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콧 컬렉션 칼데콧 컬렉션 1
랜돌프 칼데콧 지음, 이종욱 옮김 / 아일랜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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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의 쓸데없는 궁금증 하나. 부모는 자녀를 위한 그림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를까? 그림만으로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운 책? 아니면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는 책? 그림도 좋지만, 교훈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감동으로 다가오는 책을 고를 수도 있다. 요즘 아빠와 엄마도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 외국 작가의 그림책이 많아졌다. 내가 어렸을 때 외국 작가의 그림책을 읽어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고작 몇 손가락 꼽을 정도이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외국 그림책이라면 디즈니 만화뿐이다. 미키 마우스, 아기사슴 밤비, 곰돌이 푸, 신데렐라 등 디즈니가 만든 고전만화의 일부 장면을 그림책으로 옮겨 만든 것이다.

 

그림책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림책의 재미에 푹 빠졌다. 그러자 글자 대신 그림만 있는 책만 읽었다. 어머니는 한글을 완전히 뗀 아들이 그림책만 읽는 것이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 싶다. 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어머니는 글자가 많은 아동 문고나 위인전을 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사준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멀어져만 갔다. 처음에 그림이 없는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그림만 보는 독서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어머니는 반강제적으로 글자로 된 책을 읽게 했다. 어머니가 강요하는 독서 때문에 잠시 독서의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림에 집착하는 습관을 잊지 못해 엉뚱하게 오락실의 게임에 빠졌다. 거의 밤늦게까지 오락실에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거대한 화면에 가득 채운 역동적인 그림과 눈을 자극하는 색채는 책의 존재를 완전히 잊게 해줄 정도로 나를 유혹했다.

 

요즘 아이들의 눈은 책보다 기계 속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많아졌다. 내가 어렸을 때 독서를 방해했던 것이 TV, 오락, 비디오뿐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성능이 좋은 기기들이 하나씩 우리 일상에 파고들기 시작했는데 가장 친숙한 것이 스마트폰이다. TV를 많이 보는 아이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스마트폰만 온종일 보는 아이다. 고사리 같은 조그만 손보다 큰 스마트폰을 꼭 쥐면서 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카톡을 한다. 아이들은 집에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간다고 아이들을 집에 혼자 놔두고 갈 수 있다. 예전 아이들이라면 집에 혼자 있다는 공포감에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혼자 집에서 놀 수 있다. 오히려 집에 어머니가 없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한편으로 그림책을 읽어야 할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질수록 순수한 동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집에 혼자 있을 때 그림책 몇 권만 읽어도 전혀 무섭지 않고, 즐거웠던 시간이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그림책으로 집에서 혼자 노는 재미를 알고 있을라나.

 

만약에 내가 부모라면 스마트폰에 매달리는 자식이 책을 좋아하도록 어떻게 가르칠까? 정답이 없겠지만, 우선 그림책을 읽도록 권할 것이다. 글자보다 그림이 많은 걸로. 그리고 아이 혼자 읽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더 좋을 것 같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의 행동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부모처럼 똑같이 따라 한다.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아이 앞에서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제일 좋은 방법이 부모와 자식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 간의 친밀감이 더욱 향상되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독서의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내가 미래의 자식과 함께 읽게 될 그림책을 장만하게 된다면 『칼데콧 컬렉션』을 꼭 살 것이다. 랜돌프 칼데콧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활동한 그림책 삽화가이다. 칼데콧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한해 동안 뛰어난 그림책 작가에게 ‘칼데콧 상’을 수여하고 있다. 칼데콧의 그림책은 ‘글 없는 그림책’의 모범이다. 그림 한 컷에 달랑 글자 한 두 줄만 있거나 아예 글자가 없는 것도 있다. 글자가 없는 책이라면 아이들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칼데콧은 오직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칼데콧의 그림은 누구나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려고 그림을 지나치게 과장하여 묘사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자칫 단순하게 느껴지는 선 하나만으로 대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어린 시절부터 스케치를 많이 했던 경험 덕분에 선으로 그려진 그림을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만들었다. 칼데콧 상을 받았고, ‘그림책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모리스 센닥은 칼데콧의 영향을 많이 받은 그림책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칼데콧의 그림책이 “글이 없는 곳에서는 그림이 말하고, 그림이 없는 곳에서는 글이 말한다. 마치 튀어 오르는 공과 같다”고 평가했다.

