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이 책의 제목이 내게 던져준 첫인상은 이랬다.

1. 화자는 여자 주인공일 것이다.

2. 어쩌면 뻔한 스토리의 이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3.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프랑스 소설 특유의 지루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별을 고하는 과정이 눈물샘을 자극하기는커녕 어쩌면 너무 천천히 흐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남자가 출근하고 없는 집으로 남자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잠결에 일어난 여주인공은 부산스럽게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빨리 가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쓸데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 놓으며 시간을 지체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져온 트럭에 아들의 옷장을 싣길 원한다. 그러면서 아들이 여주인공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자신이 아들의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말한다. 갑작스런 결별 선언에 여주인공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런 그녀에게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사까지 털어 놓으며 아들이 그녀와 결별하고자 하는 이유를 쏟아 붓는다.

남자와 통화 연결이 되지 않자, 한밤중에 그녀는 부모님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그녀의 전화를 받은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아들이 자신에게는 어떤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보다는 더 멋진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또 쏟아 붓는다.

그러나 그들도 이런 식의 결별 선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지, 좀 더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도록 그때까지 결별을 유예하자고 한다. 그리고 어설프게 그녀를 위로하려 한다.


이 책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자가 바뀐다. 처음에는 결별을 당하는 여자가 화자였지만, 결별을 비겁하게 아버지께 대신 부탁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사이좋게 화자로 등장해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이 책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이별 이야기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상했던 결별 선언만큼, 이상했던 가족들처럼 상당히 이상한 이야기이다. 네 사람의 화자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슬프다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한편의 희극 코미디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들이 끊임없이 토해내는 이야기들은 지루하기보다는 숨이 가쁠 정도이다. 그들이 쏟아 붓는 속도로 책을 읽다보면 정말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었지만, 읽으면서 장폴 뒤부아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가 자꾸 떠올랐다. 이 책 또한 상황 설정은 우울했지만, 오고가는 대화는 정말 희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삽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얼핏 보면 그 색감이 너무나도 예뻐서 정말 예쁜 그림이겠거니 하고 들여다보면 상당히 엽기적인 그림들이다. 그러나 삽화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덕분에 이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 판정은 완전한 실패였다.


장폴 뒤부아, 마르탱 파주, 그리고 레지스 조프레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프랑스 소설 속에는 특유의 희극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읽을 때는 정말 숨가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읽고나면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평소 엄마랑 싸웠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으레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엄마랑 어떻게 싸움을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딸이 철없는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조용히 들어주며 타이른다. 엄마가 잘못을 꾸중하면 딸은 조용히 생각하거나 생긋 웃으며 애교를 부릴 뿐일 텐데. 나는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엄마와 친구처럼 잘 지내는 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는 때로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보다 더 멋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랬는데, 며칠 전 엄마랑 다투게 되었다. 친구들이 엄마랑 싸웠다고 하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결국 엄마와도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멈추어야 했는데, 그 생각이 들자 더 투정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한참을 울었다. 보진 못했지만 엄마도 뒤돌아서서 가슴 아파하셨겠지.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담담했는데, 이 한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내가 그랬었다.


“아이들은 가끔 제 마음이 아프면 부모도 같은 식으로 아프게 만들지.” ― p.123


이 책은 어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도 한 사람 등장하니 유령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가족 이야기는 모두 유령 이야기인 법이다. 사랑하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앉아 있기 때문에. ― p.9


이 책은 찰스 ‘칙’ 베네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때 그는 월드시리즈에서 뛴 야구선수였지만, 어느 날 자살을 기도한다. 그는 선수 생활 이후 사업에 실패하고 술에 빠져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딸의 결혼식에는 초대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고 어릴 적 살던 마을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화물차와 충돌한 그는 차에서 튕겨져 나왔고 가까스로 어릴 적 살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술과 사고의 충격으로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그는 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8년 전 돌아가실 때의 모습으로 살아계실 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칙의 아침을 차려주는 어머니, 칙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루 동안 어머니는 칙과 함께 세 사람을 만나러 갔고 그동안 칙이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혼녀의 아들이 된 칙, 그는 함께 있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편이 되기보다는 아버지의 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머니가 죽던 날도 칙은 아버지에게 야구 선수로 뛰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야구경기에 나선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직 어머니로서의 인생만 살았다. 이혼녀라는 이유로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지만 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남의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사는 물론이고 가정부 일 조차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 칙이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신을 원망한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절대 아버지에게 다른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들 칙에게 왜 죽으려고 하는지 묻는다. 아들은 부끄러움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모두들 자신을 떠나서 포기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포기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말하며 사라진다.

