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이었던가? 퇴근 시간즈음부터 게시글을 쓰기 시작해, 약 30여 분만에 글을 마치고 등록하기 버튼을 눌렀는데, 뭔가 오류가 났는지 등록이 되지 않았다. 당시 급하게 나가야 할 상황이었고, 정확히 무슨 오류인지 살필 시간이 없어서 일단 임시저장된 글을 불러다 내용을 복사해 메모장으로 옮겨 저장했다. 이동하면서 북플을 이용해 글을 올리면 되겠지 생각했던 거였다.


버스 안에서 북플 앱을 통해 다시 같은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도 오류 메시지가 떴다. "도박, 음란, 광고 사이트에 대한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등록할 수 없다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좀 황당했다. 내가 쓴 글은 도박과도 관계없었고, 음란한 내용도 전혀 없었으며, 광고 따위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혹시 내가 쓴 특정한 단어가 문제가 되는지 글을 살펴보았다. "당첨"이란 단어가 도박과 관계있다고 본 걸까? "누드 모델"이란 단어가 음란했던 걸까? 광고 사이트 얘긴 뭘까? 내 글에는 인터넷 페이지 주소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암튼 여러번 시도해도 계속 같은 메시지만 뜨길래, 일단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쁘게 하루,이틀, 사흘이 지나갔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문득 그 글이 생각나서 알라딘에 접속해 같은 글을 등록했다. 이번에도 아래와 같이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맨 처음 글을 작성하자마자 봤던 그 오류 메시지였다. 북플에서 올리려다 실패했을 때 봤던 것과 내용이 같았다. "도박, 음란, 광고 사이트에 대한 게시물"이란 이유다. 황당해서 알라딘에 문의를 넣었다. 문의할 내용을 조목조목 적으면서 좀 화가 났다. 대체 뭘 기준으로 저런 판단을 내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 글을 올리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아까운 시간과 내 노동을 허비했고, 이후 이틀이나 시간이 지나버려 해당 글은 타이밍을 놓쳤다. 물론 이 글이 막 시간을 다투는 내용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기준에서 이미 한참 지나간 얘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암튼 문의사항 끝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요구조건을 넣었다.(길게 풀어쓴 글을 축약하느라 원래 요구하는 글과는 느낌이 달라졌다.)


1. 내 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 바람(원 글을 텍스트 파일로 첨부했다.)

2. (만약 문제가 있다면) 이 내용을 포함해 게시글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어떤 원칙과 그에 따른 조건(금칙어 등)이 있다면 이를 서재 공지사항 등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기

3. 향후 이렇게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 때문에 서재 이용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보다 자세한 설명과 이에 대한 대응방법을 공지한 페이지를 작성하고 이를 시스템 메시지에 링크로 안내하기


사실 알라딘 고객센터 응대 방식이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란 걸 14년 넘게 알라딘을 이용하며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한 번에 성의있는 답변을 받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요구조건을 길고 상세하게 풀어서 썼던 거였다.


역시나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받은 답변은 성의가 없었다. 짧은 답변을 다시 내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만 정리하면 이렇다.


1. 내 글에는 문제가 없었음. 근데 금칙어 사전 db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수정했음

2. 금칙어 관련 내용은 공지로 처리하지 않고 피드백 페이지를 보완할 예정임

(이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피드백 페이지는 무슨 뜻일까?)

3. 세번째 요구에 대한 답은 아예 없다. 저 피드백 페이지를 통해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끝


그래서 결론은? 금칙어 사진 DB 오류가 났었는데, 수정했다는 얘기로 끝인가? 또 오류가 나면, 그 오류로 인해 이용자가 당황하거나 불편을 겪을 수 있으니, 자세하게 안내해 달라는데, 피드백 페이지인지 뭔지를 보완할 예정이니 기다라린 뜻인가? 


참! 알라딘의 무성의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난다.


아래는 일주일 하고도 하루 전에 작성했다가 시스템 오류로 등록하지 못했던 글이다.



페미니스트

어느 술자리에서 아마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과 대화를 나눴다. 여러 얘기중에 미투 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는 요즘 젊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각을 세우고 보수화되어가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자신도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대화가 더 나아면서 사회적으로 여전히 여성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일상에서도 늘 여성은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30대 중반의 후배가 나를 가리키며 "이 형은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라. 평생 한번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생각해 본 적 없든데, 작년부터 이 말을 여러번 듣는다.

작년 겨울 아주 우연히 만난 출판계 친구와 무척 반갑게 술을 마시는데, 어쩌다 주제가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과 메갈리아에 이르렀다. 나는 사회 구조와 일상의 권력관계를 이유로 여성들의 입장에서 말했는데, 그 친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라. 나중에 그 친구의 입에서도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이후로도 여러 남성들이 비슷한 태도를 보였고, 그 중 몇 번은 저 단어를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시절부터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내가 처음 만난 여성주의자, 즉 페미니스트는 교양과목 강사였다. 서울대 출신 학자라고 했고, 1주일에 한 번 부산에 내려와서 우리 과 교양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나는 학년대표여서 출석부와 분필 등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았다. 그 강사는 수업 중에 자주 학년대표를 찾았다. 무슨 질문만 있으면 학년대표를 불러 일으켜 세우고 몰아붙였다.

