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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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 아빠가 통닭을 사가지고 오셨어요

 

아버지 이야기를 하려면 가슴이 턱 막혀온다. 아버지들은 쉴 곳이 없다. 아버지들은 집과 가족을 떠나 먼 곳에 있다. 아버지는 가족의 안위를 위해 당신의 젊음과 맞바꾸는 희생과 고통을 감내했다. 이에 비해 노래 속 아버지는 집에 있었다. 일하느라 집에 쉴 여유가 적은 아버지는 가족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어젯밤엔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배따라기  ‘아빠와 크레파스’ 중에서)

 

그런데 이 노래에 나오는 아버지는 현실감으로 와 닿지 않는다. 원래 가사는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술 취하신 모습으로’라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약주를 하고 집에 들어오신다. 흥미로운 점은 다정한 아버지의 한 손에는 ‘선물’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목 빼고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겠지만, 아버지가 사오는 선물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비록 선뜻 선물을 사주기 힘든 형편임을 알면서도 아버지는 돈 벌어 선물을 사왔다.

 

그렇다고 노래 속 아버지처럼 현실의 모든 아버지가 크레파스를 사온 건 아니다. 쌩쌩 부는 겨울바람을 뚫고 퇴근한 아버지 품에 크레파스 대신에 누런색 종이봉투가 나오기도 했다. 기름에 젖은 종이봉투를 펼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통닭 한 마리가 있었다. 통닭 먹는 날은 정말로 행복했다. 칼바람에 식을세라 퇴근길 내내 품에 안았고, 버스 안에서 진동하는 통닭 냄새 때문에 퇴근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야 했던 고충이 어땠을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앞에 놓인 통닭이 얼른 먹고 싶었다.

 

 

 

 Scene #2  촌스러운 통닭, 화려한 치킨으로 변신하다  

 

 

          

 

 

 

1980년대 전기구이통닭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유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남녀노소 좋아했던 원조 ‘치느님’이었다. 통닭은 온 가족을 한 자리에 둘러앉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기름기를 쏙 뺀 바삭바삭한 껍질과 부드럽게 익은 속살의 조화는 세상에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맛있었다. 요즘처럼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뭔가를 먹기 위해 온 가족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드물었다. 지금은 흔한 배달 서비스도 정착되지 않은 시절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족의 맛을 책임지는 배달원이 되었다. 퇴근길에 명동영양센터나 시장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들고 귀가했다. 그때는 이런 낭만이 있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 곳곳에 통닭의 흔적이 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자리에 통닭이 있었고, 생일잔치의 터줏대감인 케이크와 쌍벽을 이루었다. 항상 즐거운 자리에 우리는 늘 통닭과 함께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식탁 위의 닭고기도 조금씩 변했다. 한때 ‘통닭’이라고 하면 ‘치킨’의 이음동의어였다. 요즘은 통닭 대신에 치킨이라는 외국말이 더 친숙해졌다. 프라이드치킨, 새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양념치킨, 눈물 쏙 나게 매운맛이 나는 불닭까지. 기름옷을 입은 촌스러운 통닭이 두꺼운 튀김옷과 우리 입맛을 자극하는 양념 옷을 입으면서 팔색조 매력을 뽐낸다. 배달을 시켜서 먹을 수 있고,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가 있는 날에 집에 혼자 중계를 보더라도 치킨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1인 1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치킨은 특별한 외식이 아닌 특별한 주식이 되었다. 치킨은 소위 전례 없는 ‘절대 음식’의 독보적인 지위를 갖게 됐고 ‘치느님’이라는 영광스러운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치킨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사랑하고, 많이 먹는 야식이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을 치킨의 매력에 푹 빠지는 데 성공했다. 젊은 소비자층의 외식소비성향이 늘어나면서 치킨 사업은 젊은 세대들을 타깃으로 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 치킨 전문점은 입맛으로만 승부해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를 치킨 광고 모델로 출연시키고, 각종 사은품을 제공한다. 치느님을 믿는 젊은 소비자들은 치킨을 맛으로 먹기보다는 즐기기 위해서 먹는다. 여러 사람과 함께 모여 치맥을 즐긴다. 이를 반영하듯이 대구에 ‘치맥페스티벌’이 개최되기도 했다. 고작 몇 조각 치킨과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은 맥주를 받기 위해 행사장에 일렬로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행사에 그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치느님의 역사와 함께했던 그들은 행사장에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바로 아버지 세대였다.  
 

