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보헤미안 -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혼다 나오유키.요스미 다이스케 지음, 전경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해외여행이 예전보다 아주 쉬워진 시대다.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앞다투어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계획을 짜고, 돈을 모은다. 여행은 내 돈 들여 떠나는 아주 값비싼 휴식인 셈이다. 하지만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세계를 마음대로 여행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관한 일을 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것보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 신기하게도 그렇게 살아가는 두 남자가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모바일 보헤미안이라고 칭한다. 

「노마드 워커를 '어디에서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모바일 보헤미안은 거기에 더하여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여행하듯이 살며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궁극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p.32>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자율근무제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굳이 출근하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온라인 중심의 업무가 많은 경우, 재택근무를 하거나 혹은 가까운 카페나 사무실에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출퇴근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성과로 보여줘야 하는 압박이 크고 오히려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단점도 지닌다. 
모바일 보헤미안은 한 회사에 종속되는 개인을 거부하는 삶이다. 회사에 자신의 시간을 헌납하는 대신 월급을 받는 직장인과 달리, 자기 자신을 고유의 브랜드로 키워내 자신만이 잘할 수 있는 취미와 특기를 바탕으로 각 나라에서 일을 따낸다. 개인이 회사의 종속에서 해방될 경우 장소적인 제한도 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어느 곳에서든 지낼 수 있다. 

<모바일 보헤미안>의 공동저자 나오유키와 다이스케는 각각 하와이와 뉴질랜드에 중심 거점을 가지고 있다. 트라이애슬론과 같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오유키는 하와이의 해변에 집을 구해놓고, 1년 중 반은 하와이의 집에서 보내고 나머지 6개월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보낸다. 다이스케도 뉴질랜드의 조용하고 깨끗한 호숫가에 집을 마련해놓고 일본과 전 세계를 오가며 아웃도어와 오가닉에 관련된 수많은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꿈같은 삶을 이룰 수 있게 되었을까? 

그들은 누구나 이런 삶을 누릴 수는 있지만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는 실패하고 다시 돌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들은 둘 다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에티켓과 요령을 익혔고, 한 달 동안의 생활에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파악하여 쓸데없는 지출이 늘지 않도록 미리 생활 습관을 조절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 대해서 끊임없이 SNS를 통해 어필하고 자기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한 군데의 수익에 의존하지 않고 작은 수익이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도록 자금 흐름을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모바일 보헤미안 라이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모바일 기기의 활용이다. 아이폰과 맥북을 활용해 일정관리, 업무처리를 좀 더 쉽게 할 수 있으므로 그와 관련해 유용한 앱들도 간단한 팁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을 보면서 꿈같은 삶이 부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한 달이 멀다 하고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익사이팅 한 긴장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싶진 않다. 모바일 보헤미안이 꼭 전 세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삶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는 삶, 즉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인 것이다. 그런 삶이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관리이다. 두 사람은 장소의 이동이 익사이팅 한 대신 하루의 일정한 루틴을 정해놓고 그것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일찍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 조깅을 하며, 오전 시간에 주로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오후에 취미활동을 하는 등, 시간을 정해놓고 엄격히 지키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모바일 보헤미안의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없다는 말은 누구도 내 생활을 터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훨씬 나태하게 생활이 무너지기 쉽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정해놓고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끝부분에는 모바일 보헤미안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도 함께 적어놓았다. 

누구든 자신만의 꿈꾸는 삶이 있을 것이다. 화려해 보이는 삶도 그 속에 들어가 보면 그들만의 피나는 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겉모습만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하다간 실패하기 쉽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앞으로는 점점 더 회사에 개인의 일생을 맡기기 어려워질 것이다. 예전엔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안정된 생활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회사가 언제 나를 버릴지, 혹은 그 회사가 언제 망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을 꾸준히 발전시켜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로 만들면 그 사람은 평생 굶어죽진 않을 것이다. 이들이 말하고 싶었던 바는 아마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찾아보자. 
혹시 아는가, 나도 일과 놀이가 하나 된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살 수 있게 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도무지 멈출 수 없이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 결국엔 밤을 새워 다 읽고 말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일 뿐인데 이렇게 박진감 넘칠 줄이야. <뉴 보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쓴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다시 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중 한 권이다. 대학생 때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묶어놓은 책에서 <오셀로>를 읽은 기억이 있다. 줄거리만 대충 파악했었던 그때는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란 생각에 역시 옛날 이야기는 막장 성향이 강하군, 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뉴 보이>를 읽으면서 원작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친숙한 시대적, 장소적 배경을 바탕으로 오셀로의 주인공들을 이름만 살짝 변형시켜 등장시켰지만, 훨씬 구체적으로 와닿는 상황묘사와 흥미로운 아이들간의 정치관계 묘사 덕에 훨씬 재밌게 즐길 수 있었던 소설이다. 

