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이 책의 제목이 내게 던져준 첫인상은 이랬다.

1. 화자는 여자 주인공일 것이다.

2. 어쩌면 뻔한 스토리의 이별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3.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프랑스 소설 특유의 지루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별을 고하는 과정이 눈물샘을 자극하기는커녕 어쩌면 너무 천천히 흐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남자가 출근하고 없는 집으로 남자의 아버지가 찾아온다. 잠결에 일어난 여주인공은 부산스럽게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그의 아버지를 보면서 빨리 가주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쓸데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늘어 놓으며 시간을 지체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져온 트럭에 아들의 옷장을 싣길 원한다. 그러면서 아들이 여주인공과 헤어지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자신이 아들의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말한다. 갑작스런 결별 선언에 여주인공은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런 그녀에게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사까지 털어 놓으며 아들이 그녀와 결별하고자 하는 이유를 쏟아 붓는다.

남자와 통화 연결이 되지 않자, 한밤중에 그녀는 부모님의 집으로 전화를 건다. 그녀의 전화를 받은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아들이 자신에게는 어떤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보다는 더 멋진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또 쏟아 붓는다.

그러나 그들도 이런 식의 결별 선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지, 좀 더 자연스럽게 헤어질 수 있도록 그때까지 결별을 유예하자고 한다. 그리고 어설프게 그녀를 위로하려 한다.


이 책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자연스럽게 화자가 바뀐다. 처음에는 결별을 당하는 여자가 화자였지만, 결별을 비겁하게 아버지께 대신 부탁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사이좋게 화자로 등장해서 자신들의 입장에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이 책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슬픈 이별 이야기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상했던 결별 선언만큼, 이상했던 가족들처럼 상당히 이상한 이야기이다. 네 사람의 화자가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슬프다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한편의 희극 코미디를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들이 끊임없이 토해내는 이야기들은 지루하기보다는 숨이 가쁠 정도이다. 그들이 쏟아 붓는 속도로 책을 읽다보면 정말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같은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었지만, 읽으면서 장폴 뒤부아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가 자꾸 떠올랐다. 이 책 또한 상황 설정은 우울했지만, 오고가는 대화는 정말 희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삽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얼핏 보면 그 색감이 너무나도 예뻐서 정말 예쁜 그림이겠거니 하고 들여다보면 상당히 엽기적인 그림들이다. 그러나 삽화들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덕분에 이 책에 대한 나의 첫인상 판정은 완전한 실패였다.


장폴 뒤부아, 마르탱 파주, 그리고 레지스 조프레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프랑스 소설 속에는 특유의 희극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읽을 때는 정말 숨가쁘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읽고나면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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