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나와


오키나와 여행 얘기가 나온 건 작년 초겨울 어느날 새벽, 술자리에서였다. 해외 여행을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선배와 오키나와를 한 번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는 후배가 마음이 맞아 "가자. 가자." 했고, 나도 예전에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주제로 한 국제컨퍼런스를 진행했을 때, 오키나와 참가자들을 안내하며 짧게 영어 통역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명단에 들어있었기에 마음이 동했다. 그날 새벽의 결론은 사람을 모으자! 였다. 렌트카 기준으로 차 1대 혹은 2대에 맞추거나, 성비를 고려해 숙소에 들어가 인원을 모으자는 것.


어렵게 오키나와 일정을 한 번 정했다가 다든 바쁜 사람들이라 취소되었을 때, 내 팔자에 무슨 해외 여행이냐! 싶어서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이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새 7명이 모였다고 내게 마지막 멤버로 들어오라는 권유가 왔다. 늘 바쁘지만, 훨씬 더 바쁠 시기라서 좀 망설였는데, 이렇게 지르지 않으면 평생 또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합류했다.


막상 단톡방에 들어가보니 멤버 구성이 재미있었다. 동네 선후배들. 다행히 나는 모든 멤버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이 구성으로 3박4일 해외여행이라.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톡방의 제목 "옥희 나와"는 누군가 오키나와 여행갈 거란 얘길 했는데, 듣던 사람 중 성함이 '옥희'인 분이 "왜 날 부르냐?"고 물었다는 마치 거짓말 같은 일화에서 착안해 정했다고 했다. 멤버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여성 4분과 남성 4이었던 멤버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 1분이 빠져서 성비가 안 맞게 되었지만, 그대로 7명이 가는 걸로 정했다.


여행을 다녀온 시점에서 참가자들의 우애는 무척 깊어졌다. 우린 수시로 톡을 주고 받았고, 자주 만나 술을 마셨고,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나눴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언급되었고, 나는 몽골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를 가던 돈이 필요하니 매달 일정 금액을 모으는 여행계로 하자고 했고, 가장 믿을 만한 분을 계주로 선출했다.


우리 7명은 각자 캐릭터가 뚜렸했는데, 환상의 궁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서로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는데 역할분담을 잘 맡았다. 신기했다. 일부러 그렇게 시켜도 쉽지 않았을텐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서로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누군가가 사전에 여행 계획과 비행기와 숙소, 렌트카 등 예약을 도맡았고, 가서는 일정 진행과 안내를 맡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누군가가 그때 그때 필요한 사소한 일들을 다 챙겨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불편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식사 준비를 비롯해 먹거리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여행 비용이 훨씬 더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 숙소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분위기를 잘 띄워주지 않았다면 서로가 친해지는데 훨씬 더 시간이 걸려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맏언니, 맏형으로서 든든하게 챙겨주지 않았다면 서로 조금씩 더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운전을 주로 맡았고, 전체 일행 중 딱 중간인 나이대여서 위로 선배들을 챙기고, 아래로 후배들과 소통하는 중간 세대로서 여러가지 일들을 신경쓰고 챙겼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 혹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들을 잘 챙겨주는 일행들이 고마웠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최선을 다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일행 모두 한결같이 또 다음 여행을 생각하는 것이리라.


예전에는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거나, 속으로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여행은 무조건 혼자 간다는 원칙을 세워 홀로 여행을 다닌 적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7명이라는 인원이 큰 갈등 없이 재밌게 3박4일을 지낸 건,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멤버들 중 일부가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당일치기로 강화도 여행도 다녀왔다. 그것도 역시 12시를 넘긴 시간 술자리에서 급하게 제안되어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3명이 단촐하게 다녀왔다. 


이 친밀감과 유대감이 얼마나 갈지, 정말 이 멤버 그대로 또 어디론가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하고 좋다.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 문득 문득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키나와 여행에 대해서도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잔뜩 있었고, 일부는 폰에 메모로 남아있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고 엄두가 안 난다.


일상에서 가끔 남겨놓는 메모들을 보며, 이런 조각 얘기들을 이어붙여 재밌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늘 시간이 문제다. 바쁘고 바쁘고 또 바쁘지만, 그래도 소중한 관계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 일본 떠먹는 요구르트 뚜껑에는 요구르트가 묻지 않는다. 아무리 뒤집어보고, 일부러 묻혀봐도 안 묻는다. 신기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눠준 한국 요구르트를 여는 순간 묻어 있는 요구르트를 보며 일행 모두 같은 행동을 취했다. 혀로 뚜껑에 묻은 요구르트를 핥으며 이게 당연한 행동이지 생각해본다.