<뉴 보이>는 백인들만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오게 된 유일한 흑인 '오'가 하룻동안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학온 날 아침부터 수업이 끝날때 까지의 짧은 하루동안 아이들간의 복잡한 정치관계는 시시각각 변해간다. 모두가 꺼려하는 검은 피부의 '오'는 이미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뉴욕과 런던같은 다양한 도시의 학교를 경험하면서 자신을 향한 백인들의 불편한 시선을 여러 번 느낀 바 있다. <뉴 보이>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이다. 흑인도 평등하다고 사회적으로 외치곤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아직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 '오'에게 유일하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소녀 '디'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름답고 똑똑한 소녀다. '오'와 '디'는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사귀기로 한다. 순식간에 배척받던 흑인 전학생에서 단숨에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녀의 남자친구가 된 '오'는 누군가의 질투 대상이 된다. 이를 띠껍게 바라보던 소년 '이언'은 질투에 눈이 멀어 이 둘의 관계를 파괴시키기 위해 은밀한 작전을 시작한다. 

「그는 이제 자기 반 줄에 선 오를 찬찬히 살폈고, 이제 이 새로운 지도자를 포함하여 재배치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식물들이 태양을 향하듯이, 그 애가 마치 따라가야 할 빛이라도 되는 양, 학생들이 미묘하게 그 애를 향하는 변화, 이언이 지켜보는 동안, 캐스퍼가 오의 뒤에 서서 그 애에게 말을 걸었다. 오의 공차기 실력에 대해 얘기하는지 캐스퍼는 울타리 너머를 몸짓으로 가리켜 보였고, 두 아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그렇게, 흑인 소년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년의 존경을 얻었고, 가장 인기있는 소녀와 사귀게 될 것이었으며, 이언의 여자친구와 함께 웃었다.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
< 뉴 보이 , p.107>

소설은 학교에서 흔히 있는 아이들간의 은밀한 정치를 테마로 오셀로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초등학생이라곤 하지만 곧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아이들은 2차 성징이 막 시작된, 완전한 아이도 어른도 아닌 존재들이다. 책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딱 이 시기에 새로운 초등학교에 전학간 경험이 있었다. 졸업이 몇개월 남지 않은 시점에 다른 지방에서 전학 온 나라는 존재는 아이들이 무시하기 딱 좋은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전학을 가자마자 첫번째 친 시험에서 전교 2등 정도 되는 성적을 내자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졌던 기억이 난다. 또,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껌 좀 씹는다는 무서운 아이가 날 데려가서 몇 마디 협박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그 시절, 학교에서 느꼈던 아이들간의 은밀한 정치가 생각나서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뉴 보이>의 주인공 '오'는 오셀로, '디'는 그의 연인 데스데모나, '이언'은 계략으로 주인공들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이아고다. <뉴 보이>의 이언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몇 마디 말로 '오'가 '디'에게 증오를 품도록 조정한다.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던 맑은 눈빛의 '오'는 의외로 '이언'의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 아마도 '오'는 '디'가 겉으로는 친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흑인인 자신을 비웃고, 조롱한 것일 거라고 생각하는 자기 비하가 경험적으로 어느 정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오셀로도 원작에서 극 중 무어인, 즉 흑인으로 등장한다. 배척받는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영웅으로 많은 것을 가지게 된 오셀로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름다운 데스데모나를 가지게 되지만 이를 질투하는 이아고의 계략에 휘말려 그녀를 증오하게 되고 기어이 죽이고야 만다. 

