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가 내게 오렌지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 자, 어느 쪽 손에 오렌지 하나를 들고 있는지 말해 보렴. "   " 오른손이요. "  내가 말했다.   " 그럼 이제 가서 거울 앞에 서렴. 네가 보는 소녀가 어느 손에 오렌지를 들고 서 있는지 말해 보렴. "  나는 당황해서 놀라움에 감추지 못하다가 " 왼손이요. " 라고 대답했다.  " 그렇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볼 수 있겠니? "   

나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이든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용기를 내서 " 내가 거울 반대편에 있다면, 오렌지는 계속 내 오른손에 있는 게 아닐까요? " 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 잘했어, 앨리스.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대답 중에 가장 훌륭하구나. "  

- 모튼 코언 <루이스 캐럴 : 대담과 회상> 중에서,  

루이스 캐럴, 펭귄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p 54 -  

 

  

  386의 딜레마  

<진보집권 플랜>을 읽어보면 조국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386세대의 모순이 곧 진보 세력 전체의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20대 때 386세대들은 사회적 문제들을 과감히 해결해나가는 실천을 통해서 ' 정치 진보 ' 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 생활 보수 ' 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조국 교수가 말한 주장의 요지이다.  다시 말하자면 머리속에는 진보적인 마음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는 정작 진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의 원인을 진보 세력들 사이로 침투된 보수적 문화와 논리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들도 모르게 보수적 논리의 향수에 젖어들게 되면서 과거의 진보적 희망의 불씨가 사라져버렸으며 결국에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희망과 의지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외고 폐지 이외에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 등에 대해서 " 너무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므로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 라고 예단하거나, " 보수 진영에서 ' 좌파 ' , ' 포퓰리즘 ' 이라고 맹공을 가하지 않을까 " 걱정하면서 포기한 것이죠.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진보, 개혁 진영의 상상력은 쪼그라들었고, 실천마저 과감해지지 못한 것입니다.  

- 조국 & 오연호 <진보집권 플랜> p 74 -

 

  

  진보의 생각를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조국 교수는 386세대의 보수화를 정치적 민주화의 성공에 기댄 탓에  ' 관리자 모드 ' 로 되어버린 그들 스스로 문제를 자초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제 현상의 이면을 살펴보게 되면 보수 진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큰소리라도 쳐보려는 보수 세력의 심산에 진보 세력은 마음 여리는 사람처럼 쉽게 받아들이고 되레 위축되고 마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그런 보수 세력의 심산을 애초부터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보 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통해서 점점 위축되어가는 진보 세력의 문제점을 넘어서 왜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보수주의 사상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에드먼드 버크에서부터 랜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 위대한 사회 ' 정책까지 다양한 정치적 사례와 문헌들을 통해서 보수주의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분석 끝에 보수주의의 문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세 가지 논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특정 논리들을 이용하여 진보주의자의 이념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허시먼이 주장하고 있는 보수주의자의 반동 레토릭(Rhtoric)에 대한 내용은 우석훈 소장은 국역본 추천사를 통해서 간략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 그래 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 : 역효과 명제  

2. 백날을 해봐라,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 : 무용 명제  

3. 복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 위험 명제  

 

역효과 명제는 말 그대로 개혁적인 정책을 도입해봤자 지금보다 실정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며 무용 명제는 아예 되지도 않는 헛된 일이라고 강력하게 못을 박고 있다. 그리고 위험 명제는 개혁적 정책을 피력하는 진보 세력을 위험 반동분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의 결정 때문에 사회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위험 명제의 단적인 예가 ' 국가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 와 같은 주장이다.

이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인데 우석훈 소장은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 무기 ' 들 때문에 진보적 개혁의 시도가 정체될 수 밖에 없었고 개혁 실행 의지에 대한 희망마저 부정하게 되어버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석훈 소장이 지적한대로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는 반동 레토릭의 영향이 남아 있으며 특히 보수와 진보 간의 의견 차가 큰 중요한 정책 결정에 보수주의자들은 반동 레토릭을 이용하고 있다.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동 레토릭을 증명한 허시먼은 책의 결론에서 밝혔듯이 단지 보수세력을 겨낭한 비판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며 양 세력 간 단절된 소통의 담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수 특유의 레토릭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공격해오는 주장을 또 다시 반박, 방어하기 위해서 진보주의자들도 재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 역효과 명제

반동 :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B. 위험 명제 

반동 :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 앨버트 O. 허시먼 <보수는 왜 지배하는가> p 226 -  

 

허시먼은 진보-보수 간의 상반되는 명제 대립을 비타협적 레토릭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한 쪽 세력이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면 반대쪽 세력은 무조건 그 의견에 반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인데 결국 오랫동안 진보와 보수는 서로서로 레토릭을 이용하면서 승자 없는 대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진보-보수 간의 대화에서는 상대 진영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반동 레토릭을 이용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반동 레토릭을 통해서 보수적 논리를 은연중에 옹호하고 있는 언론매체이다.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반동 레토릭을 진보주의자들도 변형하여 자신들만의 레토릭을 만들듯이 언론매체도 하나의 정치이념을 옹호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전면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식 복지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글을 올렸다는 언론보도 내용에서 반동 레토릭의 명제를 발견할 수 있다. 