+ 역시 술꾼들이 포함된 멤버 구성답게 매일 밤 아와모리를 마셨다. 맛있었다. 처음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온 어떤 술보다 내 입맛에 맞았다. 덕분에 매일 행복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늦게까지 술을 마셨어도 누구 하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일정에 차질을 주는 일도 없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먼저 움직이는 아름다운 술자리와 여행이었다.


+ 오키나와 음식은 죄다 엄청나게 짰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짠 맛!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엄청 기대했던 회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일본 회는 우리처럼 활어회가 아니라 쫄깃한 씹히는 맛이 없었다. 회 센터를 한 바퀴 돌아봐도 살아서 팔딱이는 생선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죄다 썰어서 포장해놓은 갖가지 회들만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참치는 많이 먹었다. 참치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생각보다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자연을 별로 즐기지 못했다. 도착한 날엔 비가 왔고, 다음 날엔 많이 흐렸다. 날씨만 맑았어도 훨씬 좋았을텐데, 타이밍이 아쉬웠다.


+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렌트카 업체를 기다리는데, 다른 업체들은 두번씩 버스가 왔다갈 시간동안 우리 업체는 오지 않았다. 뭔가 잘 못 되었다 싶어서 전화를 하자고 했는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영어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처음에 받은 직원은 영어가 서툴어 잘 알아듣지 못하다가 다른 직원을 바꿨고, 그 직원이 영어로 특정 위치를 언급하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 우리 일행 모두 나를 구원자처럼 쳐다봤다. 이후 길을 물어보거나, 특정한 물건을 찾거나, 식당에서 주문할 때 영어로 했는데, 나도 워낙 오랜만에 영어를 쓰는 거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영어공부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동네로 돌아오니 어느새 내가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처럼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역시 소문은 진실이 아닐 확률이 크고 빨리 돈다.


더 쓰고 싶은 얘기 거리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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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9-05-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희 나와‘ 정말 멋진 제목이네요. 한 편의 콩트나 단편 하나 뚝딱 나올 거 같은...^^

감은빛 2019-05-10 21:16   좋아요 1 | URL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단편 소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라서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놓기는 했어요. 그걸 언제 풀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러다 금방 잊혀져 버릴지도 모르죠.
 

늦어도 목요일까지는 급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놓고 금요일엔 조금 느긋하게 출국 준비하고, 내가 없는 동안의 업무 지시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수요일 급한 일이 하나 끼어들어 마무리했어야 할 일들을 못 끝냈고, 목요일에 또다시 규모가 큰 사업계획서가 한 건 떨어졌다. 다음날인 금요일 밤이 마감이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이라 포기하려 했지만, 위에서 밀어붙였다.

환전과 국제면허증 발급과 기타 준비해야할 것들을 다 금요일로 미뤄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부터 큰 프로젝트 추진 회의를 하면서 대부분의 일이 내게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청 공무원이 메일로 보내줄 줄 알았던 중요한 계약 서류도 직접 수령해가라고 해서 시청에도 다녀와야했다.

사업계획서에서 내가 맡은 분량을 쓰다가 다 못 쓰고 시청으로 출발. 서류를 받고 보니 이미 은행 영업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원래 사무실 근처 영업점을 지정해두어서, 그리로 전화했더니 늦게 도착하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대신 가까운 곳에 다른 영업점을 찾으라고 했다. 난감했다. 면허시험장에 가서 국제면허증도 발급받아야 해서 이미 택시를 탄 상황이었다.

은행 직원이 애프터뱅크 영업점에 대해 언급하길래, 검색해보니 가는 방향 면허시험장 근처에 애프터뱅크 영업점이 하나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행선지 변경을 요청하고 은행에 도착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해둔 금액을 무사히 찾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사실 왜 미리 국제면허증을 찾아놓지 않았냐는 일행들의 타박을 듣고 좀 억울한 점이 있었다. 분명 주중에는 바빠서 방문할 여유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토요일에 움직이기 귀찮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을 달래서 면허시험장에 왔었다.

