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평소 엄마랑 싸웠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으레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다. 엄마랑 어떻게 싸움을 한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딸이 철없는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조용히 들어주며 타이른다. 엄마가 잘못을 꾸중하면 딸은 조용히 생각하거나 생긋 웃으며 애교를 부릴 뿐일 텐데. 나는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엄마와 친구처럼 잘 지내는 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는 때로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보다 더 멋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랬는데, 며칠 전 엄마랑 다투게 되었다. 친구들이 엄마랑 싸웠다고 하면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결국 엄마와도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멈추어야 했는데, 그 생각이 들자 더 투정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한참을 울었다. 보진 못했지만 엄마도 뒤돌아서서 가슴 아파하셨겠지.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담담했는데, 이 한 문장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 내가 그랬었다.


“아이들은 가끔 제 마음이 아프면 부모도 같은 식으로 아프게 만들지.” ― p.123


이 책은 어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도 한 사람 등장하니 유령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가족 이야기는 모두 유령 이야기인 법이다. 사랑하던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앉아 있기 때문에. ― p.9


이 책은 찰스 ‘칙’ 베네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때 그는 월드시리즈에서 뛴 야구선수였지만, 어느 날 자살을 기도한다. 그는 선수 생활 이후 사업에 실패하고 술에 빠져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부인과는 이혼을 하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딸의 결혼식에는 초대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술을 마시고 어릴 적 살던 마을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화물차와 충돌한 그는 차에서 튕겨져 나왔고 가까스로 어릴 적 살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술과 사고의 충격으로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그는 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8년 전 돌아가실 때의 모습으로 살아계실 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칙의 아침을 차려주는 어머니, 칙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하루 동안 어머니는 칙과 함께 세 사람을 만나러 갔고 그동안 칙이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혼녀의 아들이 된 칙, 그는 함께 있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편이 되기보다는 아버지의 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머니가 죽던 날도 칙은 아버지에게 야구 선수로 뛰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야구경기에 나선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직 어머니로서의 인생만 살았다. 이혼녀라는 이유로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지만 두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남의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사는 물론이고 가정부 일 조차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 칙이 떠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신을 원망한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절대 아버지에게 다른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들 칙에게 왜 죽으려고 하는지 묻는다. 아들은 부끄러움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모두들 자신을 떠나서 포기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포기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말하며 사라진다.

어머니가 사라지자 칙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경찰관들의 소리를 듣고 눈을 뜬다.


“누군가가 가슴 속에 있으면 그 사람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니지.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단다. 심지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도.” ― p.190


우리들의 하루는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하루입니다. 그러면 매일이 단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소중해지지요. ― p.248


이 책을 읽다보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전개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칙도 자신의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깨닫는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깨달음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모티브가 주는 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깨달음처럼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한 문장씩 한 문장씩 곱씹어 보며 자신의 경험들을 대입해 보면 순간 뭉클한 감정이 쏟아진다. 부모라는 존재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어느 날 생각해 보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는 존재. 칙처럼 뒤늦게 “단 하루만 더”를 외치기보다는 매일을 그런 생각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의 부모님이 붙여 준 이름인 ‘폴린’으로 안 적도 없고, 어머니의 친구들이 붙여 준 이름인 ‘포지’로 안 적도 없습니다. 오직 내가 붙여 준 이름인 ‘엄마’로 알았을 뿐이지요. ― p.198


우리의 어머니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씨’라는 이름보다는 ‘~엄마’라고 불리어지며, 그래서 자연히 자신보다는 ‘~엄마’로 살아가게 된다. 오늘은 잃어버린 엄마의 이름을 찾아 드려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