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에 기대고 싶다 - 오요나의 디지털 감성 포토 에세이
오요나 지음 / 무한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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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일상은 매일이 하루처럼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컴퓨터에서 눈 돌릴 틈 없이 일하다가 퇴근하면 바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마치 나는 일만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나의 소소한 행복인 책 읽을 시간마저 없다고 생각하면 ‘내가 왜 살고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겠는가.


이런 시점에서 만난 『그래도 희망에 기대고 싶다』는 나에게 대리 만족 같은 것을 안겨 주었다.

사무실이라는 성 안에 갇혀 푸른 하늘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에게,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봄 내음을 물씬 풍기는 꽃향기 한번 제대로 맡아 보지 못하는 나에게,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 바람을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하는 나에게 잠시 동안의 여유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살포시 ‘희망’ 같은 것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은 비록 우울할 정도로 답답하지만, 언제가는 나도 작가 오요나처럼 푸른 하늘과 작은 꽃, 스치는 바람을 담을 수 있겠지 하는 희망 같은 것. 지금은 비록 일에만 매달려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여유를 즐기며 나만의 하루를 만들 수 있겠지 하는 희망 같은 것 말이다.


사실 내가 처음에 여행과 사진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아름다운 풍경과 예쁜 인물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름답고 예쁜 것보다는 작고 소소하지막 소박한 것에 더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작가 오요나는 그런 작가가 아닌가 싶다. 소박한 것에서 의미를 찾는 작가, 작고 소소한 것의 소중함을 아는 작가. 나도 작가 오요나처럼 그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살짝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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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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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아 떠나는 엔리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머리 속에서는 오래 전의 우리들의 모습이 교차되어 지나갔다.


7,80년대 가족을 위해 머나먼 사막의 나라로 떠나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모래 위의 건설 현장에서 땀 흘렸던 우리네 아버지들, 우리 자식들에게만은 이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자식들을 맡겨 두고 공장으로 일 나가시던 어머니들,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형, 언니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라우데스의 이야기는 비단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불과 2,30년 전의 우리들의 모습도 그러했었다.


화물 열차의 지붕이나 난간에 매달려 미국으로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전쟁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전쟁 시절,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엔리케처럼 남쪽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었다. 도중에 열차에서 떨어져 다치기도 하고, 가족들이랑 헤어지기도 했다.

사실 총, 칼을 겨누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다. 엔리케는 가난과 전쟁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게다가 중국이나 일본처럼 가까운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덕분에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인양 느껴졌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 방식은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원래 기획기사 시리즈로 연재된 이야기인지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엔리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 객관적이어서 읽는 사람도 그렇게 따라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작은 아이를 노리는 독수리를 담은 보도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 보도사진은 퓰리처 보도사진상을 받게 되었지만, 이후 사진 기자의 윤리성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사실을 알린다는 것, 상당히 중요한 것이지만 가끔은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모습에 거부감을 느낄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을 더 보태자만 ‘생생한 기록’을 담은 사진이 몇 장 되지 않았다는 점, 그마저도 사실을 보여주기보다는 사진 찍기 기술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또 적은 사진의 기록을 텍스트로 만회하려고 해서인지 문장이 자연스럽게 읽혀지지가 않았다. 했던 말을 또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문멕이 매끄럽지도 않았다. 물론 이것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내겐 낭만적이고 멋진 기차 여행이 어느 누군가에겐 치열한 생존 전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 누군가도 나처럼 그런 멋진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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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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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되던 해에 서울을 떠나온 이후로 ‘내 속의 서울’은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것만 같고, 매일 매일 즐거운 일들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또 그곳으로 가면 오랫동안 내가 열망해왔던 것들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항상 동경의 대상이 되어온 곳이지만, 쉽게 발을 내디딜 수도 없는 곳이다. 이번에는 꼭 그곳으로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이내 마음을 돌려 버리고 만다. 그곳의 쓸쓸함과 치열함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나는 여전히 틈만 나면 그곳으로 갈 궁리를 하고 있다.


내게 그곳은 그런 곳이었지만, ‘문학 속의 서울’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니 그 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에서 묘사한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꽃은커녕 어쩌다가 자란 꽃마저 짓밟을 모양이다.

삭막함, 치열함, 빽빽함, 쓸쓸함...

문학 속에서 묘사한 서울의 모습들은 이런 단어들만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무리 문학이 ‘허구’의 산물이라 외쳐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문학 속의 서울은 내가 그토록 동경한 ‘그곳’의 현실이었다.