예전에 면허증 갱신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당연히 문을 열었을거라 생각했다. 단 한치의 의심도 없이 먼 길을 찾아갔는데 황당하게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일상에서 정말 중요한 운전면허 업무를 하는 기관이 토요일에 문을 닫아버리면, 직장인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화가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암튼 금요일 오후 늦게 그 바쁜 와중에 택시를 타고 가서 국제면허증을 받았다. 하나 더 위기가 있었는데 국제면허증에 첨부할 사진은 여권용 사진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필 아침에 챙겨나온 사진 중엔 여권용 사진이 없었다. 이번에 여권을 발급받으러 가면서 2년 전쯤 증명사진 찍을때 아저씨가 3장 넣어준 여권용 사진을 가져갔는데, 바탕이 흰 색이 아니라고 해서 어쩔수 없이 다시 찍어야했고 구청 앞 작은 사진관에서 성의없게 찍은 그 여권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어딘가에 던져두고 잊어버렸다.

암튼 혹시 사진 때문에 국제면허증 발급이 안 된다고 할까봐 긴장을 바짝했다. 그 순간 발급을 못 받으면 운전할 사람이 부족하니 도저히 용사받을 수 없는 실수가 될 것 같았다. 담당자가 국제면허증을 발급하는 그 몇 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담당자는 사진을 문제삼지 않고 국제면허증을 건네줬다. 속으로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갈길이 바빴다. 빨리 사무길로 돌아가 사업계획서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저녁엔 아이들과 지내기로 되어있어거 야근을 할 수도 없었다.

작은 아이 공동육아 방과후교실에 7시까지 가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는데, 7시 5분까지 내가 맡은 분량을 다 못 끝내고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인 신임 팀장에게 나머지릉 부탁하고 나와야했다.

택시를 타고 방과후교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전화를 했다. 일이 꼬여도 완전 제대로 꼬였다. 아이들과 저녁을 사먹고 집으로 들어가서 짐을 쌀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도 말았다.

아침에 깨보니 절망스러운 느낌이었다. 짐은 하나도 안 쌌는데, 애들을 챙겨서 보내고 공항으로 향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애들을 깨우고 난 짐을 싸는데 열중했다. 그래도 다행히 애들은 많이 보채지 않고 일어나 알아서 준비했고, 나도 사전에 머리속에 대략 생각한대로 빠르게 짐을 쌌다.

큰 아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갔고, 작은 아이는 애들 엄마가 와서 데려갔다. 난 여권과 국제면허증 등 중요한 소지품들을 한번 더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 이틀이 정말 길었던 느낌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후회없이 놀다 와야지. 일을 미뤄두고 가서 조금 맘이 무겁지만, 내 탓이 아니니 그냥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럼 잠시 안녕!

추신, 공항철도 안 몇 발짝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오래전 연락이 끊긴 대학 선배와 무척 닮았다. 근데 혹시 정말 닮은 사람일까봐 아는 척을 못하겠다. 예전엔 정말 친했던 사람인데. 진짜 그 사람이라면 다시 못 볼 기회일텐데. 근데 그는 혹시 나를 보지 못했을까 혹 내가 너무 늙어버려 못 알아보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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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0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0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다양한 독립운동의 흐름과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독립 투사들의 기록들을 발굴해야 내야 한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잊혀진 이름들.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보고 싶은 밤이다.


5주년이 다가온다


세월호 참사 5주년이 다가온다. 지역에서 세월호 가족 극단인 극단 노란리본의 연극을 포함한 세월호 추모 행사가 있었다. 강의 마치고 부랴부랴 돌아와서 참석했다. 연극은 전혀 슬픈 내용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들이 교복을 입고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결국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엄마들)과 대화 시간에 한 마디씩 하시면서 자꾸만 울컥 하시며, 억지로 울음을 참는 모습,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여명의 관객들도 모두 눈물을 훔쳤다.


아이들이 무사히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서 장기자랑을 했다면 이렇게 멋있었을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만든 연극.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함께 외칠때마다 자꾸 눈물이 났다.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다. 당연한 일이건만 참 어렵고 힘들게 이룬 성과다. 이 성과를 위해 수없이 노력한 동료 여성 활동가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일일이 만나서 축하할 순 없으니, 일부러 페이스북에 들어가 그들의 글 하나하나에 좋아요를 눌러줬다. 평소 페이스북에 접속해도 귀찮아서 좋아요를 누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마음을 꾹꾹 눌러담아 눌렀다.


위헌이 아니라 헌법 불합치라는 결과는 조금 아쉽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남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또 길고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을 것이다.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성으로서 언제나 마음만은 함께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동기


2003년 환경운동연합 신입활동가 교육을 함께 받은 교육기수로 동기들이 50여명 있다. 한때 같은 단체에서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우리들은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운동판에 있으며 여기저기 다양한 공간에서 가끔 이들을 마주친다. 오늘 우연히 두 명의 동기와 연락이 닿았다. 한 명은 전화로 한 명은 내 강의를 들으러 왔다.


