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다. 책 제목을 본 순간, 프루스트의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었다. ‘한국출판공사’에서 나온, 꽤 오래된 책이다. 출판 연도가 1984년이다.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책 제목이 생소할 것이다. 알라딘에 ‘모디아노’를 검색하면 모디아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 나오지 않는다. 모디아노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나도 이 소설의 정체가 궁금했다. 절판되어서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모디아노의 번역 작품일까, 아니면 현재 새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작품일까? 책 앞표지와 뒷표지에 작품 원제를 알 수 있는 힌트가 있다. 앞표지에 있는 '프랑스 콩쿠르상 수상작'이라는 문구, 뒷표지에는 'Rue Des Boutiques Obscures'라는 작품 원제가 보인다.

 

이 작품은 9년 뒤에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되지만, 다시 한 번 절판의 운명을 맞는다. 다시 독자들 앞으로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14년이나 되었다. 예전보다 높아진 작가의 인지도 덕분에 이 작품은 당당히 대형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었다. 프랑스어를 능통한 독자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어떤 작품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작품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알고 있다. 이 소설로 모디아노는 1978년에 콩쿠르 상을 받았다.

 

그런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모디아노 작품의 번역본이 아니다. 1978년에 청산이라는 출판사가 ‘어두운 상점 거리’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이 때 당시만 해도 모디아노는 우리나라에 생소한 프랑스 작가였을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의 눈에 잘 띄려고 프루스트의 대표작 이름을 그대로 따와서 책 제목을 정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처럼 이 책을 프루스트의 소설인 줄 알고 집었다가 낭패를 본 독자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이 작품의 작가가 작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 모디아노의 절판본을 헌책방에서 만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21년 전에 나온 책이라서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읽는 데 큰 불편은 없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든가 모디아노의 소설을 한 권이라도 읽었더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샀을 텐데. 일단 다음에 올 때 사기로 다짐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원래 책장에 꽂았다. 이 귀한 책을 모디아노를 좋아하는 독자의 손으로 갔으면 좋겠다. 

 

 

 

 

 

알라딘 중고샵에 ‘모디아노’를 검색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1978년에 나온 《어두운 상점 거리》가 판매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격은 무난하다. 《가족 수첩》이라는 제목의 모디아노의 소설의 중고 가격이 5만 원이다. 김화영 교수가 번역했는데 작품 원제가 ‘Livret de famille’다. 생소한 제목과 역자의 이름에 혹해서 배송비를 얹은 5만 2천 500원을 지불하면서까지 구입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문학동네, 2015)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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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8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중고책 팔 때 알라딘에서 책정하는 가격으로 팔아야하는 줄 알고 그대로 올렸다가 상당히 고가였던 절판책들을 헐값에 넘겼던 일이 생각납니다ㅎ
골동품, 미술품 다 판매자 재량이란 걸 감안한다면 희귀본 책도 고가인 걸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고 봅니다. 구매를 하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 알라딘 자체 중고판매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중고 판매자에게는 신간 10% 이하로 팔면 안된다고 법적 처벌 등 엄포를 놓으면서 자기들은 30~40% 이하로 팔더군요. 어제 받은 책은 심지어 <출판사 드림>책이던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인 제가 시시콜콜 따지기 벅찬 일이 너무 많아요...구매자들이야 어찌 되었든 싸면 좋은거니 굳이 따지지도 않을 것이고...

cyrus 2015-05-17 21:02   좋아요 0 | URL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을 팔 때 절판본이 고가에 매기는 귀한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알라딘 중고샵에 3만 원 이상 되는 절판본이 운 좋게 중고매장에서 만 원 이하로 매겨져서 파는 경우가 있어요. 헌책방에 책을 팔 때도 그렇고, 중고 가격을 책정할 때가 판매자나 매입자 사이에 얼굴을 붉힐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에요.

AgalmA 2015-05-17 21:09   좋아요 0 | URL
네. 반대급부로 고가의 책인데, 알라딘 중고매장측에서 그걸 파악못하고 넘기는 예도 많죠.
도서정가제로 중고시장도 더욱 복잡한 양상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5-18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두운 상점의 거리. 좋아하는 소설인데~~

처음 십여년전에 출간된것이 처음이 아니었군요~ 제목이 달라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몰랐을것도 같아요.
그 제목과 내용이 전혀 상관없지는 않아 보여요~~ ㅎㅎ
뭔가 신기해요~~

cyrus 2015-05-18 22:35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책을 처음 봤을 때 신기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8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가의 중고책`은 그냥 원하는 사람에게 줍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몇 번 그렇게 되었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 원가의10배가 훌쩍 넘는 책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 가격에 거래가 되고 말이죠. 누군가가 저에게 쪽지를 남겼더라고요. 그 가격에 팔라고.. 꼭 필요한 책이라고...

그 쪽지 보고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사람 한테 이 책은 진짜 귀한 책이겠구나. 나는 딱 한 번 읽고 읽지도 않는 책인데 말이야... 그래서 무료로 그냥 줬습니다. 제가 장사 체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고 있으니.. 시바...

cyrus 2015-05-18 22:42   좋아요 0 | URL
저도 엄청 책을 좋아하는 성격인데도 원가의 10배 되는 가격의 책은 살 엄두가 나지 않아요. 아직까지는 거금을 낼 수준의 애서가가 아닌 것 같아요.. ^^;;

stella.K 2015-05-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파트릭 모디아노가 생각 보다 더 오래 전에 울나라에 알려졌네.
난 한 90년대쯤이 아닌가 했는데 말야.

제목은 뭐 꼭 그 작가의 대표성을 지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워낙에 프루스트가 유명한 작가라 그의 작품을 그대로 차용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텐데 파트릭은 그냥 썼나 보구만.
결국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됐으니 사람은 역시 원대한 포부를 가져야 크게
되는 법인가 봐.ㅋㅋ

cyrus 2015-05-18 22:44   좋아요 0 | URL
네, 저도 90년대부터 나온 줄 알았어요. 가끔 헌책방에서 책을 구경하면 책의 역사를 추적하게 되요. ^^

에이바 2015-05-2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저 책을 읽고 모디아노가 던지는 진실의 돌멩이에 맞아야겠습니다. ^^; 원제는 어딜 봐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인데요. 기억상실증을 앓는 탐정이 주인공이라 저 멋진 제목을 함께 붙인 듯 하네요. 프루스트 작품 제목이 직관적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참 멋지군요.

cyrus 2015-05-21 20:52   좋아요 0 | URL
제가 불어를 몰라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원제를 해석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