그 강사의 수업 중에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자꾸 남성을 악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이었다. 기존 사회 질서가 잘못되었고, 그에 물들어 권력 관계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남성의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게 그들이 악한 사람이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 교양수업 때문에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남성을 적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특히 그 강사가 수업때마다 학년대표였던 (가만히 앉아 열심히 수업 듣던) 나를 부당하게 괴롭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나중에 서울에서 활동가 생활을 하며 만난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많이 달랐다. 여성연합, 여성환경연대, 성폭력상담소 등 저마다 스펙트럼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나며 내 시야도 넓어졌다. 그들 대다수는 남성을 함께 이 사회를 바꿔갈 파트너로 여겼지, 적대해야 할 악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지금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 서울대 출신 강사가 우리에게 잘못된 여성주의를 주입했던 거라 생각한다.

암튼 나는 오래전부터 여성을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로 여기고, 언제나 서로 평등한 위치에 머물기 위해 노력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랬다. 결혼 생활을 하던 때에는 늘 가사노동과 육아는 함께 분담해서 했다. 내가 아직 어린 아이들을 업고, 안고 회의를 다니거나, 촛불집회 등을 참석했던 모습 등은 지금도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동네 4~50대 언니들에게 이쁨 받는 후배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히려 당시까지만해도 동네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애들 엄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활동을 하다보니, 그들이 보지 않는 다른 시간에도 나만 애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거라 여긴 건지, 대체 애들 엄마는 뭐하길래 늘 너만 애들을 보고 있냐는 말들을 가끔 들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어쩔수 없이 엄마라서 애들 엄마가 더 많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한다고 설명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최대한 여성들과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남성일 뿐, 절대 페미니스트 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제발 그 과분한 이름을 내게 붙이지 말아 달라.


웃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이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놀 때다. 요즘은 주로 주말에만 애들을 만나니, 주말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평소 결코 그런 성격이 아니어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장난꾸러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장난을 치지 않는다. 아마 연애하던 시절에는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아빠는 늘 한결같이 장난꾸러기에,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한번은 작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장난을 좋아해?" 나는 아니라고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 아이는 그런데 어떻게 항상 장난을 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장난을 별로 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시 아이는 "아빠는 옛날부터 그렇게 장난꾸러기였어?" 물었다. 난 또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하고 얼마 후 아이들과 부산에 갔을 때, 작은 아이가 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 아빠 옛날에도 장난꾸러기였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그럼! 장난꾸러기였지." 하셨다. 헉! 내 기억에 아버지는 주로 여동생과 장난치고 노셨고,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이전에는 나도 장난을 치기도 했겠지만, 이후 나는 부모님과도, 여동생과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그러지 않았었다.

암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작은 아이가 나를 어려서부터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로 알더라도 별로 상관없다. 지금 내가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아이들을 만나, 토요일을 하루종일 같이 지내고, 일요일 오후쯤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그 허전한 기분을 참기 어렵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출근해 바쁘고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수요일쯤 아이들의 그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저녁 무렵 애들에게 전화를 걸면 애들은 뭔가에 신경이 팔린 채로 건성으로 통화를 한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듣고 싶지만, 전화로는 쉽지 않다. 그저 아이들 목소리를 한 번 들은 것으로 만족하고 통화를 종료해야 한다.

대의원 당첨

웬만하면 주말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경우는 꼭 생긴다. 3월 초 우리 조합 총회를 치뤘던 토요일이 그랬고, 이번 토요일이 그렇다. 이번 토요일은 일정이 2개나 있는데, 녹색당 전국 대의원 총회가 있고, 공동육아 방과후협동조합 신입 조합원 환영회가 있다.

녹색당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면 추첨제 대의원제도를 운영중이다. 그리고 난 남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아무리 원해도 쉽게 되기 어려운 녹색당 전국 대의원에 세번째 당첨되었다. 첫 대의원 추첨에 당첨되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첫 대의원 총회를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각 지역 별로 종이 비행기를 날리거나, 구슬을 굴리거나, 단순히 제비를 뽑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의원을 추첨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 날 우리 조가 토론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에서 내 모습이 제법 잘 나왔는데, 그 사진이 꽤 오랫동안 녹색당 당원 가입 안내 페이지에 붙어 있어서 꽤나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기억난다.

주위에 그렇게 원해도 한 번도 못해봤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은 전국 대의원을 무려 세 차례나 당첨된 덕에 토요일을 아이들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아이들이 좀 더 어렸다면 데리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청소년이 된 큰 아이와 무조건 언니를 따르는 작은 아이는 분명 듣지도 않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공간에 데려가서 긴 시간을 애들을 방치해 두는 것도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당첨을 원하는 다른 분들께도 기회가 돌아가길, 나는 이미 여러번 해봤으니, 이젠 주말에 애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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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능력