전화 연락은 녹색당 서울시당 활동가로부터 받았다. 전화 목소리가 어쩐지 낯익다 싶었는데, 환경연합 동기라고 먼저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본인은 이름만 보고도 나를 기억했다고. 근데 미안하지만 나는 이름을 듣고도 바로 얼굴이 떠오르진 않았다.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 때문이다. 미안했다. 주말 녹색당 확대운영위원 워크숍 때문에 연락을 한 거라고 했다. 주말이 되면 얼굴을 볼 수 있겠지. 반가운 마음을 잘 표현해야 할텐데.


또 한 명은 강의장소에서 마주쳤다. 멀리서 그 실루엣만 보고도 바로 그가 떠올랐다. 늘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친했던 형. 40대 중반부터 1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었던 우리 동기들 중에 나는 유난히 형들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오늘 만난 그 형과는 티격태격 다툼이 있기도 했고, 장난도 많이 쳤었다. 형 말로는 15년 만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다. 젊었다기 보다는 어렸던 시절. 뭣도 모르고 선배들 비판을 많이 했던 시기였다. 그의 눈에 나는 얼마나 철없는 동생이었을까? 강의를 마치고 나오며, 언제 소주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했다.


4시간 연강


학교 강의는 보통 2시간이다. 언젠가 에너지컨설턴트 교육 때 3시간 연강까지도 해봤다. 오늘은 4시간 강의였다. 내용이 무척 방대해서 4시간 안에 다 담아내기 어려울 수 있겠다 싶어서 일부러 속도 조절을 했는데, 마치고 나니 약속한 시간을 10분이나 넘겨버렸다. 아무래도 4시간 연강은 무리다. 다음에 또 요청이 오면 3시간까지만 해야겠다.


목소리가 작고, 목이 약한 편이다. 그래서 학원 강사 시절에도 늘 힘들었다. 오늘은 3시간째부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물을 자주 마시며 억지로 떠들어댔다. 듣는 분들이 대부분 활동 경험이 많은 분들이셔서 이해도도 높았고, 호응도 정말 좋았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기분만은 정말 좋았다.


강의 장소가 수원이라 오가는데 1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왕복 3시간, 강의 4시간 총 7시간을 강의를 위해 투자했다.


오늘은 가볍게 한 잔


세월호 추모 행사를 마친 후 장내 정리를 하고 나오며 오늘 같은 날은 여러 의미를 담아 한 잔쯤 해도 되겠지 생각해본다. 집에 가서 가볍게 한 잔 하고 자야겠다. 이건 오늘 수고한 나를 위한 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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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술 한 잔 하셔도 되는 날 같습니다. 가끔 자기에게 포상하기도 해야죠.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자신인데...
참고로 저는 이번 제 생일에 책 5권을 주문해 선물로 가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부터 그렇게 해 왔던 것 같아요. 식구들이 물으면 현금이 좋아, 라고 말하고 저는 그 돈으로 책을 사고 남은 것은 갖고...

제가 생각해도 4시간 강의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잘 마치셨다니 오늘 단잠 주무시겠네요.
굿밤 되세요...
 

수요자 우선


바쁜 와중에 강의 청탁을 받았다. 바빠서 왠만하면 안 받으려 했다. 근데, 일부러 추천해주신 분이 계시다는 말씀에 마음을 바꿨다.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보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 최근 지출이 늘어서 재정적으로 쪼들리기도 했다. 강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까봐 걱정이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밤이라도 새서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리고 정말 이틀 밤을 새서 강의 원고를 썼다. 근데 담당자가 이론 강의가 아닌 실무 강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보낸 원고는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에서부터 한 발짝씩 문을 열고 들어와 방을 하나씩 세부적으로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는데, 앞 부분의 큰 그림과 몇몇 세부 내용을 사족으로 본 것이다. 이런 태도를 예전에도 몇 번 겪었다. 실제 강의는 최대한 담당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더라도 큰 그림을 놓치지 않고 가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도 사전에 담당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원고를 보낸 것은 내 잘못이 분명하다. 그 담당자의 문자를 읽었을 때, 그래서 부끄러웠다. 나중에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 의도를 설명하고, 그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강의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담당자도 내 설명을 듣고 받아들였다. 