어머니가 사라지자 칙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경찰관들의 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


“누군가가 가슴 속에 있으면 그 사람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지.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단다. 심지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도.” ― p.190


우리들의 하루는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하루입니다. 그러면 매일이 단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소중해지지요. ― p.248


이 책을 읽다보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전개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칙도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깨닫는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깨달음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모티브가 주는 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깨달음처럼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문장씩 한 문장씩 곱씹어 보며 자신의 경험들을 대입해 보면 순간 뭉클한 감정이 쏟아진다. 부모라는 존재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 생각해 보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존재. 칙처럼 뒤늦게 “단 하루만 더”를 외치기보다는 매일을 그런 생각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의 부모님이 붙여 준 이름인 ‘폴린’으로 안 적도 없고, 어머니의 친구들이 붙여 준 이름인 ‘포지’로 안 적도 없습니다. 오직 내가 붙여 준 이름인 ‘엄마’로 알았을 뿐이지요. ― p.198


우리의 어머니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씨’라는 이름보다는 ‘~엄마’라고 불리어지며, 그래서 자연히 자신보다는 ‘~엄마’로 살아가게 된다. 오늘은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을 찾아 드려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평생 잊지 못할 일 -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59인이 말하는
도종환 외 지음 / 한국일보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내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스물 몇 해를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는 제목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일들을 평생 잊지 못할까.

그러나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고 생각은 하지만, 도통 떠오르는 일들이 없다. 그동안의 내 삶이 이토록 무미건조했던 것일까, 아니면 금붕어처럼 뒤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지능의 소유자일까. 그때는 참 힘들고 많이도 울었던 일들이, 그때는 너무 기뻐서 밤잠 설치게 만들었던 일들이 지나고 나면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한참 머리를 쥐어짜고 나니,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는 일들이 있다.


나에겐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분 계신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좋고 싫음의 구분이 명확했다. 친구를 사귈 때도 그러했고 공부를 할 때도 그러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스스로 공부거리를 찾아서 할 정도였지만 싫어하는 과목은 내일이 시험이어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을 맡으신 분은 가정 선생님이셨고, 가정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그렇다고 가정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 시간에 문학 책을 읽거나 졸기만 했던 내가 좋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국어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기도 좋아하고 국어 선생님도 좋아했지만 도통 국어라는 과목은 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러나 국어 선생님은 나를 참 예쁘게 봐 주셨다. 수업 시간에 문학 책을 읽다가 들켜 교무실로 불려가 담임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셨다. 게다가 국어 시간에 교과서가 아닌 문학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수업이 끝난 후에 살짝 부르셔서 꾸중 대신 그 책에 대한 느낌을 물으시거나 다른 가르침을 주시기도 하셨다. 그때 국어 선생님께서 길러주신 독서후기를 쓰는 습관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덕분에 나는 학생시절에 독서왕 같은 상들을 많이 받게 되었다. 꾸중보다는 관심과 따뜻함으로 나를 이끌어 주셨던 선생님, 내 평생 가장 잊지 못할 선생님이시다.


또 한명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 내가 스물 몇 해를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반을 함께 해왔던 사람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스타 플레이어였고, 나는 TV나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는 어린 아이였다. 사촌언니의 학교에 구경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그 선수, 그때 그 선수가 나를 향해 날려준 미소 때문에 그날 이후 나 또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팬들 중의 한명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들을 나누게 되었고, 힘들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내게 즐겁거나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신앙이자 친구, 가족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이 여럿 있었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얼핏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소소한 일들이지만 59인의 삶 속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거나 전환점이 되고 힘이 되었던 일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이럴 때가 있었구나 하며, 지금 뭔가를 시작하려고 주춤하고 있는 나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기도 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재미없다, 별 이야기 없네,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매일 매일 나오는 신문 한 켠에 자리를 잡으면 읽어줄 수 있겠다 싶은 이야기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던 책이었다. 워낙 짧은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유명한 단편집조차 읽지 않는 나였기 때문에 59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 책이 내 눈에 예쁘게 보여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이야기들이었다. 잠시 지나온 내 삶을 뒤돌아 볼 수 있게 해준 이야기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눈에 쉽게 띄는 오탈자가 많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네버랜드 클래식 14
파멜라 린든 트래버스 지음, 메리 쉐퍼드 그림, 우순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뱅크스씨네 유모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었다. 제인, 마이클, 쌍둥이 존과 바브라는 유모가 필요하다. 뱅크스씨는 ‘돈은 되도록 적게 받고 일은 아주 잘 하는 유모’를 구한다는 신문광고를 낸다.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많은 유모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찾아온 유모는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 한 명 뿐이었다.


