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윌리엄 브리튼 지음, 오일우 외 옮김 / 모음사 / 1992년 6월
평점 :
품절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총 38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모은 책이다. (책 제목을 줄여서 ‘존 딕슨 카’라고 하겠다) 사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상당히 짧은 글이라서 콩트에 가깝다. 역자는 서문에 이 책을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미스터리 콩트만 모아서 책 한 권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외국의 단편집과 추리물을 게재하는 잡지를 뒤져 봤다고 한다. 그래서 1년 동안 150여 권의 책을 뒤져서 400편이 넘는 콩트를 모았고, 여기에 38편을 추려서 선정했다. 실제로 《존 딕슨 카》 앞표지를 보면 공동 역자 이름 왼쪽에 ‘정선·번역’이라고 표기되었다. 공동 역자는 오일우, 오수현 씨다. 두 사람은 같은 성씨에다가 문리과 대학을 졸업했다(오일우 씨는 서울대, 오수현 씨는 성균관대). 역자 이력만 봐도 현재 두 사람 다 연로한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 문리대는 1975년에 인문대, 사회과학대, 자연과학대로 해체되었다. 《존 딕슨 카》의 초판 발행연도는 1992년이다. 이 한 권의 책을 만들려고 외국 미스터리 콩트를 수집했을 때 두 역자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중반으로 접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해외 추리물, 특히 고전 중심의 단편 앤솔로지가 계절을 타지 않고 많이 나왔는데《존 딕슨 카》 도 그 출판 열풍 속에 탄생한 책이다. 그렇다고 《존 딕슨 카》가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대표작들만 엄선해서 너무 뻔하게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명 작가의 미스터리 콩트를 접할 수 있는 진귀한 책이다. 두 역자는 미스터리 콩트를 선정하는 네 가지 기준을 명확하게 밝혔다. 첫 번째 7쪽 이하의 짧은 분량, 두 번째 재미있을 것, 세 번째 한 작가당 한 편, 네 번째 다양한 내용일 것. 38편의 미스터리 콩트 중에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결말을 드러내는 훌륭한 작품이 있는 반면에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전개되다가 마무리는 개그로 허무하게 끝나는 작품도 있었다. 두 역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콩트 모음집의 표제가 된 윌리엄 브리튼의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존 딕슨 카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에 쓴웃음이 날 수도 있으니까.

 

에드가 골트는 삼촌과 사는 가난한 고아다. 에드가는 열두 살 때 무심코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읽고 나서 자신도 언젠가는 밀실 살인을 실행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존 딕슨 카의 소설에 나오는 밀실 살인을 완벽하게 모방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존 딕슨 카, 심지어 그의 또 다른 필명이 카터 딕슨으로 낸 작품들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읽었고, 작품 속에 나오는 밀실 사건을 섭렵한다. 본의 아니게 카는 에드가의 살인 계획을 돕는 멘토가 되었다. 에드가는 삼촌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밀실 살인의 희생자를 삼촌으로 정한다. 삼촌을 죽인 뒤 굴뚝으로 탈출하기로 계획한다. 비록 카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수법이긴 하지만, 에드가는 이를 멋지게 실행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용의자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알리바이를 꾸며냈고, 삼촌의 집을 방문한 레뮤얼 스토퍼와 의사 해럴드 크로울리마저 속일 작정이었다. 카의 소설처럼 에드가는 2층에 있는 서재 안에서 삼촌을 죽이고 굴뚝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삼촌의 지인들이 있는 음악실로 향했다. 스토퍼는 삼촌이 내려오지 않자 2층으로 올라간다. 에드가는 자신의 밀실 살인이 계획대로 성공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2층에서 내려온 스토퍼는 삼촌의 책상에서 꺼내 온 권총을 쥔 채 등장하여 삼촌을 죽인 범인으로 에드가를 지목했다. 에드가가 꾸민 완전 밀실 범죄는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에드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서재의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이 책에 수록된 총 38편의 미스터리 콩트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1. 오 헨리 - 고백 (The Confession of.....)
2. 작자 미상 - 절묘한 변호 (An Ingenious Defense)
3.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 - 백만에 하나 있는 우연 (The Unreckonable Actor)
4. 페렌츠 모나르 - 최선책 (The Best Policy)
5. 앤서니 길버트 -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Over My Dead Body)
6. 제임스 홀딩 - 장갑 낀 손 (Hand in Glove)
7. 매트 테일러 - 영화관의 강도 사건 (Mcgarry and the Box-Office Bandits)
8. 잭 리치 - 봉 (鳳, Setup)
9. 에드먼드 크리스핀 - 샤프 펜슬 (The Pencil)
10. W. 하이덴펠트 - 달빛 (Moonshine)
11. 엘러리 퀸 - 세 사람의 과부 (The Three Windows)
12. 제임스 굴드 커즌스 - 목사의 오명汚名 (Clerical Order)
13. 폴 태보리 - 조용한 여행자 (The Very Silent Traveler) 
14. 존 D. 맥도널드 - 그앤 참 좋은 애였는데 (He Was Always a Nice Boy)
15. 제임스 N. 영 - 번지수가 틀렸다 (The Wrong House)
16. 팻 매거 - 선거 열풍 (Campaign Fever)
17. 빅터 캐닝 - 벽 속으로 (Through the Wall)
18. 존 콜리어 - 크리스마스엔 돌아온다 (Back for Christmas)
19. 찰스 G. 노리스 - 존 로시터의 아내 (John Rossiter's Wife)
20. 시어도어 매시슨 - 분재 (盆栽, No Motive)
21. 케니스 J. 매캐프리 - 은퇴 (The Resignation)
22. 로버트 H. 커티스 - 프로 (The Pro)
23. 사키 - 로라 (Laura)
24. 프레드 S. 토비 - 혼자 여행하는 아이 (Child on Journey)
25. 찰스 아인슈타인 - 전화 번호 이야기