좀 더 젊었을 때는 머리 회전이 빨라 뭐든 바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능력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라 여겼다. 그리고 내가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잘못이었다는 걸 작년부터 계속 깨달아가는 중이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능력은 공감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편인라 여긴다. 아마 두 달쯤 전에 어느 회의 자리에서 업무 관계에서 소통이 어려운 사람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라는 얘길 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일이 늦어지거나,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자체에 대해 의견을 냈으나, 새로 임원으로 합류할 예정인 한 분이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힘드시겠어요. 얼마나 답답할까!" 그 분의 그 말과 표정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실제로 나는 답답하고 힘들었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남성은 어쩌고 여성은 어쩌고 하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신 것과 얼마나 상관관계가 있을까? 평소에도 다른 여성분들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남성은 글쎄 그다지 자주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터인 공용 사무실에 내 책상 맞은편에는 이웃 협동조합 사무국장님이 계신다. 내가 여기 활동을 시작할 때도 계셨으니 벌써 5년 넘게 마주보고 앉아 일하고 있다. 이 분은 50대 여성이신데, 각종 행정업무와 회계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본인 표현으로 간단한 서류도 어려워한다. 물론 말씀은 그리하셔도 몇 년간 조합의 업무를 혼자 해내왔으니, 다소 약한척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우리 두 사람은 평소 이런저런 업무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나, 불평하는 경우가 많다. 그 보다 더 나가서 서로 도와주거나, 상대가 어려워하는 분야를 쉽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분도 나에게 공감능력의 중요성을 많이 일깨워준 분이시다.


3월 초에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이자, 가장 어렵고 힘든 행사인 총회를 마쳤다. 해마다 안 힘들었던 총회 준비는 없었지만, 올해가 유난히 더 힘들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 힘든 총회를 마치고 조합원들 중에서 수고 많았다고, 고생했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한 마디씩 건넨 분들은 모두 여성분들이셨다. 아, 물론 남성 중에도 수고했다고 말을 건넨 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느낌에 진심으로 내 어려움을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는 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형식적인 인사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평소 나와 친한 사람들 뿐이었다.


이렇게 공감능력의 관점으로만 보면 확실히 여성은 뛰어나고, 남성은 열등하다. 그리고 이 뛰어난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자들이 여러 영역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계신다. 특히 활동가들 중에서도 50대 여성 활동가들이 많다. 이 분들의 공감 능력에 나는 오늘도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여유가 뭔가요?


작년에는 1,2,3월 3달 동안 3개 법인의 총회 준비를 했다. 그 중 연합회 1개 법인 총회 준비는 각 회원조합의 임원진 5명 가량이 자주 모여서 함께 준비했고, 또 다른 연합회 1개 법인의 경우 나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해야했다. 그리고 우리 조합의 경우 임원들과 실무자가 1명 더 붙어서 함께 준비했다. 하지만 작년에 나는 혼자 3개 법인의 총회 준비를 다 했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는데, 그 이유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작업인 총회 자료집을 나 혼자 준비했기 때문이다.


3월 초에 우리 조합 총회를 마쳤고, 어제 연합회 총회를 마쳤다. 올해는 2개 법인의 총회를 준비했는데, 작년에는 총회 자료집을 혼자 정리했기 때문에 혼자 준비했다고 다소 과장해서 표현했지만, 올해는 정말 혼자 2개 법인의 총회를 준비했다. 실무자가 나 혼자였기 때문이다. a부터 z까지 뭐 하나 내 손이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었고, 나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간 상태로 3달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일터에 동료가 들어와 함께 일하고 있다. 곧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청년인턴제도를 통해 20대의 활동가도 합류할 예정이다. 어제 연합회 총회를 마치고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혼자 다 떠안고 죽을 힘을 다해 일하지 않겠다. 만약 그래야 할 상황이 또 생긴다면 그냥 포기하거나 떠나버릴거라고. 다시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정신을 좀 차리고 살아야겠다. 하고 싶었던 운동도 다시 하고, 공부하고 싶었던 외국어도 다시 배우고, 기타도 다시 튕기고, 제일 하고 싶었던 일, 책도 다시 많이 읽어야겠다.


금주와 금연


불규칙적으로,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는 관절 통증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 어떤 날엔 손가락 관절, 어떤 날엔 손목, 또 어떤 날엔 발목과 무릎, 어떤 날엔 어깨, 어떤 날엔 골반 통증이 느껴지곤 했다. 제일 잦은 건 손가락, 손목, 무릎이었다. 작년 언젠가부터 아픈 날도 있고, 괜찮은 날도 있었지만, 이제 괜찮아졌네 하고 한동안 나았다 싶은 느낌은 없이 계속 이어졌다.


병원에 가기 전에 나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는데, 증상이 살짝 다른 면도 있었지만, 대체로 겹치는 면이 더 많다 싶었다. 의사 선생님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래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무릎과 손목, 손가락 등 관절의 모양과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핀 의사는 외관 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음성이었다. 즉,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아닌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그 외엔 이렇게 온 몸의 관절이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아팠다가 괜찮아지는 증상이 뭐가 있을까?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어쩌면 이 증상이 뭔지 답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평생 따라다니는 통증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한다.