원작의 이야기를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로 살려내기 위해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깨알같이 정교하게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원작의 줄거리를 알고 있더라도 다시 쓴 소설을 읽게 되는 이유는 얼마나 맛깔나게 그 상황을 다시 살려냈느냐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봤을 땐 이야기를 아주 잘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별개의 소설로 봐도 아주 훌륭하다. 셰익스피어의 소설들은 몇 백년 동안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을 제공해주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고전이 오래도록 계속 읽히는 이유는 그 이야기들의 메시지가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과 다시 쓴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재미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유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내 외롭고, 우울하고, 모든 것이 두려웠던 한 사내가 있다. 무엇이 그렇게 미치도록 불안했을까.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길지 않은 생애 내내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의 집은 지방의 유지로 꽤 부유했으며, 그 자신은 공부도 잘하고, 익살꾸러기라 겉으로 봤을 때는 마냥 밝아보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그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요조의 이야기는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39년의 짧은 생애동안 다자이 오사무는 5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마지막 5번째 시도에서 비로소 자살에 성공해 원하던 죽음을 맞이했다. 

책 속 요조의 삶은 전체적으로는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스스로를 놔버린 건지 궁금할 만큼 우울함의 연속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묘하게 공감되는 부분도 있긴 하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특히 책의 초반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느껴본 감정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 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한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
< 인간실격 p.16>

어릴 때부터 사는 의미를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 요조는 공복을 느껴본 적도 없고, 밥먹는 시간이 가장 싫었으며,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한 익살로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에게 익살은 자신의 우울함을 뒤에 감추는 완벽한 가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 인간실격 p. 17>

훗날 요조의 사진을 발견한 한 남자는 요조의 어릴 적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애당초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손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이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원숭이다. 웃고 있는 원숭이다. 그저 보기 싫은 주름을 잔뜩 잡고 있을 뿐이다. '주름 투성이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만큼 정말이지 괴상한, 왠지 추하고 묘하게 욕지기를 느끼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괴상한 표정의 소년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 
<p.11>

요조는 자신의 공허함을 숨기려 일부러 엉뚱한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고, 자신은 전혀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사람들에게 해줌으로써 재미있는 아이로 인기를 얻는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재미있고 유쾌한 아이였지만, 그 웃음은 요조의 필사적인 가면이었다. 가끔 그 가면을 알아채는 사람을 만날 때면 요조는 마음 깊숙히 불안감을 느꼈고,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했다. 그렇게 평생을 헛깨비처럼 살아갔다. 처음으로 약간의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궁상맞은 여자 쓰네코와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바다에 뛰어들지만, 그녀는 죽고 요조는 혼자 살아남았다. 

평생동안 세상에 한시도 융화되지 못한 채, 껍데기로만 살아온 요조의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의 삶은 무너지고, 무너지다 결국은 폭삭 망가져버린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
<p.134>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로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일본에 공산화의 바람이 불면서 공산주의의 적은 바로 자신 같은 부르주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매우 부끄럽고, 불행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이 다자이 오사무의 5번의 자살시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책 뒤쪽에 나와있는 해설을 보니 이런 말도 있었다. 

「이때까지 다자이에게 있어 자살은 일종의 "처세술 같은, 타산적인 것"이었던 면이 크다. 도저히 타개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면 죽음으로 면책 받으려는 처세술이라는 뜻에서다. 전술했던 자살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회적 합의가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일본에서는 죽은 이를 '호토케 님'으로 칭한다. 부처님 역시 호토케 님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하고, 미화시킨다는 인식이라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p.177>

나도 한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죽으면 간단하게 모든게 끝나잖아. 그건 어쩌면 가장 쉬운 선택이다. 
근데 그 불행은 나한테서만 끝나는 거지, 내 주변 사람들한테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에 읽었던, 사라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간증발>이란 책이 생각났다. 단지 자신 앞에 닥친 일이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자이 오사무가 실제로 어떤 일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고 아파했는지 알길이 없지만, 앞선 세번의 자살시도는 눈앞에 닥친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쇼인 것 같다는 해설도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애를 <인간실격>이라는 자전적인 느낌의 소설을 통해 어쩌면 변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든다. 

