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 땅에 태어나서 - 한국인의 삶과 죽음 송기호 교수의 우리 역사 읽기 1
송기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노인을 위한 강좌는 없다

노인들이 뿔났다. 화난 이유는 국립중앙박물관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관련 시민강좌의 수강자격 

을 63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노인들은 박물관회의 제한 규정은 ‘노인차 

별’이라고 반발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이 문제를 거론하였다. 박물관회 측은 노인 수강자 

 격 제한은 노인들의 건강상 문제를 고려해서 30년 전부터 있었으며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부터 60대 이상, 이하로 나누어 운영한다거나 70대 미만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관련기사를 쭉 읽고나니 박물관회 측의 설명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인을 위한 강좌가 마련되었다면 63세 이상  

노인들은 노인 대상으로 한 강좌에 수강하면 되었을 것이고 굳이 노인차별을 언급하면서까지  

화를  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박물관회의 말이 정말 사실인지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회 홈페이지 

를 확인하였다. 노인들이 이의를 제기한 그 문제의 강좌는 ‘특설강좌’이다. 특설강좌 모집대상에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63세 미만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강좌 모집 안내에 분명히 노인 제한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국립중앙 

박물관에 찾아가서 현장 접수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접수를 담당하는 직원이 나이  

제한을 언급하면서 강의 신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63세 이상 노인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특설강좌 이외에 다른 강좌들의 모집 요강에도 나이 제한이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박물관회 측에 서 있다고 말한 순수 노인들을 위한 강좌는 단 한 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수강신청을 원하는 노인들이 홈페이지 속 모집 안내를 믿고 신청했다간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늙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노인 차별에다가 강좌 모집 안내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박물관회의 처사에 노인들이 뿔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회의 노인에 대한 인식 

옛날에는 유교 사상의 영향에 의해서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였다.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 

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덕목이 있는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인 공경이었다. 지금까지도 유교적 사상이 짙은 노인 공경에 대한 전통이 이어져 오 

고 있다. 항상 식사할 때는 나이가 높은 윗사람이 먼저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밥상머리 교육과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을 위해서 자리를 양보할 수 있도록 만든 버스의 경로석이 있다. 이렇듯,  

리 생활 곳곳에 노인 공경과 관련된 사회적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러나 예법과 예의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에서도 노인 차별이 있었던 듯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노인을 무시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옛날 양대녕이 약관일 때 주한과 주앙 두 사람과 함께 한림원에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새었다. 매사를 논할 때마다 양대녕은 그들을 업신여겨서 “두
  노인
은 어떻게 생각합니까.”하면 주한은 매우 불쾌하여 “그대는 늙은이를 그리 깔보지 

  마소. 필경은 이 백발을 남겨서 그대에게 선사할 것이네.”했다. 이에 주앙은 “백발을
  남겨서 그에게 주지 마오. 다른 사람이 또 그를 깔보는 것을 못하게 해야죠”했다. 그  

  뒤 양대녕은 과연 나이 오십도 못 살았다. 

  - 박지원『열하일기』구태이문 편, 송기호『이 땅에 태어나서』‘태어나서 살고지고 1’  

     p 135 재인용 -

노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태어났고 오래 살았기에 젊은 사람과 차원이 다른 삶의 진리 

가 축적,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신은 성숙되더라도 육체는 점점 약해지고 이전과 다른 신체적 

변화를 갖게 된다. 젊었을 때 혈기왕성했던 힘은 노인이 되면서 무거운 것조차 들 수 없게 되어버 

리고, 탱탱했던 피부에는 주름이 생겨온다. 시력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 돋보기안경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이다 보니 기본적으로 농사일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노인들이 삶의 스승으로서 대우받는다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 

는 약자였다.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직하는 정년제처럼 조선 시대 관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 문종 시대에는 70세가 되면 스스로 벼슬자리에 물러나 

야 하는 치사(致仕)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벼슬자리에 물러나게 되면 해당 고을에서 매달 술과  

고기를 보내왔다고 한다. 퇴직 이후에 받게 되는 오늘날의 퇴직연금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일 

을 계속 하고 싶어도 정년제에 따라 스스로 퇴직하는 것이 상례인 반면에 조선의 치사제도는 지금 

 정년제와 비교하면 효력이 미미했을지도 모른다. 70세가 넘어서도 국가의 필요에 의해 퇴관  

하지 못한 자에게는 궤장(几杖)이라는 지팡이를 하사하는 일이 있었다. 70세의 사대부의 입장에 

 은퇴는 활동력이 상실된 노인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최후의 선택이며 오랜 세월 어렵게 키 

워 온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령이지만 건강에만 이상이 없다면 사대부들에 

게는 지금까지 올라온 높은 벼슬자리를 스스로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 
 

노인을 공경해야한다는 유교적 이념이 내세운 사회를 지향하는 조선 사회에서도 은근히 노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인’이 되고 싶어 했다. 즉, 늙더라도 오래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의 평균 인구 수명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옛날에는 의학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못해서 지금은 간단히 치료만으로 치유할 수 있는 병에도 사람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국에 전염병이 휩쓸었다하면 엄청난 인명 피 

해를 입었다. 그리고 사회적 형편이 좋지 않은 서민들은 먹는 것도 부실하다보니 굶어 죽는 사람 

도 많았다. 다양한 문제로 인해서『열하일기』속 양대녕처럼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다반사였으며 심지어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어린이들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 오죽했으면  

태종도 50대에 이른 자신이 노인이라고 생각했으며 10년 뒤에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겠는가. 