어쨌든 강의는 무조건 듣는 사람이 필요로하는 내용으로 해야한다. 뻔히 다 아는 내용을 혼자 떠드는 강사는 아무 쓸모없다. 듣는 사람들이 뭐 하나라도 꼭 챙겨갈 수 있는 강의를 만들어보겠다.



악몽이라고 해야할까? 불쾌한 꿈이라고 해야할까? 최근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깬다. 그리고 깰때마다 꿈 때문에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다양한 꿈을 꾸곤 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묘하게 기분 나쁜 내용이라는 것. 그러니까 확실히 기분 나쁜 요소가 꼭 포함된 꿈이다. 그럼에도 설레게 하는 요소가 꼭 있다. 이러니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방식이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다시 군대에 입대한다. (아오! 진짜 민방위도 끝난는데 다시 입대라니!) 말도 안되는 미션을 수행하며 고생하다가 누군가 면회를 온다. (실제 군생활에선 부모님께서 신병교육대 끝나는 날 딱 한 번 찾아온 걸 제외하면 한번도 면회 온 적이 없었다.) 그 누군가는 나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준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할텐데, 잠에서 깬 후의 내가 다시 떠올려보면 누군지 모르겠다. 암튼 꿈 속 기준으로 그 누군가와 함께 짧고 즐거운 면회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왔다가 갑자기 뭔가 큰 일이 벌어져서 실전에 투입된다. 주위 다른 병사들은 모두 젊고 경험이 없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만, 나는 실제 군생활 당시 전방 철책선 근무 경험도 있고 훈련을 하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와중에 누군지 모를 적이 총격을 가하고, 나는 꿈 속 시점에선 신병이지만, 병사들을 이끌어 전략적 행동으로 적을 격파한다. 하지만 우리 소대는 큰 피해를 입고 흩어지게 되고, 우리 분대는 어느 기관 사수 임무를 받는데, 대규모 적의 습격으로 동료들이 차례로 전사하고, 나 혼자 전장을 이탈하여 도망친다. 도망치는 와중에 정부 권력자들과 돈 많은 기업인들은 사전에 정보를 입수하고 이미 안전한 지대로 다 도망치고, 시민들은 남겨졌다가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군은 대비 없이 실전에 임했다가 큰 피해를 입고 각개 격파 당해 국민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도 후방에 각개 격파당한 패잔병들을 모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도망 중에 만난 군인들이 내게도 그쪽으로 합류할 것을 명령하는데, 나는 억지로 다시 군대에 끌려와 전쟁에 휘말린 것도 억울한데, 다시 합류할 순 없다고 그들에게서 도망친다. 도망 중에 갑자기 아이들이 생각나고 (아무리 꿈속이지만 느닷없이 아이들이 나오다니!) 아이들의 생사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애들 엄마와 애들이 머무는)으로 찾아갔다가 폐허가 된 마을에 생존자가 없는 상태를 발견하고 울다가 잠에서 깬다.


깬 상태가 무지 슬프고 막막한 감정이었기에 그 감정에 휩싸여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결국 말도 안되는 꿈이란 걸 깨닫고 다시 입대한다는 설정 자체에 화가 나서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다 문득 짧았던 면회 시간이 떠오르고 누군지 모르지만 나를 아끼고 사랑해줬던 그 느낌만 남는다. 특히 현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일이 없다보니 꿈에서 느낀 그것이 무척 그립고 소중한 기분이 든다. 결국 별것도 아닌 꿈일 뿐이지만, 그 꿈의 느낌과 감정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운영위원장


먹고 살기 위해 돈 버는 일외에 다른 일과 활동을 병행하면서 살아온 지 제법 오래 되었다. 돈 한 푼 못 버는 일이지만, 의무감, 소속감, 보람, 즐거움 등 여러가지 이유로 계속해왔다. 그런 일들은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최근 몇 년은 그런 일들을 계속 줄여왔다. 이제 돈 버는 일만해도 너무 힘들고 버거웠기 때문이다. 올해는 다시 역할이 좀 늘어났다.


