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답이다 - 진화 심리학자의 한국 사회 보고서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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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흘려듣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이런 남녀 차이가 왜, 어떻게 생기는지는 오랫동안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돼왔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수백만 년 오랜 진화의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아이를 낳는 여자는 집안일을, 남자는 사냥을 하는 분업이 원시공동체의 생존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런 오랜 기간의 환경 조건이 서로 다른 뇌의 발달에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학설을 따르면, 사냥에 나서던 남자는 길 찾기 등에 알맞은 뇌를 지니게 됐고, 마을에서 집을 지키던 여자는 언어 능력과 사소한 기억에 능한 뇌 구조를 갖추게 됐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도 몸처럼 진화의 산물이라고 간주한다. 이를테면 마음은 인류의 조상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 선택된 기능들이 모여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언어에서 짝짓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진화론으로 풀이한다. 전중환 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진화심리학자다. 그는 2010년에 펴낸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오랫동안 진화해온 결과임을 보여줬다. 최근에 나온 《본성이 답이다》는 경제 불평등, 학교 폭력, 갑질 논란, 여성 혐오 범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각종 현상과 문제 아래에 숨겨진 본성의 실체를 밝혀낸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왜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지를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까지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보통 부모, 교육, 민족, 문화, 성별, 작업, 소득과 같은 사회요인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이 같은 판단은 사회학자의 전통적인 영역으로 이해되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둘 다 인간 본성의 핵심적 측면이다. 뇌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주의자의 뇌는 편도체와 관련되어 있다. 편도체는 공포를 일으키는 위협이나 자극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가 혐오와 분노를 느낄 때 편도체 영역이 더욱 활성화된다. 그 결과 혐오스러운 물질에 대한 반응이 강할수록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다. 보수주의자일수록 혐오스러운 대상을 도덕적으로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와 진보는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장점만 취한다면, 둘 다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을 만큼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르고, 같은 편끼리 뭉치려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위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념 대립을 정당화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서로 싸우느라 여념 없는 보수와 진보 세력이 뇌 구조의 차이로 인해 변화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생존과 번식이다. 온갖 경쟁과 위험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자신의 자손을 많이 남긴다. 인간은 자연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응해 왔다. 살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진화 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인간의 살인 행동이 생존이나 번식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사회문화적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인류학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인간이 동물의 본능적 공격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행동을 일으키는 심리를 이해하려면 사회 환경적인 요인을 함께 보아야 한다.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종종 성차별과 인종차별과 관련된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비판받곤 한다.

 

진화심리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독자는 책 제목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제목처럼 본성이 무조건 답은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일정한 행동 유형이 반복된다고 해서 그것을 섣불리 타고난 본성으로 파악하는 데는 신중히 해야 한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한계를 이유로 인종 차별, 성차별, 전쟁, 살인 등을 용인하는 위험한 학문으로만 거칠게 몰아세우는 비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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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에 지배 받고 ..다시 환경을 바꾸고..

하기야, 원시시대가 몇만년이었으니 심리 또한 서서히 바뀌겠죠. 일간 설득력 있는 이론이네요.

cyrus 2016-07-11 14:59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진화’가 들어간 학문이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

초딩 2016-07-1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의 보존
많은 현일들이 어쩔 수 없이 도달한 그 것을 부인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인간이 바뀌기엔 몇 천년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몇 만년의 시간에 비해

cyrus 2016-07-11 15:00   좋아요 0 | URL
천 년,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에요. ^^;;

qualia 2016-07-1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화심리학이 사후 짜맞추기 학문이라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진화심리학을 뒷받침하는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적 증거가 너무나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반론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하지만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들을 때마다 사후에 짜맞춘 설명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죠.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닭/달걀 문제는 과학적으로 풀렸다는 얘기도 있었던 것 같죠?

cyrus 2016-07-11 15: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처음에 진화심리학을 접할 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중환 씨의 <오래된 연장통> 이후로 진화심리학 책을 안 봤습니다.

닭/달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