(태종은 자신의 예언대로 하지 못했다. 60세를 넘기지도 못한 채 55세의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50세가 되어도 특별한 잔치는 하지 않는다. 60세가 되어서야 환갑잔치를  

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50세가 되면 잔치를 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영조는 오순 어연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평균 인구 수명이 50세임을 감안하면 50세가 된  

영조는 어느 정도 오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순잔치는 영조가 단순히 50세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영조가 장수하여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도  

겨져 있다. 그런 화려한 잔치를 열어서인지 영조는 82세의 나이로 역대 조선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유령 노인 

여러 가지 역사적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장수하는 사람들은 국가적인 경사였다. 조정에서는 

대대적으로 조선 인구의 수명을 조사하여 장수한 사람이 있으면 포상으로 많은 곡식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해마다 8월에는 전국의 노인들을 궁궐로 초대하여 양로연(養老宴)이 치러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는 포상과 국가적인 연회에 눈이 멀어 나이를 속여 보고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 이웃나라 일본이 장수 인구 통계 결과가 허위라는 것이 밝혀져서 장수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일본 최고령자로 알려진 111세의 노인이 실제로 30여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밝혀 

졌으며 100세 이상 고령자 노인 가운데 25명은 소재 불명자라고 한다. 이런 오류가 발생한  

이유는 고령 인구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일본의 행정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지만  

‘장수’에 대한 열망이 낳은 인간의 욕심도 배제할 수 없다. 사망한 111세 노인의 가족은 생전에  

노인이 받았던 연금을 받기 위해서 30여 년 동안 사망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며 인구 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면 노인이 살아있다고 허위 신고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본에는 호적상 

에서는 존재를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미 죽은 사람이 된 노인들을 이른바 ‘유령 노인’이라고  

한다. 조선과 일본의 이런 모습은 불행하게도 오래 살고 싶어하는 장수를 향한 열망과 돈에 집착 

하는 물질 만능주의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특수적 사회 문제이다.  

 

 

 장수국가가 된다고 해서 좋기만 할까?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하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 T.S. 엘리엇 <황무지> 황동규 역, 민음사, p 44 -  

 

시의 구절에 등장하는 무녀는 태양의 신 아폴로에게 손안에 든 먼지만큼의 많은 햇수의 수명을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그는 아폴로로부터 어마어마한 수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녀는 늙어만가고 거의 죽은 시체와 다름없는 메마른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 이유는 어마어마한 수명만큼의 젊음도 달라는 말을 안 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녀는 죽음보다 

도 못한 죽은 자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다.  

 

우리 인간도 무녀와 같이 장수의 꿈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모르는 채 무작정  

바라기만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노년층이 많아질수록 사회 내 계층 분포의 격차가 심해질  

뿐이고 사회적 자본도 노년층 복지에 편향될 우려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도한 집중 투자로  

인해서 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렇게 좋은  

현상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의 표상(表象) 

으로 결부시켰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학 기술도 발달된 만큼 인간의  수명도  

연장된다. 이제는 노년층도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만큼 오래 사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어쩌면 일본과 같은 경우처럼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부모가  자신이 받은  

연금으로 자식을 부양하고 먹여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소식이 남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먼 훗날, 초고령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사례를 교훈삼아 

우리나라도 초고령 사회의 진입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 기사 출처 및 링크, 관련 홈페이지   

  

[박물관 시민강좌, 노인은 오지 말라?] 한국일보 8월 10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8/h2010081002304721950.htm  

 

국립중앙박물관회 
http://www.mumes.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의 유토피아 -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꿈꾼 세계 키워드 한국문화 5
서신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토피아, 엘도라도, 샹그릴라 
 

 『○○투어,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국내 섬 여행』데일리안 2010년 5월 25일 입력 
 

 『윤증현 “공짜점심은 없다..... 유토피아적 주장』노컷뉴스 2010년 3월 23일 입력

우리나라 대중 매스컴에서는 ‘이상향(理想鄕)’이라는 단어보다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리고 대중들도 매스컴에 주는 전달의 영향에 의해서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즉,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요즘은 유토피아의 뜻이 확대되어  

다음과 같은 기사 제목과 같이 차용되고 있다. 인간의 손이 거치지 않은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섬을 유토피아라고 말하며,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사상이나  

제도에도 ‘유토피아적(Utopian)'이라는 단어로 비유된다. ‘유토피아’는 영국의 정치가인  

토머스 모어가 쓴 공상 소설의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 어로는 ‘아무데도 없는 나라’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제목 그대로 ‘유토피아’라는 이상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국가의  

생활상을 묘사하였는데 작품 의도는 당시 영국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유토피아’ 말고도 

이상 세계를 뜻하는 단어들이 있다. 아마존 강에 있다는 전설의 황금 도시  

‘엘도라도(El Dorado)’, 제임스 힐튼의 동명 제목 소설로 인해 알려지게 된 평화와  

행복의 도시 ‘샹그릴라(Shangri-La)’. 재미있게도 이 세 가지  이상향들은 각각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을 대표하고 있다. 그리고 유토피아처럼 말  그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1997년에 중국 정부는 소설 속의 ‘샹그릴라’가  

티베트에 위치하고 있는 ‘중뎬’이라는 지역임을 공식 발표를 하였고 4년 뒤에는 지명을  

아예 ‘샹그릴라’로 개명하였다. 티베트는 지리적으로 고원이 많고 천연의 자연 상태를  

간직하고 있어서 이상 세계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중국과  

티베트와의 관계가 냉랭한 분위기임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친(親) 티베트적인 모습을  

전 세계에 알려야 하는 중국의 ‘샹그릴라’ 공식 발표는 미덥지가 않게 느껴진다.  

‘샹그릴라’는 소설 속에서만 그려지는 이상 세계로 기억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거 같다. 
 

