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하고 있는가,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내가 왜 버둥거리고 있는가,

내가 뭘 이룰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간밤에 아이처럼 엉엉 우는 꿈을 꾸었다.

일어났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에 온 몸이 푹 젖어 있었다.

뭔가 잃어버리든지 잊어버렸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상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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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고 왔다.

한없이 조용한 땅에 내렸다. 와글거리는 사람들을 지나서 반듯하게 누웠다.

세상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남겨진 것같은 시간이었다.

물과 산과 땅과 흙과 간혹 내리는 빗방울,

그 땅을 지키는 사람들의 땀을 보았다. 그리고 급히 돌아왔다.

내가 도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 도시에게 선택당하고 세뇌당한 것은 아닐까.

벌레와 어둠과 적막이 두렵다.

외로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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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 (양장)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 새물결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스터디에서 함께 읽은 책이었다.

왜 갑자기 이 책이 떠올랐을까, 다시 이 책을 꺼내들었다.

제목부터 뭔가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위험사회...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가 곧 위험사회이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부터 약 50년 전쯤에 쓰여진 책이다. 읽으면 기가 막힐 정도로 지금의 상황과 유사하다는것을 알게 된다.

울리히 벡은 사회라는 정체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꿰뚫어 보고 있다.

사회는 생생하게 살아 날뛰는 생선같은 것이다. 그가 어디로 튀어서 갈 지를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그의 운명은 역시 그 안의 구성원들에 의하여 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분명히 시간은 많아져야 하는데 왜 상대적으로 우리는 더욱 바쁘고 혼란스럽고, 여유는 없는지.

위기의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위기의식만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식은 해야 할 것이다.

사회는 치명적일만큼 위험스럽다.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읽어야 한다. 읽고 대하고, 이겨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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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살인자들 중에는 파충류의 뇌의 수준에서 머물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터뜨리는 것이 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식으로 정리되는 이들...

전쟁광, 연쇄살인마, 전형적인 인물도 있다. 공공의 적에 나오는 이성재, 식의 사람들. 그들은 사고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모른다. 실제로 그들의 뇌사진을 찍어보면 전두엽이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전두엽피질은 이성적인 사고나 절제 등을 관장한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엽기적인 행각의 사람들을 프로파일링 한 저자의 실제경험을 근거로 쓰여져 있다. 물론,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짓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범죄학이라든지 범죄심리학은 또다른 범죄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정석이 아닐까. 다소 흥미로운 시선을 제공하는 바람에, 어떤 이들이 보았을 때는 흥미진진한 모험이나 비밀스러운 음모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이 책을 사서 읽는 나는 뭔가.

제목에서 후한 평가를 줬던 것같다. 그토록 위험한 이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이었나보다.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내용의 위험성은 개인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시사프로를 보면서 대체 저들의 의도는 뭔가라고 내가 삐딱한 시선을 갖는 것과 어느 정도는 유사한 느낌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라는 혼잣말을 계속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용서받지 못한다. 반성이 있을 수 있을까. 반성이 생명을 되돌이킬 수 있는가. 아, 이 정도의 생각이라니 나는 왜 이렇게 옹졸하고 편협한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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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야기가 밀려들고 있다. 그 동안 많은 일본 소설들을 읽어왔고, 물론 나를 감동시킨 책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영화나 한국드라마에 일본원작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현실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이야기는 강력한 무기다. 이야기에 매료되는 것은 그들의 정신에 박수를 보내는 일과 다름아니다.

일본은 한국과 정말 진부한 이야기지만, '멀고도 가까운 나라'다. 우리의 문화 전반의 모습들이 그들의 15년 전 모습을 그대로 쫓아간다는 말도 있고 그네들에게서 먹히면 반드시 우리에게도 먹힌다는 국제 경영적인 속설도 있을 정도다.

히키코모리, 원조교제, 왕따...등의 말. 이제는 낯설지 않다. 청소년들은 일본 만화가 역시 재밌다고 경탄하고, 일본소설 코너에 가면 어른들보다는 청소년들이 득실거린다. 그들 나름은 마니아다. 가네즈로 카즈키나 바나나 등 하루키나 류를 뒤이은 젊은 작가군의 짧고 쉽고 간단한 소설들에 아이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그들의 후속작품을 기대한다. 한국에 그렇게 작가가 없나?

그렇지 않다. 한국에도 좋은 작가 많다.

우리 문학은 혹은 우리 문화는 왜 젊은 세대들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받지 못하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차라리 진지하고도 진지한 바닥까지 내려가서 숨어버리라고 기함을 하고 싶은 날도 있다. 그래서 정말 귀한 작품들이 되서 오래도록 묵었다가 내내 전해 내려갈 수 있도록...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것인지에 대해 묻는 것은 이제 전근대적인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냥 어떻게 우리가 함께 살아나갈 수 있을지애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향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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