우리가 만화영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상냥하고 넉넉해 보이는 유모와는 달리 메리 포핀스는 아이들에게는 불친절하고 집주인에게는 언제나 말대꾸를 하는, 그야말로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 되겠다. 그녀의 주특기는 무슨 말에든 ‘흥’하고 내뱉는 콧방귀이며 취미는 찌푸린 모습을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춰보며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이다. 한가지 특이사항은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마음만 먹는다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와의 만남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제인과 마이클이다. 처음에는 그녀의 불친절함에, 그녀의 콧방귀에, 그녀의 엄포에 겁을 먹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인과 마이클은 그녀의 희한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제인과 마이클의 쌍둥이 동생인 존과 바브라는 갓난아기이다. 어른들은 존과 바브라가 말은 할 줄 모르고 단순히 울고 보채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존과 바브라는 메리 포핀스처럼 동물들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어른들의 말과 행동에 웃음을 날리기도 한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병아리 유치원”의 재우와 그의 일당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존과 바브라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바보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은 절대로 바보가 되지 않을 거라며 슬퍼한다.


그렇게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와 아이들은 친절한 금자씨도 부러할 정도로 멋진 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동화도 있는 법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는 계절이 바뀌어 바람의 방향도 바뀌자 하늬 바람을 타고 훌쩍 날아가 버린다. 언젠가 바람이 바뀌면 다시 돌아올 것처럼 말이다.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의 명장면 하나.

그녀에게는 웃으면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삼촌이 한명 있다. 제인과 마이클과 함께 그녀의 삼촌에게 초대를 받아 갔던 날, 그날도 삼촌은 둥둥 떠있었다. 그녀와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웃음 가스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전염성이 강한 웃음은 이내 아이들에게도 전염되어 공중에 둥둥 떠있는 상태로 함께 차를 마신다. 그러나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가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그들의 웃음가스가 몸 안에서 빠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의 명장면 둘.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나침반 하나. 그녀와 아이들은 나침반 하나로 세계 여행을 나선다. 나침반의 바늘을 돌리면 ‘순간이동’ 기능이 작동하여 북극곰이 사는 북극이든 열대우림이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나침반으로 세계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 한밤중에 몰래 나침반을 들고 세계 여행을 떠난 마이클은 동물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 한다.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의 명장면 셋.

잠을 자다가 제인과 마이클은 동물원에 가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 동물원은 여느 동물원과 달랐다. 인간들이 우리 안에 갇혀있고, 그런 인간들을 구경하는 것은 바로 동물들이었던 것이다. 인간들이 우리에 갇힐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같은 인간인 나조차도 “그래, 그랬을거야”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돼 온몸이 오싹할 정도였다. 그날은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의 생일이어서 제인과 마이클이 특별 초대된 것이었다.


『우산 타고 날아온 메리 포핀스』의 명장면 넷.

아직 말조차 할 수 없는 갓난아이 존과 바브라가 아주 능숙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른들의 말을 알아들을 뿐만이 아니라 동물들과도 이야기를 나눈다. 존이 발가락을 입에 물고, 바브라가 양말을 벗어던지는 것은 그렇게 하면 어른들이 좋아해서 서비스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똑똑했던 갓난아이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걸음을 한발자국 떼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말하는 법을 잊어먹고, 동물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만은 절대 나이가 들어도 그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울며 슬퍼하는 존과 바브라에게 난 너무 바보일 정도로 어른이라서 어떻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모르겠다.