 

 우리나라에도 유토피아가 있었을까?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TV나 신문 속에서 등장하는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많이 보고  

들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용어의 유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토피아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 세계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매스컴의 영향으로 인해서 이상 세계=유토피아’ 라는 서구적인 인식에 사로잡혀  

정작 우리나라의 이상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나날이 갈수록 홍수 흐르듯  

유입되고 있는 서구 문화의 영향과 제대로 된 우리나라의 유토피아 문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하지만 오랜 가뭄 끝에는 단비가 한 번이라도 내리는 법. 우리나라의 유토피아 문화에  

관한 도서가 출간되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저자는 역사 속에 사라져 가고  

있던 우리나라 고유의 유토피아를 복원하였으며 유토피아와 관련된 선인들의  

문헌 자료와 일화, 그리고 그림까지 배치하여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한국적인 유토피아의 세 가지 키워드

책에서는 이상 세계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을 엿볼 수 있다. 안평대군의 꿈을 화폭에 담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부터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 속의 허생이 세운 이상 국가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평소 매스컴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토피아인 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이상향과 한국의 이샹향의 특징을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서양의 이샹항은 대부분 사회 현실 속의 문제를 비판하거나 해결하는데 목적이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상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자연친화적이다. 문헌 자료에 등장하는 이상향은 항상 사람의 인적이 드문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곳으로  

묘사된다. 특히 이상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자연물은 바로 ‘복숭아’다. 옛날부터  

복숭아를 먹으면 천수를 누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래 사는 산신들이 사는 세계에는  

꼭 복숭아나무가 있다고 믿어왔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무릉도원에 가게 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본 장면들이 너무나 아쉬워서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화가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림의 오른쪽을 꿈 속 이상향으로  

표현했듯이 이상향을 상징하는 복숭아나무 밭이 펼쳐져 있다. 이 밖에도 이상향을 그린  

다른 그림들도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평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자연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두 번째 특징은 장수(長壽)를 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상들이 꿈꿔왔던 이상 세계는 속세를 떠나 자연에 칩거하는 신선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조상들의 문헌에 살펴보면 현실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 우연히 이상 세계에  

들어가게 되어 몇 일간 그 곳에서 지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다시 현실 세계에  

돌아보면 자신이 살았던 현실은 이미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이상 세계의 하루는 현실 세계의 10년과 맞먹는다. 장수를 누릴 수 있는 이상 세계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상들은 장수를 하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도 이런 이상 세계를 통해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세 번째 특징은 유교적인 이상 세계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토머스 모어는 당시  

영국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토피아라는 현실에서 선보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학자들도 토머스 모어처럼 당시 조선 시대의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이상 세계를 꿈꿔왔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에는 왕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이 계급 없이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유교 사상은 버리지 않았다.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만큼 이웃끼리 서로 도우면  

살아야 했으며 웃어른을 공경하는 기본예절은 유지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문을  

공부하여 정신적 수양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조선 사회에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유교이념을 탈피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좀 더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보다  

현실 세계와 같은 이상 세계를 구상했다는 점은 눈 여겨 봐야할 부분이다. 
 

 

 판미동 사람들,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를 세우다 
  

영국의 로버트 오언이나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는 당시 산업혁명으로 근대화된  

유럽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고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의 부족으로 그들의 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들 이외에도 새로운 이상적 공동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되었으며 

시도 끝에 이상적 사회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나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못했다. 

유토피아 실현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공보다는 실패의 결과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이상적인 사회 공동체가 있었으며 그것도 무려 10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관련 문헌 자료들을 통해 서

경기도 가평군의 판미동이 우리나라에서 세운 이상적 사회 공동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석이라는  명망 높았던 가문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회 공동체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유교 이념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체 일원 모두 평등함을 갖춘 그들만의 사회  

제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점은 판미동 사람들은 개방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상향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있는 역설적인 공간이다.

그만큼 이상 세계가 있다고 해도 현실 세계 사람들이 그곳을 찾기란 힘들다.
이상향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실 세계의 사람이 자신들의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며, 그 사람이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비밀을 

유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판미동 사람들은 다른 지방에서 온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인사성 밝은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판미동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판미동은 유명해지고 전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판미동 사회 공동체도 100년 이상은 넘기지 못했다. 전국에 알려진
소문에 의해서 공동체 관리가 어려운 것도 있었으며 신석 집안의 후손이 벼슬에 올라
서울로 이주하게 되면서 판미동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하지만 서양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이상 사회 건설을 우리나라 조상들은 실현시켰으며 심지어 100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이다. 

 

 상상하라, 그러면 이루어지게 되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문화를 접하게 되면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상상력이  

집약된 영화나 만화들을 보게 되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나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문화적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심지어 문화적 현실의  

문제점의 근원은 유교 사상에서 기인한 조선 사회의 고정적이며 폐쇄된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근거는 어불성설이다. 조너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라퓨타 섬의 학자들처럼 조선의 지식인들이 상상력을  

학문에서 무시한다거나 단순히 가부좌 틀어서 사서삼경을 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상 세계를 꿈꾸었다.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물들은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한층 더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던 지식인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시도하였다. 그래서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에 이른다.  

이래도 우리나라 문화는 상상력이 결여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완벽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상주의자들이 하는 생각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고정된 사고의 틀과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발전은  

불가능하다.  그런 공상주의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부 실제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파블로 피카소의  

말처럼 우리가 헛된 망상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잡탕 축구 팀?

대망의 월드컵 결승 팀이 결정지을 4강전이 내일 펼쳐진다. 4강전을 치를 네 나라들은  

모두 수십 년 만에 준결승 문턱까지 진출한 터라 이번 경기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될  

것이다. 아프리카 첫 월드컵의  우승팀이 누가 될 것인지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4강에 진출한 국가 중에서 전차군단 독일이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8강전에 또 하나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를  

4골이나 넣으면 완승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 국민들은 이번 독일의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독일 극우파 네티즌들은 독일 축구팀이 

다문화 팀이라고 말하면서 비(非) 독일적이라는 이유로 4강전에서 탈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국가 축구팀을 ‘잡탕’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독일 축구팀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외국계 선수가 무려 11명이나 된다.
축구계의 모차르트 포돌스키와 독일 최고의 골잡이 클로제는 폴란드 태생이다.  

메수트 외칠은 터키, 보아텡은 가나, 사미 케드라는 튀니지, 카카우는 브라질계이다.  