그 중에 하나는 녹색당 지역 모임에서 오랜만에 다시 운영위원을 맡은 것이다. 초기부터 계속 운영위원을 맡았었고, 긴 시간동안 지역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잠시만 쉬었다가 다시 해야지 생각했던 게, 3년을 직책없이 평 당원으로 지냈다. 물론 그래도 활동당원이라 불리며 활동은 계속했다. 직책만 맡지 않았을 뿐. 올해는 다시 주도적으로 당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운영위원에 지원했다. 그리고 운영위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 


첫 운영위 회의에서 여성 1인을 포함한 공동운영위원장을 호선해야 했는데, 아무도 지원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누군가 나를 추천했고, 나도 운영위원은 다시 하고 싶었지만, 대외적으로 위원장까지 맡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후 길게 논의가 이어줄수록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명백해보였다. 결국 그 깨달음이 1년만 위원장을 맡자라는 판단으로 이어져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하지만 녹색당 당규 상으로 여성을 포함한 공동운영위원장을 선출해야 하기에, 나 혼자는 운영위원장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일 여성 운영위원들은 모두 여러 사정을 이유로 어렵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 이상 시간을 두고 열린 두 번째 운영위에서 한 분이 다시 공동운영위원장 직을 맡기로 하면서 남녀 각 1인의 공동운영위원장단이 구성되었다. 올해는 녹색당 활동을 통해 여러가지 추억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또 다른 단체가 있다. 지역의 환경단체로 2년 전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해 올해가 3년째다. 며칠 전 올해 처음 운영위 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서도 운영위원장 직을 맡을 뻔했다. 신임 운영위원을 제외하고 연임한 운영위원 중에 위원장을 뽑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두 명의 연임한 운영위원 중 다른 한 분이 나를 추천하는 바람에, 다들 내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이 되었다. 이거 가만히 있다가는 또 운영위원장 직을 하나 더 맡겠구나 싶어 다급한 마음에 현재로선 어렵다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다행히 바로 운영위원장을 선출할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에 다들 공감했다. 한 서너달을 운영위원장을 공석으로 두고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어쩌다가 이 단체 운영위원장까지 맡았다면 그 무게감에 어깨가 무너져내릴 뻔했다. 다행이다.


늘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잘 거절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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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친한 친구에게 감정 노동이란 단어를 들었다. 내가 본인에게 뭔가 어렵고 안되는 일에 대해서만 자꾸 얘길하고, 그걸 듣는 일이 힘들다는 얘기였다.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했다. 한 삼사년전부터 내가 자주 그랬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해 자꾸 말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중 한 친구가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니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사과했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나도 아쉬움은 있다. 그를 거의 25년을 알고 지냈고 친한 친구였지만, 한동안 그는 내 직장동료이자 친구였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그 친구를 자주 만나게 된 건 약 2년 전이었다. 그는 고향의 가족 문제와 본인의 경제적 사정으로 힘들어했고, 나는 그때에도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술에 의지해 지내고 있었다. 우린 가끔 술을 마시며 서로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했다. 그의 경제적 사정이 긴 시간 나아지지 않았고, 작년에는 기다리던 일이 무산되었다고 들어서, 정말 조금밖에 안 되지만 나와 함께 일하면서 급여를 받아가면 어떠냐고 연합회 반상근 일을 제안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딱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란 걸 알았다. 그가 수락하지 않았다면 그 돈을 내가 받으면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다. 1년 넘게 돈 한 푼 받지 않으면서 연합회 임시 사무국장 일을 해왔었다. 사람이 필요하긴 했지만, 경험자가 필요했고, 그 알량한 돈으로 경험자를 구할 수 없을테니, (그리고 사실 이 바닥에 경험자가 거의 없어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 돈 받고 그 일을 해야지 싶었다. 어차피 그 일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을테니.


