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1001-91] 어셔 가의 몰락

[1001-96] 갱과 추 (저승과 진자)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다.

 

 - H.P. 러브크래프트 -

 

 

 

 

 공포문학의 효시, 에드거 앨런 포

 

공포문학은 오싹하고 음산하지만 알 수 없는 매력을 지녔기에 시대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주, 재생산되며 읽혀지고 있다. 괴기스럽고도 공포스러운 이 이야기의 근저를 이루는 초자연적인 공포는 인류의 출연과 함께 시작됐으며 그 자체로 문학 형식이 되기도 했다. '공포'라는 감정을 주제로 또 하나의 문학 장르를 구축한 에드거 앨런 포야말로 공포문학의 효시로 보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포가 태어나기 이전에 유럽에서는 이미 공포와 초현상을 주제로 한 고딕소설이 유행했기 때문에 포를 '공포문학의 원조'라고 평가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것이다. 그런 포 역시 고딕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어셔 가의 몰락」이다) 

 

하지만 포의 소설은 현실을 벗어난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창조했으며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 공포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포는 세속적인 주제에 사로잡힌 예술과 문학을 경멸하였으며, 그 자체로 새롭고도 불가해한 초자연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의 문학적 평가는 죽은 지 1세기가 지난 뒤에서야 이뤄졌다. 혹자의 비평가는 포를 미국 문학사에 크게 이바지한 영향이 없다고 저평가할 정도로 포는 자신이 태어난 미국에서도 후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문학적 가치를 인정해 준 사람들은 저 바다 건너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뿐이었다.

 

국내에서도 포의 작품, 특히 너무나도 유명한 「검은 고양이」, 「어셔 가의 몰락」등은 단편소설 모음집을 통해 심심찮게 만나 볼 수 있지만 단순히 아동 대상의 독자들을 위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전락되고 말았다. 이 두 단편소설만으로 포 특유의 그로테스크를 느낄 수가 없다.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포가 남긴 수많은 단편소설들을 수록한 책이 『우울과 몽상』이다. 공포를 주제로 한 소설뿐만 아니라 '명탐정의 원조'인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는 유명한 추리소설까지 포의 모든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는 유일한 소설전집이기도 하다. 단, 소설의 분위기를 흐트리게 만드는 오자에다가 독자들 사이에서는 역자가 원전의 일부를 일부러 훼손한 채 발췌 번역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리는 게 옥의 티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공포를 주제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정말 불행하기 짝이 없었던 일생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불우한 삶을 살았다. 젊어서부터 술과 도박, 아편에 탐닉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과 정신을 본인 스스로 망가뜨리고 말았으며 번번히 연애에서도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리고 포는 너무나도 가난했다.

 

그는 지독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썼는데, 소설 대부분은 공포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분위기가 음울하면서도 환상적이다. 그가 표방하는 주제는 공포이며, 그 공포는 영혼의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했다. 「검은 고양이」에 나오는 고양이는 초자연적인 괴물의 형상이며,「어셔 가의 몰락」의 초반부에 그려진 늦가을 저물녘 늪가의 황폐한 옛 집은 바로 괴물의 집이다. 검은 고양이와 그 기괴한 분위기는 유년기에 포의 마음 깊은 곳에 축적된 공포감에서 나온 것이다.

 

 

 

 

 

 공포 앞에서 굴복하고 마는 인간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마로니에북스, 2007)는 수백명의 국제적인 문학 관편 필자들이 선정한 작품들이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에 소개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두 편이다. 그 두 편이 바로 「어셔 가의 몰락」「저승과 진자」(국내에 번역된 박스올의 책에서는 '갱과 추'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다. 포의 대표작인「검은 고양이」가 아닌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단편소설인「저승과 진자」가 소개된 점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저승과 진자」에서도 절망적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공포적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포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공포로 인해 미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린 절망적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음산한 분위가 흘러나오는 어둡고 폐쇄적인 방, 먹이에 굶주린 채 어둠 속에서 돌아다니는 쥐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진자의 날카로운 거대한 칼날을 보면서 공포에 질린 소설의 주인공. 「저승과 진자」속 주인공은 소설 시작부터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미지의 강력한 공포로부터 지배당하고 있다. 포는 밀폐된 공간 그리고 '끔찍한 죽음의 선고'(「저승과 진자」pp 734)를 내리려고 하는 진자의 칼날이라는 공포스러운 공간을 만듬으로써 그러한 상황 속에서 공포감에 의해 피폐해져만가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그려내고 있다.   

 

나는 눈을 떠 내 앞에 펼쳐진 환영을 보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물을 최초로 바라보는 것이 두려웠다. 끔찍한 것을 보게 될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결국 강렬한 마음의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눈을 떴다. 그러자 상상했던 최악의 상태가 나타났다.

 

 - 에드거 앨런 포 「저승과 진자」중에서 (pp 737) 『우울과 몽상』홍성영 역 -

 

 

「어셔 가의 몰락」에셔는 우울증에 사로잡힌 채 알 수 없는 공포감에 괴로워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혼란스러운 정신 이상 증세를 가진 주인공 어셔와 음습한 분위기로 가득 찬 어셔 가의 저택에 대한 고딕소설풍 묘사는 아편 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을 경험한 포였기에 가능했다.

 

 

나는 내 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단 한 채의 저택과 그 주변의 단조로운 풍경, 황폐한 담, 공허하게 뜬 눈 같은 창, 몇몇 사초 더미, 그리고 뒤섞인 나무의 흰 둥치들. 나는 그것들을 극도로 침울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 감정은 아편 중독자가 꿈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베일을 벗겨내는 끔찍함 이외에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었다. 마음속이 싸늘해지고, 기운이 빠지고, 매스꺼웠다. 어떤 상상을 해보아도 적막감을 누그러뜨릴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음울함이었다.

