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가족
권태현 지음 / 문이당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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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 사실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읽은 김정현의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했고.

첫장을 넘기면서 쓰여있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식상함이었다. 글쎄, 얼마나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마주하게 된 이야기는 너무 우울했다.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던 한 가정이 아버지의 부도로 인해 방 한 칸 마련할 돈도 없이 친척집으로 뿔뿔이 훝어지게 된다.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어린 아들 딸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감정을 감추며 아버지를 위로할 줄도 알았다. 고운 얼굴을 가진 엄마는 아이들 때문에 처음으로 힘든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한 이야기였지만 웃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그들에 비하면 썩 괜찮다는 만족감도 들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되면, 게다가 서로 뿔뿔히 흩어져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 다정했던 가족들 사이에서도 불만과 불신이 불거져 나오기 마련이다. 아이들은 점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아내는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한때 대기업에서 촉망 받던 아버지는 서울역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지낸다.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불안해졌다. 지금은 만족하면서 살고 있지만, 나도 이들처럼 언제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리고 모든 문제를 아버지의 사업 실패 탓으로 돌리는 가족들이 너무 싫었다. 아버지가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한 탓도 있었지만, 아버지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일 때문에 가정에 충실하지는 못했지만, 좀 더 넉넉하고 편안한 집에서 살게 해주고픈 마음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모두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가족들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렇게 발버둥치는 아버지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까지 있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아버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예전에 자신이 가입해 놓은 보험만이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살을 결심하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릴 때는 내 마음도 울컥해서 함께 울고 말았다. 아버지의 자살이 미수에 그치고,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보고서야 가족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다시 뭉치게 된다.

식상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우려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이렇게 내 감정을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이야기 속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아침 일찍 혹은 새벽에 대합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안스러운 눈길은커녕 오히려 피해 다니려고 했다. 얼룩진 옷과 몸에서 나는 냄새, 한 손에 들고 있는 소주병 때문에 거부감과 함께 두려움도 들었기 때문이다. 또 저 정도면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왜 그런 생활을 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사람들에게도 이런 어쩔 수 없는 사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역시 취재한 티가 글에서 묻어 나왔다. 글에서 단순히 소설 속 허구가 아니라 현실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족이 마지막에 화해를 해서 다행이었지만 주인공이 너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점, 그리고 화해 이후 가족들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결말에 여운이 있어서 좋을 수도 있지만, 왠지 가족이 다시 모여서 사는 모습을 봐야 마음이 편안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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