지난 번에 병원을 찾은 후로 의사 선생님이 술을 마시지 말것과 담배를 피우지 말 것을 요청했다. 담배는 많이 줄여서 이젠 평소엔 거의 피우지 않고, 가끔 술 자리에서 한 두대 피우고 말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술이 문제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꽤나 자주 술을 마시고, 그 술 기운에 정서적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어쨌거나 병원을 안 갔으면 몰라도, 갔으면 의사 선생님 말씀을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이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3월은 여기저기 총회가 많고, 중요한 술자리도 많았다. 하루는 친한 후배가 활동하는 협동조합 총회에 갔다가 뒤풀이를 가지 않고 그냥 떠났는데, 후배가 깜짝 놀라며 진짜 많이 아픈거냐고 물었다. 어지간히 아픈 걸로 술을 마다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만 아픔이 커서가 아니라 괜찮은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면서 계속 이어지는 이 통증이 지긋지긋해서였다.


그렇게 술의 유혹을 잘 뿌리치며 며칠을 버텼는데, 하루는 어이없이 답답한 공무원들의 태도 때문에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려서 도저히 술을 마시지 않고는 기분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결국 자주 만나는 술친구를 호출했고,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태도로 나왔다. 그날 술을 마시고 담배도 얻어 피웠으니, 금주와 금연은 며칠가지 않아 깨져버렸다.


뭐 가급적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되, 어쩔수 없는 경우에는 가볍게 술과 담배를 해주는 것이 아예 한 잔도, 한 개비도 안된다는 강박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어쨌든 의사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하고 다시 처방을 받아야겠다.


그 와중에 강양구 기자의 페이스북에서 술에 대한 책 소식을 접했다. 어째 이 책을 읽으면 더 술이 땡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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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3-27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줄이세요...

감은빛 2019-03-27 20:11   좋아요 0 | URL
네, 술 줄이고 있다고 쓴 글이었어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03-27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3-2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줄이시면 좋겠어요...

감은빛 2019-03-27 20:12   좋아요 0 | URL
네,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늘도 친한 선배가 제가 있는 공용사무실 한 켠에 입주해서,
입주 기념으로 한 잔 하자는 걸,
아파서 못 마신다고 거절했어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9-03-2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술줄이실수 있어요. 가늘고길게 오래 마십시다

감은빛 2019-03-27 20:14   좋아요 0 | URL
네, 사실 가늘고 길게 오래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통증은 없애고 봐야겠기에
당장은 술을 줄이려구요.
고맙습니다!
 


드라마의 영향


집에 티비가 없어서 남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살면서부터 20년 가까이 티비 없이 지냈더니, 가끔 어딘가에서 티비를 보면 낯선 기분이 든다. 물론 티비가 없어도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보고 싶은 건 대부분 찾아서 보는 편이다. 중요한 스포츠 경기나 영화는 종종 본다. 그러니 티비가 없어도 크게 아쉬울 건 없다.


난 호흡이 긴 드라마 보다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영화가 아무래도 더 좋다. 드라마는 매우 잘 만들어서 긴장감을 팽팽하게 가져가지 않으면 늘 지루함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본 드라마가 거의 없다. 유명한 드라마도 아예 한번도 안 본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드라마를 정말 좋아한다. 대략 2년쯤 전부터 우리 집에 오면 노트북으로 늘 드라마 켜 달라고 난리다. 예전엔 주로 [청춘시대]를 봤다. 시즌 1과 2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략 서너번 이상 보더니, 아예 장면과 대사를 다 외울 지경이다.


아이들은 얼마전까지는 [뷰티 인사이드]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영화와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난 처음부터 별로였는데, 아이들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 좋아했다. 최근에는 [응답하라 1994]를 계속 반복해서 보고 있다.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면서 노트북을 가져갔다. HDMI 케이블로 화면이 큰 티비와 연결에 엄마에게 영화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계속 일하느라 바빴고, 겨우 시간이 나도 공중파에서 하는 막장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아이들이 광고 없이 열심히 드라마를 봤다. 아까 말한 [응답하라 1994]였다.


내게도 딱 그 시절이 청춘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였기에, 드라마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X세대라고 앞선 선배들과 많이 다르다고 늘 자부했건만, 이제와 보면 뭐 그리 다를 바도 없었던 것 같다. 


