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열차 - 꿈꾸는 여행자의 산책로
에릭 파이 지음, 김민정 옮김 / 푸른숲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과거의 나는 ‘혼자’라는 것을 참 많이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혼자’ 다니기, ‘혼자’ 밥먹기, ‘혼자’ 잠자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쇼핑하기... 나에게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용기를 내어 ‘혼자’ 기차에 몸을 실었다. 내 옆자리가 비어있는 쓸쓸함도 싫었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어색함도 싫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이 지루하고 어색한 여행이 끝나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그 설레임 하나로 4시간을 버텨 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오히려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좋아하는 영화를 혼자 보러가서 조용히 영화에만 몰두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좋다. 친구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불필요하게 두리번거리는 일 없이 나에게 필요한 것만 사서 돌아올 수 있는 혼자만의 쇼핑을 즐긴다. 치즈 케잌 한 조각,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과 함께 조용히 카페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좋아한다.

특히 오랜 시간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에만 몰두할 수 있는 혼자 떠나는 기차 여행은 내 삶의 활력소라고도 할 수 있다.


혼자라는 ‘두려움’을 ‘여유로움’으로 발전시킨 것은 지루하고 어색한 기차여행 덕분이었다. 항상 빠르고 시끄러운 것에 길들여져 있던 내게 기차라는 것은 참 지루한 것이었다. 하지만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비록 두 발로 흙을 밟을 수는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그곳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느리게 지나가는 풍경들은 그동안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하며, 바쁘게 달려왔던 내 삶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기분도 차분해지고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참 어렵게 읽었다. 『야간열차』라는 제목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기차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겠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쉽게 덤벼들었는지도 모른다. 야간열차 안에서 작가와 함께했던 히치콕이나 카프카도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쉽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편식이 심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쉽게 읽혀지는 소설책들,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른 종류의 책들에 대한 난독증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책을 덮으면서 정말 이 책은 ‘야간열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야간열차의 지루함, 그러나 뭔가에 몰두할 수 있고 평소와는 달리 깊은 사색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 이 책도 그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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