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잡다
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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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한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 병을 앓는 사람을 뜻하는 환자(患者)의 ‘환(근심)’은 마음(心)에 꼬챙이(串)가 찔려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질병의 고통은 외부적 요인(꼬챙이)과 내부적 요인(마음)이 동반해서 생기는 것이란 암시로 보인다. 환자는 몸만 아픈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마저 약해지면서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종교의 영역에서 고통은 성스러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기독교가 보는 몸은 위험한 욕망으로 가득한 덩어리로, 자기 정화를 통해 성스러워져야 하는 대상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사랑을 실천한 예수의 고통을 바라보는,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몸을 정화해 영적 치유를 얻는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질병의 중세적 관점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이나 초월적 의미로 신비화했던 몸이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몸속 장기와 조직, 세균의 실체를 탐색하기 시작한 근대 의학은 질병의 고통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법을 찾았다. 이로써 외과 의사들은 완치율이 높은 수술을 할 수 있게 됐다.

 

네덜란드 현직 외과 의사가 쓴 《메스를 잡다》는 원시적인 방광결석 제거술에서 긴박감 넘치는 JFK(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응급실 현장까지 과거 · 현재 · 미래의 외과술을 보여준다. 이 책 속에 있는 의학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의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발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8세기만 해도 외과 의사는 ‘뼈를 자르는 사람’으로 불리며 멸시를 받았다. 외과 수술은 이발소에서 이뤄졌는데, 무시무시한 칼질을 하던 외과 의사의 모습은 푸주한과 다르지 않았다. 네덜란드의 대장장이는 칼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방광에 있는 달걀만한 돌덩어리를 직접 빼냈다. 몸속 깊숙이 의사의 메스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취제가 본격적으로 병원에 도입되는 19세기 중엽을 기다려야 했다. 오늘날에 마취 없이 환자의 몸에 메스를 대는 의사는 거의 없다. 결국 의학의 역사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 속에 진행된 크고 작은 수술들이 만들어낸 역사이다.

 

이 책은 수술의 역사를 조명하면서 의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뿐만 아니라 수술대 위에 누운 유명한 환자들도 소개한다. 의사와 환자,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소리 없이 아파져 오는 통증과 심한 부상을 입은 몸이라는 낯선 신체적 조건에서 시작된 우연한 만남이다. 병원과 수술실에서 만나는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우리가 생각해도 긍정적일 수만은 없다. 환자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환자가 평소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 불편한 관계가 아닌 질병과 맞서 싸우는 동반자이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지나친 불신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자초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루이 14세의 궁정 음악가로 활동한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는 지팡이 모양으로 된 지휘봉을 사용했다. 이것은 지금의 지휘봉과는 조금 다른 형태이며 사용 방법도 다르다. 지휘봉을 손에 들고 공중에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쿵쿵 내려치며 박자를 맞추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륄리는 왕을 위한 공연 리허설을 진행하던 도중 지휘봉에 발등을 찔리는 상처를 입는다. 륄리는 발등에 생긴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국 괴저에 걸려 의사로부터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을 무시한 륄리는 괴저가 일으킨 합병증에 시달려 끝내 목숨을 잃었다. ‘내 몸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 또한 몸 상태를 더욱더 나쁘게 만드는 원인이다. ‘전설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는 튼튼한 체격을 가진 장사였다. 그는 “내 배를 얼마든지 때려도 난 끄떡없다”라고 떠벌렸다. 그를 만난 대학생이 진짜로 그의 배를 세 번 후려쳤고 후디니는 이틀 만에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충수염과 복막염이었다. 복부 통증을 견디면서 무리하게 마술 쇼를 강행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륄리와 후디니는 안일한 판단 때문에 자신의 생사를 결정하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저자는 의학이 과거에는 질병을 극복하는 데 치중했다면 미래에는 개인 생활방식의 개선, 신체 기능 증진, 수명 연장 등으로 초점을 옮기면서 의학의 역할도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도 륄리와 후디니가 자신의 몸을 혹사해 파국에 이르렀듯이, 질병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몰아내면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선 안 된다. 급성 질병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없앨 수 있지만, 만성적으로 지속하는 질병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몸에 이상을 느끼면 병원을 찾는 대신 인터넷부터 뒤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의 증세에 해당하는 질병을 확인하려는 본능과도 같은 행동이다. 환자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까지 내리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자신의 증세와 비슷한 사람의 글을 읽고, 병원 진료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해버린다. 심지어 효과 없는 치료법을 믿고 아예 병원을 찾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의사와 환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달린 일이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에게 신뢰를 하고 질병이라는 적에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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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cyrus 2018-12-20 16: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이웃들의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좋은 이웃’은 아니랍니다.. ㅎㅎㅎ

글월마야 2018-12-19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cyrus 2018-12-20 16: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설해목 2018-12-19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유독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어떤 의사는 신뢰가 가고 또 어떤 의사는 내내 믿음이 안가기도 하더라구요. 질병은 둘째치고 의사와의 교감도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한 해였어요.

cyrus 2018-12-20 16:56   좋아요 0 | URL
요즘 자격 미달 수준의 의사들이 많아서 진료와 치료를 받는 게 부담스럽지만, 계속 진료와 치료를 미루면 몸이 더 나빠져요. 병원에 안 갈 수가 없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