암튼 드라마 덕분에 아이들과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휴대전화가 없었어. 라고 말하면 그럼 어떻게 연락했냐고 묻는다. 집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썼다고 했다. 컴퓨터나 인터넷도 없었고, 유튜브도 없었다고 말하면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삼천포가 서태지 카세트 테이프를 뜯어서 거꾸로 감다가 윤진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고, 저게 뭐냐고 묻길래, 먼지가 잔뜩 묻은 비틀즈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서 보여줬다. 노래를 들려줘보려고 낡은 미니 콤퍼넌트에 테이프를 넣어봤는데, 고장났는지 작동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삐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삐삐를 보면 그 옛날 커피숍 테이블마다 놓여있던 전화기들이 생각난다. 일부러 여자아이들과 연락 주고받기 편하게 웬만하면 커피숍을 벗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다 나경이가 매직 아이를 보지 못해 답답해 하는 모습이 나왔다. 애들은 저게 대체 뭔데 저렇게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해했다. 내게 아빠는 볼 수 있었어? 묻는다. 기억에 몇 개의 그림들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매직 아이 책을 요즘도 팔지 않을까? 알라딘에 검색해보았다. 한 권 있었다. 그럼 혹시 중고 매장에는? 아쉽게도 부산에 있는 매장들엔 그 책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서 주말에 작은 아이와 매직 아이 책을 사러 알라딘 중고 매장으로 향했다. 마침 집에서 가까운 매장에 딱 1권이 있었다. 아이가 원하는 만화책도 사주고, 나도 읽고 싶었던 인지 심리학 책을 골랐다.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빨리 매직 아이 책을 보고 싶었다. 과연 다시 보면 그 입체 그림이 보일까? 가까운 커피숍으로 들어가 눈동자를 모으고 책을 펼쳤다. 처음엔 계속 해도 안 보이고 눈만 아팠다. 작은 아이는 자기도 해보겠다고 계속 책을 뺐어갔다. 요령을 아무리 가르쳐줘도 잘 따라하지 못했다. 반복 또 반복. 계속 실패를 거듭하다 어느 순간 딱 입체 화면이 열렸다. 그 다음부턴 다른 그림들도 잘 보였다. 물론 어떤 그림은 아무리 봐도 잘 안보이는 것도 있었다. 작은 아이는 요령을 잘 터득하지 못하자 금방 흥미를 잃었다. 만화책으로 눈을 돌리더니 더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직 큰 아이에겐 보여주지 못했다. 과연 큰 아이는 볼 수 있을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드라마 덕분에 한동안 옛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다만 시간 배경과 달리 공간 배경이 서울이라는 점은 별로다. 아무래도 같은 시대라도 부산과 서울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 중 마산 출신이 많아 익숙한 사투리는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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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4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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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혹은 익숙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한다. 나는 가끔 지켜보는 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어떤 일을 빨리 처리하곤 하는데, 그때의 나를 다시 분석해보면 분명 익숙한 일이거나, 좋아하는 분야가 조금이라도 포함된 일이었다. 그때의 집중력은 엄청나다. 시장 한 복판이나, 전쟁터에 갖다 놓았어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일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내 주의를 끌지 못했을테니. 가끔 마감에 쫓겨 일을 마무리 할때도 비슷한 집중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다 해놓고 나면 언제 다했을까 싶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있기도 했다.


내 경우 10대 후반부터 딱 30대 중반까지 이렇게 집중력이 좋았던 때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이제 40대가 넘은 지금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집중력이 예전만 못하다. 주위에서 자꾸 늙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40년 조금 넘게 살았을 뿐인데, 벌써 늙어 집중력이 떨어지면, 남은 반평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너무 슬프고 무섭다.


작년 연말 무렵부터 이 서재에 여러 번 글을 썼듯이 길고 긴 침체기를 겪으며 내 집중력은 거의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도저히 이 시점을 넘기면 큰일 날 업무를 만날 때에만 반짝 불이 붙었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평소엔 어떻게 이렇게 일이 안 될 수가 있나 누구 용하다는 무당이라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억울하게 집중력이 살아나지 않는다. 자꾸만 딴 생각. 자꾸만 딴 짓. 자꾸만 내 마음이 어디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은 상태에 빠진다.


돌아와라. 집중력. 제발! 네가 없으니 내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다. 네가 내 곁에 당연하게 머물렀던 시절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어왔던 유능하다는 평가와 빠른 업무 처리가 지금 내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다시 내게로 돌아오라.


작년 연말부터 몇 가지 일을 제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애를 먹으면서 한동안 잘 쌓아놓았던 유능한 사람 이미지, 좋은 후배 이미지를 계속 까먹고 있다. 이틀이 멀다하고 누군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제 정신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왜 이랬을까? 나도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다시 예전처럼 집중력이 돌아오면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겠지. 집중력이 돌아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모르겠네. 


내향성과 외향성


어려서부터 조용하고 내성적인 편이었다. 혼자 구석에서 책 읽기를 즐겼다.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교 때부터였다. 아니 본질은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인 일요일 오후는 늘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맛있는 음식에 술을 먹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여기서 혼자라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가끔은 혼자 시간을 보내야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아, 물론 어쩔때는 혼자가 외로워 친구나 후배들을 불러내 술을 마시곤 한다. 도무지 외로움을 견디기 어려운 순간, 누군가 부르면 나와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지 모르겠다. 다행이도 그런 친구나 후배나 선배가 적어도 10 손가락으로 세는 것 보다는 많다는 걸 깨달으며 그래도 인생 잘 못 살지는 않았구나. 느낀다.


사람들이 겉으로 판단하는 내 모습.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고, 주도하고, 정리하는 모습은 내 기억에 대학교 시절부터 만들어진 혹은 길들여진 모습이다. 가끔 남들 앞에선 겸손하지만 대체로 내 잘난 맛에 살았던 나는 저런 내 모습이 익숙하다고 여겼다. 긴 시간 반복하며 익숙해진 일이니까. 혹은 원래 이런 일을 잘 했으니까. 난 원래 잘났으니까.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찬찬히 생각해보면 어떤 특정한 인간관계나, 술을 마시는 등의 특정한 조건에 놓여있지 않는 한, 난 절대 외향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게 고스란이 몸에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 편으로 남들 앞에 나서서 그들의 주목과 인정을 받기를 즐기면서, 그 인정과 주목을 내 뛰어난 능력 덕분으로 돌리며, 이런 건 익숙하다 여기며 나를 속이지만, 실은 그 인정과 주목을 위해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난 가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놀거나, 술을 마시는 걸 즐기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향성과 외향성은 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빈도의 문제일뿐 때로 변하기도 한다.