암튼 그 친구는 한동안 나와 같이 일을 했다. 워낙 적은 급여 때문에 주 2회 출근이었고, 그 외에 다른 부가 수입을 만들어주려고 노력은 했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암튼 그렇게 약 8개월을 그 친구랑 함께 일하며 우리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가 감정노동을 느꼈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 켠으로 조금 아쉬움이 생기는 건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걸까? 과연 내가 그에게 늘어놓았던 하소연 같은 말들이 부적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친구로서 혹은 직장 동료로서 부적절한 말이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평소 내 걱정을 해준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좀 하는 편인데, 그런 잔소리에 답했던 것이 그가 느꼈던 그런 불평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생각에 그는 뭔가 다른 이유로 내게 화가 났고, 그때부터 내가 떠드는 말들이 듣기 싫어졌고, 그래서 내게 감정노동을 운운한 것 같다. 왜 화가 났는지는 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확실히 그의 말이 내게 경각심을 심어주긴 했다. 그날 이후로 친한 후배들과 술 마실 때마다 감정노동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대화에 주의하곤 했다. 지난 이삼년간 그 친구보다 더 자주 술을 마시며 하소연을 많이 늘어놓았던 후배들 몇 명에게 물어봤다. 의외로 그들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형이 많이 힘들어해서 어떻게든 같이 답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신세 한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나는 말 뿐 아니라 글을 쓰면서도 신세 한탄을 하는 구나. 뭔가를 하소연 하는 구나 싶다. 출판사에서 해고 당한 후로 자주 쓰던 서평을 거의 쓰지 않게 되었고, 이후로 이 알라딘 서재에 올리는 내 글은 대부분 일상의 기록이 되었다. 그런데 그 기록의 성격이 대체로 감정을 풀어놓는 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맨날 이런 글만 써놓으면 누군가 읽는 이도 감정노동을 하도록 만드는 구나. 그럼 그 분 역시 나에게 질려버릴테니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지만 습관이란 건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그렇게 느껴도 나는 또 계속 하소연 같은 글을 알라딘에 끄적이고 있겠지. 그게 익숙하니까. 다만 앞으로 하소연이 아닌 다른 글들도 가끔 적어보려 노력해야겠지. 예전처럼 이런 글도, 저런 글도 다양하게 적어봐야지 생각해본다. 


고마운 사람들


꽃샘 추위 때문인지 무리한 야근 때문인지 지난 주 금요일부터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금요일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금요일 저녁 아이들을 데려온 이후로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열이나고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토요일에는 중요한 일정이 두 개나 있었다.


남들은 그렇게 원해도 한 번도 안 걸리는데, 나는 세번째로 당첨된 녹색당 전국 대의원 총회가 그날이었다. 당연히 참석할 예정이었고, 미리 자료집을 살펴보고 올해 주요 사업 내용 중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머리 속을 정리해놓았었다. 그런데 씻고 나갈 준비를 하다보니 열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했는데, 내 몸도 제대로 챙길 자신이 없는데,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잠들었다. 녹색당 활동가에게는 아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죄송하다고 문자를 남겼다.


땀 흘리며 한 잠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한 결 가벼웠다. 열도 내렸고, 머리도 덜 아팠다. 토요일 두 번째 중요한 일정인 공동육아 방과후협동조합 신입 조합원 환영회가 열릴 시간이었다.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 나가면 낮에 쉬어서 회복되었던 것만큼 다시 악화될 것 같았다. 그냥 밤까지 푹 쉬면 일요일 아침엔 감기 기운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환영회에 가길 원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아파서 나가기가 힘든데, 안 가면 안 되겠냐 했더니, 안 된단다. 무조건 가야 한단다. 아이는 힘없이 자꾸만 처지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애쓰며 나가자고 보챘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이런게 아빠인가보다 싶었다.


집을 나서서 가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올해 환영회는 아빠가 행사 진행 안 해?" 그러고보니 작년 신입 조합원 환영회는 내가 기획하고 진행했었다. 아이도 그 생각이 났었나보다. 사실 이번에도 내게 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들살이와 환영회를 포함해 여러 행사 진행을 계속 맡았었는데, 한 두번도 아니고 같은 사람이 계속 하면 지겨울 게 뻔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번엔 진행을 다른 분이 맡았는데, 다행이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느라 행사 시간에 한참 늦어버렸는데, 내가 진행을 맡았다면 펑크가 날 뻔 했다.


행사장에 딱 들어간 순간 한 분과 마주쳤는데, 그가 곧바로 깜짝 놀라며 나를 걱정했다. 아파 보이고,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본인이 아이를 데려다줄테니, 집으로 가서 쉬라고도 했다. 나는 그래도 움직일만 해서 왔다고, 이왕 왔으니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답했다. 그날 만난 여러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줬다. 근데 한 세시간 앉아 있는게 참 힘들더라.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심심해서. 목이 아파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술도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어서 달리 시간을 보낼 일이 없었다. 내 주위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서 끝까지 술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이 몇 있다. 새삼 그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술을 안 마시면서 어떻게 술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난 2주 동안 그래서 일부러 술자리를 피했다. 꼭 가야할 자리라면 되도록 적게 먹으려 애쓰며 그냥 술을 마시는 걸 선택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와중에 지금껏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바로 아까 내가 들어오자마자 입구에서 딱 마주쳐서 엄청나게 걱정을 해 준 분부터 시작해, 그날 그 자리에도 고마워 할 사람이 여럿 있었다. 난 평소 지지리 운도 업서고, 복도 없는 인생이라고 여겼건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게 바로 운이고 복이 아니었나 싶다. 그랬구나! 나 생각보다 복 많은 인간이었어. 운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고 남은 시간을 보냈다.