사실 이런 서울의 모습은 비단 서울의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이기 때문에 문학 속에서도 더 자주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서울만이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도시 어느 곳을 가든 마찬가지라고 본다. 어차피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할테니까.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요즘 TV 속 서울 사람들은 아주 멋지게들 살고 있다. TV나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사실 세계에서 10대 도시로 꼽힐 만큼 서울은 멋진 도시이다. 그런 서울의 과거와 어두운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란 물고기만큼 기억력이 나쁜 족속들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오늘의 화려한 모습에 익숙해 지다보면 이런 면들을 쉽게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너무 부정적인 것도 좋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가끔은 상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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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가족
권태현 지음 / 문이당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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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 사실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읽은 김정현의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첫장을 넘기면서 쓰여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식상함이었다. 글쎄, 얼마나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마주하게 된 이야기는 너무 우울했다.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던 한 가정이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방 한 칸 마련할 돈도 없이 친척집으로 뿔뿔이 훝어지게 된다.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어린 아들 딸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감정을 감추며 아버지를 위로할 줄도 알았다. 고운 얼굴을 가진 엄마는 아이들 때문에 처음으로 힘든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한 이야기였지만 웃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그들에 비하면 썩 괜찮다는 만족감도 들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되면, 게다가 서로 뿔뿔히 흩어져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 다정했던 가족들 사이에서도 불만과 불신이 불거져 나오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점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아내는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한때 대기업에서 촉망 받던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지낸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지금은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만, 나도 이들처럼 언제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아버지의 사업 실패 탓으로 돌리는 가족들이 너무 싫었다. 아버지가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한 탓도 있었지만, 아버지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일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지는 못했지만, 좀 더 넉넉하고 편안한 집에서 살게 해주고픈 마음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모두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가족들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렇게 발버둥치는 아버지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까지 있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아버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예전에 자신이 가입해 놓은 보험만이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살을 결심하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릴 때는 내 마음도 울컥해서 함께 울고 말았다. 아버지의 자살이 미수에 그치고,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보고서야 가족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다시 뭉치게 된다.

식상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내 감정을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이야기 속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아침 일찍 혹은 새벽에 대합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안스러운 눈길은커녕 오히려 피해 다니려고 했다. 얼룩진 옷과 몸에서 나는 냄새, 한 손에 들고 있는 소주병 때문에 거부감과 함께 두려움도 들었기 때문이다. 또 저 정도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왜 그런 생활을 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에게도 이런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역시 취재한 티가 글에서 묻어 나왔다. 글에서 단순히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 현실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족이 마지막에 화해를 해서 다행이었지만 주인공이 너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점, 그리고 화해 이후 가족들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결말에 여운이 있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왠지 가족이 다시 모여서 사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편안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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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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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는 ‘혼자’라는 것을 참 많이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다니기, ‘혼자’ 밥먹기, ‘혼자’ 잠자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쇼핑하기... 나에게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용기를 내어 ‘혼자’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 옆자리가 비어있는 쓸쓸함도 싫었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어색함도 싫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이 지루하고 어색한 여행이 끝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그 설레임 하나로 4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오히려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좋아하는 영화를 혼자 보러가서 조용히 영화에만 몰두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좋다. 친구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불필요하게 두리번거리는 일 없이 나에게 필요한 것만 사서 돌아올 수 있는 혼자만의 쇼핑을 즐긴다. 치즈 케잌 한 조각,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 조용히 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좋아한다.

특히 오랜 시간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에만 몰두할 수 있는 혼자 떠나는 기차 여행은 내 삶의 활력소라고도 할 수 있다.


혼자라는 ‘두려움’을 ‘여유로움’으로 발전시킨 것은 지루하고 어색한 기차여행 덕분이었다. 항상 빠르고 시끄러운 것에 길들여져 있던 내게 기차라는 것은 참 지루한 것이었다. 하지만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비록 두 발로 흙을 밟을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곳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느리게 지나가는 풍경들은 그동안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며, 바쁘게 달려왔던 내 삶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기분도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참 어렵게 읽었다. 『야간열차』라는 제목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기차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쉽게 덤벼들었는지도 모른다. 야간열차 안에서 작가와 함께했던 히치콕이나 카프카도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편식이 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쉽게 읽혀지는 소설책들,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종류의 책들에 대한 난독증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책을 덮으면서 정말 이 책은 ‘야간열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야간열차의 지루함, 그러나 뭔가에 몰두할 수 있고 평소와는 달리 깊은 사색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 이 책도 그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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