친구


앞서 말했듯 내가 필요할 때, 누군가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지금도 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과거 출판 영업자로 일했던 시절에 비하면 인간 관계가 많이 줄었다. 그리고 친하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었고, 그 빈도도 줄었다. 어떤 특정한 시기마다 가장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조금씩 바뀐다. 지금은 대학 동기이자, 초등학교 선배이고, 잠시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가장 친한 사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새삼 깨닫는다.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슬프고, 외롭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그래도 버텨내고 있는 건 저 친구가 자주 곁에 있어 주어서가 아닐까 싶다. 고마워 해야 겠다!


감정 나눔


주말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아이들을 꼭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다. 그 시간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새벽에 깨서 이불을 차고 맨 몸으로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다시 덮어서 여며주고, 흩어진 머리칼을 손으로 만져주며,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의 따뜻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세상이 내게서 그 순간을 빼앗아 버린다면, 어쩌면 나는 더이상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점점 그런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은 계속 자라고,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날 것이다. 더이상 내 품에 꼭 안겨 잠들지 않는 날이 오겠지.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 미래가 두렵고, 그 순간이 곧 닥칠까봐 두렵고, 불안하다. 지금 사춘기를 맞은 큰 아이가 가끔 너무나도 낯선 모습으로 내게 반항하곤 하는데, 그 빈도가 점점 늘어나 언젠가는 아예 내 품을 떠나버릴까봐 무섭다. 지금은 내 무릎 위에 앉길 좋아하고, 안아줘, 안아줘 어리광을 부리는 작은 아이가 곧 자라 큰 아이 처럼 되어버릴까봐 겁난다. 그런 시간이 오면 과연 난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소중함


가끔 감정이 북받쳐 극단적인 충동이 들 때도 있다. 아니 청소년 시기에 그런 충동이 가장 강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감정이 들어도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긴 시간 경험을 통해 나는 그럴만큼의 용기도 없는 인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을 제외하면, 평소 나는 내 삶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요즘 가끔 관절 통증으로 몸이 아프긴 하고, 아주 가끔 비염으로 힘들 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아주 건강한 몸으로 자랐다. 키도, 몸무게도, 외모도 특별히 잘나지 않았지만, 특별히 못난 것도 없어서 평범한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행운아였다. 게다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어도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았고, 앞으로도 뭘 하던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또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엄청나게 똑똑하고, 잘 생기고, 돈이 많고, 몸매가 좋지는 않지만, 적당히 똑똑하고, 못나지 않은 외모에, 가난하지만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고, 건강을 유지할 만큼의 몸을 가진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나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들, 선후배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과의 거리만큼 필요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좀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인지 심리학


순전히 우연히 유튜브에서 인지 심리학 김경일 교수의 강의를 봤다. 와! 완전 흥미로웠다. 같은 강의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그의 다른 강의들을 찾아서 봤다. 인지 심리학이란 학문은 진짜 신기했다. 심리학이라고 하면 대학시절 교양 수업과 책 몇 권 읽은 후로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책을 좀 읽고 싶어졌다.
















그의 강의 몇 개에서 나온 핵심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지각하지 않는 법

일과 시간을 쪼개서 계획하고 행동하라. 가능하면 최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눠라.

지각하는 이유는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시간 계획을 잘 못 세웠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시간 관리를 잘 못한 것이다.


2. 월요병을 극복하는 법

과거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나는 음악 소리가 고문처럼 느꼈던 수많은 직장인들은 불안과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불안과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월요일 아침에 닥칠 일을 미리 적어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역시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계획하는 것이 불안을 떨치는데 도움이 된다.


3. 빠져나가는 월급을 지키는 법

마음 속에 여러개의 계좌를 개설해서 돈을 쪼개놓아라.

가능하면 자세하게 돈을 사용할 명목을 붙여 사용처와 금액을 정해둬라.

돈에 이름을 붙이고, 한도를 정하고 최대한 작은 단위로 분산해놓아라.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자꾸 계획하고 적으라는 것.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적으라는 것. 번호 붙여가며 적으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20대 시절 한창 일 잘한다고 여기저기서 인정받던 시절에 내가 습관들였던 일이다. 특히 번호 붙여가며 적는 것. 난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았을까? 아니 어쩌면 선배 활동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내 것으로 만든 것이겠지.


또 하나 창의성과 상황에 대한 그의 강의가 참 재밌고 흥미로웠다. 초등학교 3학년 4개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이야기는 정말 신기했다. 결국 낯설게 하기가 꼭 필요하단 얘긴데, 이것도 20대 시절 문학 공부하던 시절 그렇게 집착했던 개념이 바로 낯설게 하기였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이별과 고통에 대한 인지 심리학계의 최근 발견 소식이었다. 우리가 교통사고를 당해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당할 때와 가족의 죽음이나 연인과의 이별 혹은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아픔을 느끼는 뇌의 분위가 같다는 것이다. 적어도 뇌는 고통을 느낀다는 측면에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따로 차별하지 않는 다는 얘기. 그래서 진통제를 먹으면 정신적 고통에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누군가 다친 이에게 마음을 써서 위로하듯,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마음을 써서 다가가 위로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 강의를 듣고 눈물이 났다.


