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친 버스 다시 타기
나는 자주 하는 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놀라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류장에서 아쉽게 놓친 버스를 다음 정류장까지 따라 잡아서 타는 일이다. 이 일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일단 내가 타려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가 출발한 버스가 신호에 걸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버스 앞 쪽에 신호에 걸린 차량들이 두세대 이상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다음 정류장까지 거리가 짧으면 짧을 수록 좋다. 마지막으로 버스 탑승에 실패한 정류장에서부터 다음 정류장까지 인도가 비교적 한산해야 한다. 인파가 붐비는 거리를 빠른 속도로 뛰어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가적으로 이 길이 직선일수록 유리하다.
버스가 정류장을 출발하자마자 신호에 걸리면, 나 역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직진 차량의 청신호와 횡단보도의 청신호는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전력질주를 위해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기다리다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땅을 박차고 출발해야 한다. 도로를 빠른 속도로 건너고 인도로 뛰어올라 보행자들을 피해가며 다음 정류장까지 달려야 한다. 달리다보면 차량들이 출발해서 나를 지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버스 앞에 대량 몇 대 정도의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출발 전에 대충 파악해두는 것이 좋다. 지나가는 차량의 수를 곁 눈으로 세면서 버스가 대략 어디쯤 따라오고 있을지를 예측하면서 달려야 한다. 일단 버스가 내 뒤로 바짝 쫓을 정도가 되면 순식간에 나를 스쳐 지나갈 것이고, 다음 정류장까지 아직 충분히 가까이 달려가지 못 했다면 그때는 전력질주를 했음에도 버스를 놓치게 될 테니.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오늘 저녁에도 이렇게 놓친 버스를 다음 정류장에서 다시 탔기 때문이다. 일터 사무실이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로 이사온 것은 작년 초였다. 그 전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종종 버스를 타고 다녔다.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좀 여유있게 걸어다니는 날들이 많기는 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저 위에 언급한 놓친 버스 다시 타기를 시도하는 날들이 종종 생겼다. 물론 확률적으로 정류장에 도착할 때 쯤에 간발의 차로 버스가 출발해버려서 아쉽게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그렇게 자주 생기지는 않으니 이 종종 이라는 표현은 저렇게 놓친 경우에 달려가서 따라잡아 탈 것인가 그냥 다음 차를 기다릴 것인가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나는 대체로 기다리는 선택이 아닌 따라잡아서 다시 타는 선택을 한다는 뜻으로 쓴 단어이다.
암튼 이 버스 다시 타기를 시도한 것 자체가 제법 오랜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엄청난 폭염으로 인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상황이었다. 게다가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나는 뜨거운 옥상에서 1시간 넘게 일을 하느라 이미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이었다. 약간 더위를 먹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놓친 버스를 다시 타려고 뛰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예정한 시간보다 늦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버스는 14분 후에 온다고 안내판에 나왔다. 그 장소에서 목적지였던 우리 사무실까지는 그냥 걸어가도 2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중간에 조금 뛰면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14분을 버스 정류장에서 멍하니 기다리기는 싫었다. 그리고 그냥 걸어가는 것도 너무 싫었다. 이 더위에 뜨거운 옥상에서 1시간 넘게 일을 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저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갈 버스 안에 타고 싶었다.
다행히 버스 앞에 승용차가 대여섯 대 이상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횡단보도 앞으로 가서 전력질주를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했다. 예상보다 일찍 신호가 바뀌었고, 빠른 속도로 출발하면서 양쪽 방향을 살피며 혹시 튀어나오는 차량이 없는지도 체크했다. 달리는 중에 뒤늦게 출발한 차량들이 나를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나는 속도를 더 냈다. 아직 다음 정류장까지 거리는 한참 남았다. 더위와 피로는 순간적으로 잊었다. 나는 무조건 저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만 남기고 다른 생각은 모두 지워버렸다. 몸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전력으로 달리며 한 편으로는 뒤쪽에서 버스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체크했다. 저 앞에 다음 정류장이 보일 때쯤 뒤에서 버스 엔진 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 버스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이미 거의 최대한의 힘을 짜내어 달리고 있었지만, 마지막 스퍼트를 위해 나는 더 속도를 높였다. 버스가 저 앞의 정류장에 멈췄다. 잠시 틈을 두고 앞문과 뒷문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기 위해 움직였다. 버스에 오르는 승객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내게 유리하다. 그런데 움직이는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곧 버스는 승객을 다 태우고 문을 닫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속도를 더 높였다. 다음 순간 내 몸은 버스에 오르려고 기다리단 마지막 승객의 바로 뒤에서 급정거했다. 숨이 차서 제대로 숨 쉬기가 어려웠고, 온 몸이 땀에 다 젖은 상태였다. 내가 달리는 모습을 아마 버스 기사님은 보셨을 것이다.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에 오르는데 기사님께서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걸 느꼈다. 버스엔 빈 좌석이 없었고, 이미 서 있는 승객도 제법 많았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잘 나오는 자리를 찾아 손잡이를 잡고 섰다.
다른 단상들
지역의 한 노인 복지관에서 기후위기 강의를 했다. 생각보다 어르신들이 이 부분에 대한 상식을 많이 갖고 계셔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었다. 나만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여하신 어르신들 중 세 분이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말씀하셨다.
국제 잼버리 대회를 새만금 매립지에서 열어서 매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이 무더위에 그늘 하나 없는 매립지에서 캠핑을 한다는 발상을 과연 누가 했을까? 왜 누구나 예측 가능한 결과를 아무도 말리지 못 했을까?
신림역에서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칼부림이 일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번엔 서현역에서 차량과 흉기를 이용한 무차별 폭력이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또 이어서 학교에서도 흉기 소지자가 체포 되기도 했고, 묻지마 살인 예고가 나타나기도 했다고. 이게 정말 말세로 가는 징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적 장애 아들의 특수반 교사를 향한 한 웹툰 작가 부부의 고소와 관련해 계속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모든 정보가 다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비난 하는 일은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아이 문제에 있어서 모든 부모는 다른 어떤 일보다 아이의 안전과 행복을 우선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교사에 대한 말도 안되는 진상행동들이 다 용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초등학교 교사의 건과 이 웹툰작가 부부의 건은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이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어린이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폭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열대야 너무 지긋지긋하다. 오키나와를 지나온 태풍 카눈이 올라오면 더위가 한 풀 꺾일 것이라고 하는데, 다음주 목요일 정도가 되어야 이 태풍이 우리나라로 치고 들어올지, 동해를 타고 올라갈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애초에 중국 본토로 갈 것으로 예상했던 태풍이 제 자리에 한참 멈춰 있다가 방향을 정 반대로 꺾어서 일본으로 향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더 방향을 틀어서 우리나라 쪽으로 올라올 것이라고 예측된다고. 저렇게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태풍도 신기하고 그걸 또 계속 예측해내는 기상학자들도 신기하다.
주말에 워크숍에 참가해야 할 상황이다. 뭐 딱히 중요한 워크숍은 아니라 나는 안 가도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분위기가 내가 빠질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 버렸다. 일요일 아침 출발인데, 차가 막힐 것을 우려해 6시에 출발해야 한단다. 일요일 아침 6시라. 아! 난 정말 주말에는 좀 쉬고 싶다. 왜 주말에 워크숍에 끌려가기 위해 아침 6시에 출발해야 하는걸까?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