극우파 네티즌들의 독일 대표팀 비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계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순수 혈통 독일 선수들이 골을 넣어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일의 이번 월드컵 성적을 살펴보면  

클로제는 4골이나 넣었고, 다른 외국계 독일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외국계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에서의 극우파들의 비난은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 아니다. 4년 전, 자국에서 펼쳐진 월드컵에서 독일은 조별 예선에서
폴란드와 맞붙게 되었다. 경기 결과는 1:0으로 독일이 우승하였다. 경기가 끝나면 우승  

국가의 선수들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여 기분 좋게 웃으면서 패배한 상태 팀의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클로제와 포돌스키만은 우승의 기쁨에 대한 웃음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클로제는 담담하게 그라운드를 떠났으며 포돌스키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였다. 비록 지금은 독일 국적이지만 태생은 폴란드였기 때문이다.  

비록 팀은 이겼어도 자신들이 자랐던 예전의 나라 사람들 앞에서 기쁨을
표현하기가 불편하였을 것이다. 이를 본 독일 극우파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독일인으로서의 행동답지 않다면서 비난을 하였다. 그리고  

독일에서만 다문화 대표 팀에 대한 비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표 팀도 독일처럼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었던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계이다.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의 소속 팀 절친이자 이번 월드컵 주장을  

맡은 에브라는 세네갈 출신이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을 넘보고 있는 독일과 비교하면  

상황이 좋지만 않다. 1무 2패에다가 고작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예선 탈락을 하여  

너무 일찍 고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월드컵 예선 경기 전부터 프랑스 축구 팀 내부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선수들은 감독의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어 반발하여 훈련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프랑스 축구팀의 희망이었던 아넬카는 감독과의 불화로  

인하여 월드컵이 치러지는 도중에 퇴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프랑스  

축구팀의 불협화음에 분노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축구팀이 귀국하는 대로 감독 및  

선수들과의 면담과 청문회를 하기로 하였다. 고국에 돌아와 청문회 자리에서도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 네 탓이다라는 둥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축구팀의 몰락에 대해서 

프랑스 사회평론가들은 대표 팀의 구성원이 다양한 국적의 인종이 모여 있는 만큼  

그들 간의 이기주의와 분파주의가 낳은 대립이 스스로 자멸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독일 극우파들의 정체 
 

다민족 다문화 국가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점점 발달되어 가는 통신 및 교통  

기술의 발달과 국경의 벽을 허물고 있는 글로벌 사회인만큼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살거나 아예 새로운 국적을 얻어 살기도 한다. 그래서 유럽  

대륙에서도 미국처럼 다문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1999년부터 유로화가 통용됨에 따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사회 현상이 다민족 다문화로 변화할수록  

자신들의 민족이 우수하고 타 민족을 무시하는 인종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독일과 같은 경우에는 과거 나치스 정권이 주창한 반 유대주의, 백색인종지상주의  

사상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 독일 축구팀을 비판한 극우파들은 네오나치즘과  

일맥상통하다. 이들은 독일인을 위한 독일을 슬로건으로 하며, 독일 민족의  

우위와 국민 공동체의 건설, 전후체제의 비판, 동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반 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악화되어가는 독일의  

경제 상황의 원흉을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이라고 지목하면서 ‘외국인은 물러가라’,  

독일인을 위한 독일’이라는 구호 아래 살인과 방화를 서슴지 않고 있다. 독일의 통일  

이후에도 더욱 기승을 부려 지금까지도 독일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에도 국가 내 타 민족을 차별하는 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월드컵을 치르고 있는 남아공도 과거에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하여 민족차별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백인이 흑인들을 차별 및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의 원인이 남성이라고?

현재 유럽의 사회 현상을 살펴보면 사이토 다카시가 주장하고 있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영향을 보고 있는 거 같다. 세계사를 움직이게 한 힘은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힘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는 화합과  

존중의 시대를 표방하여 교류를 하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제국주의’라는 구시대적 힘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에서 전쟁이라는 행위는 필수불가결이다. 인간은 항상 남을 지배하려는 습성이  

있다. 남의 물건이 탐이 나면 빼앗고 싶어지고, 상대방이 자기보다 약하면 우월감을  

가지게 되어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진다. 특히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는
여성보다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무척이나 강하다. 그래서 세계사에서 그려지는 전쟁의
영웅들은 모두 다 남성이다. 다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서 역사가들의 평가가 달라지며
심지어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학문이다. 사료만 가지고 단순히 남성들은  

전쟁광이다, 남성은 여성보다는 욕망이 가득하고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난폭해진다고  

단정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성들만의 역사 속에서는 여성 지배자들의 기록도 있다.
무적함대 스페인을 무찌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나 자신의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지배자가 된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있다. 사이토 다케시는 남성의 야망이
제국주의를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에 대한 근거로 알렉산더와 스파르타 등의  

예를 들어가며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죄인으로  

남성이라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결국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전쟁이라는 대결 행위를 통해  

남을 억압하여 해결하는 존재이다. 
 

 

 지나친 욕심이 부른 로마 제국의 몰락 
 

상대방을 지배하려면 자신은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해야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심리도 가지게 된다.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이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무시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배자보다 우월하게 만들거나 아예 그를 쓰러뜨려 역전의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배당한 자들은 지배자들에게 당한 억압과  

고통의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버리지 않으며
그런 민족성을 토대로 같은 민족들끼리 똘똘 뭉쳐 지배자로부터 독립을  

원하기도 한다. 이에 지배자들은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피지배자들이 반역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조금씩 그들을 풀어주기도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카이사르의 

정책이 그 예이다. 로마 제국은 황제만 신으로 생각하는 지배 계층과 다른 신을 믿지  

않는 특징을 가진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의 피지배 계층 간의 충돌이 잦았다. 하지만  

로마는 사회적 내분 속에서도 굳건히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치게 된다. 