불친절과 자만심이 가득한 메리 포핀스지만 그녀에게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꾸미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싫으면서 겉으로는 좋은 척하기, 겉으로는 안 그런척, 자신은 보잘것 없다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그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지만 그런 그녀의 “꾸미지 않음”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냉정해 보이지만 따뜻하고 포근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정이 드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불친절한 메리 포핀스씨”에게는 그런 매력이 가득하다.

이 책이 나온 후에 영국에서는 “유모를 찾습니다”라는 광고 대신 “메리 포핀스를 찾습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광고를 내고 싶다.

“우리 집에서도 메리 포핀스를 찾습니다. 유모가 아닌, 우리의 친구로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인간 1 - 북극성
조안 스파르 지음, 임미경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유럽 중앙의 어느 숲 속에 나무인간이 살고 있다.

그 나무인간은 목수나무로, 가구를 만들어서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절대 살아있는 나무로는 가구를 만들지 않는 나무인간,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다. 나무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그것은 상관없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살아있는 사람이든 시체든 간에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두 경우 모두, 절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지 않는가.

그 나무인간에게는 친구가 있다. 엘리아우라는 노인인데, 그는 나무인간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그는 숲속에서 책방을 운영하는데, 그의 책방에서는 오래되고 절판된 책들도 구할 수가 있다.

엘리아우 곁에는 항상 골렘이라는 덩치 큰 친구가 따라 다닌다. 골렘은 엘리아우가 만든 진흙 인형으로, 피노키오와 재패토 할아버지처럼 골렘과 엘리아우도 그런 사이다.

어느날 이 조용한 숲 속에 불청객이 찾아온다. 알리트바라이의 왕은 나무인간이 엘리아우에게 만들어 준 나무 피아노를 자신에게도 만들어 달라고 한다. 단 숲 속에 있는 가장 오래된 나무인 아틀라스 떡갈나무로 1주일 안에 피아노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숲 속을 불태우겠다고 한다. 절대 살아있는 나무로는 만들지 않는 나무인간, 그러나 온 숲이 불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아틀라스 떡갈나무를 베러 간다. 떡갈나무를 베러 간 그들은 떡갈나무를 지키고 있던 땅도깨비 카카를 만나게 되고, 시간 관념이 없었던 그들에게 불 폭탄이 날아든다. 그들은 왕의 성 꼭대기에 있는 북극성보다 떡갈나무가 더 높아서 왕이 떡갈나무를 없애려 한다는 것을 알고 왕에게 맞서러 떠난다.

왕에게 맞서기 위해 떠난 그들은 감옥에 갇히게 되고 2년 동안 잠을 자게 된다.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세상이 재앙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카카는 그의 동족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세상이 재앙으로 바뀌게 된 순간에도 잠을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들, 함께 길을 떠난 친구 카카가 죽임을 당할 때도 그냥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 그들은 다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간다.


나무인간과 동화 피노키오를 연상시키는 두 친구 덕분에, 게다가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들 덕분에 따뜻한 동화일거라고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나무로 가구를 만드는 나무인간의 잔인함을 유머러스로 가장하여 숨겨 놓았듯이 절대 따뜻한 동화는 아니다.

이 책에는 넘치는 그림들 속에 폭력을 감추어 두고 있다. 특히 카카가 상대의 성기를 잘라 죽였던 모습이나 자신의 성기를 잘라 털보들에게 할례하려고 하다가 죽는 모습에서는 그 폭력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성기는 남성의 폭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리라.


할례는 남성의 성기를 절개하는 의식으로, 일종의 성년식이었다 . 특히 유대교도에서는 엄격하게 행해졌는데, 이것을 어기는 사람은 계약을 깨는 사람이라 간주되어 졌다고 한다. 2년 동안 잠든 사이 성장한 카카는 규칙을 따르기 위해 스스로 할례 의식을 치른다. 그러나 카카는 바로 죽임을 당한다.

이 책에는 규칙을 따르다가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또 있다. 살아 있는 식물을 들여오는 건 금지라고 주장하던 엔지니어는 나무인간을 태우던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유대 율법을 어기고 사슴고기를 먹은 엘리아우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다.


규칙을 지키면 죽고, 규칙을 어기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 이것은 현실의 반영이자 작가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역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