작가의 실제 삶이 어찌됐든 <인간실격>의 요조 캐릭터는 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평생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끝내 불행하게 저물어가는 그의 모습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과도 조금은 닮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작정하고 괴상한 이야기만 모은 소설이 나왔다. 무려 19세 미만 구독불가 소설이다. 도대체 얼마나  충격적이길래. 근데 오히려 빨간 띠가 붙으니 더 호기심이 생긴다. 이웃님들의 리뷰를 보니 꽤 야한 내용도 있는 것 같다. <편의점 인간>을 쓴 작가로 유명한 무라타 사야카는 꽤 자주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쓰는 듯하다. 그래서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도 있단다. 작가 자신은 일부러 이상한 이야기를 쓰려는 게 아닌데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하다 보면 소설 쪽 세계가 왜곡되어 아주 이상한 소설이 완성되곤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글을 쓰는 동안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단다. 이런 못 말리는 작가를 봤나. 어쨌든 호기심 가득 므흣한 마음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인출산>,<트리플>,<청결한 결혼>,<여명> 이란 작품이다. 

1. 살인출산 
일본의 100년 후쯤 미래를 상상해서 쓴 글이다. 그때쯤이면 저출산 현상이 심해져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된다는 것인데, 바로 살의를 바탕으로 한 출산정책이다. 10명의 아이를 출산하면, 내가 죽이고 싶은 한 사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살해할 수 있다. 이른바 10명의 새 생명을 출산했으니, 한 명쯤은 원하는 대로 죽여도 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10명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꾸준히 누군가를 향한 살의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에 사람들은 ‘출산자’가 되려는 자를 대단하게 본다. 살해가 아닌 출산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자’가 지명하는 살해될 예정자인 ‘망자’ 또한 수많은 출산을 위한 희생자로 보아 특별히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준다. ‘망자’로 지명되는 순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한 달간의 신변 정리 기간이 주어지고, 꼭 살해당하기 싫다면 자살하는 것도 허용되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 <살인출산> 속 사회는 지금 우리가 믿는 살인에 대한 도덕 기준이 뒤집힌 사회다. 출산을 위해서라면 살인을 법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인 것이다. 내가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가치관이 언젠가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4개의 단편 중에 <살인출산>이 제일 충격적이고 잔인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상상해보니 소름이 돋는다. 

2.  트리플
남녀 간의 사랑이 꼭 둘 사이에서 일어난 다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지 모른다. <트리플>에서는 셋이서 하는 연애가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를 보여준다. 중고등학생들은 남자 둘에 여자 하나, 혹은 여자 둘에 남자 하나, 혹은 여자 셋이서 연애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셋이서 하는 키스에 익숙하며, 셋이서 하는 섹스에 익숙하다. 특히 셋이서 하는 키스 방법이 꽤 기발했다. 

「셋이 하는 키스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백이십 도씩 각도를 나눠서 얼굴을 가까이 대면, 놀라울 정도로 딱 들어맞게 입을 맞출 수 있다.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하도록 몸이 만들어진 것처럼 셋이 하는 키스는 딱 들어맞게 잘 된다. 」<p.135>

셋이 하는 섹스는, 음음, 상상에 맡기겠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방법이 아니라 좀 특이한 방법이긴 한데 과연 그게 좋을까 싶기는 하다. 어쨌든 셋이서 하는 연애에 익숙한 아이들은 남녀 둘 간에 이루어지는 애정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인간의 이해 능력은 의외로 개인의 경험과 같은 참 좁은 부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청결한 결혼 
결혼이 곧 섹스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함께 사는 남매처럼 우애 깊지만 절대로 성적인 관계는 끌어들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 절대로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이 부부가 아이를 가지는 법, 참 눈물겹다. 

4. 여명 
점점 과학이 발달하면서 죽기 위해서는 무조건 자살이라는 방법을 써야 하는 시대가 왔다. 노화와 자연적인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200년 이상 살기도 하고, 이때쯤 죽어야겠다 싶은 사람은 스스로 자살을 택해야 한다.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는 시대이므로 시체가 발견되더라도 다시 살리지 않도록 사망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약국에서 죽기 위한 약을 언제나 구할 수 있다. 각자가 죽는 방식이 그 사람의 개성인 것처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서점에는 예쁘게 죽는 법, 멋있는 죽는 법 등의 내용이 담긴 책들이 팔린다. 이런 시대엔 잘 죽는 것도 참 귀찮을 것 같다.   