카이사르는 국가 내의 종교에 대해 관용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만의  

고유한 민족성과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래 된 로마 제국 시대부터
다 민족 다 문화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나날이 갈수록 로마  

제국의 영토가 커져만 갈수록 지배자들의 욕심도 커져만 갔다. 영토 확장을 통해 다른  

나라의 지배하여 자신들의 부와 노예들을 점차적으로 불려나갔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로마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완충 요소인 포용성이 사라지게 된다. 지배자들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한  방법에는 전쟁 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피지배자들을 전쟁에 참여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피지배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야만했고, 지배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생을 부귀영화로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당한 사회에 참을 만큼 참았던 피지배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들의 민족성을 표출하여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하게  

된다. 타 민족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결국  

로마 제국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잡탕 대표팀의 쓸쓸한 결과

로마 제국의 잘못된 사회 시스템도 프랑스 축구팀의 상황과 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도 전쟁처럼 이겨야 하는 대립 행위이다. 축구가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전 세계를 흥분하게 만들고 미치게 하는 인기 종목이다. 대륙의 축구 최강 팀이
한자리에 모이는 월드컵에서 황금빛 트로피와 우승의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서 스포츠
전쟁을 벌인다. 남성들이 서로 피 튀기면서 전쟁에서 싸우듯이 월드컵도 남성들이
땀 흘리며 그라운드에 구르면서까지 공 하나 가지고 적의 골대에 골을 넣거나
자기의 골대에 골이 들어가지 않게 막는 치열한 전쟁이다.
전쟁사에서 항상 우승자가 역사의 기록에 남기듯이 월드컵에서 우승하게 되면
영광의 기록이 평생 따라붙게 된다. 사실 프랑스도 이번 월드컵만큼 우승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4년 전 독일 월드컵에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니깐.  

축구팀 구성 선수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 프랑스 축구팀이 

플레이가 뛰어난 다른 국적의 선수들을 발탁하였고, 프랑스인이 아닌 타 국가 선수를  

주장으로 뛰게 한 것은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승만을 바란 나머지  

우승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말았다. 축구팀 선수들을 살펴보면 티에리  

앙리, 아넬카, 말루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들과
기본적으로 탄탄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선수들 간의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 있으면 한 두 사람의 유능한 공격수가 있는 팀이
부럽지가 않다. 우리나라 대표 팀은 비록 박지성 이외에 세계적으로 유능하다는  

유명 선수는 없다지만 공수 간의 완벽한 조화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과신하였다. 그리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위한 축구  

운영으로 월드컵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 전부터 치른 평가전에서 기대치에 

떨어지는 경기 운영을 나타내자 축구 팬들은 감독의 능력에 비난을 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지휘 능력이 언젠가 월드컵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다.  

팀 내 자기가 다스리는 선수들이 자신의 경기 운영에 불만을 가져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축구팀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배자라는 인식으로 독불장군식으로 

밀고나갔으며 심지어 그에게 반발하는 선수는 다음 경기 출전 명단에 제외시켰다.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했으며 오히려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선수에게는 
반항에 대한 죄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선수들의 경기 능력에 대한 다양성을  

무시하게 되어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는 과거의 화려한 아트 사커는 실종되어버리고  

결국에는 예선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일찌감치 짐을 싸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외국의 사회 현상은 남 일이 아니다 
 

사이토 다케시가 주장하고 있는 다섯 가지 힘은 앞에서 설명한 욕망과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요즘 금값이 상승하는 것도 과거 16세기 유럽의 금본위제 현상과 다를 게 없다.
금을 화폐와 동일시한 금본위제 사회는 당시 상권을 지배하고 있던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를 축적시키기 위해 그들만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지금도 세계가 경기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를 이용하여 금을 보유하고 있던 부자들이 다시 한 번 과거의  

사례를 답습하듯이 예전에 가치가 하락되었던 금값을 상승하게끔 만들고 있다.  

결국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무형의 힘이 바다 건너 편 유럽에서만 일어난다고 해서 도외시하면 안 된다.  

이런 그릇된 사고는 굳이 세계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형의 힘은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가 금값이 올라가자 우리나라에서도 금값이 상승하였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 

이후로 눈길 한 번 안 주었던 금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황금빛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국가의 인종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으로  

귀화하는 외국인의 수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얻어도 피부색이 다르고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고 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맨몸으로 이국땅에 

들어와 어렵게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심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제국주의에 물들고 있던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과거에 지배당하고 억압받았던
안 좋은 추억들을 지우고 싶어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본이 했던 제국주의적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타 국가의 사람들 앞에서 지배자인마냥 

행세를 하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무형의 힘이 하나의 국가와 민족에게 미치는
영항이 참으로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단순히 세계사에 흥미가 있어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무서운 극우파…"독일인이지만 독일 우승 안 바라"] 씨앤비뉴스 7월 7일 입력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18939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 `남 탓'...청문회 출석] 세계일보 7월 1일자 

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Soccer/Article.asp?aid=20100701002504&subctg1=10&subctg2=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노병(老兵)과 한 대의 트럭

다음은 6.25 전쟁에 관한 신문의 특집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이 씨는 올해의 나이로는 78세다. 그에게는 특별한 동생이 있다.
동생은 바로 이 씨의 트럭. 트럭은 이 씨의 인생 절반과 함께 동고동락을 해왔다.
이들의 각별한 운명은 6.25 전쟁 때부터 시작되었다. 17세의 이 씨는 트럭을 몰고다니며
강원도 영월의 광업소에서 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발생한 6.25 전쟁에
이 씨와 트럭은 함께 징용되었다. 어린 나이 때문에 부대에서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트럭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장교에게 사정한 끝에
학도병 자격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본인은 우리나라 1호 학도병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에 증명하는 공식 기록이 없다.
그 뒤로 그는 트럭과 함께 전쟁터를 돌아다녔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제대를 원하였으나 당시 부대에는 운전병이 귀한 터라  

국방부 수송부에서 5년을 일했다.
그리고 1958년에 다시 그에게 영장이 날아왔다. 6.25 전쟁 학도병에다가
국방부 수송부의 경력까지 댔으나 증명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다시 입대하게 되어
1962년에 제대했다. 이 씨의 군 생활 합계 12년.  

