에 온 세상을 죽일 필요는 없습니다. 
허풍은 당장 그만두고 뒷마당으로 가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십시오. 이 편지를 받았다면 적어도 비둘기 한 마리는 있을 겁니다. 그것을 먹지는 말고 보기만 하십시오. 그 쪽에 혹시 잔디밭이 있다면 나비들도 있을 겁니다. 한번이라도 나비에 집중해 본 적이 있는지요? 참으로 이상하고 예쁜 생물입니다. 아주 가까이서 보면 못 생겼지만, 나도 못생겼고, 당신도 못생겼습니다. 
그 나비며 비둘기며, 뒷마당이며 산이며, 식물들을 오랫동안 쳐다보십시오.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십시오. 여전히 이 모든 것을 수소폭탄 곤죽으로 만들고 싶은지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추신. 당신은 설탕과 탄산음료를 너무 많이 먹고 마십니다. 당신의 나라엔 멋있는 전통과 맛있는 음식이 있습니다. 남쪽에서 먹어봐서 압니다. 채소와 맛있는 고기도 넉넉합니다. 김치가 당신의 장 활동에 도움이 될겁니다. 」
< 한국에 온 괴짜노인 그럼프 p. 176>



괴짜노인 그럼프는 특유의 복장을 하고 한국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라면 상자를 들고 당당한 걸음으로 활보하는 그를 보라 ㅋㅋ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재미 있었던 이유는 우리 문화에 낯선 외국인들이 서울의 곳곳을 헤매고 돌아다니며, 우리의 음식과 문화를 맛보고 즐거워하고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보는 모습이기에 우리에겐 당연했던 것들이 다른 문화를 사는 외국인들에게는 생경하게 다가올 것이고, 그 모습을 본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최근에 종영한 <윤식당> 시리즈 또한 우리가 항상 먹던 음식을 외국인들이 맛있는 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상하게 가슴 졸이며 그들이 맛있다고 말해주기만을 바라며 지켜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프 할아버지, 한국 여행은 즐거우셨나요? 
뚱뚱한 소년이 꼭 할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뒤뜰의 나비를 지켜보며 마음을 고쳐먹었기를 바라고요. 김치를 먹고 장운동을 활발히 해서 홀쭉한 소년이 되길 빌어보네요. 아참, 음식 드실 때 젓가락질을 자주 해보세요. 머리가 좋아진답니다ㅋㅋ 

담번엔 내가 핀란드에 가보고 싶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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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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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책맞지만 요즘도 가끔씩 이런 꿈을 꾼다. 어떤 잘 생긴 남자가 나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한다. 내가 모르는 얼굴일 때도 있고,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기도 한다. 오, 순간 설레고 혹하는 마음에 그만 승낙을 해버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짝꿍씨가 떠오른다. 꿈속에서 짝꿍씨를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 고민한다. 결국엔 짝꿍씨를 선택한다. 세상에, 꿈속에서도 바람을 못 피다니, 난 정말 일편단심인가봉가. 
꿈에서 깨고 나면 아쉽다. 꿈에서라도 멋진 남자랑 연애나 마음껏 해볼걸ᄏᄏ  

꿈에서도 다른 남자를 선택하지 않았다며 자랑스럽게 짝꿍씨에게 다음날 꿈 얘기를 해주면,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아니, 어떻게 나 말고 다른 남자 꿈을 꿀 수가 있어?” 
이런다. 말이냐 빵구냐! 
(언젠가 니 꿈 속에 찾아가는 수가 있다....-_-)

평소 오글거린다며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도 잘 안 보는 편인데, 사실 마음속으로는 핑크빛 로맨스를 여전히 꿈꾸는가 보다. <파이와 공작새>는 정말 오랜만에 읽은 로맨스 소설이다. 잘생기고 돈 많은 영화배우 테이트와 실력 있고 똑 부러지는 요리사 케이시의 밀고 당기는 사랑 이야기는 뻔한 내용인 줄 알면서도 자꾸 보게 되는 중독성 있는 로맨스를 선사한다. 고전 명작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이야기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 소설은 등장인물이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1 대 1로 매치된다. 테이트는 다아시, 그의 친구 잭 워스는 찰스 빙리, 케이시는 엘리자베스, 지젤은 제인 등  원작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비슷한 성격과 상황을 지닌다.

<파이와 공작새>의 케이시와 테이트의 첫 만남은 다소 부끄부끄 하다. 새벽 5시에 케이시는 잠시 거주 중인 집 앞 베란다에서 벌거벗은 채 샤워를 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당황스러움에 조용히 빤히, 지켜본다. 사실 그 상황이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근데 하필 그때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에 샤워를 하던 테이트에게 존재를 들키고, 케이시가 자신을 몰래 촬영하던 파파라치인 줄 착각한 테이트는 케이시에게 엄청나게 화를 낸다. 보통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들은 이런 식의 황당한 첫 만남을 갖곤 하지. 

