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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체포하라 - 14인 사건을 통해 보는 18세기 파리의 의사소통망
로버트 단턴 지음, 김지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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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동요 속에 숨겨진 민중의 소망

 

‘맛동(薯童, 서동) 도령’. 어머니가 용의 정기를 받아 낳았고, 익산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늘 마를 캐 팔러 다녔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때는 6세기말. 신라 26대 진평왕에게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셋째 딸 선화 공주가 있었다. 소문은 이웃나라 산골에 사는 서동의 귀에도 들렸다. 서동은 스님으로 변장해 서라벌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를 공짜로 나눠주는 대신, 자신이 직접 만든 동요 하나를 부르게 한다. 일연의 『삼국유사』가 전하는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인 ‘서동요’이다.

 

‘선화 공주님은 / 남몰래 정을 통해 두고 / 맛동 도련님을 /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불과 25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노래였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노래를 듣고 대노한 진평왕은 딸을 쫓아냈고, 서동은 큰 힘 안들이고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이에 서동이 길목에 나와 그녀를 기다리다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무왕’(武王)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된다.

 

그러나 무왕이 생존했던 백제가 여전히 신라와 갈등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보면 한창 마를 캐던 서동이 지은 동요가 아닐 수 있다. 서동과 선화는 향가 내용대로 부부의 정을 통하는데 성공했지만, 신라와 백제는 서로 평화를 유지하는 정을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선화 공주는 무왕에게 간청하여 미륵사지 석탑을 창건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국이자 적국인 신라에게 향하는 평화의 랜드마크가 될 수 없었다. 무왕이 신라 서쪽 국경을 여러 번 침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일연은 이 서동 설화가 계략과 모함에 대한 비난이 아닌 국경을 뛰어넘은'역사적 로맨스'로 남길 바랐다. 이후 무왕이 신라에 얼마나 적대적이었는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서동요’의 목적이 노래를 이용한 유언비어로 여자 차지하기였다면, 일연에게는 설화적 기록을 통한 국민화합이 목표였지 않았을까. 후삼국으로 다시 찢어진 나라를 하나로 통합한 고려의 최우선 국가 과제가 사회 통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따라서 서동 이야기와 서동요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고대부터 전승된 설화에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뒤섞이며 만들어질 수 있다. 백제와 신라가 서로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기를 원하는 그 당시 민중의 소망 또한 서려 있는 것이다.

 

 

 

 Scene #2   “아! 저기 그가 있어. 매춘부 사생아가!”

 

이제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여기 서동요처럼 짧은 시와 노래의 위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이 있다.

 

1749년 프랑스,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를 퍼뜨린 혐의로 한 의대생이 체포된다. 시의 내용이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지만, 해군과 왕실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모르파 백작을 해임하고 유배시킨 루이 15세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매춘부 사생아가 / 궁정에서 출세하네. / 사랑에서나 술에서나 / 루이는 손쉬운 영광을 바라네. / 아! 저기 그가 있어, 아! 여기 그가 있네. / 근심걱정 하나 없는 그 사람. // 보기만큼 어리석은 것이 틀림없어 / 백성들은 염려하네. / 그의 얼굴에 드리운 운명을. / 아! 저기 그가 있네, 등등. (‘매춘부 사생아’ 중에서, 177~178쪽)

 

의대생의 자백 후 시를 암송하고 퍼뜨린데 일조했다고 여겨지는 14인이 줄줄이 체포됐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왕을 조롱하는 시가 당시로선 왕권모독이나 역모에 해당됐을 터였다. 하지만 체포된 사람들은 혁명이나 권력투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음에도 경찰은 14인을 체포하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 부었다.

 

백성들 사이에 이런 노래가 떠돈 사실을 안 루이 15세가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프랑스인들은 이런 노래와 시를 주고받으면서 권력을 풍자하고 비판했다. 노래 속에는 왕과 퐁파두르 부인의 은밀한 관계, 모르파 백작의 몰락 등 공적인 사건들에 관한 뉴스가 가득했다. 불륜과 근친상간, 평민 출신 애첩 퐁파두르 부인에게 보석과 성채를 퍼주느라 왕국이 거덜났다는 주제의 노래와 시가 왕에게 전달됐다. 그 가운데 일부는 국왕 시해를 주장할 정도로 과격했다.

 

왕은 파리 시민이 주고받는 말과 노래에 몹시 민감했다. 파리 시민이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도 프랑스 국민은 베르사유의 가장 내밀한 안식처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다.