운동이 필요해


재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작년 여름 무릎 부상이 무척 컸다.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여기저기 관절이 불규칙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손가락, 손목, 어깨, 골반, 무릎, 발목까지. 무릎은 아주 가끔을 제외하면 거의 늘 아팠고, 그 다음으로 자주 아팠던 곳이 손가락이었다. 그래서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다. 여러 증상이 일치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지원이 안 되어 비싼 돈을 주고 받은 혈액검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고정된 자세, 즉 계속 앉아 있는 생활 방식이 문제라고 보았다. 잦은 손가락 통증 때문에 류마티스성을 의심하기 전에 내 진단도 그랬다. 


한 2년 전부터 담배를 확 줄이고 나서 평소보다 휴식 시간이 줄었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라도 한 두시간마다 한 번씩 책상 앞을 떠나 옥상에 올라 몸을 움직였는데, 이젠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두세번 화장실 오갈 때를 제외하면 계속 책상 앞에 거북이 자세로 앉아 있는다. 일이 많아서, 일에 집중하느라 그렇기도 하지만, 달리 책상 앞을 떠날 핑계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게 딱 시간 정해놓고 쉬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렵지 않은 날엔 너댓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다.


의사 선생님 처방은 운동(스트레칭 중심)과 규칙적인 휴식이었다. 사실 운동은 나도 계속 원했었다. 여기 저기 관절이 자꾸 아파서 못했던 거였다. 그래도 조금씩 시동을 걸어보려고 안 아픈 관절 중심으로 움직이려 애써보곤 했다. 다만 고립 운동을 지양하는 개인 취향 때문에 특정 관절을 제외하고 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한 가지 단서가 더 붙었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라는 거였다. 내 운동 습관 중 가장 나쁜 습관이 워밍업을 소홀히 하는 점인데, 스트레칭을 아주 가볍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운동 할 때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려고 큰 판형에 사진이 많은 스트레칭 책도 샀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밤마다 그 책을 펼쳐놓고 스트레칭을 해봐야겠다. 아프다는 핑계로 참 오래도 운동을 쉬었다. 이제 다시 운동에 몰입해보자. 계속 아프고, 힘들고, 어렵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휩싸여있지말고, 뭔가에 재미를 붙이고 확장해나가야겠다.


도배


지난 겨울 두 번이나 윗 집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방이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다. 시커멓게 커다란 곰팡이가 피었다. 나 혼자 지내는 날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아이들이 오는 날엔 곰팡이 때문에 애들이 아플까봐 걱정이었다. 윗집 주인은 나중에 도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바쁘게 지내다보니 벌써 4월이 되어다. 지난 주에 다시 전화를 해서 도배 빨리 해달라고 요청했다. 어제 저녁에 공사업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도배를 하겠다는 거였다. 하루라도 빨리 곰팡이가 잔뜩 핀 방을 바꾸는 일은 분명 좋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많은 날이라, 방을 치워둘 여유가 없었다. 근데 도배를 하려면 벽을 비워줘야 한다.


혼자 살면서부터 가구를 들여놓지 않아 옷장이나 이불장 등은 없지만, 행거와 실내 철봉 등 부피가 큰 녀석들이 벽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걔네를 치워줘야 도배를 할 것 아닌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사짐 싸듯이 큰 비늘봉투에 옷들을 쓸어담고 행거를  분해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사정이 생겨 좀 늦는다고 사무실에 연락하고 방을 치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전혀 다른 집이 되어 있을텐데, 나는 또 행거를 조립하고, 옷과 이불을 다시 정리하고, 그외 잡다한 물건들을 치울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번주 주말에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겠다.















또 읽어야 할 책이 나왔다. 읽을 책은 자꾸 쌓이는데,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사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야지. 돈 없어서 다른 사치는 못 해도 책 사모으는 재미라도 느껴야지. 물론 나중에 이사나갈 때는 또 분명 후회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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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0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9-04-03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로 하면 공연히 말했다 후회도 되고, 괜스리 디스하는 거 같아 맘도 편치않고...ㅠㅠ
그래서 말보다는 글로 푸는 게 후회도 덜하고 자기성찰도 되는 듯요~^^

감은빛 2019-04-10 18:49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해보니 확실히 말로 하는 것 보다는 글이 더 낫긴 하네요.
순오기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