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맛
히라마쓰 요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그리고 또 다른 충전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란 그렇게 큰 사건들에서만은 아니다. 그저 잔잔한 일상사에서 느껴질 때가 더 많다. 음식을 눈으로 즐기고 맛에서도 감동적인 만족한 식사가 되었다면 그 또한 휴식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속내를 음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살뜰하고 다정한 마음을 가졌다. 히라마쓰 요코의 《어른의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의미를 음식으로 표현한 책이다.

 

음식을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삼은 책들은 손맛이 더해진 조리방식을 보여주며 독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활의 냄새와 추억의 맛이 더해진 책 속 음식을 보며 독자들은 그 음식을 찾아서 먹게 된다. 《어른의 맛》을 보고 읽노라면 일본 음식의 맛이 궁금해진다. 일본과 한국의 음식문화와 조리법은 비슷한 듯 닮았으면서도 여러 차이가 있다. 사실 책 속에 소개된 특색 있는 일본의 전통 음식은 일본에 가보지 않는 이상 경험하기 힘들다. 또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다. 우리의 미각으로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맛이다.

 

음식을 주제로 한 책의 인기요인은 먹음직스러운 음식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의 심리적 허전함과 불안감, 뭔가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 같은 무의식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음식은 어느 민족에게나 생존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음식은 국경을 초월하여 민족 정체성이나 신앙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원초적 방법이다. 여기에 우리 민족에게 밥상은 식구가 둘러앉아 일상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서로의 안녕과 가족애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어느 나라에나 사람이 있고 가족이 있기에 이들과 함께하는 그 나라만의 가족 음식도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저자는 늦은 밤에 아버지가 사준 주먹초밥과 김초밥을 먹었던 어린 시절의 순간에서 가족의 포근함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천천히 나무도시락 끈을 풀자 주먹초밥(니기리즈시)과 다랑어나 오이가 들어간 김초밥이 화려하게 담겨 있다. 그걸 보는 순간 잠기운이 싹 달아난다. 옆에 있던 여동생도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앞으로 쭉 내민다.

 

뭐부터 먹을까. 젓가락을 쥐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컵에 든 차가운 물을 마시며 아버지가 말한다. “요코는 오징어, 게이코는 새우.”

 

기분 좋아서 아무렇게나 한 말일 뿐인데 고민고민하던 마음을 들킨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말대로 젓가락을 움직인다. 와사비의 맛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사 가지고 오신 나무도시락 초밥 때문에 알게 됐다. 아버지가 사 온 그 나무도시락 초밥도 지금 생각해 보면 왠지 와사비가 적었던 것 같다. 가족을 위한 야식이기 때문에 와사비를 아주 연하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그랬던 것 아니었을까.

 

(《어른의 맛》 43쪽)

 

 

이 글에 묻어 나오는 포근함은 세계 어느 나라에 살든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보고 느껴봤을 것이다. 그 와사비 맛은 순식간에 그녀를 유년의 어떤 기억들로 데려다주었다. 이 기억은 억지로 생각해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추억이 아니다. 그것은 맛이 몸속의 무엇을 건드려 몸속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특별한 기억이다. 이런 특별한 맛의 기억이 추억으로 남고 행복한 삶 일부가 된다면, 성공한 어른으로 자랐다는 방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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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2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것만큼 가장 즉각적인 것도 없는 만족감이죠..
반대로 ..먹지 못하는 것만큼 또 불행한 것도 없으니까요..
안먹고도 살수 있다면...또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면 ..신이겠지요..ㄷㄷㄷ

cyrus 2016-11-23 13:18   좋아요 1 | URL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음식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대표적인 분이 저희 어머님입니다. ^^;;

레삭매냐 2016-11-2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책 빌려다 보려고 했는데. 먼저 읽으셨네요.

cyrus 2016-11-23 13:19   좋아요 0 | URL
일본 음식이 낯설고, 음식 사진이 많지 않아서 공감 얻기 힘든 글이 많았어요. 그래서 책 별점 3개 줬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11-23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은 책이 또 늘어나는 자괴감(?)을 느낍니다 제가 책을 읽으려고 태어난 건가 하은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네요 ㅋㅎㅎㅎㅎ

cyrus 2016-11-23 13:21   좋아요 0 | URL
일본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공감하기 힘든 글이 많았습니다. 《황석영의 밥도둑》이나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을 보는 것이 낫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