4편의 소설 모두 하나같이 괴이한 이야기들이다. 언뜻 봤을 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다 있어 싶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현실을 매우 극대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히려 극단적인 이야기이기에 특정 주제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당연하다는 게 뭔데?’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살인이나 기타 자극적인 소재를 썼을 뿐, 지극히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룬 것이다. 상식이나 정의를 의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작가가 과감하게 제기하는 금기 파괴이자, 주입된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철학적인 소설인 셈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간만에 아주 쎈 이야기들을 읽었더니 당분간은 웬만한 이야기에는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젠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과 <소멸 세계>를 정주행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무라타 사야카 보다 크레이지 사야카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생동물학교 1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착한 동물들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렇다면, 언제나 착한 우리 다림이도 사람이 되는거야?" 
난 그 의견 반댈세. 사람이 모든 동물 중 최고라는 생각은 우리 생각일 뿐이라는 것. 난 다음 생에는 아주 좋은 집사를 둔 고양이로 태어날테다. 하루종일 원하는 곳에서 낮잠을 자고, 맛있는 간식을 달라고 냥냥 울어대고, 어떤 짓을 해도 집사의 눈에는 하트가 퐁퐁 솟아나게 하는, 세상에서 젤 속 편한 냥이가 되고 말테다.  

<환생동물학교>는 네이버 연재 웹툰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고양이 낸시>를 낸 작가 엘렌 심의 두번째 작품인데 전작에 이어 또 귀여운 동물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착하게 살다가 죽은 동물들이 다음 생에 사람으로 환생하기 전에 환생동물학교에 모였다. 사람으로 환생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습성을 깨끗이 씻어내고 사람의 습성을 몸에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몸은 사람이지만 동물의 습성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얘기다. 강아지, 고양이, 고슴도치, 하이에나 친구들이 환생동물학교 AH-27반에 모였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습성을 지니고 살아온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매우 순수하고 귀엽다는 것! 때론 너무 순수해서 보는이의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이들은 어떻게 인간의 모습을 갖춰나가면서 달라질까. 궁금해진다. 



책에는 동물을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동물들의 습성을 담은 에피소드가 곳곳에 숨어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고양이들은 보통 집사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화장실 앞에서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다림이는 화장실 앞에서 목이 터져라 나올 때까지 울어대곤 하는데, 사실은 화장실 안으로 사라진 집사를 지켜주고 싶었던 걸까? 세상을 떠나와서도 혼자 화장실에 갔을 원래 주인을 걱정하는 쯔양이의 모습이 귀엽고도 짠하다. 



친구들이 모이면 앞다투어 전생의 주인들을 자랑하느라 시끌시끌하다. 주인들이 두손 가득 먹을 걸 장 봐오던 기억을 떠올리며 주인의 뛰어난 사냥실력을 자랑하기도 하고, 집으로 배달오던 먹을 것들을 보며 신기해 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귀여웠다. 다림이도 내가 밖에 한참동안 나갔다 돌아오면
"사냥을 다녀왔으면 간식을 줘야지" 
하는 표정으로 밥그릇 앞에서 응당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간식을 기다리곤 한다.



고양이들이 엄청 좋아하는 레이저 포인터 장난감을 아이들은 빨간점 주술도구라고 생각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꼭 잡아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마법의 빨간점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불빛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자 쯔양이는 주인이 날 속였다며 엉엉 운다. 

환생동물학교에서는 동물들이 서로의 다른 습성을 이해해나가는 과정들, 동물의 입장에서 본 인간의 모습들이 색다르게 펼쳐진다. 책 속 동물들은 순수한 아이들 같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동물들은 각자의 습성을 점차 고쳐서 인간에 가깝게 되는 것일까. 아이들이 최대한 동물의 습성을 천천히, 늦게 고쳤으면 좋겠다. 너희는 그 모습 그대로가 너무 예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