 


  Scene #3  아버지의 땀은 기름이 되어 닭을 튀긴다   

 

어린 시절 가족을 위해 통닭을 사들고 온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은퇴를 앞둔 중년이 된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 2막을 위해 창업에 뛰어든다. 불황의 골이 깊어질수록 아버지의 애환을 달래줄 휴식처로 치킨 전문점이 각광받기 시작하자 중년 예비 창업자들은 치킨 전문점을 차리고 싶어 한다. 국내 굴지의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는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BBQ 치킨대학’을 설립했다. 치킨을 직접 만들고, 치킨 가게를 차리는 방법을 배우는 수강생 대부분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버지들이다.  

 

치킨 먹는 날은 치느님의 은혜가 내리는 즐거운 시간이다. 그런데 이 영광스러운 은혜를 못 받는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아버지’다. “치킨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끓는 기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함, 단언컨대 치킨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 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치킨 명언’이다. 우리의 입맛을 위해 펄펄 끓는 기름 속으로 몸을 던지는 닭은 희생하사 치킨이 되어 무한 사랑을 받는다. 아버지는 다 큰 자녀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도록 돈을 벌기 위해 느끼한 기름 냄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흐르는 땀은 기름이 되어 닭을 튀긴다. 집에서 푹 쉬지 못하고, 가족들과 함께 치킨 먹을 시간마저 없다. 아이들은 집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치맥을 즐긴다. 과거 가족들의 환영을 한몸에 받았던 ‘치킨-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시절은 없다. 서로 엇갈리고만 운명의 비극이 서글프다.

 

가끔 통닭을 먹었던 시절이 그립다. 통닭의 옛 맛이 아닌 가족과 함께 먹는 화목했던 시간 말이다. 음식의 냄새, 장소 그리고 함께 한 사람 등 온몸의 감각들이 저마다 나누어 갖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딱 들어맞았을 때 비로소 하나의 추억으로 완성된다. 얼마 되지 않은 통닭 조각을 둘러싸고 온 가족이 머리 맞대고 먹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그때의 통닭은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 위대한 치느님이었다. 창밖 기온이 떨어질수록 통닭에 얽힌 추억의 온기는 아버지의 냉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오늘 금요일 밤에 흔한 치킨 대신에 시장에 파는 통닭을 직접 사들고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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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1-2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어릴 적 아빠가 술에 취하셔서 노란봉투에 담긴 전기구이 통닭을 사오시고는 잠들어 있는 나를 깨우던 기억이 가장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지금은 같이 드실 아빠가 안계시지만 아이들하고라도 따뜻한 닭튀김 함께 해야겠어요.

cyrus 2015-01-24 10:59   좋아요 0 | URL
치킨은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 맛있어요. 점점 젊은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 산다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생기는 가족의 정을 느끼는 시간이 없을거에요.

쉽싸리 2015-01-23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거 힘든 시절을 헤쳐온 모든 아버지들. 그시대 그들 나름의 역할이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도 힘든 아버지들이 많지요. 어쩌면 예전보다더 많고 앞으로도 있겠지요. 그들의 삶을 단지 과거와 오버랩시키면서 눈물바람이나 측은함으로 소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힘든 아버지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합니다. 슬픈 통닭이 더이상 소비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cyrus 2015-01-24 11:0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지금은 요원해보지만 아버지들이 기를 펼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15-01-28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페리카나 치킨을 참 맛있게 먹었어요.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압니다. 미국에서는 교촌치킨이 들어온 곳이 몇 군데 있어 꽤 인기라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에요. 그 맛도 그렇고. 한국의 닭강정을 제대로 들여오면 대박칠 것 같다능..ㅎ

cyrus 2015-01-28 09: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페리카나도 예전에 비하면 인지도가 떨어졌어요. 닭강정은 뼈가 없는 닭튀김이니까 외국에서 판매한다면 대박 날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