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잊지 못할 일 -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59인이 말하는
도종환 외 지음 / 한국일보사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내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스물 몇 해를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는 제목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일들을 평생 잊지 못할까.

그러나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고 생각은 하지만, 도통 떠오르는 일들이 없다. 그동안의 내 삶이 이토록 무미건조했던 것일까, 아니면 금붕어처럼 뒤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지능의 소유자일까. 그때는 참 힘들고 많이도 울었던 일들이, 그때는 너무 기뻐서 밤잠 설치게 만들었던 일들이 지나고 나면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한참 머리를 쥐어짜고 나니, 하나씩 하나씩 떠오르는 일들이 있다.


나에겐 잊지 못할 선생님이 한분 계신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좋고 싫음의 구분이 명확했다. 친구를 사귈 때도 그러했고 공부를 할 때도 그러했다. 좋아하는 과목은 스스로 공부거리를 찾아서 할 정도였지만 싫어하는 과목은 내일이 시험이어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을 맡으신 분은 가정 선생님이셨고, 가정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그렇다고 가정 성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 시간에 문학 책을 읽거나 졸기만 했던 내가 좋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국어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책 읽기도 좋아하고 국어 선생님도 좋아했지만 도통 국어라는 과목은 내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그러나 국어 선생님은 나를 참 예쁘게 봐 주셨다. 수업 시간에 문학 책을 읽다가 들켜 교무실로 불려가 담임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셨다. 게다가 국어 시간에 교과서가 아닌 문학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시고는 수업이 끝난 후에 살짝 부르셔서 꾸중 대신 그 책에 대한 느낌을 물으시거나 다른 가르침을 주시기도 하셨다. 그때 국어 선생님께서 길러주신 독서후기를 쓰는 습관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고, 덕분에 나는 학생시절에 독서왕 같은 상들을 많이 받게 되었다. 꾸중보다는 관심과 따뜻함으로 나를 이끌어 주셨던 선생님, 내 평생 가장 잊지 못할 선생님이시다.


또 한명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 내가 스물 몇 해를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내 인생의 반을 함께 해왔던 사람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스타 플레이어였고, 나는 TV나 스포츠에는 관심이 없는 어린 아이였다. 사촌언니의 학교에 구경 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그 선수, 그때 그 선수가 나를 향해 날려준 미소 때문에 그날 이후 나 또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팬들 중의 한명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들을 나누게 되었고, 힘들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내게 즐겁거나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신앙이자 친구, 가족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평생 잊지 못할 일들이 여럿 있었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얼핏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소소한 일들이지만 59인의 삶 속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거나 전환점이 되고 힘이 되었던 일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이럴 때가 있었구나 하며, 지금 뭔가를 시작하려고 주춤하고 있는 나에게 커다란 용기를 주기도 한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는 재미없다, 별 이야기 없네,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매일 매일 나오는 신문 한 켠에 자리를 잡으면 읽어줄 수 있겠다 싶은 이야기였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던 책이었다. 워낙 짧은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유명한 단편집조차 읽지 않는 나였기 때문에 59인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 책이 내 눈에 예쁘게 보여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이야기들이었다. 잠시 지나온 내 삶을 뒤돌아 볼 수 있게 해준 이야기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눈에 쉽게 띄는 오탈자가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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