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출산
무라타 사야카 지음, 이영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작정하고 괴상한 이야기만 모은 소설이 나왔다. 무려 19세 미만 구독불가 소설이다. 도대체 얼마나  충격적이길래. 근데 오히려 빨간 띠가 붙으니 더 호기심이 생긴다. 이웃님들의 리뷰를 보니 꽤 야한 내용도 있는 것 같다. <편의점 인간>을 쓴 작가로 유명한 무라타 사야카는 꽤 자주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쓰는 듯하다. 그래서 크레이지 사야카라는 별명도 있단다. 작가 자신은 일부러 이상한 이야기를 쓰려는 게 아닌데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하다 보면 소설 쪽 세계가 왜곡되어 아주 이상한 소설이 완성되곤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글을 쓰는 동안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단다. 이런 못 말리는 작가를 봤나. 어쨌든 호기심 가득 므흣한 마음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인출산>,<트리플>,<청결한 결혼>,<여명> 이란 작품이다. 

1. 살인출산 
일본의 100년 후쯤 미래를 상상해서 쓴 글이다. 그때쯤이면 저출산 현상이 심해져 새로운 사회질서가 확립된다는 것인데, 바로 살의를 바탕으로 한 출산정책이다. 10명의 아이를 출산하면, 내가 죽이고 싶은 한 사람을 법적으로 정당하게 살해할 수 있다. 이른바 10명의 새 생명을 출산했으니, 한 명쯤은 원하는 대로 죽여도 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10명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 그 기간 동안 꾸준히 누군가를 향한 살의를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기에 사람들은 ‘출산자’가 되려는 자를 대단하게 본다. 살해가 아닌 출산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산자’가 지명하는 살해될 예정자인 ‘망자’ 또한 수많은 출산을 위한 희생자로 보아 특별히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준다. ‘망자’로 지명되는 순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한 달간의 신변 정리 기간이 주어지고, 꼭 살해당하기 싫다면 자살하는 것도 허용되지만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 <살인출산> 속 사회는 지금 우리가 믿는 살인에 대한 도덕 기준이 뒤집힌 사회다. 출산을 위해서라면 살인을 법적으로 용인하는 사회인 것이다. 내가 절대적이라 믿고 있는 가치관이 언젠가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4개의 단편 중에 <살인출산>이 제일 충격적이고 잔인했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상상해보니 소름이 돋는다. 

2.  트리플
남녀 간의 사랑이 꼭 둘 사이에서 일어난 다는 것도 어쩌면 편견일지 모른다. <트리플>에서는 셋이서 하는 연애가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를 보여준다. 중고등학생들은 남자 둘에 여자 하나, 혹은 여자 둘에 남자 하나, 혹은 여자 셋이서 연애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셋이서 하는 키스에 익숙하며, 셋이서 하는 섹스에 익숙하다. 특히 셋이서 하는 키스 방법이 꽤 기발했다. 

「셋이 하는 키스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 백이십 도씩 각도를 나눠서 얼굴을 가까이 대면, 놀라울 정도로 딱 들어맞게 입을 맞출 수 있다. 마치 원래부터 그렇게 하도록 몸이 만들어진 것처럼 셋이 하는 키스는 딱 들어맞게 잘 된다. 」<p.135>

셋이 하는 섹스는, 음음, 상상에 맡기겠다.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방법이 아니라 좀 특이한 방법이긴 한데 과연 그게 좋을까 싶기는 하다. 어쨌든 셋이서 하는 연애에 익숙한 아이들은 남녀 둘 간에 이루어지는 애정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인간의 이해 능력은 의외로 개인의 경험과 같은 참 좁은 부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청결한 결혼 
결혼이 곧 섹스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함께 사는 남매처럼 우애 깊지만 절대로 성적인 관계는 끌어들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하는 관계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아이를 가지고 싶다. 절대로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이 부부가 아이를 가지는 법, 참 눈물겹다. 

4. 여명 
점점 과학이 발달하면서 죽기 위해서는 무조건 자살이라는 방법을 써야 하는 시대가 왔다. 노화와 자연적인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200년 이상 살기도 하고, 이때쯤 죽어야겠다 싶은 사람은 스스로 자살을 택해야 한다.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는 시대이므로 시체가 발견되더라도 다시 살리지 않도록 사망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약국에서 죽기 위한 약을 언제나 구할 수 있다. 각자가 죽는 방식이 그 사람의 개성인 것처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서점에는 예쁘게 죽는 법, 멋있는 죽는 법 등의 내용이 담긴 책들이 팔린다. 이런 시대엔 잘 죽는 것도 참 귀찮을 것 같다.   


4편의 소설 모두 하나같이 괴이한 이야기들이다. 언뜻 봤을 땐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다 있어 싶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현실을 매우 극대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히려 극단적인 이야기이기에 특정 주제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당연하다는 게 뭔데?’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살인이나 기타 자극적인 소재를 썼을 뿐, 지극히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룬 것이다. 상식이나 정의를 의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작가가 과감하게 제기하는 금기 파괴이자, 주입된 가치관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철학적인 소설인 셈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간만에 아주 쎈 이야기들을 읽었더니 당분간은 웬만한 이야기에는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젠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과 <소멸 세계>를 정주행 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무라타 사야카 보다 크레이지 사야카가 입에 착 달라붙는다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