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2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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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말입니다, 선생.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다만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지 어떨지에…달린 것이겠지요. 사람은 모두 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악몽만 꾸는 것은 아니라고, 소생은 그리 생각하지요. 전부 꿈이라면 거짓도 거짓임을 알기 전까지는 진실.

하지만 거짓이 진실로 변해…

-p.229

 

 

 

 

요괴의 소행,으로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를 새로운 해석으로 내놓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의 후속작, <속항설백물어>가 드디어(라고 하지만 벌써 한 달이 되었다만;) 출간되었다. 이미 진작에 <항설백물어>를 읽었던 이에게는 몇 년 만의 후속작이 반가울 것이었고, 출간 소식과 함께 <항설백물어>를 읽고 애태울 것도 없이 바로 속편을 펼칠 수 있다는, 여차저차 반가운 소식인 것이다. 전편만한 속편이 없다고들 하지만, 그 다음 작품인 <후항설백물어>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만큼,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리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쁜 기대감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시리즈에 맞게, 통일성 있는 표지가 매력적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로 지난 편에 비해 이야깃수는 하나 줄어들었지만, 두께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난 듯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설화를 재해석했을지, 모모스케와 모사꾼 마타이치와의 접선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들이 벌이는 연극은 또 얼마나 변해있을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얼마나 밀도있게 담겨있기에, 이런 두께가 되어버린 것인지. 이리저리 기대를 하면서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마에 돌멩이가 그대로 '박혀' 죽는 괴이한 사건을 그려낸 「노뎃포」, 목을 베어도 몇십년에 걸쳐 다시 살아나는 불사신 요괴 기에몬의 정체를 파헤치는 「고와이」, 가는 곳마다 불을 부르는 한 여인의 정체를 쫓는 「히노엔마」, 표주박을 건네주면 바닷물을 계속 퍼올려 배를 침몰시키는 유령 「후나유레이」, 한 고을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끔찍한 연쇄살인의 주범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 그리고 죽은 영주의 유령이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한 무사의 이야기 「로진노히」까지. 이번에도 역시 인간의 어둠에서 비롯된 사건을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와 그 일당인 인형사 오긴, 지헤이 영감까지. 게다가 새로운 인물이자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무사 우콘'도 등장하게 된다.







결론은,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일 뿐, 이라는 것이다. 그 연극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독자에게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이상한 일은 없을 것이며, 그 모든 혼란은 사신도 유령도 저주도 아닌 인간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작 <항설백물어>와 여전히 같은 계보를 잇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 <속항설백물어>는 전작과는 분명히 다르다.

 

<항설백물어> 속 일곱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독립성이 강했지만, <속항설백물어>는 여섯 개의 이야기가 독립성을 띠고 있는 동시에 전체적으로도 연결된다. 단편 하나하나로도, 그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적인 이야기로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연극의 주역'이었으나 '이야기의 주역'은 되지 못했던 일당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던 찰나에, 그들의 과거 역시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 이야기라면 사족을 쓰지 못해 이리저리 기담을 수집하러 여행을 훌쩍 떠나곤 하는 모모스케는 도대체 무슨 수입원을 가지고 있기에 한량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지헤이 영감과 인형사 오긴, 그리고 마타이치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었기에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무숙인'의 신분에 놓이게 된 것일까.

 

어디선가 의뢰를 받아 훌쩍 연극을 벌이기 위한 물밑작업을 하는 일당들과, 자기도 모르는 새 일당의 연극에 참여하게 된 모모스케. 그들의 겉모습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항설백물어>와는 달리, 이번 <속항설백물어>는 그렇게 모모스케의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지헤이 영감의 과거, 오긴의 가족사 등 일당들이 '이야기의 주역'이 되어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가, 새로운 등장인물 방랑 무사 '우콘'의 등장 역시 이야기에 활기를 더해준다.  첫 이야기 「노뎃포」에서부터 이리저리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모모스케를 위해 이야기를 수집해오곤 하는 책장수 헤이하치의 한 마디에서 출발된 '시치닌미사키'의 저주는 각 단편의 전반에서 불쑥불쑥 배경처럼 등장하다 끝내 「사신 혹은 시치닌미사키」에 이르러 그 저주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이른다. 우연찮게도 헤이하치 뿐 아니라 지헤이 영감, 오긴과 단 둘의 여행길에 오르게 된 모모스케는, 그 '시치닌미사키'의 다양한 소문의 원류를 쫓아 오긴과 동행하던 중 낯선 무사에게서 미행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 닿게 된 '우콘'과의 만남과 그가 가지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은, '시치닌미사키'의 저주를 파헤치는 데 몰입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설 전체의 흐름에도 잘 녹아들어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어떤 이야기의 속편, 이라는 것은 전작에 잇닿여 있을 뿐 아니라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속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살포시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속항설백물어>는 속(續)의 의미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극 배우'였을 뿐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들을 수 없었던 전작과는 달리, 그들의 속내를, 그들의 과거를 들려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이 <항설백물어>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항설백물어> 속 작품 하나 하나 사이를, 신출귀몰하는 일당들의 여정을 이어준다. <속>을 읽는 도중도중 전작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사건이 또 다시 언급되거나, 또 다른 사건 해결을 위해 떠나는 여정의 목적지가 전작에 이미 등장하는 등 전작을 읽은 독자는 반가운 이야기 역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속편은 속편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출간 순서' 그대로, <항설백물어> 그리고 <속항설백물어>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일본에서는 그에 이어 나오키상 수상작 <후항설백물어>, 마타이치 일당이 모모스케를 만나기 이전의 활약이 담긴 <전항설백물어> 그리고 2010년 최신작 <서항설백물어>까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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