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브누아트 그루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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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인권선언문을 작성한 그녀는 ‘미친 사람’으로 비난받았다. 시민혁명과 공화정의 나라 프랑스에서 여성이 선거권을 얻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44년.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진 지 155년 만이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단지 ‘남성권’의 선언이었고, 박애의 이념은 자매를 제외한 형제애였던가.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루소조차 여성은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창조되었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정치는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에겐 문턱이 높았다.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성참정권의 역사는 겨우 100년을 헤아린다. 스위스 여성들은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1971년까지 기다렸다. 여성의 한 표는 거저 쥐어지지 않았다. ‘피의 투쟁’을 거쳤다. 어쩌면 인종과 신분의 벽보다 더 험하고 거친 차별의 강을 건너야 했다.

 

무리를 이룬 펭귄 가운데 두려워하지 않고 제일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처럼 구주는 인권에서 제외된 여성 중에 제일 먼저 차별의 강을 건너 넘으려고 앞장섰다. 왕정과 공화정의 극단적 대립 상황에서 구주는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도 마땅히 혁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녀의 희망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우애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구주의 눈에는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여자들을 쏙 뺀 반쪽짜리 내용에 불과했다. 그녀는 남자들의 세상 속에서 오랫동안 잠들고 있는 여성들의 생각을 깨우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과 여성 시민의 인권 선언’은 성적 평등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위대한 팸플릿이었다. 여기에 포함되는 ‘여성’은 국민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 딸, 누이들이었다. 여성의 이혼권을 옹호하고, 딸도 아버지의 유산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제안했다. 또 미혼모들이 경제적 원조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다.

 

그녀의 제안과 주장은 당시 시대를 앞서가는 전위적인 내용이다. 그녀의 인권선언에 나오는 제안은 1975년에 법으로 제정되었다. 재미있게도 1970년대 프랑스는 여성 해방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이다. 1971년에 프랑스 여성 지식인 343명은 낙태를 했음을 선언하는 일명 ‘343선언’에 참여했다. 이때만 해도 낙태만 해도 징역형을 받았다. 미혼모도, 성폭행으로 임신한 여성들도 낙태하면 죗값을 치러야 했다. 343선언에 동참했던 여성 지식인 중에 보부아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등의 익숙한 이름도 있다. 결국, 여성의 낙태권 주장은 법에 수용되어 1975년부터 시행된다. 여성 해방 운동의 거센 물결 덕분에 구주의 제안은 180여 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에 의한 먼지를 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여성 해방 운동론자들 중 그 누구도 구주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들은 잊힌 조상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보부아르마저도. 소외된 여성의 권익을 대중적인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 낸 ‘페미니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보부아르가 고스란히 받았다. 20세기의 역사는 또 한 번 구주의 이름을 외면했다.

 

구주는 보부아르보다 가장 먼저 페미니즘의 초석을 다지는 데 이바지했다. 보부아르가 쓴 『제2의 성』은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보부아르의 페미니즘에서 인식하는 여성은 ‘백인 중산층 여성’에 한정된다. 이러한 서구 중심적 페미니즘은 인종이나 계급의 교차점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 이르지 못한다. 반면 구주는 여성의 문제를 좀 더 포괄적인 접근으로 바라본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인이나 노동자의 자녀를 위한 보호시설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다른 사회 운동과 더불어 주장의 폭을 넓혀가는 구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적 계급과 인종에 기반을 둔 한계를 극복하려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조류와 유사하다.

 

프로이트의 비유를 빌리자면 구주는 다들 깊이 잠든 이른 시간에 깨어난 여성이다. 남성들이 만든 차별의 울타리 속에 갇힌 여성들은 오랫동안 깊은 수면에 빠져야만 했다. 구주는 여성들을 몽매하게 만드는 잠에서 깨어나는데 성공했지만, 울타리 밖에 남성들이 득실한 세상에 홀로 발을 내딛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사생아로 태어나 16살에 결혼을 하지만, 아들 하나 낳고 과부가 된다. 그 후로 파리 사교계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세간의 관심과 남성들의 구애를 한몸에 받게 되지만, 구주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과부로 산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결혼하는 순간, 또다시 ‘부인’과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남성들의 사회적 울타리 안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구주는 사방이 꽉 막힌 그곳에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이제 차별의 울타리를 부수어 잠든 여성들을 깨우는 일이 사회적 평등을 위한 소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 여성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문맹이 많았다. 구주도 글을 쓸 수 없었지만, 문맹은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자기 생각을 비서에게 받아 적게 했다. 

 

구주는 자신의 과감한 생각이 사회에 실현하기 위해서 단두대에 오를 위험을 감수했다. 불평등한 구조와 억압을 깨트리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하고 필요한 것이 여성의 삶 속으로 정치를 가져오고 정치 속으로 여성이 들어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구주는 정치를 바꾸는 게 아니라 불평등한 삶을 바꾸고 싶었다. 자유, 평등, 우애를 주장한 남성들은 그녀의 떳떳한 목소리가 거북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이어서 구주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구주의 정의감은 구시대적인 남성들에 의해 영원히 눈을 감았다. 구주의 죽음은 곧 남성들의 승리였다. 차별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여성들은 여성참정권을 가지는 데 무려 100년 동안 잠들어야만 했다.

 

남성들의 역사(History)에 의해 잠든 여성 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 최근에 그녀의 존재가 재평가받게 되면서 드디어 구주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전반적인 사상을 알 수 있는 책이 이제야 나왔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구주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동참하고, 그녀의 실천적 페미니즘을 본받아야 한다. 여성의 권리 회복을 주장한답시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 보이는 옹졸한 페미니스트여, 그대는 정의로울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을 그대에게 던지는 건 여자, 이제 잠에서 깬 구주다. 적어도 구주의 존재를 잊지 말아 달라.

 

 

 

※ 글 마지막 세 줄의 문장은 구주의 여성 인권선언서 일부 문장을 차용했음.
원문 :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을 그대에게 던지는 건 여자다.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여자에게서 빼앗지 말아 달라.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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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14-12-2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제목이 정말 기발하네요 ㅋ

cyrus 2014-12-23 22:22   좋아요 0 | URL
쓸데없는 개드립이에요. ^^;;

바람돌이 2014-12-2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담아갑니다. 저도 모르던 인물이네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

cyrus 2014-12-23 22:25   좋아요 0 | URL
책은 작가가 소개하는 구주의 생애와 구주가 남긴 글이 몇 편 수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정희진씨의 해제도 실려 있어요. 정희진씨가 구주를 아주 쉽게 소개하고 있어요. 읽어본다면 책이 마음에 드실 겁니다. ^^

감은빛 2014-12-2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되어 기쁘네요.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cyrus 2014-12-23 22:27   좋아요 0 | URL
독자들이 이런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