케이시는 자신이 살고 있던 저택의 주인이 테이트라는 사실과 그가 유명한 영화배우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고 그에게 사과를
 하고자 그가 머물고 있는 집에 음식을 싸 들고 방문하지만, 거기서 테이트가 친구 잭에게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하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케이시는 테이트가 아주 오만하고 자신을 하찮게 취급한다고 생각하며 모두가 우러러보는 그 남자를 혼자 매우 싫어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테이트는 케이시가 매력적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마음에 두고 있다. 이 두 남녀의 관계는 어떻게 되갈는지....?

이야기의 구성을 보면 전형적으로 한국 드라마에서 한때 한참 많이 등장하던 사랑 이야기다. 백마 탄 왕자님과 평범한 아가씨, 평범한 아가씨는 꼭 당차고 당돌한 캐릭터이며, 백마 탄 왕자님은 “나를 이렇게 대하는 여자는 니가 처음이야”라며 여자에게 빠져든다. 그들의 사랑을 음해하는 세력이 꼭 한 명씩 있으며, <파이와 공작새>에서는 <오만과 편견>에서 위캄역을 맡은 데블린 헤인즈이다. 테이트를 질투하면서도 그에게서 끊임없이 얻어낼 것을 찾는다. 케이시에게 천사 같은 얼굴을 보여주면서 케이시가 테이트를 오해할만한 소지를 자꾸 하나씩 흘리는 역할을 한다.

사랑은 방해세력이 많을수록 더 강해진다고 했던가. 케이시가 테이트를 오해하고, 편견을 가지면서 삐뚤어져 갈수록 독자들은 이 둘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드라마를 보면서 왜 내 일도 아닌데 두 남녀 주인공이 잘 되길 바라게 되는 걸까. 바로 대리만족 아닐까. 

오랜만에 설레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 로맨스 소설을 읽으니 이제 정말 봄이 온 건가 싶다. 
얼마 전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전집을 전자책으로 장만했다. 올봄엔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그녀의 다른 소설들을 읽으며 메말라가는 연애세포에 물도 주고,  독서의 즐거움도 더욱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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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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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같은 현대 사회가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는데, 생각해보면 머나먼 시대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가 끝난지도 이제 고작 12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6.25 전쟁이 끝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작 70여 년의 짧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력이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 지금의 우리 시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동안 한국 현대사에 왜 그리 관심이 없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 시절은 그저 옛날 얘기라고만 생각했었다. '참 살기 힘든 시절이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기에 막연하기만 했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는 그가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 동안 일어난 일 중에서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들을 정리한 책이다. 한국의 정치와 경제발전에 대해 오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고작 몇 년 뒤 태어난 저자 유시민은 전후 한국 사회가 변해가는 시대를 온몸으로 보고 듣고 겪어낸 세대다. 그가 봤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구석구석 꼼꼼히 함께 살펴보면서 그동안 내가 띄엄띄엄 알고 있던 사실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퍼즐이 아름답게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터지는 느낌이었달까. 

유시민 작가의 글은 알게 모르게 그동안 나의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 나에게 글쓰기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유시민의 책을 떠올렸다. 그의 책을 그다지 많이 읽은 것도 아니면서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법칙이나 글쓰기 스타일이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었나 보다. 그의 글은 읽기 쉽고 겸손하면서도 위트 있다. 술술 읽히는 가운데 이야기의 중심을 찌르는 알맹이가 들어있어, 가볍게 읽고 나서도 항상 머릿속에 뭔가 남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좋아한다. 이번 책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으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찌르는 그의 글에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워낙 기존에 내가 아는 정보들이 한정적이었기에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더 짜릿함을 느꼈는지도 모르지만, 역사적 사실들이 시간 순서대로 머릿속에서 줄을 서는 느낌이었달까. 그동안 난 이 사회에 대해 뭘 알았던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방대한 자료들이 함께 제시되고 있기에 읽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알고 싶다는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 읽어야 아마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하면서도 동시에 양측에 장단점을 분석하여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 점이다. 한국의 현대사라 함은 정치, 경제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나 정치적인 부분은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기에 한쪽에 치우치는 주장을 하기가 쉽다. 그런 부분에서 유시민은 자신의 소신은 가지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측의 입장을 골고루 알려준 다음 조곤조곤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 훨씬 더 설득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으며 책이 출간된 2014년 이후 많은 것이 바뀐 지금의 정치에 대해서도 유시민 님과 얘기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987년 이후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하지만 아직 성숙하지는 않았다. 
민주적 제도가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에 맞는 생각을 하고 그게 맞는 행동을 해야 성숙한 민주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제도와 행태, 의식의 복합물이다.」
<나의 한국 현대사 p.260>

유시민 작가가 책을 냈던 2014년은 박근혜의 대통령 집권 시절이었다. 이명박을 거쳐 박근혜로 이어진 보수정권 동안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시 퇴보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2014년 4월, 온 국민을 울게 했던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사건을 겪고, 그 이후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로 오기까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쩌면 그 시절 퇴보했던 걸음보다 오히려 두 걸음 더 진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시민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이제 우리 사회가 정말로 변하고 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온 국민을 우롱한 죄로 징역을 살고 있고요. 이명박은 뇌물, 비자금으로 엄청난 돈을 챙겼던 게 들통나 오늘자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고요.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권력 앞에 당하지 만은 않아요.