 

 

 

 

 

 

 

칼데콧의 그림책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더 읽고 싶어진다. 그림 한 장 한 장 읽을수록 다음 장면에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무척 궁금하게 만든다. 예스러운 그림 속에 세련미는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칼데콧이 묘사한 동물과 인물의 표정은 생생하다.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그 속에 있는 동물과 인물은 독자 앞에서 살아서 숨을 쉰다. 한 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에게 위협하는 개가 무서워서 온몸의 털을 쭈뼛 세운 채 겁에 질린 고양이의 표정을 보라. 이런 재미있는 묘사는 그림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눈웃음 짓는 강아지의 표정만 봐도 강아지의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칼데콧은 ‘글 없는 그림책’을 만드는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아이가 읽을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의 눈에 최대한 맞추도록 했다. 글자에 익숙하지 않아 그림이 편한 아이부터 글자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영국에 자란 아이들의 귀에 익숙한 전래동요, 구전민요, 동시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짧고 반복되는 문장이 많은 편이다. 단순한 이야기와 단순한 그림의 만남. 이런 단순한 조합은 그림책의 위상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빽빽한 활자로 이루어진 책만 읽어서 색다른 독서를 원하는 독자라면 칼데콧의 그림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이 무겁고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애서가라면 이런 책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다. 심심할 때 가끔 읽어 볼 수 있다. 아니면 아이들과 소파에 앉아 같이 읽어도 좋다. 그런데 스마트폰 화면에 익숙한 아이들의 눈에는 이런 그림책을 좋아할지 모르겠다. 영국 전래동요를 낯설게 느껴진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너무나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이 요즘 아이들의 취향에 맞을지 의문이다. 유명한 외국 그림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것만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할 필요는 없다.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 폴 아잘은 “어린 시절에 처음 읽은 책과 처음 본 그림에 의해서 자기 나라의 지난 역사와 전통의 훌륭함을 알고 강한 조국애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책과 그림의 추억은 가슴 깊은 곳에 차고 들어 일생 동안 간직하게 된다”고 말했다. 외국 그림책이 넘쳐나고, 아이들이 접하는 그림책이 외국 작품이 훨씬 많은 현실에서 한 번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아이와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어른도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 아직도 다 큰 어른이 그림책을 읽는 모습이 수준 낮게 보이는가. 가끔 어른도 그림책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속에 소중하게 여겼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기 위해서. 그래서 부모와 아이가 그림책을 같이 읽으면 그 추억이 공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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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4-12-21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대는 분명 멋진 아빠가 될 거야~
우리집에는 칼데콧 그림책 딱 한권인데 찔린다;; 근데 지민이가 많이 좋아해. 요 시리즈 장바구니에 쏘옥 담아놔야지. :)

cyrus 2014-12-21 10:29   좋아요 0 | URL
누나도 이 그림책을 만족스러워 할거예요. ^^

바람돌이 2014-12-21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모든 종류의 그림책들을 다같이 읽었는데 어른이 좋아하는 그림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딱히 일치하진 않더군요. 그리고 딸랑 둘뿐인 녀석들 역시 그림책 취향이 전혀 다르더이다. ^^

cyrus 2014-12-22 20:46   좋아요 0 | URL
역시 경험자의 말씀은 유익합니다. 아이의 취향이 부모와 완전히 똑같을 수 없는데도 무조건 부모 취향이 따른 책을 아이에게 권한다면, 아이들이 책을 멀리할 것 같습니다. ^^


해피북 2014-12-21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으며 대단한 내공이 느껴지신다 했더니 역시그랬네요 ^^ 저는 동화책을 고를때 그림의 조화로움 과 색채를 주로 보는거 같아요. 조금 날카롭거나 어두운 색깔보다는 밝고 화사한 그림책을 선호하는데 아이들에게 읽어줄때도 시각적 효과가 있고 집중력이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덕분에 이런 동화책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자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이들과 복사해서 색칠놀이도 하고 이야기도 만들고 해도 좋을거 같네요^^ 더불어 야나님 말씀처럼 좋은 부모님이 되실거 같다는데 공감합니다^^

cyrus 2014-12-22 20:50   좋아요 0 | URL
그저 책을 좋아하지 알고 보면 헛똑똑인데요. 내공이 부족하다고 여기면서 늘 독서를 통해서 많이 생각하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서재 이웃분들의 건전한 비판과 의견도 귀 기울이려고 합니다. 해피북님 말씀도 잘 새겨들어야겠습니다. 저는 아직 미혼이라서 그림책을 고르는 부모의 심정이 무척 궁금했어요. 사실 이런 궁금증을 가진 미혼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