이 사람 책도 사서 읽고, 강의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겠다. 유튜브 자동 재생 목록 덕분에 우연히 대단한 인지 심리학자 한 명을 만났다. 고맙다!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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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6 0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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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farewell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이젠 가늠도 잘 안 되는데, 그게 정확한 시작 시점을 기억할만한 어떤 계기 없이 차츰 나를 잠식해 들어와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슬럼프라고 해야 하나? 길고 긴 이 침체기를 좀 벗어나보려고 다양한 뭔가를 시도중이다.


영화에 몰두해보기도 하고, 잘 안 읽던 종류의 책에 손을 뻗어 보기도 하고, 꽤 오래 연락할 일이 없던 이에게 뜬금없이 연락을 해보기도 했다.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건 운동인데, 이건 비정기적으로 이어지는 관절 통증 때문에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시동을 걸어보고 있는데, 과연 예전처럼 씻은 듯이 관절 통증 없이 운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부분이 내 우울한 감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다크하고 딮하고 블루한 감정의 가장 큰 원인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일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서, 일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주째 무겁게 내 어깨를 내리누르던 큰 일 하나를 일차 완료 했다고 표현해야 하나?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첫 번째 고개를 넘었다 정도로 살짝 부담감을 덜었다. 그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한결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좀 제발 이별했으면 좋겠다. 슬럼프여. 침체기여, 우울증이여, 무기력감이여, 이만하면 오래 만났으니 그만 떠나줄래? 너 때문에 인생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안녕! 굿바이! 페어웰! 아디오스! 아듀! 아우프 비더젠! 짜이찌엔! 사요나라! 




승진? 활동비 인상?


어제 이사회 회의에서 실무자로서 개인적인 감정을 살짝 드러냈다. 해마다 안 힘들었던 해는 없었지만, 작년 한 해는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았고, 힘들었다. 일은 훨씬 더 많이 했는데,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내가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소모되는 것이 너무나도 싫고, 부당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과연 가능 할지는 모르지만.


시민단체에서 조금 경력을 쌓았을 때 팀장이란 직책을 얻었다. 출판사에서도 조금 일에 익숙해지고 한 사람 몫을 할 때쯤부터 팀장이란 직책을 달았다. 여기 협동조합에 와선 처음부터 팀장이었다. 그 위도 그 아래도 없다. 나 혼자 실무자로 일하는 곳이니까. 우리 법인의 모든 일을 나 혼자 다하고, 심지어 거기에 더해 실무자가 없었던 연합회 법인의 일까지도 나 혼자 다 해야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계속 팀원 없는 팀장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쭉 팀원 없는 팀장이었다.


어제 이사회에서 내 직책을 사무국장으로 하겠다는 언급이 있었다. 사실 주위에선 직책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벌써부터 내가 사무국장이 되어야 하는데,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가 하면,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어떤 한 가지가 부족해서 아직 사무국장이 되지 못한 거라는 얘기도 있었다.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사무국장이어도 관계없고, 팀장이어도 아무 상관 없다. 어차피 이 법인의 일은 나 혼자 해왔고, 지금도 혼자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확률이 높다. 게다가 밖에선 다들 나를 국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내 직책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으며, 내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국장일거라 여기고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사실 한동안 한 명 더 있었다. 1년 간 일을 배웠고, 조금 익숙해 질 때쯤 건강 악화로 병가를 냈다가 복귀 후엔 반상근으로 일을 했다. 다만 병가를 냈던 시점부터 다시 혼자가 되었고 복귀 후에도 본인 업무 영역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나 혼자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계속 건강이 나아지지 않아 곧 그만둘 예정이다. 암튼 결국 그래서 나 혼자인데 이걸 승진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그냥 직책명이 바뀌는 정도라고 여기기로 하자.


올해 지자체에 제공하는 청년 인턴 제도에 응모해, 만 39세 이하의 청년 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인건비를 제공받게 되었다. 지자체에서 인건비의 90%를 부담하고, 우리 법인이 나머지 10%를 부담하면 된다. 그런데 인건비가 딱 정해져 있더라. 그런데 생각보다 금액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지금 이 법인에서 일한지 5년차인데, 내 활동비보다 더 많더라.


그래서 이사장이 내게 한 마디 했다. 신입 활동가보다 내 활동비가 적을 수는 없으니, 다른 사례를 참조해서 상식적인 활동비 인상안을 만들어 보란다. 사실 해마다 조금씩 활동비가 오르긴 했다. 늘 최저임금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지만, 해마다 최저임금도 늘 조금씩은 오르니 오를 수 밖에 없긴 하다. 처음 여기 들어올 때는 진짜 적은 액수를 받았다. 이사장도 그 돈 받아서 애들 키우면서 살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당시 나는 여기 일이 이렇게 많고, 스트레스가 많을 거라 예상 못하고 비 정기적으로 교정교열 알바와 영업 대행 알바 등 출판계에서 조금씩 돈을 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사에 있을 때보다 터무니없이 낮아진 활동비에도 이 일을 선택했던 거였다. 다행히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내 활동비도 오르긴 했지만, 아이들 양육비를 보내고 나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뭐 물론 내가 쓰는 돈의 대부분은 술값으로 나가는데, 술을 조금 덜 먹으면 조금 더 안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럼 내 정신이 버티지 못할 수 있으므로 고려하지 않겠다.


