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내 외롭고, 우울하고, 모든 것이 두려웠던 한 사내가 있다. 무엇이 그렇게 미치도록 불안했을까.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길지 않은 생애 내내 스스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의 집은 지방의 유지로 꽤 부유했으며, 그 자신은 공부도 잘하고, 익살꾸러기라 겉으로 봤을 때는 마냥 밝아보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그의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요조의 이야기는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39년의 짧은 생애동안 다자이 오사무는 5번의 자살시도를 했고, 마지막 5번째 시도에서 비로소 자살에 성공해 원하던 죽음을 맞이했다. 

책 속 요조의 삶은 전체적으로는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스스로를 놔버린 건지 궁금할 만큼 우울함의 연속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묘하게 공감되는 부분도 있긴 하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특히 책의 초반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 느껴본 감정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저에게는 '인간이 목숨을 부지한다.' 라는 말의 의미가 지금껏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한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
< 인간실격 p.16>

어릴 때부터 사는 의미를 전혀 느껴본 적이 없는 요조는 공복을 느껴본 적도 없고, 밥먹는 시간이 가장 싫었으며, 오로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한 익살로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에게 익살은 자신의 우울함을 뒤에 감추는 완벽한 가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 인간실격 p. 17>

훗날 요조의 사진을 발견한 한 남자는 요조의 어릴 적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애당초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양손을 꽉 쥐고 서 있다. 사람이란 주먹을 꽉 쥔 채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은 원숭이다. 웃고 있는 원숭이다. 그저 보기 싫은 주름을 잔뜩 잡고 있을 뿐이다. '주름 투성이 도련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만큼 정말이지 괴상한, 왠지 추하고 묘하게 욕지기를 느끼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괴상한 표정의 소년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 
<p.11>

요조는 자신의 공허함을 숨기려 일부러 엉뚱한 행동을 하며 사람들을 웃기고, 자신은 전혀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사람들에게 해줌으로써 재미있는 아이로 인기를 얻는다. 겉으로 봤을 때는 재미있고 유쾌한 아이였지만, 그 웃음은 요조의 필사적인 가면이었다. 가끔 그 가면을 알아채는 사람을 만날 때면 요조는 마음 깊숙히 불안감을 느꼈고,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들킬까 두려워했다. 그렇게 평생을 헛깨비처럼 살아갔다. 처음으로 약간의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궁상맞은 여자 쓰네코와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바다에 뛰어들지만, 그녀는 죽고 요조는 혼자 살아남았다. 

평생동안 세상에 한시도 융화되지 못한 채, 껍데기로만 살아온 요조의 삶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의 삶은 무너지고, 무너지다 결국은 폭삭 망가져버린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되었습니다. 백발이 눈에 띄게 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흔 살 이상으로 봅니다. 」
<p.134>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로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일본에 공산화의 바람이 불면서 공산주의의 적은 바로 자신 같은 부르주아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매우 부끄럽고, 불행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실이 다자이 오사무의 5번의 자살시도를 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책 뒤쪽에 나와있는 해설을 보니 이런 말도 있었다. 

「이때까지 다자이에게 있어 자살은 일종의 "처세술 같은, 타산적인 것"이었던 면이 크다. 도저히 타개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히면 죽음으로 면책 받으려는 처세술이라는 뜻에서다. 전술했던 자살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회적 합의가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고 사료된다. 일본에서는 죽은 이를 '호토케 님'으로 칭한다. 부처님 역시 호토케 님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하고, 미화시킨다는 인식이라 할 수 있다. 」 <작품 해설 p.177>

나도 한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죽으면 간단하게 모든게 끝나잖아. 그건 어쩌면 가장 쉬운 선택이다. 
근데 그 불행은 나한테서만 끝나는 거지, 내 주변 사람들한테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에 읽었던, 사라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간증발>이란 책이 생각났다. 단지 자신 앞에 닥친 일이 자존심 상하고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무책임하게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다자이 오사무가 실제로 어떤 일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하고 아파했는지 알길이 없지만, 앞선 세번의 자살시도는 눈앞에 닥친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쇼인 것 같다는 해설도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애를 <인간실격>이라는 자전적인 느낌의 소설을 통해 어쩌면 변명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금 든다. 

작가의 실제 삶이 어찌됐든 <인간실격>의 요조 캐릭터는 꽤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평생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끝내 불행하게 저물어가는 그의 모습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나약한 우리들의 모습과도 조금은 닮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