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화학식 문예중앙시선 45
성윤석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성서》 창세기 3장 19절)

 

 

 

어떤 것은 빨리 썩고 어떤 것은 느리게 분해된다. 물렁물렁한 것은 빨리 찢기고, 딱딱한 것은 천천히 마모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썩어야 생기는 원소를 먹고 산다. 분자로 이루어진 먼지가 더욱 나누어져야 그곳에서 생명의 필수영양원소가 나온다. 썩는 것을 학술적인 용어로 분해라 한다. 형체가 있는 것에서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아주 작은 존재로 부서지는 과정이다. 생물체의 모든 성분은 빠짐없이 흙 속에 들어 있는 성분과 같다. 모든 생물체는 화학적으로 성분을 분석하면 흙이다. 따라서 생명을 잃은 존재는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성윤석 시인의 시집 《밤의 화학식》의 ‘화학식’은 우리가 학창시절 과학 수업 시간에 배웠을 그 ‘화학식’이 아니다. 시인은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원소에 의해 생명이 생성되어 소멸하는 자연의 순리를 화학적 원리로 접근하여 시적 언어로 표현했다. 시적 대상으로서의 원소를 경험적 현실로 인식하고, 나름의 상상력으로 구성된 ‘자연의 순리’를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 주고 있다.

 

 

 

 

한 호흡

 

이즈음의, 이즈음의 한 호흡

 

사는 것은 죽어가는 것

 

길고 긴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생의 과정들을 죽 늘어놓고

 

빛나는 것은 소멸한 것, 소멸해가는 것

 

 

(『산소 O』 중에서, 34~35쪽)

 

 

 

 

산소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원소다. 호흡을 통해 몸 안에 유입된 산소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 때 사용된다. 하지만 산소가 항상 우리 몸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산소도 동전처럼 양면성이 있다. 신체의 대사과정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변한 ‘활성산소’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 우리 세포막과 세포 속 유전자를 공격해 몸을 늙고 병들게 한다. 활성산소는 대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다행히 우리 몸은 스스로 활성산소의 양을 조절할 능력이 있다. 그렇지만,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을 유기체로 보는 동양 전통의 자연관에 따르면 본래 자연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즉 인간은 산소를 소비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배설물을 쏟아내며, 죽어서 육신을 땅에 되돌려줌으로써 식물의 번성에도 기여한다. 우리가 죽어서 마지막으로 뱉어낸 ‘한 호흡’은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의 과정’ 일부가 된다,

 

 

얘야, 실제로 무서운 건 우리가 낱낱의 알갱이로 떨어져

서로의 입자들을 다 잃고 난 뒤겠지.

그리고 추운 세상이 올 거야. 넌 혼자가 될 거야.

네가 아닌 사물들이 널 들여다보겠지.

사물들의 뒤편엔 이웃들의 사유들이 먼지처럼 쌓일 거야.

 

(『먼지의 화학식 2』 중에서, 66~67쪽)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들은 감정도 없고, 자기표현 방법도 없으니 무생물이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서 사물들에게 감정을 부여한다면,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시도이다. 시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소인 주석을 하나의 실체로 인식한다. 그의 ‘우스꽝스러운 질문’은 진지하다. 시인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주석의 실체를 탐구하며 생존 욕구를 가지고 환경에 반응하며 변화해 가는 과정 전체를 관찰한다.

 

 원자번호 50번. 이 지방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극한의 추위란, 여기에 없을 테니까. 주석이 극한으로 내려가는 기온 속에서 회색 가루로 변할 동안 사람들도 얼어 부서져버릴 테니까. 스스로 가루가 되어버렸던 사람들을 본다. 눈에 뭔가 자꾸 보였던 것. 눈에 뭔가가 자꾸 보일 때, 시간은 스스로를 묶고 사람이 어디로든 되돌아올 때를 기다린다. 주석 같은 사람들을 안다. 빛나는 술을 담아낼 줄 알지만, 때가 오면, 희미한 가루로 남던 사람들. 당신은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가? 당신을 묻는 내가, 너무 진지한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가. 세계가 침묵하는 동안 나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 같다.

 

(『주석 Sn』 39쪽)

 

 

사람은 죽어서 먼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은 우주공간에 흩어진 원소들로부터 유래되었고, 생명체가 죽으면 그 구성 물질은 분해되어 먼지가 된다. 그런데 우리의 뇌세포에 의식이 있어서 당연한 운명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많은 연구가 있어도 인간 스스로 소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에 대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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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2 14:22   좋아요 1 | URL
원효 대사가 해골 물을 마셨던 상황과 비슷하군요. ㅎㅎㅎ
이번 주 금요일에 일찍 퇴근할 수 있습니다. 그 날 일찍 가겠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2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물의 근원은 원자라고 말한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도 연관이 있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02-22 17:40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시집의 100자평으로 잘 어울리는 명언입니다. ^^

양철나무꾼 2017-02-22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의 백 뮤직은 이윤수의 ‘먼지가 되어‘로 하겠습니다.
김광석도 있고 로이킴도 있는데, 이윤수를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이라니...ㅋ~.
연식이 들통나 버릴텐데도 완전 우쭐합니다.
님께도 강.권.합니다~ㅅ!

cyrus 2017-02-22 17:41   좋아요 0 | URL
저는 김광석 버전을 좋아합니다. 이윤수 버전을 안 들어봤어요. 유튜브 영상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어요.. ^^;;

캐모마일 2017-02-23 07:45   좋아요 0 | URL
이윤수는 처음 들어본 가수인데, 한번 그 분 버전의 먼지가 되어를 들어봐야겠습니다.

캐모마일 2017-02-23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독특한 시집이네요. ㅎㅎㅎㅎ 마치 화학시간에 인문학과 감성이 풍부한 문과 학생이 하나하나 원소와 개념을 배우면서 시로 승화시킨 거 같아요. 말씀처럼 상상과 받아들임이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사색의 여정이요. 이런 말씀 드리면 시인에게 누가 될런지요.

cyrus 2017-02-23 18:21   좋아요 1 | URL
화학에 대한 지식 없이도 읽을 수 있어요. 그런데 몇 편의 시들은 난해했어요. 저는 제가 이해하기 쉽고, 좋은 시가 많다고 느껴지면, 그 시집의 평점을 높게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