(The Episode of the Telephone Number)
26. 부알로 나르스작 - 까마귀 (Le Cordeau)
27. 피터 해리스 - 등산길의 죽음 (Death on a Mountain)
28. 잭 샤키 - 벌레와의 대화 (Conversation with a Bug)
29. 조르주 심농 - 석 장의 렘브란트 (Les Trois Rembrandts)
30. A.F. 오래슈닉 - 사냥터 (Hunting Ground)
31. 듀에인 데커 - 심각한 문제 (Weighty Problem)
32. 윌리엄 브리튼 -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The Man Who Read John Dickson Carr)
33. 에드 월리스 - 의심 (A Case of Suspicion)
34. J.F. 피어스 - 비장의 카드 (Ace in the Hole)
35. 찰스 보먼트 - 피를 나눈 형제 (Blood Brother)
36. 에드워드 D. 호크 - 어디를 가도 있는 사나이

(The Man Who Was Everywhere)
37. 리처드 매드슨 - 물 한 모금 (A Drink of Water)
38. 애거서 크리스티 - 이중 단서 (Double Clue)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주도한 추리소설 릴레이 창작에 참여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추리소설을 구상할 정도로 추리소설을 좋아했다고 한다. S.S. 반 다인얼 스탠리 가드너 그리고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를 비롯한 7명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프랭클린이 제공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를 집필했는데 이 작품들은 《대통령의 미스터리》(산다슬, 2005년/절판)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잭 리치는 독자에게 반전을 주는 유머 쇼트 미스터리의 대가다. 그의 또 다른 단편 추리소설(제목은 『누가 ‘귀부인’을 가졌는가』)은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도솔, 2002년/품절)에 실려 있다. 존 콜리어, 에드워드 D. 호크, 사키 역시 잭 리치와 함께 미스터리 앤솔러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작가다. 존 D. 맥도널드는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의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 《사형집행인들》은 두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부알로 나르스작은 프랑스의 추리작가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스 나르스작의 공동 필명이다. 대표작은 《악마 같은 여자》(동서문화사, 2003년).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원작이 부알로 나르스작의 소설 《죽음의 입구》(D'Entre Les Morts)이다. 조르주 심농은 매그레 반장이 나오는 추리물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하다. 리처드 매드슨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 원작자로 유명하며 공포, SF, 판타지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나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중 단서』는 38편의 작품 중에서 분량이 조금 긴 단편이다.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하는 작품이며 최근에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8 : 빅토리 무도회 사건》(황금가지, 2015년)에 수록되어 있다. 2, 3, 4, 5, 12번 작품은 《미니 미스터리》(청년사, 1996년/절판)에 실려 있다. 《미니 미스터리》도 《존 딕슨 카》처럼 짧은 미스터리 콩트들만 모은 앤솔로지다. 《미니 미스터리》에 수록된 미스터리 콩트들은 엘러리 퀸이 선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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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0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희귀 본을 어찌 구하시는지...^^

cyrus 2015-06-03 16:34   좋아요 0 | URL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따로 메모하고,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헌책방에 가거나 중고샵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합니다. ^^

csp 2015-06-0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선집이로군요. 촌스러운 표지를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읽던 팬더 추리 걸작 시리즈도 생각이 납니다.

cyrus 2015-06-03 16:36   좋아요 0 | URL
팬더추리걸작 시리즈도 헌책방에서 가끔 발견하곤 합니다. ^^

2015-11-2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6-0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구하셨네요.ㅎㅎ 완역본의 묵직함도 좋지만, 편집이 잘 된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 같은 그런 책도 참 좋습니다.

cyrus 2015-06-03 16:37   좋아요 0 | URL
오탈자가 있긴 하지만, 읽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

에이바 2015-06-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고르는 안목이 부럽습니다. 존 딕슨 카 표지인물은 숀 펜 같은데요? 대통령의 미스터리 표지는 로트렉 작품이고요. 눈 크게 뜨고 아는 작품 없나 찾다가 표지만 알아차렸네요. ㅎㅎ

cyrus 2015-06-08 21:1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물만두님의 서평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안목이 있다기보다는 이웃님들이 남기는 서평을 읽으면서 좋은 책을 고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