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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ㅣ 창비세계문학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괴테가 스물다섯살에 발표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비운의 사랑과 자신의 쓰라린 실연이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청년 괴테는 법관 시보로 근무하던 중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성을 만나 첫눈에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임을 느끼지만, 그녀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몸이었고 절망감을 이기지 못한 괴테는 수습 근무를 중단하고 낙향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차에 결혼한 여성을 사랑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한 괴테는 죽음의 충동과 싸워가며 4주 만에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중에 써내려갔다.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괴테에게 이 작품은 실연의 고통과 치명적인 격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절대적 사랑을 희구하는 순수한 영혼과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자,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는 예리한 지성을 지닌 청년의 영원한 상징, 베르터. 베르터의 자아실현 욕구는 감성과 이성의 전면적 발현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를 갈구하던 당대 청년들의 집단적 열망을 대변했고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열광적인 호응을 불러왔다. 베르터 씬드롬을 일으키며 당시 유럽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전인적 이상을 추구한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운동의 구심 역할을 했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가들에게 찬탄과 매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서구문학사 최초로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대를 뛰어넘어 삶에 고뇌하는 모든 청춘에게 여전한 울림을 주는 명실상부한 고전이다. (책소개 中)
중학교 시절, 내가 아는 베르테르는 국어 선생님이 가르쳐준대로 낭만적이고 순애보를 펼치는 남자였다. 로테라는 여자를 짝사랑하며 괴로워하는 남자.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 설정 자체만으로도 낭만적이라 이 남자의 슬픔과 자살을 읽어보자 생각하고 책을 펼쳐 들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지루해. 이게 대체 뭐그리 위대하단 말야? 십대의 내게, 베르테르는 지루했다.
그로부터 이십년 가까이 지났구나. 나는 다시 베르테르를 읽는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이 책에서는 베르터)를 따라 많이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다. 하나의 소설이, 그것이 위대하다고 칭송될지언정, 문학이, 사람들을 자살로 이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건 말도 안돼, 나는 그런식의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책 속에서 로테를 향한 사랑에 애를 끓이는 베르테르를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나는 짝사랑의 아픔을 넘어, 왜 어떤 이들에게 자살은 마지막의 선택일 수 밖에 없는지를 깨닫는다. 자살은 사람이 해서는 안될짓이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이제 베르테르를 읽고,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 선택밖에 남은 것이 없었을거야,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둑질이 악덕인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인 가족과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도둑질한 사람은 동정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처벌을 받아야 할까? 바람을 피운 아내와 저열한 유혹자를 의분을 삭이지 못해 죽인 남편에게 누가 먼저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그지없는 환희의 시간을 맞아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희열에 몸을 맡긴 처녀에게 누가 먼저 돌을 던지겠는가? 우리나라의 법률 자체도, 아무리 냉혹하고 고지식한 법관이라도, 감동을 받아서 처벌을 철회할 걸세."
"그건 전혀 그렇지 않아." 알베르트가 대꾸했다.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일체의 분별력을 잃고 취한이나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니까."
"아, 자네처럼 이성적인 사람들이란!" 나는 웃는 얼굴로 소리쳤다. "격정! 도취! 광기! 자네 같은 사람들은 아무런 동정심도 없이 느긋하게 지켜보기만 하지. 자네처럼 윤리적인 사람들은 술꾼을 나무라고 정신 나간 사람을 혐오하고 성직자처럼 그냥 지나쳐버리지. 그러면서 하느님이 자신을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바리새인처럼 감사하지. 나도 가끔 취해본 적이 있고 나의 격정은 광기에서 멀리 떠어져 있지 않지만, 나는 그 두가지를 후회해본 적은 없네. 왜냐하면 뭔가 위대한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비범한 사람들은 모두 예로부터 취한이나 광인으로 지탄받았다는 것을 내 나름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지.