그러나 그에게 주어지는 연금은 월 9만원뿐이다.
나라를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온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트럭이라는 소중한 동생을 얻었다.  

그리고 이 씨는 지금까지도 트럭을 닦고, 기름칠하고 있다.
언젠가는 트럭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아픈 과거의 역사가 관심을 받는 그 날을 위해서..... 

 
 

 어느 노(老) 학자와 한 권의 자서전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의 <역사가의 시간>을 읽는 와중에  

신문 속의 이 씨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이 씨의 연세와 강만길 명예교수의 나이도 한 살 차이 밖에 안 나고,
이 두 사람은 험난했던 대한민국의 현대사 속에 살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씨가 트럭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리려고 하듯이
강 교수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하여 자신이 겪었던 역사 속의 경험들을 알려주고 있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역사가 특유의 딱딱한 서술이 없어서  

술술 읽혀나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일제 강점기 말, 8.15 광복 후의 불안정한 국내, 6.25 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유신 정권, 전두환 정권, 6.15 남북공동선언까지
우리나라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풀어가며   

살아오면서 느꼈던 역사의 감상(感想)을 말하고,
역사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책이라고 불러도 어색한 점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책 분량이 많은 만큼 내용 면에도
자신의 생애 위주로 풀어나가는 명사(名師)들의 자서전보다는
더욱 더 깊이가 있으면서도 무언가 엄숙하다.
강 교수가 겪었던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두웠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최대한 주관적인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자신의 일생과 역사적 사건들을 담담히 표현하고 있다. 
 

 

 

 역사 앞의 인간도 변하고 만다

<역사가의 시간>들을 읽어보면 강 교수가  

지금까지 만나고 지내왔던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인물들은 역사 앞에서 두 가지 극명한 갈림길에서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된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변절을 해서라도 살아남아 기득권 행사를 한다거나,
이들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받거나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희생당하는 자들이다.
강 교수의 전작인 <역사는 변하고 만다>의 제목처럼  

역사 앞에 선 인간들도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새 나라의 첫 이승만 정권의 정치핵심과 행정요원은 전혀 재교육되지 않은
 일제강점기의 세력이 그대로 눌러앉았고..... 김종원 등 일본군대의 지원병 출신이  

  가당찮게도 백두산 호랑이로 변신해서 ‘포효’하거나, 김창용 등 일본군대의  헌병  

 하사관 출신이 ‘염라대왕’이 되어 숙군이라는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는 주인이 되고  

 말았다..... 장준하 등과 같이 일본의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목숨을 걸고 광복진영으로  

 탈출했던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현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역사가의 시간> p 93 중에서 -  

 

강 교수의 평을 통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역사에 의해서 변한 인물들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게 되면
오히려 희생당한 인물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되고,
자손대대로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로 공부하게 된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기록들은 그 때의 사건들을 알 수 있는
하나하나 중요한 사료(史料)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록만으로 역사를 이해한다고해서 우리나라 역사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시험에서 몇 문제 더 맞추기 위해서 역사를 달달 외우듯이
단순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 자체에 매달리면  

올바른 역사적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역사 기록들은 대부분 가진 자들(지배층, 기득권자)의 관점이다.
그래서 다분히 주관적이면서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가진 자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못 가진 자들. 즉, 억압받던 소수층과
가진 자들에 의해서 말살당한, 역사와 이름이 없는 자들의 입장으로도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역사적 사건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변하게 된 인물들의 행적과 내면을 파악하게 됨으로써  

과거사에 대해서  올바르고 균형 있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강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알려지고 있는 잘못된 역사가 

땅 속 깊숙히 박힌 뿌리처럼 대중들의 인식에 박혀 있다.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이라는 사설을 발표하여  

을사조약의 부당함과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던
언론인 장지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으며
국가보훈처가 선정하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구실을 한 <매일신보>에 친일 경향의 시와 사설을 발표했다는
연구가 주장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하는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이름을 수록하여 논란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장지연의 후손들은 친일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국, 다음 해 반민규명위원회에서는 장지연을 친일명단에서 제외하였다.

이 사건을 통해 역사적 사건에만 치중한 고정적 역사 관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말해주고 있다.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사설을 쓴 활동 하나만으로 장지연은 독립운동가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친일 행적이 알려져 역사의 진실과 숨겨진 이면들을 밝혀졌다.
하지만 더욱 더 염려가 되는 것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젊은 세대를 포함해서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장지연이라고 하면 독립 운동가라고 생각이 깊게 인식되어져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는 장지연을 독립 운동가로 기재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다.
우리의 두뇌는 생체적으로 변화라는 것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한 번 머릿속에 자리 잡은 고정된 인식은 바꾸기가 쉽지가 않다.
장지연 친일사전 수록 논란 이후에
장지연이 친일 행적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만약 장지연이 친일 행적을 했다고 말하면 대부분 교육 받았던 사람들은
이 주장에 믿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오용(誤用)당하는 우리 역사

친일사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한 장지연 후손뿐만 아니라
광복 후 강제 몰수당한 친일파 조상의 땅을 법으로 되찾으려는 후손들이 보여주듯이
특정인의 역사를 통해 조상에 의해서 대대로 누려왔던 명예를 지키거나  

되찾으려고 하는 것은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가문에 대해  

구차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것은 잘못된 역사 인식이며 우리나라 역사를 배워야하는 의미도 없게 된다.
이 책에서도 그런 유사한 내용의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하루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학교 연구실로 찾아와서.....  

  우리 현대사를 전공하고 싶으니 도와달라는 것이다..... 생물학 석사가  

  왜 국사학 박사를 하려느냐고 물었더니..... 이승만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군대 내 좌익 숙청에 명성을 떨치다가 군인들에 의해 암살된 김창룡이  

  그의 아버지인데, 암살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우리 현대사를 전공하려 한다는 것이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역사학이란 어느 특정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전공하는 학문이  

  아니라 하고 타일러 보낸 일이 있었다. 

