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 없이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붉은 재앙
조나단 월드먼 지음, 박병철 옮김 / 반니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내가 자대로 배치받은 부대는 전투 지원 중대다. 우리 중대는 4.2인치 박격포 소대와 106mm 무반동총 소대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박격포 소대로 들어갔다. 박격포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서 검사받는 기간이 있다. 그 기간이 다가오면 박격포를 구성하는 모든 장비 하나하나 구리스(윤활유의 군대 용어)로 닦는다. 장비 표면에 구리스를 얇게 펴듯이 발라 솔로 문지르면 녹이 제거된다. 다만, 구리스를 너무 많이 바르면 안 된다. 장비 표면에 남은 기름기를 제거하지 못하면 말라붙어서 찌꺼기 덩어리가 생긴다. 누렇게 뜬 녹을 지우기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오래된 녹은 솔로 여러 번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빼빠(사포의 군대 용어)로 녹을 긁어내면 좋은데, 너무 세게 긁으면 장비 표면에 긁힌 흔적이 남는다.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박격포를 원하는 간부와 말년 병장 들은 빼빠 사용을 못하게 한다. 그래서 기름 냄새가 잔뜩 나는 구리스를 발라 솔로 문지르는 단순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러니 녹이 제대로 제거될 리 없었다.

 

가장 먼저 녹의 불편함을 밝힌 사람은 고대 로마의 장군이다. 장군은 녹이 생긴 투석기에 대해 불만이 생겼고, 그 불쾌한 감정을 병영일지에 기록했다. 장군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녹을 제거하지 않은 무기는 성능이 떨어진다. 군인들이 거의 매일 총기 수입을 하는 이유가 있다. 2년 전에 제대 하루 앞둔 말년 병장이 총열(총탄이 발사되는 원통 모양의 금속관)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 죄로 법정에 선 적이 있었다. 소총 손질을 지시하는 부대에 불만을 품고, 대충 닦으려다가 그만 발각되고 만 것이다. 총열 내부는 녹이 슬기 쉽다. 한쪽 눈으로 총열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녹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일개 병사들의 눈에는 녹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시력이 좋고, 짬밥을 많이 먹은 간부들은 녹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녹은 인류를 불편하게 만드는 자연 현상이다. 철은 여러 가지 도구와 무기는 물론이고 건축이나 조형물에도 널리 사용된다. 문제는 애써 만들어놓은 철제 제품이 쉽게 녹이 슬어버린다는 것이다. 심하게 녹이 슬어 부식된 물건은 폐품으로 전락한다. (Rust)의 저자 조나단 월드먼도 녹의 불편함을 참지 못한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까지 인류를 조용하게 괴롭힌 녹의 위력들을 알려준다.

 

녹은 철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서 만들어진 산화물이다. 단단한 화학결합으로 연결돼있던 철 원자들이 산소 때문에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녹슨 철은 쉽게 부서지게 된다. 쇠가 녹이 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화학반응은 지금도 우리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위험한 안전사고의 치명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1982년에 미국 자유의 여신상 복원사업이 진행되지 않았으면, 누런 얼룩을 여기저기에 묻히고 서 있는 여신의 모습을 봐야 했다. 백여 년을 꿋꿋하게 버틴 자유의 여신 얼굴에 세월의 주름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매일 빗물 샤워를 하고, 새똥의 공격을 받으면 철제 구조물에 녹이 슬기 시작한다. 미국의 상징도 예외가 아니다. 녹을 가볍게 무시하고,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손상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녹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악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다. (can)은 음식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만들어진 최고의 발명품이다. 하지만 가끔은 제조한 지 오래된 캔 내면이 부식되는 문제점이 생기기도 한다. 과거에 비하면 현재의 통조림 제조 기술은 완벽하다. 캔 내면에 플라스틱 막을 씌워 코팅하면 부식이 더 이상 진행되는 것을 막아준다. 이 코팅 기술 도입 덕분에 톡 쏘는 코카콜라 음료를 마실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뭐냐면 코팅 작업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성분이다. 이는 우리 몸의 건강을 위협하는 위해 성분이다. 캔 제조업체들은 되도록 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캔도 녹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녹의 부식 현상을 막으려고 사용되는 화학 물질도 공개하기를 꺼린다. 오히려 캔을 제조할 때 사용되는 물질 성분들이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만 주장한다.

 

코카콜라 원액 제조법은 1886년 미국 애틀랜타의 약사 팸 버턴이 처음 개발한 뒤부터 100년 넘게 영업비밀로 지켜지고 있다. 코카콜라를 마셔본 전 세계 사람들은 코카콜라사의 영업 비밀을 궁금해한다. 그런데 이것이 뭣이 중한디? 우리는 코카콜라 캔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코카콜라 제조법보다는 코카콜라 캔 제조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 수 있는 책이 조나단 월드먼의 이다. 그가 캔 제조 방식을 소재로 한 논픽션 한 권 써줬으면 좋겠다. 그 책의 제목으로 침묵의 캔(Silent Can)’이 어울린다. []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캔 제조 과정에 사용되는 비스페놀-A 성분이 함유된 물질 사용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거나 이미 도입했다. 그런데 최순실의 나라는?

 

녹의 무서운 위력을 알지 못했던 시절, 그러니까 자유의 여신상의 철제 구조물에 녹슨 흔적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미국 공학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입하면서까지 녹을 제거하느라 애썼고, 부식 현상의 위험성을 인지했다.

 

그런데 최순실의 나라는? 해결해야 될 문제가 너무나도 많다. 일단 청와대, 국회 사람들의 정신이 아주 썩어빠질 정도로 녹슬어 있다. 정부는 바닷물 속에서 녹슬어 사라지는 세월호 존재 자체를 잊고 싶어 한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기득권층들에게 국민은 안중에 없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녹슬고 있다.

 

 

 

[] 레이첼 카슨의 불멸의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제목을 패러디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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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11-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병 콜라 다시 나오지 않나? 캔 안쪽에 무슨 약품을 바른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역시 안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캔 제품 나오는 걸 보면 정신이 썩었지. 지네들은 캔 제품 먹지도 않을 거 아냐. 못 된 것들.ㅉ

cyrus 2016-11-20 20:27   좋아요 0 | URL
콜라가 산성이 강해요. 그래서 콜라를 캔에 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녹》을 보면서 캔 제조에 대해서 그동안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됐어요.

겨울호랑이 2016-11-2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께서는 연대 중화기 중대 출신이시군요 ^^:

cyrus 2016-11-20 20:27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연대 지원중대 출신입니다. ^^

yureka01 2016-11-2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스페놀.a 성분은 환경호르몬에 영향을 주는 걸로 는데요. 분명 낡고 삭아가는데 녹이 결정적이죠.사회적 녹이 순시리였다는.ㄷㄷㄷ

cyrus 2016-11-20 20:33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비스페놀 A가 환경호르몬입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비스페놀 A‘를 쳐보면 전 세계적으로 비스페놀 A이 들어간 캔 사용금지를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환경 관련 뉴스가 많이 알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