얼마가 될 지 모르겠으나, 아니 얼마나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법인의 재정 상황이 뻔하기에 큰 금액을 올리진 못하겠지만, 사실 새로 채용할 청년 인턴의 월 급여액보다 많이 받는다면 현재 보다는 그래도 제법 오르는 것이긴 하니까 큰 금액을 올리는 것이라 여겨야 하려나? 암튼 활동비가 오른다니 그건 좀 기분이 괜찮다. 직책이 바뀌는 건 정말 요즘 말로 1도 기쁘지 않았건만, 역시 돈 문제에 있어서는 사람이 달라질 수 밖에 없나보다.



그래봐야 매달 활동비가 통장을 스쳐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현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찰나의 행복이라고 해야 하나? 심할 경우 고작 하루도 가지 못할 그 행복을 차라리 느끼지 않으면 좋으련만.


지역 공동체 화폐


우리 지역 공동체 화폐가 출범한 지 벌써 1년 이상 지났다. 창립 회원으로 공동체 화폐의 순기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어서 열심히 사용하려 마음 먹었으나, 현실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각자 수첩을 갖고 다니며 공동에 화폐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을 이용하고 수첩에 기록해야 하는데, 그 수첩을 늘 갖고 다니는 일이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몇 번 이용 후엔 영수증만 챙겨놓으면 나중에 정산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역시 영수증까지 챙기는 일조차 너무 귀찮은 일이었다. 난 우리 법인 영수증을 챙기는 일만 해도 너무 힘들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 공동체 화폐가 진화했다. 스마트폰 앱으로 결제가 가능하도록 바뀐 것이다.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거기에 소액의 적립금을 추가한 금액이 앱에 충전된다. 가맹점에서 이용하면서 앱 자체에서 가맹점을 선택해 내가 이용한 금액만큼 바로 결제가 가능했다. 와! 이거 진짜 편리하더라.


대개 5만원을 입금하면 10%가량 적립금이 붙어 5만5천원이 충전된다. 게다가 몇몇 가맹점은 이 공동체 화폐로 결제할 경우 추가 할인을 제공했는데, 이 역시 5~10% 가량 되었다. 작년에 나는 10% 추가 할인을 제공하는 식당에서 주로 공동체 화폐를 이용했는데, 그 결과 나는 충전한 금액보다 약 20% 가량 혜택을 볼 수 있었다.


식당 뿐 생협과 북카페 등에서 쓸 수 있으니 점점 사용할 기회는 늘어났다. 재미있는 건 수제 생맥주집, 치킨집 등의 가맹점도 있어서 가끔 동네 술꾼 선배들이 술을 산다면서 오늘 공동체 화폐 충전했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물론 가맹점이 아직 적어서 더 늘려야 한다. 내 경우엔 일터 근처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고, 가끔 생협을 이용할 때 사용할 수 있지만, 그외에는 쓸 일이 별로 없다. 일터 근처 치킨집이 있긴 한데, 사실 치킨과 맥주가 취향이 아니다보니 그닥 갈 일이 없다. 수제 생맥주집은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거리가 있어서 역시 갈 일이 없다. 집 근처 맛있는 식당이나, 집 근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괜찮은 술집이 가맹점에 추가된다면 아마 사용하는 금액의 단위가 바뀔 수도 있을 듯한데,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공동체 화폐가 꾸준히 성장해서 가맹점과 이용자가 더 늘어나고, 그래서 지역에서 사용하는 돈이 대기업이나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안에서 돌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한 몫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금씩 이 자본주의의 견고한 틀을 허물었으면 좋겠다. 일단 나도 활동비가 오르면 조금 더 이용 금액을 높이겠다.(공동체 화폐 담당자가 이 글을 본다면 분명 좋아하겠지)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안화폐에 대해 종합적으로 담고 있는 듯하다. 이미 시도했다가 없어졌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사례도 많겠지만, 수많은 지역에서 수많은 시도들이 일어나 조금씩 자본에 도전했으면 좋겠다. 전환마을로 유명한 토트네스처럼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대안화폐를 사갈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사실 오늘 낮에 평소 좀처럼 갈 일이 없는 저 멀리 강남까지 회의 때문에 다녀왔는데, 그 회의가 또 정말 짜증나고, 답답하고, 암만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이어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면서부터 계속 술이 땡겼다. 남아 있는 일은 그냥 내일로 확 미뤄버리고 이제 술 마시러 가야겠다. 오늘은 무슨 안주에 소주를 마실지 고민해보자. 일을 미룬 만큼 내일의 나는 괴롭고 힘들겠지만, 그건 내일의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저 술 마실 생각에 즐거우면 될 일이다. 아, 내일의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건네자. 


미안! 쏘리! 꼬메나사이! 엔슐디궁! 빼르동! 뚜이부치! 제수위디줄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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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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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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