 

 - 에드거 앨런 포「어셔 가의 몰락」중에서 (pp 675) -  

 

 

그래도 포라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 바로 「검은 고양이」다. 온순했던 인물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으면서 무시무시한 살인자로 변하는 모습은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악마'스러운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내를 살해하게 되자 아내의 시신을 지하실 벽 속에 감쪽같이 숨긴다. 하지만 완전범죄로 여겨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끔찍한 살인의 내막은 들통난다. 시신이 숨긴 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고 그 곳을 허문 순간, 부패된 아내의 시체와 시체 옆에서 외눈의 검은 고양이가 흉칙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앉아 있었다. 살인을 저지른 '괴물'이 벽 안쪽에 시신과 함께 있는 그 '괴물' 검은 고양이를 벽에 발랐던 것이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거나 특정한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되면 주위에 평범한 대상들도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살인자는 자신의 살인 행위를 유발하게 했으며 그 장면을 목격했을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처음에는 끊어질 듯한 어린아이의 흐느낌 같은 울음소리였는데, 곧 너무나 괴기하고 사람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끊임없이 울리는 큰 비명 소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비탄에 잠긴 저주받은 이와 그 저주에 기뻐 날뛰는 악마의 목구멍에서 함께 나오는, 지옥에서만 솟아오르는 공포와 승리감이 섞인 울부짖는 비명 소리였다.

 

 -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중에서 (pp 654) -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고양이가 우는 소리로만 들렸겠지만 살인자의 귀에서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자신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야만 했던 아내가 벽 속에서 외쳐대는 절규에 찬 비명 소리였던 것이다.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포의 이야기

 

포가 썼던 단편소설들을 모은 첫 번째 소설집 제목이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다. 첫 번째 소설집 출간 이후에도 포는 제2의 소설집을 출간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첫 번째 소설집의 제목이아말로 포가 추구했던 문학적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로테스크'라는 단어의 뜻처럼 포의 소설에는 괴기스럽고, 흉측스럽고, 현실에서는 부자연스러운 존재와 세계가 있다. 그런 형식을 지는 포의 소설이 자칫 우울하고 비이성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일종의 기피감을 가질 수 있겠다. 그의 문학을 칭찬하고 프랑스에 소개했던 보들레르의 문학처럼 포의 문학 역시 단지 '우울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문학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포는 문학의 목적이 도덕이나 교훈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미(美)의 창조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꿈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고 그 곳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짧은 소설마다 소재의 창발성에 놀라고, 때론 광기어린 감정 묘사에 혀를 내두르고, 때로는 기발함에 멈칫하게 된다. 몽상적인 소재들이 많아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무엇보다고 그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마주할 때 가지게 되는 인간의 무의식 속 감정, 즉 '공포'에 질리면서 나타나게 되는 감정의 급격한 변화도 묘사하고 있다. 

 

다독가인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젋은 시절에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문학의 상상력이 실제 현실과 비교할 때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소설과 같은 픽션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했다. 다치바나 다카시 입장에서는 단순히 시간낭비일지 몰라도 포의 상상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까?  더욱이 포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는 현실에 벗어난 건 사실이지만 낯설고도 비현실적인 세계 앞에 공포감을 느끼는 감정만큼은 '실재'의 경험이다. 

 

이렇듯 포의 소설은 단순히 호기심 많은 아동들을 겨냥한, 순순한 동심으로 가득한 어린 독자들에게 겁을 주면서 말초신경을 자극하게 만드는 싸구려 공포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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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2-1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잖아도 샤이닝님도 그러고 시루스님도 쓰시고 할인도 많이 돼서 이 책 살까 해요!^^

cyrus 2012-02-18 14:08   좋아요 0 | URL
요즘엔 이 책 싸게 팔더군요, 책이 두꺼워서 심심할 때 읽으시면
좋을듯해요 ^^

꽃도둑 2012-02-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포는 구체적 대상이 있을 때보다 막연하거나 형체가 없을 때 더 증폭된다고 합니다..
포의 공포는 분명 내적불안에 기반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쏘우 인가요?,..보는 내내 기분나쁘고 섬뜩했어요, 그 팽팽한 긴장감의 줄을 탁! 끊어버리던 반점의 묘미도 있었지만...
암튼 공포 영화 호러 영화 소설 등...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cyrus 2012-02-18 14:10   좋아요 0 | URL
쏘우, 완전 최고죠! 저는 공포영화 한 편 보면 영화에서 봤던
영상들이 머릿속에 남아도는 편이라서 되도록이면 잘 안 보는 편이에요.
공포영화 무서워서 안 보는게 아니랍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2-02-1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우...좋죠.저는 '어셔가의 몰락'이 좋았어요.이 집의 정체는 뭘까...의문의 여인은...그러다 마지막에 저택이 와르르...기묘한 매력이죠.

그리고 포우의 유일한 장편인 <아더 고든 핌의 모험>이 몇 년 전 다시 번역되었으니 관심있으면 구해 읽으세요.

cyrus 2012-02-20 18:43   좋아요 0 | URL
저도요. 소설 중간에 삽입된 시도 좋았어요. '애너벨 리'가 연상되더라고요.

사실 포를 읽으면서 장편도 구입하려고 했는데, 아쉽게 절판이더군요.
그나마 중고샵에 있는 것은 어처구니 없게 비싼 가격에 팔고 있고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네요 ^^

휘오름 2012-02-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전에 포우 단편집 조그만한건 한번 봤는데 제대로 나온 책은 한번도 못봐서 고민중이었네요. 이기회에 한번 도전해 바야겠궁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