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나요 - 책으로 인연을 만드는 남자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취미가 비슷한 사람, 내가 보고 듣는 것을 이야기하며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기회를 잡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온라인을 통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나는 종종 혼자서 망상에 빠지곤 한다. 수많은 책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그 곳에서 나와 비슷한 곳을 서성거리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은 무슨 책을 좋아하는 걸까,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저 사람도 재미있게 읽었을까. 혹은 나는 얼씬도 하지 않는 책장 근처에 머물러 있는 이를 보면서 그 사람은 자신이 보는 책에서 어떤 즐거움을 얻는 것일까, 그렇게 말이다.


  그러면서 괜스레, 아무도 신경 쓰지도 않음에도 (나 혼자) 그들의 근처를 얼씬거리며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굳이 다시 집어들어 뒤적여보곤 한다.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라는 무언의 제스처를 마구마구 발산하는 것이다. 받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몰라도, 킥킥.



  어쨌든 책의 숲을 거닐면서 나 혼자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는 것도 서점 그리고 도서관을 방문하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인데, 그런 나의 로망이 담겨있을 것만 같은 제목의 소설, 다케우치 마코토의 <도서관에서 만나요>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게다가 나는 이처럼 '책 이야기거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제목과 표지의 책을 정말 좋아한다.




한밤의 도서관은 오직 나만의 것이고 내 손에는 손전등이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삼촌이 밤참거리를 사 왔다며 들락거리는 것보다 아침까지 도서관을 독차지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하는 편이 훨씬 좋았다._p.46




  무명 작가 고마치 다케도는 전철에 몸을 싣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서 자신이 쓰려 했던 이야기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안 읽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해변의 카프카> 속 주인공 소년 카프카는 돌아가기 싫은 집 대신 도서관을 향하는 모양이다.) 과거 도서관에서 밤을 보냈던 자신의 경험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을 읽은 그는 빼앗겼다는 질투와 함께 자신이 그 경험을 글로 옮긴다면 이보다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진다.




"저기, 저 사람이 읽고 있는 책, 《해변의 카프카》 아니야?"

"아, 정말 그러네."

석양빛처럼 불그레한 표지가 눈에 익었다. 키가 크고 안경을 낀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은 《해변의 카프카》 하권이었다._p.141




  한편, 미용실의 점원과 손님으로 만난 두 남녀가 있다. '호시노 스미레'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나즈나에게 그 이름은 어디서 따온 것이냐고 물었던 와타루는 서로가 알고 있던 다른 책을 통해 공통점을 찾아낸다. 나즈나가 와타루에게 권해준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본 것을 시작으로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해변의 카프카>의 무대가 되었던 다카마쓰에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운다.



  <해변의 카프카>를 통해 여행에 함께 동행하게 된 한 명의 중년 작가와 한 쌍의 남녀. 그들은 함께 <해변의 카프카>를 이야기하며 다카마쓰를 여행한다. 이 단 한 권(은 정확히 말하면 아니지만)의 책이 세 사람을, 그리고 또 다른 장소에서 머물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어 거기에 이끌리듯 한 도서관에 모이게 된 우연 그리고 인연을 그려내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사람과 책을 이어주는 장소니까요._p.214




  공교롭게도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 이어 펼친 책 역시 하루키와 연결이 되어있다니,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크크크.

  그러려고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잡문집>에서도 살포시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이야기를 이 소설 속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어, 그래 나 이거 알아!'하는 순간의 반가움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었다. <해변의 카프카>를 몰라 줄곧 머릿속에 찜찜한 물음표가 떠다니고 있던 찰나에 만나본 친숙한 이름이라니.


  고작 친숙한 한 개의 단어를 발견하면서도 반가웠던 나였을 정도이니, <해변의 카프카>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를 세세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이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세계에 대한 연결고리─<해변의 카프카>라는 작품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작품 세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듯하다─를 찾아나서는 여행은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에게는 더 반갑게 다가가지 않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사고를 촉발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너무 지나쳐 지어낸 이야기와 현실을 혼동시키기도 하지만,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위로하는 선한 힘이 충만하다. 나는 그러한 힘을 믿고 싶다._p.146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오마주이자 책을 통해 이어지는 인연을 그려내고 있는 따뜻한 소설이니만큼, 책이 가지고 있는 따뜻함과 그 힘을 믿는 이에게는 상당히 감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일 것 같다. 아무도 모르게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거나, 문득 책을 들고 오른 여행길에서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를 만나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 이야기의 힘, 참 낭만적이구나.



 

나즈나와 와타루, 그리고 미쓰기 씨. 독자가 있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가 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따뜻한 빛을 발하는 게 느껴졌다.

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꿈틀댄다._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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