                                                               - <역사가의 시간> p 92 중에서 -  

  

 

지금도 학계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역사가들의 연구뿐만 아니라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도  

잃어버린 조상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연구 활동을 한다거나  

여러 단체들을 통해 자비로 홍보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굳이 남는 시간에 역사학 공부에 쏟아 붓고,
전국 곳곳에 홍보를 펼치면서까지 조상들의 명예 찾는 일에 매달려야하는지
후손들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단순히 조상의 명예를 되찾아서 역사의 숨겨진 진실을 공개하여  

올바른 역사 정립에 기여하려는지
아니면 조상 덕으로 자신의 명예를 얻어서 영달(榮達)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 활동의 의도가 올바르며 명확해야 한다.
만약 후자의 의도로 조상 명예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훌륭한 공적이 있으나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조상들을 욕보이는 짓이며
오히려 정작 받아야 할 진정한 역사적 평가를 후손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영영 받지 못하게 된다. 
 

 

 

 젊은 세대들을 위한 역사책

이 씨에 관한 기사 옆에는 변화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전쟁 인식에 관한 기사가 소개되어 있다.
대학생들이 직접 전쟁이 벌어졌던 전쟁터나 전쟁 박물관에 찾아가서
6.25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확립하게 된다는 기사 내용이다.
6.25 전쟁에 관심을 가질 것을 트럭 앞에서 힘껏 역설(力說)하고 있는  

이 씨의 기사와 대조적이다.
대조적인 기사 배치 구조가 바로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백발이 성성하고 예전의 기력이 사라지고 없는 6.25 세대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위해 바쳤던 일들을 자랑스러워하며
후손들에게 나라의 중요성과 애국심을 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젊음의 힘이 왕성한 정보 통신 세대들은 관심이 없다.
내가 겪었던 일도 아니며 6.25 전쟁은 그냥 아주 오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6.25 전쟁이 몇 년에 일어나는지도 모르며
심지어 남한이 먼저 공격한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북한과 전쟁이 나면 도망가는 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조건 남한이 이긴다고 주장한다.  
하필이면 6.25 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식의 다음날이  

우라나라 축구 대표 팀의 8강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경기가 펼쳐지게 되어 6.25 전쟁 발발 50주년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념이 월드컵에 가려져 무색해졌다.

역사 관련 도서 판매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니 이 책이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나는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아주 좋았다고 생각된다.
6.25 전쟁 50주년을 맞추어 출간하게 되어
6.25 전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해 큰 관심을 끌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관심의 열기 속에서도
우리나라 현대사에 대한, 그 중 6.25 전쟁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원로 역사가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있다는 점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그만큼 예전보다 6.25 전쟁을 포함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약간의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을 사고 읽은 사람들 중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단순히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저명한 원로 역사가의 자서전으로만 읽혀지기 보다는
역사가의 생애를 통해 왜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통일이 되지 않고
분단국가로 지내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세대이기에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인용 기사 출처 및 링크

[전쟁 세대, 젊은 세대 6.25를 말하다] 중앙일보 6월 26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270607 

 

[“박정희·장지연 친일명단 빼달라”] 경향신문 2009년 11월 3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1031804355&code=940100 

 

['친일사전' 속 박정희·장지연·안익태···친일행적 무엇이 담겼나]  

노컷뉴스 2009년 11월 9일 입력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309050 

 

[반민족 진상규명위 친일인사, 박정희·장지연·홍난파 '친일' 제외] 

한국일보 2009년 11월 27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11/h2009112722030221950.ht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 왕을 말하다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후보자들의 리더십 평가 테스트 
 

6.2 지방선거 투표 전에 서울시, 경기도와 인천·대전 등 6개 광역단체장 후보들을 대상으로
리더십센터가 자체 개발한 한국공공리더십지수(KPLI)를 실시하였다.
후보자들은 테스트 문항과 순발력을 평가하기 위한 사전 준비용  

무(無) 질문 인터뷰를 실시했다.
테스트 결과는 ‘의사소통 능력 발달, 희생, 봉사 정신 부족’ 으로 나타났다.
창조성, 협상력, 의사소통 능력 점수는 높은 반면에,
정치인의 기본 자질일 수도 있는 희생, 봉사 정신 점수가 낮았다.
공직에 출마하는 후보로서는 무시하기 어려운 테스트 결과이다.
테스트에 참여한 후보들은 본인의 리더십 유형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6.2 선거에 당선된 광역단체장들에게는 이전의 테스트 결과의 부족한 부분만
보완한다면 조금 더 향상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나은 리더십을 보여줄지 우리는 당선된 광역단체장들의 활약을 지켜봐야 알 것이다. 
 

 

 

 조선 왕들의 리더십 평가

앞에서 소개된 리더십센터의 리더십 평가의 의의는 후보자가 직접 테스트에
참가하여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며
나중에 후보자가 당선이 되면 부족한 능력을 보완하여  

앞으로의 공직 생활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전의 리더십 평가는 평가 대상인 정치인이 현 직책에 활동 중에 하는
실시간 조사이거나. 직책에서 물러난 뒤에 실시하는 후기(後期)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평가 참여자들은 평가 대상 본인이 아닌 연구 기관 소속의 연구원이라든가,
시민들이 평가를 내리고, 그 평가를 총괄하는 단체는 연구 기관이나 여론이다.
그래서 평가 결과는 대부분 리더십 부족 등 나오게 되는데,
평가 대상의 정치인이 임기 중이면 자신의 정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정치는 좌파와 우파로 나누어지듯이, 평가 총괄 단체가 어느 파에 따라서
결과도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만큼, 이전 리더십 평가는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출간된 이덕일 교수의 신작에서는 수많은 조선왕조실록을 포함한  

각종 수많은 사료들을 분석하여 역대 조선 왕들의 리더십을 평가한다. 
수백 년이 지난 집권자들을 평가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를 되돌아보면 현재를 알 수 있다.
역대 조선 왕들의 정치 행적들은 지금 정치인들이나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나라를 휘어잡을 권력은 있었으나, 정작 현실 파악 능력이 없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후세의 왕들에게도 부작용을 남긴 세조,
나름 현실을 파악하고 국정과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정치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당파의 사대부들과 소통의 실패로 결국 서인의 쿠데타로 인해 폐위된 광해군.
이들의 정치 행적들의 평가를 통해  

미래의 정치인들이 되려는 이들에게는  

이 책을 읽게 되면 이상적인 리더십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가 있다. 
 