이전 세대의 무서운 독재정치를 보고 나서 지금의 사회를 보면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두웠던 과거를 알고 나니 세상이 변한 걸 더 정확히 알겠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과거 수많은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희생된 것은 절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유 민주주의는 없었을 테니까.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역사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유시민 님이 느끼고 있는 2014년 이후 지금의 2018년까지 한국 현대사는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추후 업데이트를 요청드립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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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걸의 색연필 일러스트 - 일상 속 모든 것이 새롭게 빛나는 시간
서여진 지음 / 비타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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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사물들을 색연필로 예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건, 실제 일상도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이게 할 것 같다. 내가 먹었던 맛있는 음식, 케이크, 화장품, 다이어리, 여행 갔던 장소, 집에 있는 예쁜 소품들 모든 것은 예쁜 색연필 일러스트로 재탄생할 수 있다. 실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느낌으로 말이다. 꾸준히 다양한 그림 그리기 책을 모으고 있지만, <빈티지걸의 색연필 일러스트>는 특히나 일러스트가 지금까지 봤던 책들 중에 제일 예뻤던 것 같다. 거기다 예쁜 그림들이 완성작으로만 많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다 따라 그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예쁘다고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원하는 그림을 차근차근 따라 그려볼 수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알록달록 따뜻해지는 느낌, 색연필 일러스트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보는 순간 또 한동안 잊고 있던 지름신이 튀어나오려고 한다. 한동안 넘나 갖고 싶었던 프리즈마 색연필!! 색깔도 다양하고 부드러워서 색연필 일러스트 하기에 딱일 것 같은데 집에 여러 종류의 펜들이 워낙 많은 데다, 비싼 가격 때문에 지름을 포기했던 아이다. 아이패드에 있는 색연필 모드로 그리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왔지만, 역시나 색연필 그림은 종이에 그리는 것이 진리니까... 갖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파버카스텔 36색으로는 이런 예쁜 그림들은 어림도 없단 말이다. (핑계 좋고요 ㅋ)  조만간 프리즈마 색연필 72색,, 아니 132색을 지르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은 최대한 참아보겠다. 끄응~



색연필로 그리면 보통 흐리멍덩한 그림을 생각하기 쉬운데, 윤곽선을 깔끔하게 처리해주어 색연필로만 그렸음에도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난다. 먹은 음식들 그림으로 예쁘게 남기면서 다이어리 쓰는 사람들이 젤 부럽던데, 나도 조만간 도저언~!!



간단한 그림부터 복잡한 그림까지 그리는 과정 모두를 꼼꼼하게 하나하나 알려주기 때문에 아무리 복잡한 그림도 차근차근 따라 하다 보면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복잡한 하리보 젤리 봉지부터 간단한 케이크까지 그리는 순서와 생각해야 하는 포인트까지 속속들이 알려주기 때문에 그림 생초보도 재미있게 따라 그릴 수 있을 듯하다.



요건 아이패드에 애플 펜슬로 내가 따라 그려봤던 그림. sketches 앱에 있는 색연필 모드로 최대한 비슷한 색깔을 찾아 다양한 그림들을 따라 그려봤다. 비슷한 모양으로 따라 하긴 했지만 역시 원본에 미치진 못한다. 부끄러우니까 원본 그림은 안 보여주는 센스 ㅋㅋ 



빈티지걸의 색연필 일러스트는 음식, 디저트, 소품, 꽃, 여행 등으로 테마를 나누어 예쁘게 그려진 완성 그림을 보여주고 다시 그 소품들을 하나하나 따라 그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 없이 모든 그림에 따라 하기가 있기에 너무 좋았다. 완성된 그림만 보고 따라 그리는 건 나 같은 초보에겐 머나먼 산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선 하나부터 시작하는 그림 그리기는 확실히 부담을 줄여준다. 하나씩 소품별로 연습해서 책에 나오는 그림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보고 싶어진다. 



여행 테마는 나라별로 다양한 버전의 그림들이 있어 흥미롭다. 런던, 파리, 뉴욕, 암스테르담 의 고유의 분위기를 담아 건물, 음식, 풍경 등을 그리는 팁들을 담고 있다. 그림만 봐도 행복해진다.



책의 끝부분에는 그림들을 가지고 활용하는 법도 다양하게 알려준다. 스티커 라벨지에 그림을 그려서 우표 모양으로 자르면 예쁜 수제 우표 도 만들 수 있고, 예쁜 꽃 그림을 그려서 화관이나 플라워 리스, 코스터를 만들기도 한다. 그림을 잘 그리면 요런 귀여운 소품들을 직접 만들어서 집안도 꾸미고, 소품도 만들 수 있다니 생활의 즐거움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 같다. 

일러스트가 너무 예쁘기 때문에 사실 보기만 해도 행복하지만 직접 그려볼 수 있도록 매우 꼼꼼하게 챙겨주는 책이기에 취미로 색연필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추천! 한다. 따라 그려보면서 예쁜 그림이란 이런 거구나 느껴보고, 표현력을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만의 그림도 그려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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