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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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라는 존재. 분명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다. 주변의 이웃이 알고보니 사이코패스였다,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현실이다.

하지만 어느샌가 스릴러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사이코패스는 상당히 익숙한 존재가 된 것도 같다.

영미권 스릴러를 읽을 때는 더더욱. 어느샌가 책을 읽고 있노라면 살인자는, 돈, 명예, 사랑이라는 명예가 아닌 그저 '쾌락'을 추구하며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피가 낭자한 시체 옆에 서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면 나는 생각한다. '아... 또 사이코패스야?'

 

그리고 경찰은 수사망을 좁혀나가며 그 사이코패스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정체는 '옆에 있던 친숙한 인물'. 사이코패스가 존재하고, 그 흔적에서 공포심을 조장하며 그를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샌가 '스릴러=반전'의 공식이 세워지면서 그 '반전'을 위해서, 의외의 범인을 내세우기 위해 조금은 억지스러운 결말이 아쉬울 때도 종종 있다. 어느샌가 무감각해지고 만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지겹다고, 소설을 안 읽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재미있다.

 

 

 

어쨌든 그렇다는 것인데, 존 버든의 <658, 우연히> 역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 좀 다르다. '누가? 왜?'와 함께 '어떻게?'라는 수수께끼와 함께 시작하는 책은, 한 통의 편지로부터 출발한다ㅡ.

 

 

퇴직 형사 거니는 뉴욕 교외에서 한적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전직 형사다. 그러던 어느 날, 그다지 친하지도 교류도 없었던 대학 시절 동창 멜러리가 찾아온다. 공포에 떨고 있는 그는, 자기가 받았다는 편지를 보여준다.

 

내용인 즉슨, '난 네 비밀을 모두 알고 있다'고 멜러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암시가 담겨 있었다. 그 증거로, 1부터 1000 사이 숫자를 하나 생각해 보라고 하더니 그 순간 떠올랐던, 아무런 의미도 이유도 없었던 '658'이라는 숫자를 맞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멜러리는 목이 잔인하게 난도질당한 채 끔찍한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범인은 타액도 체모도 그를 나타내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허공으로 사라진다. 범인이 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면, 발자국이 도중에 뚝 끊긴 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범인은 멜러리의 생각을 알아맞혔고 멜러리를 살해한 뒤 흔적도 없이 유유히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이미 은퇴한 형사였지만, 거니는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해 범인의 시나리오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결국 사이코패스의 소행,이라는 것이지만 다른 사이코패스 소설과는 다르다. <658, 우연히> 속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흔적을 어디에도 남겨두지 않아 경찰이 그를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데이브 거니는 범인의 행적을 쫓는 게 아니라 그가 왜, 그리고 어떻게 피해자에게 접근해 살해했는지 특유의 직감과 가설을 세우며 그의 행동을 분석하는데, 그 과정이 독특하다.

 

정체를 숨긴 범인과 그를 색출해내려는 거니의 두뇌 싸움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존 버든은, 촘촘한 '논리'와 치밀한 '우연'으로 독자를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넣는 것은 아니다.

허영심이 가득한 아들 카일과의 통화를 피하는 아버지로서, 은퇴 이후 사진 보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작품을 준비하면서 흔들리는 남자로서, 그리고 어린 나이에 잃어버린 어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또 다른 한 명의 아버지로서.

데이브 거니는 뛰어난 수사력을 갖춘 형사였고, 또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해 특별 수사관으로서 범인을 쫓고 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완벽한 대신 한없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다양한 모습과 감성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한 권에 담아낼 수 있었을까!

 

 

 

범인과의 머리싸움 그리고 데이브 거니라는 한 남자의 일상 속 모습.

<658, 우연히>는 퍼즐과 미스터리, 경찰, 그리고 그저 한 명의 인간의 모습과 그가 가진 상실을 모두 한번에 그려냈다.

하드보일드의 감성과 퍼즐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한꺼번에 담아낸 이 소설. '완벽'이라는 말을 쉬이 쓸 수는 없지만 이 소설에는 '완벽'이란 단어의 95%정도는 할당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658, 우연히>는 작가 존 버든의 첫 번째 소설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빈틈이 없었던 데뷔작으로 후속작은 이에 미치지 못할지, 그 이상의 완벽을 보여줄지. 그의 다음 행보가 더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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