그런데 평범한 생활에서도 어느정도 자유롭고 고귀하고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하면 어김없이 '저 인간은 취했군, 바보같이 굴잖아!' 라며 흉보는 소리를 듣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야. 자네처럼 냉정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니까! 똑똑한 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pp.76-78)
베르테르는 로테의 남편인 알베르트의 장전되지 않은 권총을 이마에 가져다대본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결국은 자살에 대한 이 논쟁이 시작된다. 베르테르가 이성적인 알베르트에게 맞서는 그 모든 말들, 그 말들에 담긴 절절한 감정과 흥분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고, 다른 상황이 하나의 사건 사이에 숨겨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인데, 지금 그는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므로 그 감정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 과장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 자신이기도 하고 이 세상의 모든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자살에 대해 변호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한계가 있어. 기쁨과 괴로움과 고통을 어느 한도까지는 견딜 수 있지만, 그 한도를 넘어가면 곧바로 쓰러지고 말지. 그러니까 나약한가 강인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도덕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간에 과연 어느 한도까지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가의 문제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해. 마치 고약한 열병에 걸려 죽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야."
"그건 궤변이야! 말도 안되는 궤변이라고!" 알베르트가 소리쳤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터무니없지는 않아." 내가 대꾸했다. "다음과 같은 경우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는 데는 자네도 동의할 걸세.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심신이 극심한 타격을 받아서 기력이 소진되고 작동을 멈춰서 다시는 기력을 회복할 수 없고, 제아무리 획기적인 소생술을 써도 생명의 정상적인 운행을 복구할 수 없게 되지.
그런데 이런 경우를 인간의 정신에 적용해보세.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고 특정한 생각에 고착되어서 마침내 격정이 점점 크게 자라나 차분한 사고력을 잃고 파멸로 치닫는 것이지.
느긋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그런 불행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위에서 내려다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어. 그런 사람에게 뭐라고 설득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환자의 병상을 지키는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기력을 아픈 사람에게 조금도 불어넣어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pp.79-80)
베르테르의 고양된 말들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의 모든 면면이 이해되어, 나는 그가 이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 작품도 위험하구나, 생각한다. 이제는 이 책을 읽고 베르테르처럼 자살했다는 젊은이들이 생겼다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그들 모두를 변호해줬고, 정신과 마음의 고통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자살이란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베르테르 역시 자신의 고통을 그런식으로 끝냈듯이. 아, 이 책은 얼마나 위험한가. 나는 이제 하나의 소설이, 하나의 문학 작품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처절하게 이해한다.
이것은 사랑이야기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 '빚을 진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걸 갚으려고 생각하기 때문'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베르테르가 앓는 것도 같은 이유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다른 남자의 여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점점 커져만 가는 마음을, 끓어오르는 격정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기 위해 노력한다.그래서 그는 힘이 든다. 그가 참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는 주인 아가씨를 사랑하다 그녀와 결혼할지도 모를 남자를 살해한 머슴을 이해하고 그를 변호한다. 그가 그동안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베르테르는 알고 있다. 결국 그가 살아야 자신의 존재가 합당해진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를 변호하는 사람이 자신 뿐임을 알고 자신에게도 이제 절망뿐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아파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아파하는 한 남자가 아파하는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해주고 아파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변호해주는 이야기이다. 베르테르가 결국은 울며 로테의 발 앞에 무릎 꿓었듯이, 그러다 참지 못하고 결국은 입을 맞추었듯이,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접했던 이들이 선택하게 되는 최종적 결말 앞에, 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이 어리석다 말할 수 있을것인가. 그 안의 그 고통에 대해 우리는 차마 짐작하지도 못하면서.
베르테르의 면면이 이해돼 아픈 소설이고, 그 아픔이 책 바깥으로 넘쳐 흘러 모두에게 위험한 책이다. 사춘기 시절의 내게 베르테르는 지루함의 책이었고, 표면적으로 짝사랑에 대한 슬픔의 책이었다면, 지금 내가 읽은 베르테르는 위험한 책이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다. 누군가 지금 내게 베르테르를 읽었냐고, 그 책이 어땠냐고 물으면 나는 단 한마디로 대답할 것이다.
매우 위험한 책이에요.
나는 이 책을 읽을 모두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