 

 

 연산군이 희대의 폭군이 된 이유

그러나 역대 조선 왕들에 대한 평가가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이나  

사대부들의 개인 기록들은
자신이 속한 정치적 당파의 사상과 개인적인 평가로 이루어져 있어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왕에 대한 기록들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대부의 왜곡된 기록들이  

훗날 지금의 조선 왕의 평가와 이미지를 확고히 만들었으며,  

지금도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산군은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켜 궁정의 피바람을 불게 만들었으며,
궁정에 들어온 비구니에게 간(姦)을 하고, 자신이 궁정에 불러 모은 여인들과
황음(荒淫)에 빠졌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연산군이다.
그리고 당시 연산군이 살았던 당대의 사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각도로 연산군의 행적을 분석한다.
연산군이 단순히 생모인 폐비 윤씨의 억울한 죽음 때문에 폭군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폭군이라는 오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연산군의 능력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연산군은 왕으로써 꼭 배워야 하는 문무(文武)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즉, 공부를 싫어한 왕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기계발을 하지 않은 결과로
점점 그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게 되어 국정을 다스리는 데에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기득권 사대부들은 연산군에 대한 기록을
부족한 정치적 능력에다가 무오사화에 보여주었던 살상(殺傷) 행동을 덧붙여
오히려 연산군의 잔인한 살상 행동을 크게 부각시켰다.
이 기록으로 인해 그는 폭군이라는 별명을 얻는 동시에
역대 왕 중 가장 최악인 왕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기득권 사대부뿐만 아니라 비(非) 기득권 사대부에서 왕들 자신이 남긴 기록까지,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하였다.
학계에서 정립되어 있거나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왕들의 편향(偏向)된 평가들을
뒤엎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마키아벨리, 태종

이 책에는 총 8명의 왕이 소개되었는데 딱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우리가 역대 조선 왕들 중에 성군(聖君)이라면 세종, 성종, 영조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성종과 영조는 그나마 ‘절반만 성공한 임금’ 으로 평가하고 있다.
의외로 태종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태종은 고려 말, 아버지 태조 이성계 몰래
정몽주를 살해하여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긋났으며,
후에 자신이 세자로 책봉이 되지 않아서 그 불만으로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과 다른 세자들을 귀양 또는 죽임으로써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자신이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왕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새로운 나라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뿐만 아니라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정몽주를 살해했다.
그리고 그가 집권하고 난 후에는 세종이 될 충녕대군을 위해서
‘호랑이 새끼 키우듯’ 왕권을 위한 교육을 시켰다.
결국, 자신의 뒤를 이은 세종의 앞날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래의 조선 번영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결국 태종은 책봉 이전부터 아버지마저도 좋은 이미지도 얻지 못하였으며,
왕이 되어서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핏줄인 세자를 제거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악역을 스스로 자처하여 자신을 희생하였으며
차기의 왕권을 위해 봉사를 한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광역단체장들. 태종의 리더십을 눈여겨봐라.
그리고 자신의 임기동안 생긴 정치적 문제들을
자신의 뒤를 이을 권력 이양자에게 떠넘기는 우리 정치인들 보면 무척 비교된다.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군주에게는 더 안전하다’ 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있듯이,
태종은 호랑이의 등에 스스로 올라타서 정몽주 제거와 세자의 난을 통해
권력의 위엄함을 과시하였다. 인간이 호랑이를 두려워하듯이
그도 간신배 사대부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시장의 우상 부셔버리기

책 내용 중에는 권력은 시장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p 75 참고)
거대한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듯이,
권력도 기득권층들이 서로 모여 떠들면 권력의 환상에 눈이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없고,
편협된 사고가 지배하게 된다.
결국, 프랜시스 베이컨이 주장한 ‘시장의 우상(偶像)’ 이 형성된다.
시장의 우상이 자리 잡게 되면
동일한 대상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전해지다가 의미가 변하게 된다.
즉, 왕의 자질이 부족한 연산군이 사대부들의 평가들로 인해서
폭군 연산군으로 의미가 변절되듯이 말이다.
역사 속에서의 나타나는 시장의 우상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악영향을 주게 된다.
겉만 보면 내용은 객관적이지만 실속은 주관적이며 허투루 기록된 엉터리 사료라면
후손들에까지도 폭군 연산군이라는 오명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부실한 사료들 때문에 역사를 엉터리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우상은 역사학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도 버젓이 서 있다.
정치인들은 국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에 모여
사회 안건 하나 가지고 자신들의 의견이 맞다고 서로 입싸움이 펼쳐진다.
그리고 나름 합당한 근거를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매스컴에 비춰진 정치인들의 이런 여러가지 모습들을 보게 되면
국민들은 그 사회 안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물론 하나의 사회 현상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바라본다는 점은 좋지만,
자칫 사회 현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회 현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면
아무리 그것에 대해 옳다 아니다라고 주장을 한다 해도
그것은 근거는 허울뿐인 공중누각(空中樓閣)일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조선 왕들의 평가를 통해 우리가 세우고 있었던
시장의 우상을 부셔버릴 때가 되었다.
이 책은 권력 때문에 시장의 우상을 세우고 있었던 정치인들이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시장의 우상을 세우고 있던 우리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다.
특히, 리더십에 관한 것이라면 때려야 땔 수 없는 정치인들!
이 책을 강력 추천하고 싶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오세훈 다양성·혁신, 한명숙 소통·협상 …‘색’다른 리더십] 중알일보 5월 24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19107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 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