 

 

 

 Scene #3  루이 15세의 ‘불통 태도’가 주는 교훈 

 

 

 

 

프랑수아 부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1756년

 

 

서동요는 참요(讖謠)다. 참요란 미래의 어떤 징후를 암시하는 노래를 말한다. 참요는 여론의 일종으로서 역할로 변환된다. 서동요나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처럼 어떤 사람이 특별한 목적을 갖고 퍼뜨리기도 한다. 신라의 진평왕은 대궐에까지 퍼진 서동의 노래에 노하여 선화 공주를 내쫓을 수 있었지만, 루이 15세는 속으로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미모와 재치를 겸비한 애첩이며 이미 왕정의 인사에 손 뻗칠 정도로 권세를 누리고 있는 퐁파두르 부인을 단번에 내쫓을 수 있었을까.

 

 루이 15세에게는 자신을 향한 조롱의 시와 노래가 유언비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 속에는 강력한 군주를 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이 담겨져 있다. 어쩌면 무능한 왕이 폐위되기를 염원했을지도 모른다. 이토록 간절한 바람이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자신들의 목소리가 왕의 귀에 전해질 거라 믿었다. 그들의 마음이 ‘매춘부 사생아’ 마지막 연에서 엿볼 수 있다.

 

거만한 검열관이 이 노래를 / 제멋대로 비판하고 반박할지도 모르지 / 그 비판의 화살이 실수를 들춰내고 / 왕좌까지 꿰뚫을지도 모르지. (‘매춘부 사생아’ 중에서, 180~181쪽)

 

결국 노래는 무능한 매춘부 사생아가 앉아 있는 왕좌를 꿰뚫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비판의 화살이 평범한 14인의 파리 시민들에게 엉뚱하게 향했다. 말 그대도 제멋대로 죄없는 시민을 체포하는데 그친 궁색한 반박이었다. 결과적으로 14인이 퍼뜨린 노래는 서동요처럼 미래의 일을 예언하고 실현된 셈이다.

 

만약에 루이 15세가 자신과 함께 모욕의 대상이 된, 아니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지탄받게 만든 주범인 퐁파두르 부인을 궁궐에서 쫓아냈다면 혼란스러운 국정이 회복되었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1764년에 죽을 때까지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 정치를 좌우할 정도로 권력을 누렸다. 게다가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부인 이외에 또 다른 애첩을 맞을 정도로 왕권은 크게 실추되었다. 실제로 왕이 사망했을 때 아무도 그를 애도하고 존경하지 않았다니, 그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해 나라 안을 헤집었지만 시의 원작자는 잡지 못했다. 애초에 단 한명의 시인을 쫓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을 것이다. 최초에는 한사람의 생각과 입을 통해 나온 시었을 지라도 결국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덧붙여지고 변형된 집단창작물의 성격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게 여론이다. 권력자에게 여론이란 흐름을 파악해 대중의 생각을 읽어야 하는 것이지, 배후를 찾아 헤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현대인의 눈은 스마트 기기에 향한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SNS에 들어가 소식을 주고받으며, 소셜 커머스에서 필요한 물건을 산다. 하지만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현대 사회만의 전유물일까.

 

스마트기기를 통해 언제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현대사회와는 달리 정보를 쪽지에 필사해 전하거나 암기해 전하기 때문에 정보의 확산 속도는 너무나도 느렸다. 그래도 18세기 중엽에도 국민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고 공통된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사회라 부를 만한 구조는 갖추고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권력자를 괴롭히던 프랑스의 시와 노래는 오늘날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이렇게 되풀이되고 있다. SNS 이전에 18세기 프랑스에 유행한 시와 노래는 오늘날의 SNS처럼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시민과 나란히 사회 변화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작년 말에 대통령은 “SNS등을 통해 퍼져나가는 잘못된 유언비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팩트를 왜곡하는 유언비어가 떠도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진실을 외면하고, 갈등의 불에 기름을 붓는 유언비어나 비방적인 말은 올바른 비판 여론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견해를 유언비어로 보고 이를 척결한다면 임기 초기 전에 많이 지적받았던 대통령 특유의 ‘불통 철학’이 반복될 수 있다. 정부 정책과 다른 비판 여론이 있다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홍보에 힘을 쏟으라는 지시를 내놓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다. ‘14인 사건’에 대처하는 루이 15세의 ‘불통 태도’가 여론의 힘을 무시하는 권력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여론에 대통령 각하께서는 당황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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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02-0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폐하께옵서는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을 듯 보여요.
자신이 연루된 일 임에도 마치 남의 일처럼 이리 무관심하시니 말예요.

cyrus 2014-02-05 23:08   좋아요 0 | URL
무관심한 척하면서 내심 겁먹을 겁니다. 국민들의 자잘하고도 진실한 여론마저 외면하고 귀를 닫는다면, 임기 말 아니면 임기 끝나고 나서도 엄청 괴로워질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