" 무차별적 전면 무상급식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공짜 복지의 시작입니다. "  

오 시장이 블로그에서 직접 이런 문구를 썼는지 기사보도 내용대로 12일에 올린 글을 찾기 위해서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봤지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오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주장 입장을 언론보도를 접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한 기자가 만들어낸 헤드라인일 수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헤드라인은 반동 레토릭 중의 하나인 위험 명제를 사용하고 있다.  분별력 없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당의 무상급식 정책을 도입하게 되면 총체적인 국가적 예산 낭비를 불러올 수 있으면 결국에는 경제 파탄의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정책 도입의 문제점에 대한 근거보다는 정책 도입 자체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상 또 다른 명제들의 예를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처럼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언론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동 레토릭을 사용하는 언론의 탄생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치적 사항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대중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조장할 수 있는 동시에 정치적 사항에 대한 자주적 분별력마저 상실할 수 있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이론 중에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는 것이 있다.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자동차 게임에서 유래되었는데 핸들을 먼저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 치킨 ' 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불리면서 패배자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즉,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이론이다.   

비타협적 레토릭을 오고 가면서 대립과 갈등의 폭이 깊어져만가는 우리나라 진보-보수의 모습은 치킨 게임에 참여하는 두 명의 경쟁자를 연상시킨다.  진보와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로 굽히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되기 위해서 상대방 진영을 향해 공격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두 진영의 ' 귀머거리 ' 대화의 사회는 곧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권력 독점적인 사회이다.  무의미한 권력 엘리트 간의 대립은 대중의 영향에서 멀어지게 되면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마저 야기시키게 되며 결국은 사회 붕괴라는 파멸을 맞게 된다.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한 진보-보수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앨버트 O. 허시먼이 발견한 통찰에 의하면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의 원인은 비타협적 의사소통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반동 레토릭은 단순히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이자 방패가 아니라 다른 진영과의 대화마저 피하는 또 하나의 소통의 벽이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쇄적인 담론의 종속성에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반대 입장의 생각을 헤아려보면서 양보할 줄 알며 서로에 대해서 존중할 줄 아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건전한 발전을 지향하는 자세가 없는 한 두 정치 진영의 과도한 경쟁과 불필요한 공명심으로 발호되는 진보-보수 간의 귀머거리 대화는 우리 사회 내 숙명의 문제로 남기게 될 것이다.

 

 

   

* 기사 출처

[오세훈 "전면 무상급식,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 머니투데이 2011.2.13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1021304421490747&outli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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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2-1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386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끌어내기라도 했는데,
보수와 진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현실을 떠올리면 모순에 답답한 게 참 많아요.
우리처럼 20대도 나이를 먹으면 결국 생활보수화 되어갈지, 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제목을 봤을 때 <진보집권플랜>과 반대반향 논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확실히 우리는 완전한 진보를 논할 위치가 아닌가 봐요. 비슷하네요.
요즘처럼 헛된 데다 돈 쏟고 있는 꼴 보면 무상급식이 아무리 나빠도 그만할까 싶은데, 요즘 언론기사들 제목 너무 선정적이예요, 진짜. 꼭 이간질 시키려는 계략같고. 물론 그런 뉘앙스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요.

cyrus 2011-02-18 01: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나이 먹으면서 생기는 보수화를 부정할 수 없을거 같아요.
요즘 언론기사 보면 어떻게든 이목을 집중시켜보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선정적인 제목이 많긴 하죠.

마녀고양이 2011-02-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책 주문하면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를 두고 망설이면서
리뷰를 보는데........ 글쎄 사이러스님의 페이퍼가 딱 보이는겁니다.
리뷰 읽고, 그대로 주문장에 던져넣었습니다. 땡스투~ 당근 눌렀어염. 아하하.

우리의 진보는 솔직히 보수와 진보 중간 즈음, 소위 중도라는 어정쩡한 위치라 봅니다.
그거라도 되면 어딥니까, 솔직하게.. 그도 안 되는 위치에서.
복지 국가 어쩌구 남발하는 온갖 정치인들, 다 꼴불견의 극치입니다. (아하하, 강성 발언!)

cyrus 2011-02-18 01:04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아요. 분량도 그리 많지 않구요,, 사실 우석훈 씨의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이 뭘 말하고 있는지 90%는 이해할 수 있어요 ^^;;

양철나무꾼 2011-02-18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수나 진보 등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다소 과격하지만 '개혁'을 들먹이게 되구요.

이 책의 국역본 추천사를 '우석훈'씨가 썼다니...흥미로운걸요.^^

cyrus 2011-02-18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까지 보수 진보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개념 확립의 선을 긋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모호한 느낌도
들더라구요.. ^^

2011-02-18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8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